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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
아드보카트호 (2006 ~ 2007) | → | 베어벡호 (2006 ~ 2007) | → | 허정무호 (2007 ~ 2010) |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
딕 아드보카트 (2005 ~ 2006) | → | 핌 베어벡 (2006 ~ 2007) | → | 허정무 (2007 ~ 2010) |
이름 | 핌 베어벡 (Pim Verbeek) |
본명 | 페터르 팀 베어벡 (Peter Tim Verbeek) |
국적 | 네덜란드 |
생년월일 | 1956년 3월 12일 |
출생 | 로테르담 |
선수시절 소속팀 | 로다 JC NAC 브레다 스파르타 로테르담 (1974~1980) |
감독 커리어 | DS'79 (1981~1984) 우니타스 호린험 (1984~1987) 더 흐라프스합 (1987~1989) 페예노르트 (1989~1991) 와게닝겐 (1991~1992) FC 흐로닝언 (1992~1993) 포르튀나 시타르트 (1994~1997) 오미야 아르디자 (1998~2000)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스카우터 (2000~200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2001~2002) PSV 아인트호벤 2군 (2002~2003) 교토 퍼플 상가 (2003)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축구 국가대표팀 (2004)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수석코치 (2004~2005)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2005)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2005~200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6~2007)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2007~2010)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U-23 (2010~2014) |
목차
1 개요
네덜란드의 前 축구선수이자 現 감독.
현재는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있으며, 한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맡았었다.
2 선수 시절
현역 시절은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의 로다 JC, NAC 브레다를 거쳐 스파르타 로테르담에서 6시즌 뛰었다.
3 지도자
3.1 대한민국 대표팀 이전
현역 은퇴 이후 1981년 DS'79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지도자 생활이 시작되었다. 1984년 우니타스 호린험, 1987년 더 흐라프스합 감독을 거쳐 1989년 페예노르트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다만 워낙 어린 나이에 감독을 맡았었고, 성적까지 좋지 않아서 이 시기엔 페예노르트 팬들 사이에선 평가가 별로 좋진 않았다. 더군다나 베어벡은 선수 시절엔 페예노르트의 지역 라이벌팀인 스포르타 로테르담에서 뛰었었다. 참고로 FM에서 열어보면 베어벡이 싫어하는 구단에 페예노르트가 등록되어 있다.
이후 베어벡은 와게닝겐, 흐로닝언, 포르튀나 시타르트를 거쳤고, 아시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8년 중순부터 오미야 아르디자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부터이다.
3.2 대한민국 대표팀 코치
이후 잠시 네덜란드 대표팀 스카우터를 맡다가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코치를 맡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에 진출하는데 뒤에서 공헌하였다. 월드컵 이후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의 감독으로 취임한 히딩크와 행동을 같이하여 PSV의 2군 감독을 맡았다.
3.3 외유기
2003년 7월 교토 퍼플 상가 감독에 선임되었다가, 2004년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하였다. 이후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수석코치와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맡았다.
3.4 대한민국 대표팀 수석코치 및 감독
2005년 딕 아드보카트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수석코치를 맡아 2006년 독일 월드컵을 함께 하였다. 독일 월드컵 종료 이후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팀을 2007년 AFC 아시안컵 본선으로 이끌었고, 본선에서는 3위로 대회를 마쳤지만 6경기 3골의 저조한 득점력으로 비판을 받았다.[1] 결국 2007년 7월 29일 자진 사퇴하였다.
토너먼트 3연속 승부차기라는 기행(?) 속에서 이운재의 승부차기 선방이 빛을 발해 4강에 올라 3위까지 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룸살롱 사건이 터지면서 일부에서 술 먹은 이운재가 술 안 먹은 나머지보다 낫다는 말도 한다.
사실 베어벡 감독은 운이 매우 좋지 않았다. 아시안컵 직전부터 주력 선수들인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등 EPL 3인방은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대거 이탈하고, 다른 공격 옵션들인 박주영, 안정환등은 리그에서 부진, 그나마 믿고 뽑았던 이동국은 미들스브로에서 최악의 시즌을 보낸 후 잔부상에 시달려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등 주전 공격진이 사실상 전멸당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수비축구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것.
득점은 빈곤하지만 실점도 불과 6경기 3실점이었기 때문에 나름 탄탄한 수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이 당시 한국은 3백에서 본격적으로 4백으로 전환하는 과도기였기 때문에 수비 부분에서는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인정받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늪 축구의 후계자들이 2014년~2015년에 연달아 등장했다.
모로코 올림픽 축구대표팀을 맡아 참가한 런던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올대 감독을 맡고 있었던 홍명보에게 브라질과 일본에 대한 전력분석 자료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2]
3.5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이후
2007년 12월,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호주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았고, 본선에서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1승 1무 1패의 나름 괜찮은 성적을 기록하였다. 이후 2010년 8월부터 U-23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서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는 등 2014년까지 지도하였다. 현재는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4 기타
대한민국 국대 전임 감독인 조 본프레레와 딕 아드보카트가 각각 조봉래와 아동복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것처럼 이 감독도 한국화(?)된 별명이 존재했는데 곰가방(...)이라고 한다. 곰(베어)+가방(백)의 합성어.
다소 지나칠 정도로 유럽파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에도 유럽파의 컨디션을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자주 유럽으로 출장을 나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며, 호주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에는 K리그 등 아시아 상위 리그로 이적하는 호주 선수들에게 "비록 하부 리그라도 유럽을 가는 것이 더 낫다"라며 선수들의 유럽 이적을 적극 권장하기도 했다.
