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라의 인물 호공(瓠公)
1.1 인물정보
이름 | 瓠公(호공) |
시대 | 한국 삼국시대의 인물 |
출생 | ? |
나라 | 일본->신라[1] |
1.2 소개
왜국 출신의 신라 초기의 재상. 신라 건국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로, 왜국이라는 출신은 보통 일본인으로 해석되지만 진짜 일본 열도 출신이 아니라 남방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표주박을 허리에 차고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에 호공으로 불린다고 하며, 박(식물) 이야기의 공통점 때문에 박씨족의 분파라고 해석하는 주장도 있다.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박혁거세 때로, 혁거세왕 38년(기원전 20년) 2월 마한에 사신으로 가서 마한의 오만함을 꾸짖는다. 용케 끔살되지 않고 살아돌아와서는[2] 그 후 석탈해의 속임수로 집을 빼앗기는 굴욕을 겪는다. 석탈해가 호공의 집터[3]가 좋은 것을 보고, 미리 숯과 숫돌을 묻어둔 뒤 자신의 집안은 원래 대장장이인데 잠시 다른 곳에 간 것이라 주장하고 땅을 파면 숯과 숫돌이 나온다고 말하고 한번 파보라고 했다. 땅을 파보니 숯과 숫돌이 나오자 이를 근거로 호공의 집을 꿀꺽했다.
이를 단순한 호구가 아니라 호공이 이주자인 석탈해를 후원했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석탈해 문서에 자세히 나와있지만 석탈해 역시 바다 건너 용성국[4]에서 신라로 건너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탈해왕 때는 호공이 고위직인 대보로 임명된다.
계림(당시는 시림)에서 닭 우는 소리가 나자 탈해왕의 명을 받고 김알지를 주워온 것도 호공이다. 한 마디로 신라 시조 세 명과 모두 연관이 있는 인물.
삼국사기 기록상으로는 장수왕급으로 장수한 인물인데, 마한에 사신으로 갔다는 기원전 20년에 최소한 20대 초반이라고 가정하면 마지막 기록인 기원후 58년 대보에 임명된 시점엔 100살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호공이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대표자를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2 중국 삼국시대의 인물 壺公
생몰년도 미상. 공(公)을 붙인 이름만 전할 뿐 실제 본명은 알 수 없으며, 초군부와 귀신을 불러 병을 치료하는 왕부부 등 20여 권의 책을 저술해 이 저서들을 통틀어 호공부라 했다. 비장방이 시연이라는 벼슬을 할 때 어느날 시장으로 들어가 약을 팔았는데,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약을 팔면서 전혀 값을 흥정하지 않았으며, 그의 약은 어떤 병도 모두 나았다. 약을 사러 온 사람에게 이 약을 먹으면 반드시 무슨 물건을 토해낼 것으로 몇 월 몇 일에 낫게 될 것이라 해 그 약을 복용하면 그의 말처럼 되었으며, 하루에 수만 금의 돈을 거두게 되자 시중에서 가난하면서 춥고 배고픈 자들에게 베풀면서도 자신을 위해 남겨두는 것은 매우 적었다.
항상 빈 병 하나를 머리 위에 매달아놓으면서 앉았다가 해가 지면 그 병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은 그의 소재를 알 수 없었으며, 오로지 비장방만이 그를 알아보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비장방이 호공이 앉은 자리를 매일 청소하거나 먹을 것을 공급하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비장방이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자 호공은 비장방이 독실하고 미덥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저녁에 사람이 없을 때 오도록 불렀다.
저녁에 비장방이 오자 호공은 자신을 따라서 병 속에 뛰어들도록 했는데, 그 병 속에는 누각, 관대, 대문 안에 세운 중문, 복도와 호공을 시중드는 자들이 있었다. 호공이 비장방에게 자신을 선인이라면서 천상의 직무를 더럽혀 사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인간 세상으로 귀양왔다는 얘기를 했으며, 비장방의 뒤에 있는 누대 위로 가서 술을 함께 마시려고 했다.
누대 아래에 꿀벌 크기만한 술독이 있어 비장방이 사람을 내려보려 가지고 오려고 했지만 무거워 들 수가 없어 수십 명이 나섰는데도 옮기지 못했는데, 비장방이 이 사실을 얘기하자 호공이 가서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옮겨 비장방과 함께 다음날 아침까지 마셨지만 술독이 비지 않았다. 호공은 자신이 떠나야 한다면서 비장방에 갈 것을 물었는데, 비장방이 친척들이 알거나 깨닫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하자 푸른 대나무 지팡이를 구해 그걸 가져가서 집으로 들어가 병이 났다는 핑계를 대어 지팡이를 누워있던 자리에 두라고 했다.
비장방이 호공이 알려준 대로 하자 집안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여겨 장례를 치뤘는데, 비장방은 호공을 따라다니게 되었으며, 호공이 비장방을 여러 호랑이 무리 속에 남겼다가 다음날에 석실에 가두었지만 태연자약하자 칭찬했다. 호공은 비장방에게 가르칠 만하다면서 변소에서 밥을 먹도록 했지만 악취가 아주 심해 그 속에는 한 촌 길이의 벌레가 있었는데, 비장방이 난색을 표했다.
호공이 탄식을 하면서 그를 되돌아가도록 보냈는데, 비장방에게 신선이 될 수 없다면서 인간 세상을 주관하는 자로 삼아 수백 세를 살게 해주겠다면서 부적 한 권을 주어 보냈다. 그 부적에는 이를 지니고 있으면 여러 귀신들을 부릴 수 있으며, 사자(使子)라 칭하면 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비장방이 집에 가는 방법이 없음을 걱정하자 대나무 지팡이를 주면서 이것을 타면 집에 갈 수 있다고 했으며, 그대로 비장방과 헤어졌다.
이 병 속의 일화로 병 속의 세계를 뜻하면서도 별천지, 별세계를 뜻하는 호중천지(壺中天地)라는 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