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y "The Natural" Couture
종합격투기 관련 인물 겸 영화 배우
이름 | Randy Duane Couture |
생년월일 | 1963년 6월 22일 |
국적 | 미국 |
체격 | 182cm[1][2], 100kg |
종합격투기 전적 | 30전 19승 11패 |
승 | 7KO, 4서브미션, 8판정 |
패 | 6KO, 4서브미션, 1판정 |
링네임 | "내츄럴", "캡틴 아메리카" |
주요 타이틀 | UFC 13 헤비급 토너먼트 우승 |
UFC 3대 헤비급 챔피언 | |
UFC 6대 헤비급 챔피언 | |
UFC 라이트헤비급 잠정 챔피언 | |
UFC 3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 |
UFC 5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 |
UFC 13대 헤비급 챔피언 |
풀 네임은 랜디 드웨인 커투어. 커투어 옹이라고도 한다.[3]
UFC에서 단 두 명만 있는 두체급 타이틀 보유자 중 한명[4][5]
별명은 원래 'The Natural'이었으나 나중에는 Captain America가 더 친숙해졌다. UFC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어 있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선수 중 한명이다.
노장 그 자체
더티복싱의 마스터
관련항목 : UFC 역대 챔피언 |
1 전적
- 주요 승 : 스티븐 그라함, 비토 벨포트(2), 모리스 스미스, 제레미 혼, 케빈 랜들맨, 페드로 히조, 척 리델, 티토 오티즈, 팀 실비아, 가브리엘 곤자가, 브랜든 베라, 마크 콜먼, 제임스 토니
- 주요 패 : 미하일 일류힌, 엔센 이노우에, 발렌타인 오브레임, 조쉬 바넷, 리코 로드리게스, 비토 벨포트, 척 리델(2), 브록 레스너,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료토 마치다
1.1 헤비급
원래는 전미 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한 엘리트 그레코로만 레슬러였으며 오리건 주 대학에서 레슬링팀 코치로 있었다. 그러던 중 맷 린들랜드, 댄 핸더슨 등과 함께 팀 퀘스트를 설립, 본격적으로 종합격투기에 뛰어들게 된다.
1997년 UFC 13에서 데뷔하여, 헤비급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면서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타이틀 도전권을 두고 반더레이 실바를 초살시킨 '머신 건' 비토 벨포트와 격돌하게 되는데 이 경기에서 훗날 자신의 18번기가 되는 더티 복싱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순수한 타격으로는 우위에 있는 벨포드를 상대로 끊임없이 클린치 상태를 유지하면서 초근거리에서의 타격을 퍼부어 그로기 직전까지 몰고가 결국 파운딩으로 승부를 마무리지었다.
1997년 12월 데뷔 4전만에 타이틀 매치를 갖게 된 커투어는 '레슬러 킬러'인 모리스 스미스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며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그러나 계약 문제로 인해 타이틀을 얼마 가지고 있지 못하고 1998년 VTJ(발리 투도 제팬), Rings에 진출했으나 엔센 이노우에, 미하일 일류힌 등에게 연이어 패배한다. 2000년 10월에는 Rings의 King of Kings 토너먼트에 진출하여 제레미 혼과 야나기사와 류지를 연파하고 블록 A 우승자가 되었다.
2000년 11월에는 UFC 28로 돌아와 케빈 랜들맨을 제압하고 헤비급 타이틀을 얻어낸다. 초반에는 랜들맨의 힘을 앞세운 레슬링에 밀려 수세에 빠졌으나, 3라운드 이후 체력을 소진한 랜들맨의 페이스가 저하되자 공세로 전환하여 G&P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2001년 2월에는 Rings King of Kings 토너먼트 본선에 올라 코사카 츠요시를 누르고 4강에 안착했으나 준결승에서 발렌타인 오브레임[6] 에게 패하며 탈락했다. 2001년 5월에는 UFC 31에서 페드로 히조를 상대로 UFC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다. 히조는 커투어의 태클을 막아내며 스탠딩 타격으로 흐름을 주도했고, 커투어는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도 기어이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포인트를 얻어 나갔다. 저지들은 커투어의 승리를 선언했으나 이 판정은 당시에도 꽤 논란이 심했다.