단, 호주는 영국에서 이민온 사람들의 후손들이 주축이 되는 국가로 인종적, 언어적, 문화적으로 유럽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호주 선수들 입장에서는 EPL이나 EPL의 하위 리그에 진출하는 게 언어적 측면에서도 외국어를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더 수월하고 다른 아시아 상위 리그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더 나은 측면이 있다.[3] 그리고 베어벡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사퇴하면서 자국 리그를 외면하는 한국 축구팬들을 강하게 비판하는 발언도 했었다.
한편으로는 2002년 코치 때와 2006년 감독 때를 비교하면 탈모가 진행되는게 확연했다. (...) 그래서 다소 인상이 달라보인다는 평도 있었다. 국내 지도자들에게는 반감을 샀는지 K리그 구단 전부 담합해서 올림픽 대표 차출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 사실 국내 지도자들의 외국인 지도자에 대한 일종의 텃세이기도 한데 히딩크 감독이 부진할 때는 대부분이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세계적인 명장이라 명성도 높고 인맥도 좋은데다가 축구협회에서 강력히 지지해주는 탓에 그런 공격을 지속하기가 힘들었고[4] 게다가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성적을 거두는 바람에 직접적인 비판을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 움베르투 코엘류는 선수 시절과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시절 경력 자체도 나쁘지 않고 사람 자체가 부드러운 사람이라 처음엔 대놓고 비판을 못했지만 오만 쇼크가 일어나자 곧 강한 비판을 했고 대표팀 내부에서도 국내 코치들과도 불화가 있었다. 그 다음인 조 본프레레는 비주류인데다가 아예 언론 자체랑도 사이가 안좋았으니 국내 지도자들이 처음부터 그를 좋게 볼 리가 없었다.
아드보카트는 히딩크만큼은 아니어도 그 다음 수준 되는 커리어를 가진 탓에 역시 인맥이 좋았고 언론플레이에 능해 국내 지도자들이 대놓고 비판을 못했다. 그러나 베어백은 감독 커리어 자체는 그저 그런 수준이었기에 국내 지도자들이 상대적으로 만만하게 보고 거리낌 없이 공격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었다. 히딩크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 힘든 대신 그는 히딩크의 제자처럼 인식이 되어 더욱 그런 분위기였다.
5 명언
"한국 국가대표 축구 팬이라 주장하는 몇몇 사람들은 정말 말도 되지 않는 환상에 젖어 있다. 그들은 평소 축구를 위해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대표 팀은 언제나 브라질처럼 플레이하기를 원한다. 또 자국 리그는 외면하면서도 세계적인 선수가 나오길 갈망하고 선수들이 목표점에 다다르지 못하면 그들을 범죄자보다 더욱 혹독하게 비난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의 태도가 굉장히 정당한 것이었다고 믿는다. 나는 한 번 결정한 것을 되돌리지 않는다. 한국에서 좋은 기억과 추억을 쌓았지만 감독으로서 경험한 최근의 1년은 너무나 괴롭기만 했다. 한국 대표 팀 감독직에서 사퇴할 것이다. 선수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대표팀 감독직에서 사퇴하면서 나는 행복해질 수 있겠지만, 그들을 여전히 책임감 없이 비난만 일삼아대는 이들 사이에 두고 온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 핌 베어백, 前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K리그를 무시하고 국대에 대해 냄비근성 수준으로 열광하는 악질 팬 및 악성 해축빠들을 비판하는 멘트로 정리할 수 있다. 굳이 축구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으면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무조건 비난하는 냄비근성을 비판하는 말이기도 하다.
는 훼이크고 베어백은 저런말을 한 적이 없다.
저것은 일부 악질 K리그 팬들이 K리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나 오랜 기간 베여백에 저런 말을 한 것이 사실인양 믿어졌다.
어디에서도 저 인터뷰의 원본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저건 2000년대 말 지어낸 이야기니까
한 마디로 저짤은 K리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짤이 아니라 K리그를 부각시키기위해선 사실의 날조도 주저하지않던 일부 K리그팬들의 흑역사인셈
오히려 베어백은 K리그 수준을 네덜란드 2부리그 수준이라 인터뷰해 많은 k리그팬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앞으로 목표는.
▲2007년 아시안컵축구에서 우승하는게 목표다. 유럽 톱리그와 K-리그의 차이가 크다. K-리그 팀들의 수준은 네덜란드 2부리그와 비슷하다고 본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을 유럽 등 해외에 보내 선진 축구를 배워야한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PRINT/137338.html- ↑ 이때 바레인 쇼크로 인해 탈락 위기에 몰리기도 하였다.
- ↑ 당시 모로코는 애초 D조 2위를 목표로 8강 진출을 노리고 있었으나, 2무 1패를 기록해 3위로 밀려 광탈했다. 같은 조에는 일본, 온두라스, 스페인이 있었다.
- ↑ 마찬가지로 호주 축구선수들이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 리그로 진출하지 않는다면 대신 메이저 리그 사커에 진출하더라도 다른 아시아 상위 리그로 진출하는 것보다 더 적응면에서 수월할 수 있다.
- ↑ 오해가 있긴 했지만 2002 월드컵 이후인 2003년 김호곤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할 때 네덜란드 전지훈련에서 히딩크 감독에게 받은 서운한 감정을 표현했던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