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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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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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시절.

한화 이글스 No.79
마일영(馬一英 / Il-yeong Ma)
생년월일1981년 5월 28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대전광역시
학력대전신흥초 - 충남중 - 대전고 - 경기대[1]
포지션투수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2000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1순위, 쌍방울 레이더스) (지명권 양도계약)
지명권 양도계약으로 현대 유니콘스 입단
소속팀현대 유니콘스(2000~2007)
넥센 히어로즈(2008~2010)
한화 이글스(2010~2015)
지도자한화 이글스 육성군 투수코치(2016~현재)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21번
팀 창단마일영(2008~2009)마정길(2010~ )
한화 이글스 등번호 49번
마정길(2002~2009)마일영(2010)양승진(2011)
한화 이글스 등번호 29번
훌리오 데폴라(2010)마일영(2011~2015.7.23)김경태(2016~ )

1 개요

현대 유니콘스, 한화 이글스 소속의 좌완투수.
한화 이글스 소속의 투수코치

2 아마추어 선수 시절과 지명

대전 팜의 명문인 대전고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당시 해체 및 인수 논의가 진행 중이던 쌍방울 구단은 5억 원의 조건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마일영의 지명권을 양도했고,[2] 이에 따라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3 프로 선수 경력

3.1 현대 유니콘스 시절

입단 첫해부터 1군 생활을 시작하여 5승 5패 2세이브, ERA 3.38로 1년차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성적을 올렸고, 2년차부터는 핵심 선발요원 중 하나로서 투수왕국 현대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러나 2001년 10승 5패를 찍은 후 성적이 점차 내려가더니 03~04년 두 시즌은 거하게 말아먹었다.

2004년에는 2004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돈만 내고 병역면제를 받지 못했다는 안습한 사실이 밝혀졌다. 2005년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후 2007년 시즌 중에 즉시전력으로 복귀했는데… 그 2년동안 구단은 모기업 사정으로 완전히 절단나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몇 경기 등판하지 못했다.[3]

3.2 히어로즈 시절

이후 팀이 히어로즈로 거듭나면서 2008년에 화려하게 부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총 173이닝을 던져 11승 11패 ERA 3.49, 탈삼진 83개. 꿈도 희망도 없던 히어로즈의 2008 시즌 승수가 총 50승이니 22%를 혼자 책임진 것. 이미 터졌던 장원삼, 이제 터진 마일영, 곧 터질 이현승. 히어로즈의 암울하기 그지없던 하루하루를 지탱하던 젊은 좌완 선발 셋은 절망 속에서 비치는 한 줄기 희망과 같은 존재였다. 그딴 건 없고 장사하자 거기다 가끔씩 던졌던 너클볼이 화제가 되면서 이름을 더욱 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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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인 2009 시즌에는 혹사의 후유증으로 부진하여 5승 7패, ERA 6.72을 찍었으나, 한화 이글스가 그래도 충분히 선발의 한 축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2010 시범경기 도중 마정길과 3억원을 주고 마일영을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이 트레이드로 고향 팀에서 뛰게 되었으나, 정작 본인은 현대 시절부터 10년 넘게 뛰어 온 팀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적잖아 착잡해했다. '한화행' 마일영, "그저 멍할 뿐이다"

3.3 한화 이글스 시절

3.3.1 2010 시즌

그러나 한화로 이적하자마자 아주 제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주로 중간계투로 뛰었음에도 1승 3패 2세이브 10홀드 ERA 7.01이라는 커리어 로우를 기록.

반면 트레이드되어 이적한 마정길분식회계율 42%라는 문제점이 있으나 방어율 3점대로, 훌륭하다곤 못해도 연봉에 비하면 나름대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무엇보다 마일영보다 이닝도 많이 먹었다! 말 그대로 송지만 트레이드 이후 두번째 조공트레이드라고 할 수 있을 정도.

3.3.2 2011 시즌

2011시즌 개막 이후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어 2군에도 갔다오는 등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한화의 열악한 불펜진 사정으로 인해 불펜투수로 계속 나왔지만 1아웃잡기도 힘든 그런 투수가 되었다. 볼만 남발하며 1아웃 잡는 모습은 거의 볼수 없을 정도. 결국 5월 29일 아예 경기를 내주는 경우도 나오고 말았다. 자책점도 11점대로 거하게 망가져 반쯤 퇴물이 된 상황(…).

