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1970)

삼성 라이온즈 No.
김상진(金尙珍 / Sang-Jin Kim)
생년월일1970년 3월 15일
출신지경상남도 마산시
학력월포초 - 마산동중 - 청강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9년 OB 베어스 연습생 입단
소속팀OB 베어스(1989 ~ 1998)
삼성 라이온즈(1999 ~ 2001)
SK 와이번스(2002 ~ 2003)
지도자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2005 ~ 2011)
SK 와이번스 2군 투수코치(2012 ~ 2015)
SK 와이번스 재활코치(2015)
SK 와이번스 2군 투수코치(2016)
삼성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2017 ~ )
OB 베어스 등번호 61번
공 번김상진(1989~1998)이경수(1999~200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1번
곽채진(1997~1998)김상진(1999~2001)틸슨 브리또(2002~2003)

1 소개

한국프로야구 OB 베어스 - 삼성 라이온즈 - SK 와이번스를 거쳤던 투수이자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코치. 현역 시절 등번호는 61번(OB) - 31번(삼성, SK) - 86번(SK 코치).

2 선수 시절

2.1 OB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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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마산 출신[1]으로 1989년 연습생으로 OB 베어스에 입단했으며, 이듬해 OB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정식 선수가 되었다. 1991년부터 OB 베어스 선발의 한 축을 담당, 1991년 10승-1992년 11승-1993년 11승-1994년 14승을 올리면서 2년 연속 꼴찌를 하며 추락했던 OB 마운드의 재건을 이끌었다. 특히 OB가 2번째 KS 우승을 차지한 1995년에는 17승(8완봉승 포함)[2] 7패 2.11의 ERA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외국인 용병 선수제가 도입되기 전의 1990년대 한국프로야구는 에이스들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삼성에는 김상엽, 한화에는 정민철, 현대에는 정민태, LG에는 이상훈, 해태에는 이대진, 롯데에 주형광이 있었다면 OB에는 단연 김상진이었다.

그러나 1991~1995년까지 매년 평균 181.8이닝을 던진 혹사[3]로 구위가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해 1996년부터는 잦은 부상에 시달렸으며, 예전의 묵직한 강속구를 잃어버리고 기교파에 가깝게 변신했다.

전성기 김상진은 140km/h 중반대의 강속구와 커브를 주무기로 하는 올드스쿨 파워 피쳐에 가까운 스타일이었다. 특히 1995년의 포스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해서, 이 한 해의 포스만 놓고 보면 선동열이나 최동원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제구력도 준수한 편이라 피네스 피쳐로 변신한 후에도 꽤나 좋은 성적을 올렸다. 두산의 구단 역사를 놓고 보면 박철순 이후 최고의 투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였다.[4]

2.2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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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삼성 라이온즈 시절. 이후 15년만에 코치로 되돌아왔다.

결국 1998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에 현금 6억 5,000만 원에 현금 트레이드됐다.[5] 2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올리며 그럭저럭 활약하지만, 노쇠화 및 부상이 겹치며 2001년에는 7점대의 평균자책점을 찍고 성적이 대폭 하락하였다. 그리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혹사에 따른 후유증이 하락세의 큰 이유였다.

2.3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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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최후를 맞이한SK 와이번스의 현역 선수 시절

결국 2001 시즌 후 SK - 삼성 간의 2:6 대형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브리또, 오상민을 상대로 김동수, 김기태, 김태한, 이용훈, 정경배와 함께 SK 와이번스트레이드되었고, 2003 시즌 후 SK에서 방출당하며 은퇴했다.

그리고 은퇴한 지 2년뒤에 SK에서 코치로 컴백한다.

2.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볼넷사구탈삼진WHIP
1991OB 베어스32151⅔1061-3.74136666651.33
199233168⅔11131-3.63131896961.30
199333187⅓
(5위)
11110-3.07156567142
(3위)
1.13
199434194
(4위)
14107-2.37
(3위)
170475148
(2위)
1.12
199527209
(2위)
17
(2위)
70-2.11
(3위)
174448159
(3위)
1.04
19962294573-3.6481395831.28
199724136⅓1290-3.301224741081.24
199827141⅔880-3.811494011971.33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볼넷사구탈삼진WHIP
1999삼성 라이온즈31179⅓1270-4.671955951361.42
20002289126013.8491316631.37
20011630⅔23207.0439213151.96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볼넷사구탈삼진WHIP
2002SK 와이번스32116⅔65024.71122296951.29
20032689⅓28024.53902811301.32
KBO
통산(14 시즌)
3591787⅔1221001453.5416565968312371.26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2004년에는 MBC ESPN에서 메이저리그 해설가로 1년 간 활동했다.[6]

3.1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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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자신이 은퇴했던 팀 SK 와이번스에서 투수코치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김성근 체제에서는 주로 1군 투수코치를 맡았다.

