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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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역대 시즌 일람
2000년 시즌2001년 시즌2002년 시즌
기간2001년 4월 5일 ~ 2001년 10월 28일
참가팀기아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 이상 8개팀.
스폰서삼성증권

1 개요

2001년에 열린 프로야구 시즌.

팀당 133경기씩 총 532 경기가 열렸다.

2000년 시즌의 심각한 양대리그의 불균형으로 단일리그로 환원되었다.

롯데 자이언츠7월 24일 김명성 감독이 시즌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 이후 잔여경기를 우용득 감독 대행 체제로 치렀으나 9월 18일 마산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펠릭스 호세가 삼성 배영수빈볼 투구에 열받은 나머지 1루에서 뛰쳐나와 배영수의 얼굴을 가격하는 바람에 헤이 영쑤! 잔여경기 출장정지를 먹으면서 전력 손실이 생겼고, 그 해 시즌을 꼴찌로 마감한다. 이것이 바로 8888577 중 첫 자리 기록.[1]

펠릭스 호세는 사건 전날인 9월 17일 출루율장타율 두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이승엽과 홈런왕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으나 이 사건으로 출장정지를 먹으면서 홈런왕 자리를 이승엽에게 헌납해야 했다. 하지만 호세는 장타율(.695, 2위 이승엽 .605)과 출루율 (.503, 2위 두산 심재학 .473) 타이틀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고, 특히 출루율은 1982년 MBC 청룡백인천이 수립한 한 시즌 최고 출루율 기록인 .497를 갈아치우는 데 성공했다.

한편 해태 타이거즈가 이 해 7월 29일에 고별전을 치른 뒤 8월 1일에 지금의 KIA 타이거즈로 구단명을 바꿨다.[2]

2 FA

16명중 6명이 신청을 하였다.

잔류

삼성 김기태 : 4년 18억 원
삼성 김상진 : 3년 8억 5천만 원

한화 장종훈 : 3년 7억원 (옵션 연간 5천만 원 포함)
한화 강석천 : 3년 5억 1천만 원 (옵션 연간 3천만 원 포함)

두산 조계현 : 1년 2억 8백만 원

이동

해태 홍현우 → LG : 4년 18억원 / 보상선수 최익성

3 정규시즌 최종순위

순위경기수무승부게임차승률
1삼성 라이온즈13381520-0.609
2현대 유니콘스133725747.00.558
3두산 베어스1336563513.50.508
4한화 이글스1336168418.00.473
5KIA 타이거즈1336068518.50.469
6LG 트윈스1335867819.00.464
7SK 와이번스1336071220.00.458
8롯데 자이언츠1335970420.00.457

삼성이 양민학살하며 저만치 앞서나가고 그 뒤를 현대, 두산이 잇고 나머지 5개 팀이 4위 자리를 놓고 다툰 유례없던 중하위권 싸움이 치열했던 시즌으로 특히 4할7푼3리의 승률로 한화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건 역대 포스트시즌 진출팀 중 가장 낮은 승률이다. 결국 엘롯기SK 와이번스가 탈락했다. 특히 엘롯기의 동반 탈락은 사상 최초. 그런데 꼴찌인 롯데가 무려 59승4할 5푼 7리라는 상당히 높은 승률을[3] 기록했으며, 심지어 우승팀 두산이 정규시즌 우승팀 삼성보다 꼴찌 롯데와 경기차가 더 작았을 정도로 전체적인 승률 디플레가 괴랄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롯데팬들은 이 이후 암흑기를 절대 예상 못 했다.

4 신인드래프트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드래프트

5 포스트시즌

1위 삼성 라이온즈, 2위 현대 유니콘스, 3위 두산 베어스, 4위 한화 이글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

김인식 감독이 이끈 두산 베어스는 한화와 현대를 잇달아 연파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4]

2001년 10월 20일부터 10월 28일까지 1위 삼성 라이온즈와 플레이오프 승자인 3위 두산 베어스간에 한국시리즈가 열렸다. 자세한 내용은 2001년 한국시리즈 항목 참조. 두산 베어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뒀다. 여담으로 비로 2차전이 연기되었으며 이게 두산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14년 후...
  1. 하지만 그 해 페넌트레이스 4위였던 한화 이글스와 승차는 불과 2게임이었다, 즉 중하위권 싸움이 치열했던 시기
  2. 7월 29일 경기는 정확힌 마지막 홈 경기이고, 이틀 뒤인 31일 SK와의 인천 원정경기가 해태의 진짜 고별경기이다. 그 다음날인 8월 1일 경기부터 KIA 타이거즈라는 이름으로 야구를 계속하게 된다.
  3.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꼴찌를 한 팀이 4할 5푼을 넘긴 적은 이때가 유일하다.
  4. 아이러니하게도 김인식 감독은 5년 후, 이 때 격파한 한화를 이끌어서 KIA와 현대를 잇달아 연파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이때와는 반대로 삼성에게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