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국프로야구 미스터리

1 개요

2007년 시즌 KBO 리그에서 일어난 지금 생각하면 앞으로도 영원히 미스터리한 일들의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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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세

2.1 이현곤 타격왕

이전까진 타격이랑 거리가 멀었으나, 이 해에 타신이 들렸는지[1] 양준혁과의 타율 경쟁에서 1리 차이, 정확하게는 0.3378과 0.3371의 7모 차이로 타격왕 + 최다 안타왕에 등극했다. 그리고 2007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3할은커녕 그 근처도 가지 못했다. 대신에 광고소환에 눈을 떴다. 2013시즌 NC 다이노스에서도 처참한 성적을 보여줬다.

이후 세이버메트릭스의 스탯 중 하나인 BABIP를 계산해본 결과 이현곤의 2007년 BABIP는 .379로, 개인 커리어 평균이었던 .308, 리그 평균 .311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았다. 쉽게 말해서 세이버매트리션들의 입장은 "바빕신을 접신한 덕으로 천운을 타고난 시즌"

2.2 이우민(이승화), 이대형의 3할

타율 3할이랑 거리가 멀었던 그들이지만 이 해 들어 이우민(당시 이름은 이승화)은 비록 규정 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0.301의 타율을 기록했고, 이대형은 0.308의 타율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했다. 그런데 2007년 이후에는 3할은커녕 2할도 힘든 이우민과 도루말고는 깝깝한 이대형으로 돌아왔다.

이에 대한 분석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내야안타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고[2], 다음해부터 상대팀들이 이에 대비해서 극단적인 전진 수비 시프트를 사용하면서 BABIP수치가 하락해서 성적이 안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두 명 모두 실질적으로는 2007년이 첫 풀타임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타고투저 시즌이었지만 이대형은 2013시즌 후 FA를 통해 KIA로 옮긴 뒤 2014시즌에 타율 0.323을 기록하였다.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임을 감안해서 타율에서 2푼을 빼도 3할이다.

2014 시즌부터 정착한 안정적인 3단분리 타법으로 2015년에도 3할2푼을 기록하며 2년 연속 3할타자가 되었다. 이대형의 장기인 치고 달리기에 타격시 앞발이 고정되어 타구질이 좋아져 BABIP수치가 상승한 것이 영향을 준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주루 스탯이 무너지지 않는한 한동안은 안정적인 타율이 예상된다.

2.3 현대 유니콘스의 팀타율 1위

망해가다 못해 이미 운영비가 없어 KBO의 위탁관리를 받으면서 멸망직전이던 현대 유니콘스가 2007년에 의외로 팀타율 1위를 기록하였다.하지만 투수진이 폭망하며 결국 전년도 시즌 2위팀인 현대 유니콘스는 시즌 6위를 기록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고, 김시진 감독은 시즌 종료후 경질되었다. 팀은 2007 시즌을 끝으로 해체 후 이듬해 서울 히어로즈로 재창단하며 이광환이 초대 감독이 되었다.

2.4 김동주 두 자릿수 도루 + 최준석과의 더블스틸

도루랑은 거의 관계가 없는 김동주였으나 이 해에만 11개를 기록했다. 참고로 11개는 전준호(타자), 이우민(당시 이름은 이승화)과 동률이었으며 정수근, 박한이보다 1개 많은 수치였다. 역대 커리어 상에서도 이 해를 제외하면 두 자릿 수 도루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김동주도 고등학교땐 호타준족이었다! 그래서 벌크업한 후에도 발은 느리지만 주루센스만큼은 뛰어나다. 실감이 안 난다면 2008 베이징 올림픽 일본전에서의 김현수의 역전 적시타를 생각해보자. 이 당시 홈에서 기가 막힌 슬라이딩으로 홈인했던 주자가 바로 김동주다. 그래서 옛날에 김동주가 분명히 느린데 그새 홈에 들어오면 김동주가 웬일이라며 감탄을 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사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최준석과의 0.2톤 더블스틸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24초부터[3]

2.5 투수 20승 및 200이닝

리오스가 234⅔이닝 투구에 22승을 거두었고, 류현진은 211이닝을 투구했다. 이후로 20승 및 200이닝은 나오지 않다가 2012년에 넥센나이트가 208⅔이닝 던지면서 5년 만에 200이닝을 넘긴 투수가 나왔다. 그리고 2013년은 리즈가 또다시 202⅔ 이닝을 투구하면서 또다시 200이닝 투수가 나왔다. 그리고 2014년에 넥센밴 헤켄이 187이닝을 투구해 20승을 거두면서 7년 만에 20승을 달성한 투수가 되었다. 2015년에는 롯데 자이언츠린드블럼NC 다이노스해커가 200이닝을 돌파했다. 그리고 2016년 두산 베어스니퍼트가 20승을 기록했다. SK 와이번스메릴 켈리는 200이닝을 달성하기는 했는데 승수가 고작 9승이다(...).