5월 29일 이후로는 계속 등판하여 6월 28일까지 무실점으로 막았다. 특히 6월 17일 경기에서는 심판의 편파적인 스트라이크 존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순간 1⅔이닝을 잘 막았다. 6월28일 경기에는 선발 류현진이 담으로 5이닝만 채우고 내려간 상황에서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류현진과 팀의 승리를 챙겼다. 6월 30일 경기에는 1사 1, 3루의 터프한 상황에 등판하여 병살타로 이닝을 끝내고 다음 이닝도 병살타를 잡아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대활약을 펼쳤다.

중요한 순간, 혹은 갑작스런 투수 난조로 교체할 투수가 준비가 안된 상황 등에 나서서 잘 막았으며 평균자책점도 6점대까지 내렸다. 참고로 6월에 8⅓이닝 동안 평균자책점이 0.00이었다.

7월 2일의 경기에서는 선발 장민제와 신주영이 초반에 무너진 상황에 등판하여 KIA 타이거즈의 강타선을 3⅓이닝동안 1실점으로 막으며 승리를 챙겼다. 팀 승리에 크게 기여함은 물론 방어율도 5점대까지 내렸다.

4, 5월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박정진과 더불어 한화이글스의 필승불펜진의 위용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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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부터는 재활군으로 내려간 류현진과 선발 로테이션에서 탈락한 장민제를 대신해 유창식과 함께 선발진에 합류, 등판한 두 경기에 의외의 호투를 보이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중간계투로 뛰다가 갑자기 선발로 전환한 터라 체력에 문제를 보이며 5회를 넘기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마일영 전에 5선발로 뛰던 누군가를 보는듯 하다

3.3.3 2012 시즌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55경기 61⅔이닝 2승 3패 1세이브 6홀드 1블론세이브 31탈삼진 평균자책점 5.55를 기록했는데, 피안타율이 무려 .337에 달했다. 시즌 내내 관심을 받지 못해 시즌이 종료된 이후에 2012년 항목이 작성된건 안 비밀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했고, 원 소속구단 우선협상 마감일인 2012년 11월 16일에 3년간 총액 8억 원에 재계약했다. 옵션 등 세부 액수는 구단과의 합의 하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3.3.4 2013 시즌

2012 시즌 후 류현진의 LA 다저스 이적, 박찬호의 은퇴, 양훈의 경찰청 입대 등 한화 투수들의 뎁스가 얇아지는 결과가 나타났기에 베테랑 좌투계투로 활약을 바라고 FA를 했지만, 별 활약은 커녕 패전처리로도 나오지 못하며, 먹튀라고 욕먹었다.

시즌 초반 1군에서 출전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6경기 6⅓이닝 3실점 평균자책점 4.26을 기록하고 4월 15일 자로 2군행.

이후 6월달에 콜업되었으나 별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다가, 7월 13일 첫 선발등판을 나섰지만, 1⅔동안 안타를 쳐맞고 볼넷을 내주며 3실점을 해 무너졌고 결국 패전행.

투구에서 좌투인것을 제외하고 볼의 위력이 강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교한 제구를 가진것도 아니라 WHIP이 투수의 것이라하기에는 너무 높은 1.86을 기록. 피안타율도 .333인데, 이것은 거의 등판시마다 주자를 내보내는 것과 같다.

3.3.5 2014 시즌

KBO 퓨처스리그에서 12경기 무실점(...)을 기록중이다. (5/18 기준) 한화팬들은 마일영이 올라와서 불펜에 힘이 되어줬으면 하는 모양.

이후 1군에 승격되었지만 평범한 성적을 찍고 있다. 7월 11일 기준으로 19.1이닝 ERA 6.98. 작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모습이다. 2군과 1군의 격차를 느낄수 있다.

3.3.6 2015 시즌

김성근 감독이 투구폼을 바꿔보겠다고 밝혔는데, 바꾼 투구폼이 사이드암. 즉 좌완 사이드암 투수가 되었다. 김창훈 이후로는 볼 수 없었던 희귀한 투구폼이 다시 나타난 셈.

