Forrest Griffin
국적 | 미국 |
종합격투기 전적 | 25전 19승 7패 |
승 | 3KO, 7서브미션, 9판정 |
패 | 5KO, 2판정 |
생년월일 | 1979년 7월 1일 |
신장 / 체중 | 191cm / 93kg |
주요 타이틀 | UFC 8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
기타 | TUF 시즌 1 라이트헤비급 우승 |
TUF 1 우승자로 UFC가 진정한 메이저로 나아감에 있어 중대한 역할을 한 옥타곤 신데렐라.
투지 넘치는 파이팅으로 '진흙탕 귀공자'라는 별명이 있다. 굴곡이 심한 드라마틱한 경력의 파이터. 약칭으로 포리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관련항목 : UFC 역대 챔피언 |
1 전적
MMA 데뷔는 2001년 10월 RSF에서 댄 세번을 상대로 한 경기였다. 압도적인 경험과 체중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승부를 판정까지 끌고 갔으나, 결국 만장일치로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후로는 연승행진을 계속하여 2003년 9월 IFC 토너먼트에 참가하기까지 8연승을 거둔다.
2003년 9월 IFC의 8인 토너먼트 Global Domination 1차전에서는 차엘 소넨을 접전끝에 제압했다. 소넨의 레슬링에 휘말려 링바닥을 청소했으나 꾸준히 노리던 트라이 앵글이 먹혀들었다. 소넨의 전형적인 패배패턴.. 준결승에서 만난 제레미 혼을 상대로도 숏어퍼로 다운을 빼앗는 등 잘 싸웠으나 그라운드에서 밀리는 양상을 보였고, 스탠딩 선언 후 하이킥을 얻어맞고 KO로 무너지고 말았다. 3개월 후 12월에 다시 중소단체에서 KO승을 추가했으나 별다른 오퍼를 받지 못했다.
2004년 데이나 화이트는 고전중이던 UFC의 타계책으로 리얼리티쇼를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선수들을 모집했다. 오퍼를 받은 그리핀은 바로 승낙했고 TUF 초대 프로그램에서 척 리델의 견습생 자격으로 참가, 2005년 4월의 피날레에서 스테판 보너를 꺾고 화려하게 TUF 우승자에 등극했다. 난타전을 불사한 두 선수는 3라운드 내내 화끈한 명승부를 펼쳤고 3명의 저지가 모두 그리핀의 손을 들어주며 만장일치 승리가 선언되었다[1]. 또한 그리핀은 훗날 상대블럭의 코치였던 랜디 커투어의 익스트림 커투어로 이적하게 되는데, 이 또한 그리핀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선택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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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5년 6월과 10월에 빌 마후드와 엘비스 지노식이라는 떡밥을 1라운드 초살 승부로 제압하고 무럭무럭 자라난 그리핀은 2006년 4월 UFC 59에서 UFC 2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인 티토 오티즈를 상대로 검증무대를 거친다. 1라운드 테이크다운을 허용하며 위험한 모습도 보였으나 2라운드부터 점차 타격으로 티토를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선전했다. 결과는 스플릿 판정패였지만 그리핀의 승리를 주장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정도로 박빙의 승부였다. 2006년 8월 UFC 62에서 TUF 동기생인 보너와 재대결하여 다시금 승리를 거두었고 리델의 대권을 위협할 차기 도전자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2006년 12월 UFC 66에서 상성파괴자로 이름높은 키스 자르딘에서 라이트어퍼를 허용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이어진 파운딩에 충격적인 TKO패를 당한다. 당시 타이틀샷을 위함 통과점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자르딘전의 패배는 2006년 최고의 업셋으로 다가왔다.
2007년 6월 UFC 72에서는 헥터 라미네즈를 상대로 신중한 경기운영을 보이며 판정승으로 거두었다.
그리고 2007년 9월 PRIDE의 강자였던 스탬핑장군 마우리시오 쇼군의 UFC 데뷔전 상대로 지목을 받는다. 당시 라이트헤비급 최강의 선수로 평가받던 쇼군과의 대결에서 그리핀은 한 수 아래의 언더독으로 평가받았으나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초반에는 안면에 정타를 허용하고 엘보우에 얼굴이 찢기기도 했으나, 물러서지 않고 근성과 체격으로 압박, 언제나처럼 '피에 물든 그리핀'이 연출되며 그라운드에서의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3라운드까지 가는 혈전 끝에 PRIDE 미들급 그랑프리 우승자로부터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탭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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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UFC 92에서는 역시 한 수 위의 탑독으로 인식되던 UFC 7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램페이지 퀸튼 잭슨을 상대로 경기를 가졌다. 그리핀은 우월한 복싱스킬을 가진 퀸튼을 레그킥으로 공략하며 특유의 근성 넘치고 끈적끈적한 파이팅으로 5라운드 내내 접전을 펼쳤다. 결국 만장일치 판정으로 램페이지를 꺾고 UFC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다만 박빙의 승부였기 때문에 판정에 논란이 있었다. 특히 한 저지는 49 : 46을 그리핀에게 주기도 했는데, 적어도 1라운드와 4라운드는 퀸튼이 확실하게 앞섰기 때문에 잡음이 컸다.[2] 물론 미국에서는 그런거 없이 새로운 백인 챔피언의 등극에 미칠듯한 환호만 이어졌다.