결국 리매치가 성사되어 두 선수는 11월의 UFC 34에서 다시 한 번 격돌한다. 이 경기는 앞서와는 다르게 커투어의 완승으로 끝난다. 계속 히조를 그라운드로 끌어내 G&P로 데미지를 누적시킨 후, 케이지 구석으로 몰고가 파운딩으로 TKO승을 거둔다. 1차전의 논란을 깨끗히 잠재울 정도의 완승이었다.
그러나 2002년 3월 UFC 36에서 조쉬 바넷에게 파운딩으로 패하면서 타이틀을 내준다. 레슬링에서 압도하던 경기였으나 그라운드에서 포지션 역전을 허용하여 패배. 바넷이 경기 후 금지약물에 양성 반응을 보이며 타이틀을 박탈당하게 되지만 커투어는 자신이 진 경기였다며 무효처리를 원하지 않았다. 이후 공석이 돼버린 헤비급 타이틀을 걸고 2002년 9월 UFC 39에서 리코 로드리게스와 대결했으나 또 패한다. 레슬링에서 앞서 나가다가 4라운드 이후 체력 저하를 보이더니 5라운드를 버티지 못하고 엘보우에 탭을 치고 말았다.
1.2 라이트 헤비급
대형 선수들 사이에서 한계를 느낀 커투어는 라이트헤비급으로의 하향을 선언한다. 당시 라헤는 티토 오티즈가 장기집권을 이어가던 가운데 동료였던 척 리델이 유력한 대권후보로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오티즈가 부상으로 장기결장했기 때문에 잠정 타이틀을 세우도록 했고, 승승장구하던 리델과 헤비급에서 하향한 커투어가 2003년 6월 UFC 43 잠정 챔피언의 자리를 놓고 맞붙었다. 뛰어난 테이크다운 디펜스를 가지고 있던 리델이었으나 랜디는 연거푸 TD를 성공시키며 리델을 압도했다. 리델은 케이지를 잡으면서까지 저항했으나 커투어의 레슬링에 밀렸고, 이를 의식한 듯 스탠딩에서도 주도권을 내주며 끌려다녔다. 커투어는 3라운드 세 번째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킨 후 마운트에서의 파운딩으로 TKO승을 거두며 다시금 UFC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2003년 9월 UFC 44에서 라이트헤비급 정규 벨트를 놓고 티토 오티즈와 통합 타이틀전을 치렀다. 결과는 랜디의 완승. 사기적인 뛰어난 피지컬로 -93kg를 지배했던 오티즈였으나 한 수 위의 기술과 헤비급의 파워를 가진 커투어를 상대로는 이 장점들이 빛을 발하지 못했고, 특기였던 레슬링에서 완벽히 밀렸다. 커투어의 만장일치 판정승.
그러나 2004년 1월 UFC 46에서 만난 첫 방어전 상대는 과거 헤비급에서도 대결했던 비토 벨포트였다. 1라운드 벨포트의 펀치가 랜디의 눈두덩을 스치고 지나가며 깊은 컷을 만들었고, 경기속행 불가에 의한 커투어의 TKO패가 선언된다. 고의적인 써밍은 아니었으나 논란이 일기엔 충분한 결과였고, 따라서 즉각 러버매치가 추진됐다. 같은 해 8월 UFC 49의 재대결에서 랜디는 벨포트를 깨강정으로 만들며 승리한다. 우월한 레슬링으로 클린치, 그라운드에서 앞서 나가며 완승. 이로써 다시 한 번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았다.
그러나 2005년 4월 16일 열린 UFC 52에서 리델에게 일격을 당해 타이틀을 내줬다.
이후 2005년 8월 마이크 반 아스데일을 잡아내며 재기에 성공한 커투어는, 역사적인 TUF 시즌 1의 코치로 발탁된다. TUF는 북미 MMA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의 상업적인 성과를 내며 대박을 쳤고 이를 이끈 커투어와 리델 역시 세간의 주목을 집중시키며 종합격투기계의 역사를 다시 썼다. 시즌이 종료된 후 코치였던 커투어와 리델은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을 걸고 대망의 3차전을 가졌다.
