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리팩스

Halifax

1 캐나다 노바스코샤 주의 주도

Halifax Regional Municipality
(HRM 이나 그냥 Halifax라 더 많이 읽힌다)

캐나다 노바스코샤 주의 주도. 노바스코샤에서 가장 큰 광역도시임은 말할 것도 없고, 캐나다 연해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지만... 인구가 41만7천800명 (2016년 기준)으로 온타리오주 런던[1]에도 미치지 못하는 중간급의 아담한 광역도시[2]이다.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캐나다의 도시로써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WTF같은 겨울날씨를 참지 못한 개척자들의 서부 진출로 인해 인구가 감소했고 19세기 이후에는 별로 조명을 받지 못하였으나, 최근에는 세 곳의 대학교가 있는 학술도시로, 대도시 생활에 싫증난 여행객들이 찾는 전원적인 피서지로, 그리고 북미와 유럽을 잇는 교역항 역할로 점점 주목받는 중.

참고로 캐나다와 북미에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적군의 침입에 대비해 주민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지었던 시타델 언덕의 성채는 물론, 지금도 캐나다 해군의 기지가 있을 정도다. 항구도시다보니 Shipyard(조선소)와 물류항도 발달해 있다.

도시가 위치한 행정구역을 관할하는 핼리팩스 지방정부[3]가 있고 위성도시로는 다트머스, 베드포드, 로어 색빌 등이 있다.

인구가 적고 발전이 더딘 대서양 연안 캐나다 (Atlantic Canada)에서 그나마 인구가 제일 많고 도심이 발전된 간판급 도시라 봐도 무방하다.

1.1 역사

대영제국의 초기 정착촌에서 발전해 핼리팩스 대폭발, 타이타닉 등 파란만장한 역사의 무대가 된 도시.

원래는 믹맥족 원주민들이 평화롭게 거주하던 곳이었다. 이들은 현재의 노바스코샤 북동쪽에 주로 분포하던 누벨프랑스의 프랑스계 정착자들과 교류하며 살고 있었으나, 1749년 당시 대영제국이 임명한 노바스코샤의 부총독이었던 에드워드 콘월리스가 약 2000에서 2500명 가량의 인원으로 정착촌을 세우면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다. 이는 대영제국이 1725년 이후 믹맥족과 맺은 상호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이었고, 믹맥 족은 이것을 전쟁 선포로 간주해 영국인들과 한바탕 전쟁을 벌인다[4].

영국인들은 믹맥족의 거센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믹맥족이 "Jipugtug"[5]라 부르던 이 땅을 셰북토[6]라 부르며 살기 시작했다. 셰북토는 성 마거릿 만 주변으로 올라오는 멕시코 만류와 북극에서부터 내려오는 래브라도 해류가 만나는 지점이라 부동항을 건설하기에 최적이었고, 영국인들이 정착한 곳은 그중에서도 아주 알짜배기 땅이었다[7]. 이후 어쨌든 대영제국이 7년 전쟁에서 이기게 되면서 콘월리스는 이곳과 그 이외의 노바스코샤 영국령 정착촌들을 지켜내고, 누벨프랑스를 손에 넣은 후, 노바스코샤 주에서 살던 믹맥족을 도왔던 눈엣가시같은 프랑스계 정착민 아카디아인들의 집과 재산을 빼앗고 인구의 절반 이상을 강제로 내쫓았다[8]. 이 때문에 노바스코샤 주에서 사는 원주민들과 아카디아인들은 콘월리스를 아직도 정말 싫어한다. 최근에는 지방정부에 동상 철거를 공식 요청했을 정도.

이 시기에 콘월리스 총독은 아카디아인들과 원주민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 목적으로 셰북토 남단반도의 언덕에 성채[9]를 지었고 이는 명령 하달, 정찰 그리고 다가오는 적군에 대포를 날리기에 아주 유용한 요지에 위치했다. 이 전초기지는 설립에 큰 기여를 한 조지 몬태규-덩크의 이름을 따 불렸는데, 그는 핼리팩스의 백작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었고, 그래서 이 새로운 기지의 이름은 핼리팩스가 된다. 나중에 이 기지를 둘러싼 정착촌이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도시로 발달하면서 핼리팩스로 정식 명명된다.

