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족 신라왕족설

1 소개

북흉노의 세력이 쇠퇴하면서 일부 흉노인들이 신라로 내려가 김씨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는 주장. 사실 "(흉노족 출신) 김일제가 신라의 기원일 수도 있다"라는 주장은 경주 김씨였던 추사 김정희가 쓴 책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김정희가 내린 결론은 "개소리죠 18"로 끝났지만.

2 신라 기록에 언급된 김일제, 그리고 무덤의 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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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공의 《고운당필기》에서 언급된 김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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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문무대왕비』의 탁본

우선 가장 많이 언급 되는 인물이 바로 한 무제 당시 흉노 왕자 출신인 김일제다. 김일제는 한나라에 투항한 이후, 공을 세워 한무제로부터 투현 지방을 하사받아 열후(烈侯)가 된 인물이다. 전한 시기에는 중앙 정계에서 나름의 영향력을 가진 가문으로 번성하였는데, 이후 왕망과 엮이게 되면서 후한 시기에 패가망신한 가문이 되었다.

문제는 문무왕릉비와 대당고부인묘지명의 2개 비문에 신라의 김씨 왕족의 시조 중 하나로 투후 김일제가 언급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일부 호사가들이 투후의 후손이 신라로 넘어와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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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싣고 다니는 청동솥

한편으로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신라 초기에 발견된 페르시아식 금제 칼과 마구를 비롯한 말과 관련된 유적들이 발견되었는데, 흉노족들이 서방과 오가면서 교류했다는 증거라고 한다. 신라 마립간 세력의 대표적인 묘제로 손꼽히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역시 스키타이 및 쿠르간 등 북방 민족의 묘제와 비슷한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문제는 그게 전부다. 그 외에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유물이나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근거가 되는 일부도 관점이 워낙 여러 가지라(...)

2.1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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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지덧널무덤

일단 시기적으로 보아도 최초의 김씨 등장은 1세기경, 흉노의 흔적이라고 주장하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의 등장은 4세기경으로 전혀 맞지 않는다(신라의 첫 김씨 왕 미추왕의 재위기간은 3세기말(262~284)이다. 당연히 김씨의 왕릉은 4세기경에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김일제를 시조로 들고 있는 비문에 대해서도 역사적으로 숭조사업은 매우 흔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김일제는 이민족 출신으로 중국에서 불세출의 영웅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명하다. 마침 성씨도 김씨로 일치해서 삼국사기의 기록에서도 언급되는 소호금천씨를 시조로 삼는 관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금천(金天)이라는 명칭에서 김씨를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 즉, 신라 왕실에서 중국과의 관계도 염두에 두면서 적당한 숭조사업 대상을 물색하다가 같은 김씨, 또는 김씨를 연상하게 하는 김일제와 소호금천씨를 조상이라 꾸며낸 것이라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 한마디로 김씨의 기원이 흉노라는 가설은 신빙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사실 흉노에 한정짓는 주장은 학계에서는 전혀 영향력이 없던 소수설이고 나름대로 논란이 되었던 것은 묘제의 유사성을 통해 추론된 북방민족 계통이라는 주장이었다. 스키타이의 무덤인 쿠르간과 신라의 돌무지 덧널무덤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 고고학적으로 묘제는 매우 보수적이며,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근거로 보는데 스키타이와 신라의 묘제가 유사성을 갖는다는 것은 그냥 넘기기에는 찝찝했던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에서 일본계 무덤인 전방후원분의 존재가 뜨거운 감자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골이 발견돼서 유전자 검식을 해보면 확실한 결과가 나오겠지만 그놈의 산성토양 때문에 뼈다귀는 물론 목제품도 간간히 나오는 상황이다보니, 묘제의 유사성에 근거한 학설을 그냥 개소리로 치부하긴 어렵긴 했다.