2006년 2월 4일의 UFC 57의 경기는 랜디의 패배로 끝났다. 이 경기에서 리델은 사이드스텝과 롱라이플 카운터로 커투어의 전법을 완벽히 파해하며 압승을 거둔다. 커투어는 2라운드 리델의 카운터를 맞고 쓰러지며 TKO로 패했다. 여기서도 써밍 논란이 있었으나 커투어는 그다지 문제삼지 않았다. 이 경기 이후 그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후 UFC 해설자를 포함해 여러 방송에서 활동을 했다.
1.3 헤비급 복귀
그러나 1년도 못버티고 2007년 1월 11일 은퇴를 번복한 채 다시 UFC와 2년간 4경기에 출전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그것도 5년 전에 물러났던 헤비급에서. 당시 헤비급 챔피언은 팀 실비아로 넘버 원 컨텐더였던 브랜든 베라와의 대결이 유력시됐으나 베라가 파이트머니 인상을 요구하며 경기를 보이콧하자 마땅히 상대가 없던 참이었다.
이 상황에서의 랜디가 복귀하여 공석이 되어버린 헤비급타이틀 도전자의 자격으로 옥타곤에 오른다. 3월 3일 UFC 68에서, 그는 43세의 나이로 팀 실비아를 5라운드 내내 완벽하게 압박하며 헤비급 타이틀을 차지한다. 승리 후 인터뷰에서 "늙은이 치고는 아직 쓸만하죠?"라고 넉살좋게 말하는 장면은 아직도 미국 MMA 팬들에게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이윽고 8월 25일, UFC 74에서 가브리엘 곤자가를 더티복싱으로 3라운드동안 말 그대로 담궈버렸고, 지친 곤자가를 파운딩으로 보내버리면서 자신이 아직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실은 이 경기는 원래 커투어 vs 크로캅으로 치러질 예정이었고, 이걸 성사시키기 위해 데이나 화이트가 많은 공을 들였다. 크로캅이 곤자가를 잡고 커투어에게 도전하여 역대급 빅매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모두가 원한 시나리오였으나 하필이면 곤자가가 이겨버리는 바람에 물건너간 것.
2007년 10월 11일, 커투어는 UFC의 대우 문제를 언급하며 계약상에 남은 두 경기는 상관없이 UFC를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커투어는 표도르 예멜리아넨코를 데려오지 못한 UFC의 수완에 실망했다고도 말했다. 이는 그가 표도르와의 대결을 간절하게 원했음을 나타내주는 발언이기도 하다. 데이나 화이트 UFC 사장은 커투어의 헤비급 타이틀은 유지될 것이라며 그를 잡아두려 했고, 계약상의 두 경기를 뛰지 않을 시 그를 보내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커투어는 10월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앞서 가진 두 경기에서 그는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했으며, 그는 남은 두 경기에 대한 의무는 없다고 주장했다.
10월 30일 화이트 사장 역시 기자회견을 열어 커투어가 UFC에서 가진 위치는 상당하기 때문에, 그는 그 자리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UFC 78 진행 중 옥타곤에서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하게 됐는데, 화이트 사장은 추수감사절 이후 최대한 빨리 옥타곤에 돌아와줄 것을 부탁했으며, 바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의 타이틀전을 준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커투어는 표도르가 M-1으로 가버린 것을 시사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법정공방으로까지 가버린 커투어와 UFC의 대립은 커투어가 옥타곤에 복귀하며 데이나 화이트의 승리로 끝났다. 2008년 11월 UFC 91에서 브록 레스너를 상대로 복귀했으나 패하고 헤비급 타이틀마저 잃고 말았다. 넘사벽의 체격을 가진 레스너의 레슬링을 잘 막아내며 슬금슬금 경기를 잠식해 나가고 있었으나 순간적으로 터진 레스너의 고무고무 스트레이트에 TKO패를 당했다. 계약 문제로 1년 가까이 공백을 가진 것 역시 악재로 작용했으며 브록의 후두부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09년 8월 UFC 103에서 다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에게 판정패했다.
1.4 라이트헤비급 복귀
2009년 11월 UFC 105에서 브랜든 베라를 만나 판정승을 거두었으나 기량이 하락했다는 평이 있었고 판정에도 논란이 있었다. 2010년 2월에는 UFC 109에서 마크 콜먼과의 할배 대전에서 간단하게 승리. 콜먼을 UFC에서 방출시켰다.