1.2 기후

요약

봄: 그런 거 없다 짧지만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체감하는 즉시 여름이 된다.
눈이 녹기 시작하는 시기.

여름: 모두의 얼굴에 웃음과 땀이 가득하다. 가족들은 나들이를 나가고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에어컨이 필요할 정도로 덥지는 않다. 살기 좋은 곳이 된다.

가을: 낙엽이 떨어져 쌓이고 학자금대출 때문에 빚이 낙엽처럼 쌓인 대학생들이 등교하는 시즌이다.
이 시기엔 비가 자주 와서 겨울이 올 거라는 사실을 잠깐 망각하게 된다.

겨울: 눈에 의해 모든 것이 파묻힌다. 와장창 잊을 뻔했던 이 영화이 생각날 것이다.
겨울이 된 눈 내리는 핼리팩스에 2개월만 지내보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3 교통

주 교통수단은 여타 도시들처럼 버스, 자가용, 오토바이, 택시, 자전거 등이다. 무분별한 도시 확장으로 인해 인구에 비해 자가용이 확실히 많은 편이다[10]. 핼리팩스의 중심가는 좁고 일방통행이 많으며 -주차지옥- 중심가로부터 멀어질수록 도로의 폭이 넓어지고 일방통행도 거의 없다.

기후가 혹독해 겨울철 도로사정이 안습이다. 앞에 간략히 서술했듯이 겨울엔 눈이 참 많이 오는데, 한번에 10cm 넘게 오는 경우는 예사고 하루 종일 내리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점은 눈이 멈춰야 그제서야 제설차가 굴러다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11]. 때문에 한겨울에 아침부터 눈이 쌓이면 주중 러시아워 도로에 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 괴현상도 종종 보게 된다. 버스는 눈밭에 바퀴가 묻혀서 중간에 정차하고 손님들을 내려서 걷게 하는 경우도 생긴다. 자 이런 경우 해답은 간단하다. 자거나, 영화를 보거나, 앞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하루를 보내도록 하자. -오예 학교 안간다- -나도 회사 안간다-
-you are fired-

인구가 적어서 지하철은 아예 없고 설치할 예정도 없다. 아담한 도시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노면전차(트램)나 지상철이 한두 노선은 있으면 도시발달과 경관에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 수 있겠다[12]. 하지만 월세 상승률 같은 문제 때문에 도시 중심부의 인구가 계속 위성도시로 빠져나가고 자가용 의존 현상이 아직도 심한지라, 과연 지역정부가 이런 제안을 언제쯤이면 진지하게 검토할지는 미지수.

택시는 차량 종류도 다양하고, 시에서 정한 택시 고유의 공통색상이 없어 표시등만 빼고는 일반 차량과 똑같다. 핼리팩스 중심부엔 카지노 택시와 옐로캡등이, 다트머스엔 밥스(Bob's) 택시가 가장 눈에 많이 띄며, 다른 위성도시에는 대부분이 자가용을 소유해 택시가 눈에 잘 안띈다. 그리고 까다로운 택시 면허 문제로 아직 우버가 없고, 우버는 들어올 생각도 없다 카더라. 택시 기본 요금은 보통 3달러 20센트이고 2명 이상은 사람 1명당 70센트의 추가운임을 받는다.

캐나다 국영철도 VIA Rail의 최동단 종점이기도 하다. 몽턴을 거쳐서 몬트리올까지 가는 노선을 Ocean Service라 하는데, 몬트리올, 토론토 등 대도시에 가는 경우 항공편에 비해 가격은 비싸고 느리기 때문에 승객이 많이 줄어서 이제는 주 3회밖에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기차 광역노선을 만들어 교통체증을 해소하는 동시에 교외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도심 접근성을 높이는 파일럿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시 외곽에 핼리팩스 스텐필드 국제공항이 있다. 도심에서는 차로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1.4 문화와 사회