2.6 우규민 30세이브

후반기 체력이 떨어지면서 13블론세이브를 기록하긴 했지만 우규민은 2007년 30세이브로 오승환의 뒤를 이은 세이브 2위자리를 찍으며 LG의 새 수호신으로 우뚝 서는 듯했다. LG팬들은 김용수, 이상훈의 뒤를 잇는 철벽 마무리 투수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길 바랐지만….현실은 서울 불바다 다행이도 이후 경찰청 야구단에서 선발 투수로서 준수한 성적을 냈고, 2013시즌 우규민은 선발 투수로 뛰면서 완봉승도 거두고 이젠 우규민 완봉하는 소리란 드립을 칠 수 없으려나 두 자릿수 승수도 올렸다.

2.7 양준혁20-20

양준혁이 이전에 20-20을 달성했던 적은 3번 있었지만 가장 최근이 1999년, 2002년 이후로는 두 자릿수 도루는 커녕 5개 이하의 도루 개수를 기록하다가, 2005년에 10개를 하고 2006년에 12개를 하더니 2007년에는 20개를 해서 만 38세의 나이로 덜컥 20-20을 달성해버렸다(…). 이로써 역대 최고령 20-20 달성. 발 빠르던 선수들도 나이를 많이 먹으면 도루 개수가 점점 주는데 마흔이 다 되던 나이에 20도루를 했으니…[4].

2.8 이호준의 3할

1998년 해태 시절 때 0.303의 타율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고 평생 3할 타율과는 인연이 없을 것 같던 이호준은, 공익근무요원으로 이탈했다가 부상으로 1년만에 돌아온 후 복귀한 2007년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391 타석으로 규정 타석(390타석)을 아슬아슬하게 채우며 타율 .313을 달성했다. 103경기를 뛰면서 당시 팀내 타점 1위, 타율은 정근우에 이어 팀내 2위이자 전체 8위, 홈런은 팀내에서 4위를 기록하며 2007년 SK의 통합 우승에 큰 이바지를 하였다.

2008년 이호준이 FA 신분을 획득하였고, 팬들은 프랜차이즈라 할 수 있는 그를 꼭 잡아야 한다고 하며 FA 릴레이까지 펼쳤다. 그리고 결국 4년 34억에 FA 계약을 체결했고 팬들의 기대는 컸다. 하지만 2008년은 달랑 8게임 뛰고 시즌을 접고 말았고 2009년에는 타율 .298을 기록하면서부터 다시 반등세(?)를 타는 듯 했지만 2010년과 2011년에는 기대에 못 미치고 말았다. 그리고 2012년 시즌, 504타석에 .300의 타율과 18홈런, 78타점으로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이호준이 이렇게 괜찮은 성적을 낸 이유가 다음 해가 FA라 FA로이드를 빨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팬들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2013년 NC 이적후의 활약으로 이것이 뽀록이 아님을 증명했다

3 기타

  • 6월 13일에 그 나오기도 어렵다는 무보살 삼중살이 나왔다. 2015년 현재 한국 프로야구를 통틀어서 유일무이한 기록. 자세한 내용은 무보살 삼중살 항목 참고. 거기에 후반기에는 이종열한 이닝에 양 타석에서 안타를 치는 기록을 달성했다. 이 또한 2015년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 8개 구단 중 한화 이글스가 이상하리만치 우천연기 경기가 많았다. 그래서 당연히 우천연기 경기 추가편성 기간에 그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했다. 그런데 그 기간 중에도 계속 우천연기가 걸리는 바람에 KIA 타이거즈와의 원정 경기 하나가 포스트시즌 전까지 치러지지 못해 그 경기는 결국 한화가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3전 전패로 탈락이 확정된 다음에야 치러졌다. 슈퍼 한국시리즈 항목 참고.
  • 이와 비슷한 시즌으로 2009년이 있다. 주전-백업의 경계에 있던 수준의 선수에서 역대급 플루크 시즌을 보내며 MVP를 차지한 KIA 타이거즈김상현이나 CK포로 같이 활약한 최희섭, 역대급으로 운이 따라주면서 BABIPFIP에 비해 0.53이라는 터무니없이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유동훈, 준수한 성적과는 거리가 멀던 삼성 라이온즈강봉규신명철이 동반으로 20-20 클럽에 가입하기도 하는 등, 커리어에 길이 남을 플루크 시즌을 보낸 이들이 많았다. 원래 이 명단에 .372라는 역대급 타율로 타격왕을 수상한 박용택도 추가될 예정이었으나 평소에 2할대 후반을 치던 실력에서 이 시즌 이후 각성한 것인지 2016년 현재까지 신들린 타격을 보여주고 2000안타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서며 스스로 이 시즌이 플루크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이 명단에서 빠지게 되었다. 여기에 엘롯기의 일원으로 있던 KIA 타이거즈가 앞서 서술한대로 최희섭과 김상현의 대활약으로 2009년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는데 이후 KIA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1. 당시 서정환 감독으로부터 망치 타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2. 두 명 모두 2007년 안타 중에 내야안타 비율이 30%에 육박한다.
  3. 게다가 이 날은 양준혁의 통산 2,000안타도 달성된 날이다.
  4. 그런데 양준혁의 19, 20호 도루는 강민호가 대놓고 도루를 허용했다. 나름대로 대선배에게 예우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