그러나 2008년 12월 UFC 92에서 공공의 적 라샤드 에반스를 상대로 가진 1차 방어전에서 초반에는 로우킥을 앞세운 아웃파이팅으로 우세한 모습을 보였으나 점점 펀치를 허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3라운드 경 킥캐치에 이은 펀치를 허용하며 다운을 당하고 뒤이어 쏟아진 파운딩에 맥없이 탭을 치며 무너지고 말았다.
2009년 8월의 UFC 101에서는 MMA 역사상 유례없는 충격적인 관광을 당하게 된다. 미들급 5대 챔피언인 우주괴수 앤더슨 실바와의 계약체중 매치에서 그야말로 농락을 당한 것. 실바는 그리핀의 타격을 상체 위빙만으로 회피하며 그야말로 어린아이 다루듯 자유자재로 그리핀의 안면에 펀치를 꽂아넣었다. 결국 펀치러쉬에 카운터를 얻어맞고 그대로 안드로메다행 특급열차를 타고 떠나버렸다.[3]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리핀은 이 경기에서 금지 약물을 복용했었었다고 한다.
2009년 11월 UFC 106에 출격하여 티토 오티즈를 상대로 리벤지를 거두며 분위기 일신에 성공했다. 체력에서 우세를 보이며 타격에서 경기를 주도해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1, 2라운드를 티토의 우세로 보는 시각도 있어서 판정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1년 2월 UFC 127에서 리치 프랭클린을 체격과 리치로 압도하면서 승리했다.
그러나 2011년 8월 UFC 134에서 가진 쇼군과의 2차전에서 TKO로 패하며 상승세가 주춤하게 되었다. 체력전 양상이었던 1차전과 달리 초반 타격전에서 TKO로 패배.
2012년 7월 UFC 148에서는 티토 오티즈와의 3차전을 치뤄 만장일치 판정승을 따냈다. 비록 타격 횟수에서 압도적 차이를 내 경기를 이기긴 했지만 연이어 테이크다운을 허용하고 다운을 당하는 등 예전만 못한 경기력을 보였다. 게다가 경기 이후 TRT 요법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약 빨고도 그정도냐'며 까였다.
2012년 12월 29일 필 데이비스와 경기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무릎 부상을 당해 결장하였다.
이후 경기를 갖지 않다가 UFC 160 대회 이후 있던 기자회견에서 데이나 화이트를 통해 은퇴 의사를 밝혔다. 또한 이전에 은퇴한 라이벌 스테판 보너와 함께 UFC 160 대회를 앞두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파이팅 스타일
근성과 투지로 뭉쳐있는 선수다. TUF의 스테판 보너전에서부터 난타전으로 관중들의 주목을 받았고 티토 오티즈, 마우리시오 쇼군, 퀸튼 잭슨 등 강적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고 난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며서도 물러서지 않고 접전을 벌이는 그의 모습과 맞물려 '진흙탕 귀공자', '피에 물든 그리핀' 등의 별명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안면 커팅이 없는 모습이 어색할 정도.
191cm/93kg의 체격조건이 훌륭하고 스태미너가 뛰어나서 진흙탕 싸움에 강한 면모를 보이지만 레그킥을 앞세운 아웃파이팅이 수준급이며, 로버트 드라이스데일 휘하에서 수여받은 주짓수 블랙벨트의 그래플링 실력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타격과 그래플링 어느 한쪽도 최상급은 아니라는 평을 받고 있다. 비슷한 체격에 타격스킬이 뛰어난 선수나 스텝이 빠른 선수에게는 약한 면모를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앤더슨 실바 전에서 핸드스피드와 기동력에서 밑천이 드러나며 실바의 하이라이트 필름을 장식해주었다. 또한 레슬링 스킬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도 불안요소로 꼽힌다.