조용한 사람들의, 조용한 사람들에 의한, 조용한 사람들을 위한 도시(...)였지만 -온타리오 출신 파티광들 때문에- 근래 변화하고 있다. 다섯 군데의 대학교[13]와 컬리지들이 매년 캐나다 전역[14]과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을 끌어모은다. 덕분에 도심과 변두리에는 여름을 제외하곤 대학생들이 사시사철 눈에 띄어 핼리팩스가 대학도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캐나다 연해주가 유독 고령화 현상이 심한 관계로 대학교와 그 학생들이 소비자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서 그렇지, 경제구조와 도시 규모를 알게 되면 사실 그냥 대학도시는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도심의 상점들과 유흥가는 학생들이 다 먹여살리겠지-

성공적인 다문화주의의 모범으로 잘 알려진, 그리고 사실이 그러한 캐나다의 도시치곤 참 다문화화(化)가 덜 되어있다. 인종 구성의 절대 다수가 코카서스계 백인. 그 다음으로 소수 아시안 계통 (중국계, 인도계, 아랍/이란계 등), 그리고 그 다음이 가끔 보이는 흑인이다. 밴쿠버, 토론토등 캐나다 대도시에 오래 거주하다 핼리팩스의 중심가에 와보면 '여기 캐나다 맞아?'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몬트리올 동쪽의 여타 캐나다 연해주의 도시들과 타운들에 비하면 문화와 인종적으로 참 다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작은 도시 안에서도 지역구에 따라 느낌이 꽤 다른데 예를 들자면 핼리팩스 반도 북쪽[15]은 예술과 핼리팩스 고유의 독특한 문화가 발달하고, 환경문제, 공정무역, 도시문제, LGBT+ 인권 문제등 사회문제에 관심이 지대한 사람들[16] 살고 있는 지역구들이 많다. 반면, 핼리팩스 반도 남쪽은 대학생들과 중심가에서 가까운 비싼 땅을 소유해 부유하나 조용하고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이 살고 거의 항상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난장판- 도심이라고 보면 된다[17]. 핼리팩스에 거주하거나 방문하는 경우 꼭 이 북쪽과 남쪽 둘다 가보고 비교해 보자. 이 작은 도시 안에 두개 이상의 전혀 다른 문화가 어색하게 견제하면서 공존하고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역사가 재조명되면서 발언권이 강화된 믹맥(Mi'kmaq)족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띈다. 이들은 인권활동, 도시문제 해소, 자원봉사, 지역정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젊은 층의 지지[18]를 등에 업고 영향력을 조금씩 넓혀 가고 있다.

레바논 내전을 피해 이민온 레바논계 캐나다인도 종종 눈에 띈다. 이들은 핼리팩스의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업(특히 외식업)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03년에 핼리팩스에서 설립된 노바스코샤 레바니즈 상공회의소가 그 상징.

한편 한국인 인구는 아직 매우 적은 편이고 대학교육 또는 어학연수가 목적인 유학생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1.4.1 인물

참고로 영화배우 엘렌 페이지가 이 도시 출신이다. 이곳에서 그냥 태어나기만 한 게 아니라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유명해지고 난 이후에도 핼리팩스에 자주 찾아오는 모양. 대부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대-스타. 거리에서 마주쳤다는 사람들도 있고, 옷가게에 들른 이야기를 기사로 낸 기자도 있고[19], NSLC[20]에서 민증 까라고 했다가 깜놀하고 "오오 그냥 17세 소녀인줄 알았는데 당신이었군요!!" 한 점원도 있고(...).

HRM은 캐나다 하키의 자존심인 웨인 그레츠키의 뒤를 잇는 NHL의 명선수이자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시드니 크로스비가 출생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21]. 이 분이야말로 핼리팩스 출신 사람들이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진정한 대스타다. 시드니 크로스비스탠리 컵을 들고 방문한다는 말만 나오면 그 조용하던 도시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크로스비 덕분이라도 핼리팩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단연 아이스하키. -그냥 캐나다가 다 그렇지 뭐- -그럼 블루제이스는 뭐야-

빨강머리 앤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저명한 소설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핼리팩스의 달하우지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했었고 이 도시의 신문사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다. 또 브로드웨이 뮤지컬 왕과 나의 주인공 안나의 베이스인 실존인물 안나 레오노웬스도 핼리팩스에서 거주했었고, 몬트리올로 이사하기 전 노바스코샤 아트디자인 대학교[22]를 공동 설립하여 핼리팩스 역사에 짤막하게 이름을 남겼다.

