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뤼순 공방전 당시 최대 격전지. 원래 이령산으로 불렸다. 자세한 건 뤼순 공방전 참조
1.1 노기 마레스케
203고지에서만 약 1만명, 뤼순 전체에서 약 3만명의 병사가 죽었다. 죽은 병사의 유족들은 분노하여 사령관 노기를 죽일듯이 달려들었으나 노기 대장도 전쟁에서 아들'들'을 잃어버려 어쩔 수 없이 유야무야 넘어가기도 하였다. 물론 자신의 잘못으로 약 3만 명의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판국에 자기 아들 죽었다고 면죄부가 주어질 수는 없다.[1] 뤼순 공략전과 203고지의 참극은 어쨌든 총사령관 노기의 잘못이나 세부적으로는 이쪽 방면을 지휘하던 이지치 고스케 참모장의 과실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2]
노기 자신도 수많은 젊은이를 죽인 책임을 통감하고 할복이라도 하려 했으나 메이지 덴노가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돼!" 라고 만류하여 관두었고, 1912년 메이지 덴노가 죽자마자 이를 기다렸다는 듯, 그것도 부인과 함께 저 세상으로 떠났다. 이 일화는 나중에 군국주의가 심해지는 시대에는 무사도의 표본으로 훈훈함을 주었다지만 당장 사건이 일어난 당일, 즉 아직 제정신이었던 당시 일본에서는 '저런 고위직 인사가 저런 전근대적인 짓을 하다니?' 하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고.근데 죽으려면 혼자죽지 애꿎은 아내는 왜 끌여들여?
참고로 노기 대장은 군인으로서의 실력은 좀 모자라지만 개인적인 모습은 모범적이었다 한다. 더불어 노기 대장은 임진왜란 당시 포로로 끌려온 조선인 명사 가문과 인척관계다. 바로 노기 대장의 부인인 시즈코(静子)로, 남원성 전투에서 전사한 전라병사 이복남의 아들인 리노이에 세이겐(李家聖賢)[3]의 후손[4]이다. 거기다가 러시아 군 포로들을 신사적으로 대우해서 서방 기자들은 노기를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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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컷 김태권?
1.2 기타
임팔 작전에서도 203고지가 재현 될 뻔 했다. 영국군의 요새를 뚫지 못하자 시체로 산을 메워 그것을 엄폐물로 삼아 진지를 공략하려는 계획이 있었던 것..... 이런거 몇번만 더 시행했으면 일본 인구는 회복 불가능의 타격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크림 전쟁 당시 발라클라바 전투에서, 제1차 세계대전때는 솜 전투,갈리폴리 전투 에서 영국이 재현했다.[5]역시 유럽 섬나라
2 영화 二百三高地
뤼순 공방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토에이 영화사에서 제작, 1980년에 개봉되었다.
테마곡은 사다 마사시(さだまさし)의 변방수비병의 노래(防人の詩)
영상은 일본에서 제작된 매드무비이다.
영화는 러일전쟁이라는 시대적 사건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고통과 애환을 그리고자 하였으며, 가상인물의 대표인 코가 타케시와 실존인물의 대표인 노기 마레스케를 통해 각각 병사들과 사령관의 입장에서 전쟁을 통해 그들의 심경과 고통, 애환과 변화, 사연을 그려낸 수작이다.
인간 드라마 못지 않게 전쟁영화로써의 스케일도 당시 일본 최대를 자랑하였으며, 뤼순 요새와 203고지를 재현하기 위해 이즈오오시마(伊豆大島)에 대규모 요새 세트장을 건설하고, 당시 사용된 총기와 군복, 공성전의 백미인 280mm유탄포를 정확하게 재현해냄으로써 밀리터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80년 당시 개봉되자마자 일본에서 압도적인 흥행을 거두었다. 이때의 흥행을 기반으로 1981년 1월 7일부터 동년 2월 25일까지 8부작 드라마 <203고지 사랑은 죽습니까>가 TBS방송 수요극장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내용이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군국주의 미화영화로 흐를 위험이 있었으나, 감독인 마스다 토시오(舛田利雄)[6]는 수뇌부의 고집불통으로 무익하게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과, 참담함을 강조한 연출, 사지절단을 불사하는 과격한 연출로 전쟁의 참혹함을 강조했고, 또한 전쟁 속에서 동료와 가족을 잃어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작품 전반적으로 비극성을 깔아 전쟁의 미화를 차단했다.