하지만 쿠르간과 신라의 무덤은 등장시기에서 워낙 큰 차이가 있으며, 쿠르간과 돌무지 덧널무덤이 완전히 동일한 형태의 무덤도 아니다. 또한 돌무지 덧널무덤에 부장된 유물은 스키타이 뿐만 아니라 백제, 가야계와 비슷한 유물이 다수 발견되며, 오히려 백제나 가야계의 유물이 스키타이의 유물과 비슷한 면모도 보이는 등 신라가 스키타이와 관계 있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현재의 정설은 신라의 돌무지 덧널무덤을 자생적인 무덤 형식으로 보며, 쿠르간과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로 본다. 예컨대 남미와 이집트간의 문화적, 인종적 교류는 없었지만 비슷한 피라미드 구조의 무덤이 발생한 것과 같은 경우로 보는 것. 돌무지 덧널무덤의 북방계통설에 대해서는 "과학적 접근이 전무한 이념적 바람에 불과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3 일본 황실과의 연계성?

한때 일본 황실의 계보를 기마민족으로 추정하면서 흉노를 비롯한 기마민족이 대륙->신라->일본 순으로 건너왔다는 떡밥이 일본을 시작으로 제기되면서 크게 주목받기도 했지만 역시 허무맹랑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묻혔다.

현재 이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신라 = 원주 한민족 + 스키타이' 식의 논리보다는 일부 왕족에 흉노족의 피가 섞였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다만 이 일부 왕족이란 게 아무리 적게 잡아도 400여 년간 신라 왕실을 주도하던 김씨라는 게 문제. 한마디로 이쪽 역시 마이너한 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석탈해와 그 이후 석씨왕들을 별개의 집단으로 보는 학설도 있고 이를 김씨에 적용한다면 말은 될 수 있다. 또 김씨 왕가의 출현은 적석목곽분이 나타나던 시기 이루어졌으니 김씨 역사가 400년이란 것도 과장된 것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말은 된다.

현재 쿠쉬나메라는 페르시아 서사시에서 페르시아와 신라의 직접 관계를 아주 자세하게 말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페르시아 유물을 흉노의 남하흔적으로 보는 설은 더욱 힘을 잃을 듯 하다. 이 서사시에선 페르시아 왕자가 신라 공주와 결혼도 한다!

4 그외

그러나 디시인사이드 역사 갤러리에서는 반쯤 정설 취급한다. 물론 이 주장들은 야 경상도놈들 중앙아시아 민족처럼 생겼다. 흉노 피 유입된 거 같지 않냐? 정도의 수준으로 개드립 치는 경우들이고, 갤러들도 일빠, 국까들이 대부분이며, 디씨스런 논리로 상대하는 인간들이 대부분인지라 이에 대해 제대로 토론해 볼 장소는 못된다.

다음 뉴스 리플이나 다음 아고라 등에서도 이걸 정설인양 믿는 인간들이 상당수 있다. 이 주장은 신라는 흉노 놈들이니 따라서 신라의 후손들인 경상도 사람들은 한민족이 아니라 야만적인 흉노의 후손인고로 배척해야 한다는 지역드립으로 귀결되고는 하는데, 지역드립이 다 그렇듯 병맛이 넘치고 악질적인 개소리이므로 이렇게 떠드는 자들과는 상종하지 말자. 이미 현재 대한민국은 이민자 정도를 빼면 섞일 대로 섞여서 말 그대로 단일민족인 상태다. 만약 누가 경상도 흉노를 배척하자 운운한다는 것은 흉노인 자기 자신을 배척해달라는 자폭이나 다름없는 셈. 그런거 안 따져도 병신짓이지만.

여기다 더해서 훈 = 흉노 = 신라, 오오 아틸라는 우리 민족 오오 식으로 외치는 인간이 있다면... 답이 없다. 캐리어 가자. 사실 훈과 흉노가 동일한 집단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식의 말장난은 억측에 가깝다..

참고로 2008년 KBS1에서 방송된 "역사추적" 첫 방송과 두번째 방송에서 이를 언급한 내용이 방영되었다. "김일제의 후손의 기록이 없어진 기원전 24년과 김알지가 등장했다는 기간이 비슷, 탄생설화도 비슷, 그러니 신라(와 가야)는 김일제의 후손이 맞음"이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공영방송에서 잘도 이런 짓을! 여기 캡쳐되어있는 사진들이 해당 방송 방영분이다. 방송 마지막의 대사는 당시 신라 왕실은 중국을 떨게 했던 흉노족의 후손이라고 자처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중의적 해석이 가능한 대사로 마무리된다.

여진족 신라인설과는 관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