1.4.2 정치

핼리팩스의 시장은 시의원과 마찬가지로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하지만 핼리팩스는 약시장제[23]를 채택했기에 시장은 시의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의회의 간판 역할을 할 뿐 행정인사나 반대(veto) 권한이 없는 형식적인 직책이다. 하지만 시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고,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시장 자신의 정치력도 무시할 수 없기에 리더십이 좋-을것같-은 인물이 주로 선출되어 도시의 분위기를 만들고 가꿔나간다. -웬지 존재감이 약간 딸리는듯한 이 느낌은 뭐지- -그럼 버니 샌더스라도 기대한 거냐-

아프릭빌 철거사건[24]을 처음 공식으로 사과하는 등 업적도 많고 논란도 많았던 피터 켈리 시장이 2012년에 물러나고 마이클 사바지(Michael Savage) 시장이 2012년부터 4년째 역임 중이다. 2016년 지방선거에서 유일한 경쟁후보였던 릴 맥퍼슨을 3만 3천표 이상의 차이로 누르고 압승해서 시장직을 유지하게 됐다.시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도시를 더 자연친화적으로 (a greener city) 만들겠다고 하니 지켜봐야할 듯.

시의원은 각 지역구마다 한명씩 선출되며, 핼리팩스의 지역구는 총 16개니까 시의원도 총 16명 되시겠다. 물론 다른 캐나다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지방선거는 비정당 직선제를 채택한다. 후보들이 당이 없기에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개인적인 정치적 역량, 즉 후보의 이름, 공약, 영향력을 보고 투표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구들은 당연히 선거도 치열한 편이다. 2016년 지방선거에서는 District 10에서 7표차로 후보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25]. 한편 District 8인 Halifax Peninsula North 구에서는 26세의 흑인 청년 린델 스미스가 16년만에 처음으로 흑인 시의원으로 선출되어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메트로 지와의 인터뷰에서 "핼리팩스는 그 자체로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어우러져 공존하는데 의회도 그걸 반영해야 하지 않겠나" 라며, 유소년층과 노인층을 위해 시에서 운영하는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의 등록비를 먼저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연방정치의 일부로써 핼리팩스는 연해주 캐나다의 다른 지방들과 마찬가지로 Liberals의 든든한 텃밭 중 하나다. 2015년 연방총선에서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Liberals가 굉장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바람.

1.4.3 음식

핼리팩스를 대표하는 음식[26]으로 도네어(Donair)가 유명하다. 다운타운에서 하나 주문하면 두꺼운 난(Naan)빵 같은 것에 도너(Döner)처럼 양고기, 닭고기 또는 소고기를 넣고 약간의 양파와 토마토를 썰어 넣어 맛을 보탠 후 이 도네어 소스를 끼얹어 싸서 준다. 참고로 이 소스가 꽤 달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팀 홀튼의 도넛처럼 처음에는 뭐가 이렇게 달아? 라고 생각해도 정신 차리고 보면 이미 잊을 수 없는 맛이 된다. 물론 고기가 아주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칼로리 폭탄이다. 자주 사먹는다면... 망했어요 핼리팩스 사람들의 평균체형에 도전해보자

2 영국 웨스트요크셔주의 도시

내용 추가 바람.

3 영국의 은행

내용 추가 바람.