허나, 이만수 체제로 넘어오면서 2군 투수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보직 이동이 좀 있긴 했지만, 투수코치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SK 팬들도 김상진의 투수코치로써의 역량은 인정하는 편.

2015년부터 조웅천과 자리를 맞바꿔 1군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으나, SK 팀 내 분위기가 나빠지면서 김원형에게 1군 투수코치를 넘기고 재활코치로 이동했다. 이 때 김원형의 불펜코치 자리에는 김경태가 들어왔다. 이후에는 계속 2군에 있었다.

3.2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16 시즌 종료 후 김원형과 함께 SK 와이번스를 떠났다. 김원형은 롯데행을, 김상진은 삼성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욕 엄청나게 많이 들은 김태한이 수석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어 삼성의 1군 투수코치를 맡게 됐다. 이로써 삼성에는 선수 시절이었던 2001년 이후 15년만에 돌아오게 됐다.

4 이야기 거리

  • 선수 시절의 별명은 배트맨이었다. 금테 안경과 특유의 턱수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
  • OB 베어스에서 전성기를 보낼 때는 LG이상훈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양 팀의 에이스 맞대결이 있었을 때 잠실에서 열리는 경기의 입장권을 구하는 건 엄청나게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전적은 이상훈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1995년에 이상훈이 20승을 기록했을 때 김상진과의 선발 맞대결에서 이상훈이 3경기 모두 이겼다. 이때 김상진은 이상훈과 경기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에 의욕이 앞서 경기를 많이 그르쳤다고 한다.#
  • 트레이드마크인, 금테 안경과 특유의 턱수염을 지니고 있었으면서, 이상훈의 긴 머리가 부러웠다고한다. 라이벌이라 불렸지만 서로 친하게 지냈다.#
  • 이름이 같은 해태 투수였던 김상진과도 현역 시절 맞대결했던 적이 있으나,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한국시리즈에서도 김상진은 권명철과 함께 에이스였다. 그러나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는게 대체적인 평이다. 7차전 선발이였지만, 프로 입단 부터 약점인 번트 수비가 발목을 잡았다. 7회초에 번트후 1루 송구 에러하는 모습을 보이는등 그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 2016년 기준 약 7~8년전 야구에 관심 갖기 시작한베이징 뉴비 두산 베어스 팬들 중 이 1995년 두번째 KS 우승 때와 암흑기의 에이스를 기억하는 팬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SK 코치 시절 한때 두산전에서 투수를 교체하러 마운드에 오를때 두산 팬들의 야유가 쏟아진 적도 있다.[7] OB 레전드인줄 모르고 그냥 SK 코치라서... OB 올드 팬들은 이것을 보고 한숨을 쉰다. 한숨 쉴만함 아오 그리고 타 팀 팬들은 두산 얼빠들의 무지함을 까기 위해 김상진을 이용하기도 한다. 니네가 김상진의 리즈 시절을 알아??
  • 의외로 묻혀서 그렇지, 통산 100승 이상 거둔 선수다. 122승으로 KBO 리그 통산 10위다 ㄷㄷ 다만 한용덕처럼 골글이나 MVP 등의 기록이 없고, 개인 타이틀도 없다. 따라서 이 분도 무관의 제왕. 한용덕처럼 우승반지는 하나라도 끼고 은퇴했다는 점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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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래 전에 야구부가 없어진 청강고등학교(現 마산제일고등학교)를 나왔다.
  2. 한 시즌 8완봉승은 1986년의 선동열과 타이 기록이며, 이 해 3경기 연속 완봉승을 기록했다. 하기룡, 이상군, 선동열, 송승준 등과 더불어 한국프로야구에서는 5명만 달성한 기록이다.
  3. 통산 기록한 50완투 가운데 41완투가 1991~1995년 5시즌에 집중되어 있다.
  4. 베어스의 에이스 계보는 박철순-장호연-김상진-박명환으로 이어진다.
  5. 같은 시기에 삼성은 해태에 현금 18억원과 간판 타자 양준혁을 내주면서까지 임창용을 영입하였고, 곧이어 쌍방울에 현금 20억과 양용모, 이계성을 내주고 김기태김현욱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그 전해에 해태에서 4억 원에 조계현을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한 것에 이은 현질이었다.
  6. 당시 MBC ESPN에서는 최태원을 해설가로 영입하려고 했으나, 최태원피츠버그 파이리츠로 지도자 연수를 떠나게 되자 김상진을 영입하였다.
  7. 한창 SK 와이번스와 라이벌 구도인 시절, 2008~2011년 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