3 기타
2004년의 TUF 1으로 UFC의 새로운 지평을 연 파이터이다. 데이나 화이트는 TV와 리얼리티쇼의 결합으로 MMA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려고 했고 그 선봉에 선 그리핀은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이것으로 UFC는 10년은 더 흥행할 수 있다! 이후 연이은 강적들을 격파하며 랜디 커투어, 척 리델의 뒤를 잇는 미국인 선역 에이스로 자리잡게 되었다.
라이트헤비급에서 좀 한다하는 선수들과는 거의 주먹을 섞어봤고, 적어도 1회 이상 오퍼가 있었다. 료토 마치다,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와의 대결이 추진되기도 했는 데, 이렇든 온갖 강적들을 상대했던 것은 그가 미국을 대표하는 에이스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PRIDE의 강자였던 쇼군과 퀸튼을 연파하며 UFC의 수준향상에 기여하기도 했다.
물론 한국에서의 인기는 별로다. 특히 쇼군을 이겨버렸기 때문에 주는 거 없이 재수없는 놈 취급받기도 했다. 쇼군이 무릎에 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기가 아니었다는 의견이 일기도 했지만 그리핀 역시 오른쪽 어깨에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있었다. 퀸튼 전의 판정 논란[4]이후로는 안티가 더더욱 늘었다.
미국 기준으로는 꽤 곱상한 상에 드는 듯. 확실히 유년기의 사진을 보면 이해가 갈 듯도 하다. 다만 동양인 기준으로는 인중이 길쭉한 것이 아무리 봐도 원숭이상이다. 게다가 가슴털을 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4차원 정신세계로도 유명하다. 여자친구와 슈퍼걸 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는가 하면 2010년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대상으로 한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5] UFC 66에서 자르딘에게 패한 후에는 옥타곤이 주저앉아 펑펑 울었고, 실바에게 관광을 당한 이후에는 인터뷰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치듯 경기장을 빠져나가기도.[6] 다만 이런 기행과는 별개로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멘탈은 수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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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터 코스프레(…) 그리핀 정도 되는 인간이 이러니까 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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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바전에 대해서는 2010년 8월에야 입을 열었다. 라디오 쇼에서 박장대소하며 당시를 회고했으나 이렇게 웃기까지 1년이나 걸린 것을 보면 확실히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 더불어 자신과의 대결 루머가 돌던 존 존스를 언급하면서 '그놈은 진짜 세니까 싸우고 싶지 않아, 하지만 한다면 하는 거야'라며 시합에 대한 각오를 숨김없이 말했다. 이렇듯 진솔하고 담백한 면이 있기에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앤더슨 실바랑 리매치가 잡히면 어쩔겨?'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독을 먹이겠다'는 개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스테판 보너와는 TUF 피날레 이후로 꽤나 명암이 갈려 버렸는데 그래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한다.앤실전 앞두고 약먹은것도 똑같다
약물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한 파이터라고 생각되었지만 알고보니 그리핀도 합법적 약쟁이였음에 드러났고 그리핀과 같은 TRT치료허가 남발에 대해 티토 오티즈가 욕설까지 섞어가며 씹어대기도 했고 UFC 155에서 차엘 소넨과의 대전이 잡히자 두 선수의 피땀...아니 테스토스테론이 튀는 접전이 벌어질거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 ↑ 본디 승자만 계약하기로 되어있었지만 당시 보너도 좋은 시합을 펼친지라 데이나 화이트는 보너와도 계약했다
- ↑ 그렇다고 퀸튼이 압도했냐면 그것도 아니다. 전형적인 누구에게 승을 줘도 욕을 먹는 경기. Zuffa는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그리핀의 손을 들어줬줬던 것 뿐이다. 다만 국내에선 프라이드 출신
중에 그나마 살아남은인 퀸튼을 옹호하는 팬이 많았기에 그냥 편파라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심지어는 워크설까지도 나왔다. 허나 그리핀의 승리를 지지하는 측도 만장일치까지는 아니지 않냐는 의견이 대세. 애초에 논란이 된 것도 팽팽한 경기에 만장일치 승리를 줘버렸기 때문. - ↑ 원래 이 시합은 UFC 90과 UFC 97에서 태업을 펼친 실바에 대한 징계성이 강한 매치였다. 그래서 상위체급에서 좀 한다 하는 그리핀과 붙인 것이었는데 그만 관광을 당해 버렸다.
- ↑ 국내 커뮤니티 반응은 그냥 편파. 특히 당시 반 UFC 성향이 강했던 네이버 카페 등지에서는 워크설, 도박사들의 심판 매수설 등이 재기되기도 했다.
- ↑ 2009년에도 'Gog Fight'이라는 책을 써서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랭크되었다. 그가 미국인들로부터 얼마나 사랑받는 파이터인지를 알려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 ↑ 훗날 밝힌 바로는 청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그랬다고 하는데 별로 믿어주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