4 제2차 세계대전때 사용된 영국의 중폭격기

핸들리 페이지 핼리팩스문서 참조.
  1. 우리가 잘 아는 영국의 그 대도시 런던이 아니다!
  2. 물론 거대도시에 익숙한 우리 기준으로 보면 작다. 대서양 연안 출신 캐나다 사람들은 대도시라고 생각한다.
  3. Halifax Regional Municipality (영문)
  4. 프렌치-인디언 전쟁의 4. 유럽 외 전장 챕터를 참고하자.
  5. 가장 큰 항구라는 뜻
  6. Chebucto. 흔히 외국어가 영어화된 고유 명사에서 나타나듯 Jipugtug과 대충 비슷하게 들린다.
  7. 그게 콘월리스가 다른 데는 다 놔두고 하필 이곳을 차지한 이유다.
  8. 물론 이 혹독한 시기에 많은 아카디아인 고아들과 사망자들이 발생했다
  9. 시타델 힐 (Citadel Hill)
  10. 적은 인구에 비해서 많은 편. 많은 사람들의 직장이 있는 핼리팩스의 중심 지역에서 주거지가 많은 위성도시들까지 거리가 차로 20~30분 정도 걸리고 밀릴 때는 한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한데 인구가 적은 관계로 대중교통이 발달이 더디다. 이런 경우는 자가용 없이는 출퇴근 뿐만 아니라 생활이 힘들다.
  11. 이런 경우가 하도 많아서 하루에 왔다갔다 하면서 눈을 여러번 치울 시 시정 예산이 급격히 바닥날게 불보듯 뻔하지 않은가?
  12. 1960년대까지만 해도 트램이 있었다. 그리고 가끔 트램을 다시 만들자는 주장이 간간히 들린다.
  13. 원래는 Atlantic School of Theology를 포함 여섯 곳인데, 이 학교는 사립종교대학이라 기독교 커뮤니티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14. 특히 온타리오.
  15. 흔히 North End라고 일컬어진다. 어디서부터 핼리팩스 North이고 South인지는 사람마다 견해의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은 Quinpool Road가 핼리팩스의 북쪽과 남쪽을 나누는 경계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는 Halifax Peninsula North구가 이 지역에 해당함.
  16. 힙스터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그냥 힙스터들은 아니다. 힙스터들은 복고스러운 스타일 + 인디스러운 사고방식 + 검소한 척하지만 사실은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이다. 반면 핼리팩스의 노스엔드 문화는 아픈 과거를 갖고 있는 노바스코샤 흑인과 First Nations의 문화를 포용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였고, 로컬라이징이 많이 된 예술, 행사, 음식 -그리고 맥주-등의 독특함을 포함한 핼리팩스 고유의 문화와 커뮤니티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세다. 젊은 층이 주류이고 약간 언더독 느낌이 나되 개방적이고 텃세가 적다.
  17. 핼리팩스의 업타운이나 마찬가지인 South End가 여기에 있다.
  18. 특히 North End쪽의 진보성향이 짙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많이 받는다.
  19. 엘렌 페이지가 2015년에 출연했던 영화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
  20. Nova Scotia Liquor Corporation 노바스코샤 주정부관할 주류점. 퀘벡을 제외한 캐나다의 각 주는 주정부 관할의 주류점이 있다. 온타리오에 LCBO와 같은 개념이다.
  21. 정확히는 핼리팩스 반도에서 다리만 건너면 나오는 다트머스의 동단의 Cole Harbour라는 작은 타운 출신이다. 다트머스나 콜 하버나 광역도시의 일부이기 때문에 핼리팩스 출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22. Nova Scotia Collage of Arts and Design 이 정식 명칭이지만 주로 NSCAD라고 쓰고 내스캐드라 읽는다. 참고로 컬리지라는 명칭 때문에 2년제 단과대학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4년제 대학이다.
  23. 시장의 권한이 약한 자치정부 체계를 말한다. 예를 들자면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또는 도시들이 시장의 권한이 강한 강시장제를 채택하고 있다.
  24. 1947년 시의회는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낡고, 더럽고, 냄새나는 핼리팩스 북쪽의 판자촌 철거를 승인한다. 이곳은 시민들이 대개 아프리카계 빈민들 또는 노역자들이었기에 아프릭빌(Africville)로 불리웠다.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발 때문에 주민들은 이곳을 거의 울며 겨자 먹기로 떠난다. 그런데 이 흑인 주민들이 받은 보상금은 약속받았던 새 집을 사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었고 변변한 직업도 구하기 힘들어서 울분을 토하며 결국 다른 도시로 이주하거나 괴로운 시절을 보냈다.
  25. 한편 District 14에서는 47표차로 희비가 엇갈렸다는. -전교회장 선거냐-
  26. 물론 비공식 타이틀이며 주로 농담처럼 회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