5월 19일 SK 와이번스전에서 바뀐 투구폼으로 등판했다. 이명기박재상 2명의 좌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올라왔고, 실제로 두 명 모두 유격수 땅볼로 유도했지만 유격수 권용관이 두 번 모두 실책을 범해(...) 한 타자도 잡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제이크 폭스가 콜업되며 1군에서 말소되었다. 안습.

7월 23일, 임경완과 함께 웨이버 공시 되었다.

이후 선수 생활 연장의 뜻을 밝혔지만 여의치 않았고 11월 5일 코치로 한화로 복귀했다.

4 그 외

망하기 직전인 팀의 지명을 받고, 이후 다시 팀이 망하는 걸 지켜보고 결국 팔려간, 꽤나 기구한 운명의 선수.

왠지 억울하게 생긴 외모와 다르게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고 한다.

별명으론 0mile,[4] 마10,[5] 마텐, 마사회,[6]잉여,[7] 10시즌 이후의 삽질로 붙여진 별명인 마레기, 마도시요[8]가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안습한 별명은 씨덜년.[9]

그리고 짤로도 나온 상황. 시각테러 및 혐짤주의 볼질소녀 마볼넷凸마레기 OME!!

MBC 야구 다큐멘터리인 위닝샷에 투수별 비교짤에 나왔는데, 유희관보다 공 회전수가 반절밖에 안된다는 처참한 예시로 등장했다. 구속도 유사하다고 나온건 덤. 일부에서 너클볼을 던지기 시작한 이후 악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회전수가 이리 심하게 낮을걸 보면 관련된 부분이 있지않나 싶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0현대 유니콘스4693⅓55240.5003.38847576239351.511
200142152⅓105050.667
(5위)
3.9614989611080671.556
200230130⅓74000.6364.5613216799876661.542
20032069⅓36000.3335.97814483250461.760
20042680⅓44000.5004.71996434646421.693
2005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06
20072113⅓00020.0004.7313286871.425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8우리 히어로즈281731111000.5003.4915511698377671.225
2009서울 히어로즈2797⅓58010.3856.9312717515176751.798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10한화 이글스4743⅔132100.2507.01519212637341.626
20115169⅔25080.2865.81754523246451.780
20125561⅔23160.4005.55866203146381.686
20131312⅓01000.0006.5717186991.865
2014192000010.0008.5532113820192.050
2015200000.0000.000020103.000
KBO 통산(14시즌)427101750555370.4764.871101925675916115501.580
  1. 경기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학사학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졸로 표기되어 불쾌했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로 참조
  2. 이를 계기로 규약이 개정되어 지명권 트레이드는 금지되었고, 신인 선수 현금 트레이드 역시 금지되었다. 선수 간 트레이드는 가능하지만, 트레이드 승인은 조금 늦게 된다.
  3. 그러나 적응과는 별도로 공익생활하면서 몸을 꾸준히 만들었다. 2007년 공익 제대 당시 김시진 감독이 '즉시 전력으로 쓸 정도로 몸 상태 좋다.'고 평할 정도. 공익 근무 중에 틈틈히 너클볼을 연습했다고 한다.
  4. 2011년 당시 제구력이 영 좋지 않아서 붙여진 별명, 마일영=Mile 0인 것을 이용한 말장난이다.
  5. 2011년 한때(5월) 평균자책점 11점대로, 10점대를 넘겨 평균자책점이 10점대마10 아니냐는 소리도 들어먹었었다(…). 그러나 이후 6월달 후반기에 조금은 안정감을 찾으며 6점대로 평균자책을 내려서 다행히도 그 의미의 마텐에서는 벗어났다.
  6. 4회가 지나면 급격하게 무너지는 폼으로 인해 선수단에서 그렇게 불리웠다.
  7.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2009년에 혀갤에서 카라의 My love란 노래+잇몸미소 짤방과 함께 유행했던 별명이다.
  8. 볼만 남발하여 "도오시YO어쩌지 제구가 안잡혀" 같은 느낌이 들어서
  9. 프로야구매니저에서 '씨덜년'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유저가 마일영 선수 카드를 계속 올리면서 꾸준하게 글을 올렸는데 이 때문에 다른 유저들이 마일영만 보더라도 "아 씨덜년이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미지가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