2010년 8월 UFC 118에서 MMA 데뷔전을 갖는 전 IBF 크루저급 챔피언인 제임스 토니와의 대결, 하단태클에 이은 암트라이앵글로 간단히 승리했다. 종합격투기와 복싱의 전설간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기대를 모았고, 토니의 트래쉬 토크로 분위기도 한껏 고조되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게 없었다. 토니는 잽 한번 제대로 뻗어보지 못하고 그라운드에서 관광을 당했는데, 저질스러운 기량과 형편없이 망가진 몸매(원래 몸이 예쁜 선수는 아니지만) 때문에 희대의 먹튀소리를 들었다. 제임스 토니는 이경기에서 커투어가 초반 정도는 주먹대결을 해줄거라 생각하고 그래 남자는 주먹이야 하고 기세좋게 주먹을 내려는 순간 커투어의 하단태클에 속절없이 탑을 내줘서 보던 팬들을 폭소케 했다. [7]
2010년 12월 트위터를 통해 다시 은퇴를 거론하였다. 영화계로의 진출을 생각하고 있는 듯. 하지만 UFC와의 계약이 끝나지 않았고 아직 확정된 사실은 아니기에 속단은 금물이다. 계약 만료를 앞두고 벌이는 신경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2011년 5월 1일 UFC 129에서 료토 마치다와의 대결했다. 이 대결에서 노장의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려 했지만, 너무나도 뛰어난 마치다의 거리재기에 자신의 주특기인 더티 복싱을 전혀 써보지 못하고, 2라운드 1분이 지나서 점핑 프론트킥에 KO당하고 말았다. 경기 직후 조 로건과의 인터뷰에서는 "날 다시는 옥타곤 안에서 볼 수 없을 겁니다"라고 말하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또한 "내가 당신이랑 지난번에 이야기를 했을 때는 내가 치아가 온전했던 것 같은데"라고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로써 3번째 은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15년간의 선수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드...등짝!
2 파이팅 스타일
UFC의 철장을 가장 잘 활용하는 선수로 꼽힌다. 레슬링이 뛰어나기 때문에 상대를 철장 구석에 밀어넣고 무차별 파운딩을 구사하는 스타일에 굉장히 능하다. 복싱와 달리 오픈핑거 글러브를 쓰는 종합격투기의 특성을 이용해, 클린치 상태에서 상대를 가격하는 '더티 복싱'의 대표적인 사용자이기도 하다.
더티 복싱 테크닉에 안주하지 않고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꾸준히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고 전략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이를 먹고 은퇴와 복귀를 반복할 때마다 거듭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불가사의한 선수. 초창기에 체력에서 문제점을 보이자 엄청난 훈련량으로 이를 극복했고, 라이트헤비급에서 리델에게 패하고 은퇴한 후에는 스탠딩 타격과 주짓수를 보강해 돌아와서 헤비급 왕좌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0년 주짓수 블랙벨트를 획득했다.
약점이라면 역시 나이. 30세가 넘어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파워가 떨어지고 체중이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노게이라와의 경기에선 체중이 99kg였고 그 경기 이후 라이트헤비급으로 전향. 맷집도 약해서 잘 싸우다가 한방에 역전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는 점이 아니라서 계속 약점을 달고 살 수 밖에 없었다.
오픈링에서는 그다지 힘을 쓰지 못했다.
3 기타
UFC에서 두 체급을 석권했으며 무려 7차례나 UFC의 정상에 오른 사상 최다 챔피언 기록도 가지고 있다. 6체급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초기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기록까지 합하면 7회가 된다. 2006년 명예의 전당에 등극한 후에도 현역으로 맹활약했던 살아있는 전설. 최고령 챔피언 기록도 가지고 있다.
끊임없는 향상심과 승부욕으로 늘 강한 상대를 찾아 싸우기를 바라고 있는 파이터다. 2007년 PRIDE의 해체 이후 줄곧 표도르와의 대결을 요구하고 있었다. 당시 커투어는 이미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해서 금전적으로는 부족할 것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드림매치를 원한 것은 단지 자신의 커리어에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커투어는 거의 노래를 부르다시피 그 시합을 갈망하고 있었으나 데이나 화이트는 커투어에게 빅샷을 줄 생각이 없었고 결국 브록과의 대전에서 패하면서 그토록 원했던 대결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8]
"알고 있어! 하지만 난 이걸 이겨내야만 그와 붙을 수 있어."
19승 11패라는 스탯이 레전드의 명성에 비해 다소 초라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상대들과 싸웠고 새로운 도전을 피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무대에 도전해 미지의 선수들과 대결했으며 은퇴할 때까지 도전에 도전을 거듭했다. MMA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선수를 꼽을 때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데이나 화이트의 독선적인 운영에는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UFC의 독점계약과 종신계약에 문제를 제기하며 대립하기도 했는데, 표도르의 UFC행이 좌절되자 커투어가 직접 UFC 밖으로 표도르를 찾아 나선 것이다. 하지만 랜디의 행보는 '챔피언은 패배하기 전에는 UFC를 떠날 수 없다'는 종신계약 원칙에 반하는 것이었다. 커투어는 화이트가 제시하는 노게이라와의 매치를 보이콧하며 법정공방에 돌입했으나, 일개 개인으로서 거대조직과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1년이 넘는 공방 끝에 커투어가 옥타곤에 모습을 드러내며 백기를 들고 만다.
1963년생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선수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며, 인품으로도 다른 선수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다. 모범적인 가장 이미지와 더불어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으며 상품성과 흥행력도 뛰나다. 인격적으로도 타에 모범이 되는 훌륭한 선수이기에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격투가 뿐 아니라 사업가로서의 기량도 정상급. 대형 체육관인 익스트림 커투어를 운영하고 있으며 보충제 판매와 머천다이징에도 뛰어들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미칠듯한 처세술로도 이름이 높은데,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발도 넓어서 이곳저곳에서 지원해주는 인맥이 장난 아닌 듯.
특정 매치에 대해 발언을 할 때마다 승리할 선수를 정확하게 맞춰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UFC 70의 크로캅 vs 곤자가의 승자를 맞춘 것으로 '랜디 보살'이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다만 그 이후로는 신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그저 그런 정도.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3에 미국 장군으로 출연했다.... 소련군을 다 손발로 부셔버릴 작정인듯...
실베스타 스탤론의 본격 악당 응원하는 영화 익스펜더블에 출연한다. 등장 인물 중 실제 전투력이 가장 세지 않을까.....? 여기서의 연기가 제법 호평을 받으면서 영화계로의 진출을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헐리우드에서 희소성 있는 중년 유명 액션배우라는 점을 생각하면 커투어가 손해보는 선택은 아니라는 평이 지배적. 연예계 진출은 모든 MMA 격투가들의 꿈이기도 하고.
한때는 가족 모두가(심지어는 부인도!!!) 종합 격투기를 했었다. 킴 커투어와는 2009년 이혼했고, 2012년에는 본인이 은퇴했기에 옛날 얘기긴 하지만... 아들인 라이언 커투어는 Strikeforce를 거쳐 UFC로 진출했다.
아리아니 셀레스테가 플레이보이 2010년 11월호에 나왔을때, 플레이보이지를 보긴봤는지 너무 민망해서 눈을 어디둬야 할지 모르겠다며 대략 난감해보이는 발언을 했다. 뻥치지 마셈.
특이이력으로는 1982년부터 1988년 까지 101 공수사단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한적이 있다.어쩐지 각이 살아있더라
4 Highlights
- ↑ CelebHeights.com
- ↑ UFC 선수들도 뻥튀기가 상당히 심하다.
- ↑ 커쳐, 커츄어 등으로 읽을 수도 있음. 본토발음은 쿠투어.
- ↑ 한 명은 BJ 펜.
- ↑ 두 체급 안에서 토너먼트 우승과 다섯 번의 챔피언을 지낸 경력을 갖고 있다.
- ↑ 알리스타 오브레임의 형으로 종합격투가로의 평가는 동생에게 한참 못미친다.
- ↑ UFC 역대 최고인 50만 달러의 파이트 머니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항간에는 프릭쇼를 위해 동원된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 ↑ 화이트의 바람대로 빅샷은 브록에게 돌려졌으나 이번에는 표도르가 UFC행을 거절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판 자체가 파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