또 3군사령부 일원들과 나레이션을 통해 자칫 놓치기 쉬운 전쟁의 진행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전쟁이라는 배경 자체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전달하였다.
옥의 티로써는 포격씬에서 대포의 포신이 움직이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 라지만 사실 당시 사용된 28cm 유탄포는 주퇴복좌기가 없이 포 중량 자체로 반동을 받아내는 방식이라 후퇴 연출이 나오면 그게 더 에러다.
또 뤼순요새 공략전의 막대한 희생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지 않은 부분이 지적되었다. 당시 무익한 희생과 3차에 걸친 정면 총공격은 참모인 이치지 고스케 소장의 책임인데도 불구하고 그 점을 지적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갔다. 가령 1차 총공격 씬에서 총공격 중지에 동의한다던가, 총공격 속행을 테라지마 중대의 활약을 본 노기 대장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나오는 연출, 그리고 2차와 3차 총공격은 고다마 겐타로와 대본영의 압박에 의한 노기의 자충수로 그리고 있다. 실제로는 203고지로의 공격 전환을 거부하고 정면 공격만 고집하며, 매달 26일에 정기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등의 이해하기 어려운 이치지 소장의 행동이 큰 희생을 낳은 것인데, 203고지 공격를 거부하는 씬은 있으나 그외 기행은 전혀 그리고 있지 않다. 280mm유탄포의 배치를 거부했던 것이라든가...
노기 마레스케에 대한 이미지 전환을 꾀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노기 대장은 일제시대까지는 충신이자 명장으로만 알려졌지만, 시바 료타로의 소설 등을 통해 뤼순 공략 당시의 무능함이 드러나면서 당시에는 돌대가리 이미지가 박혀 있었다. 그러나 영화 203고지에서는 이러한 이미지를 신파극으로 완화시키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실질적인 지휘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얼굴마담 처지만을 요구받던 그의 처지와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병사들의 고통을 대면하면서 보이는 인간적인 모습, 종반부의 관중보고에서의 통곡 등으로 대변되는 연출이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다. 이러한 연출은 일정부분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크게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무능 이미지를 덮으려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말이 있는 것이다.
크게 흥행했기 때문에 자연히 좌익계통에서는 우익 영화로 비판받았으나, 그 이유는 일본의 승리를 그리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이러한 논조를 당시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인 <붉은기>등에서 제시하며 군국주의 미화영화, 일본 미화영화, 우익영화로 비난했고, 이 영화의 주제가를 부른 사다 마사시도 마찬가지로 우익반동 취급을 했다.
일본 좌익이 이 영화를 비판한 이유를 그저 일본의 승리를 그렸기 때문이라는 것은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고, 무의미한 돌격(특공)작전을 되풀이 해서 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영화에서는 전장에서 메이지 덴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실상은 개죽음을)로 미화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덧붙이자면, 러일전쟁은 일본 우익들이 엄청 좋아하는 소재이다. 일본 우익사관에서는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워 승리한 전쟁으로 일본 입장에서는 정의로운 전쟁으로, GHQ 통치가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1957년작 <메이지 천황과 일로대전쟁 明治天皇と日露大戦争>은 무력 2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후속작 격인 <천황·황후와 청일전쟁 天皇・皇后と日清戦争>에서는 일본은 무려 조선의 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청나라와 싸우는 정의로운 나라로 그려진다. 그리고 조선은 미개한 거지 국가로 그려진다. 물론 이 영화 203고지에서도 초반 약 4분 7초경에 사진으로 보여지는 조선의 모습은 거지들의 나라다.
이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203고지의 배우들이 거의 다시 출연하는 재활용품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후속편격인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이 1982년에 개봉됐는데 영화 '203고지'와는 다르게 꽤나 우익적 성향이 강한 영화로 평가되고있다. 하지만 실상은 뜯어보면 극우들이 비판할 점이 꽤 많았고 실지로 우익 시점에서는 온갖 욕을 다 먹었으나[7][8] 흥행에는 성공했다.
2.1 극중 인물
2.1.1 가상인물
- 코가 타케시(小賀武志) - 아오이 테루히코(あおい輝彦)분. 러시아를 동경하여 러시아어를 배우고 정교회 성당에도 다니던 젋은 소학교 선생. 이때 반전운동을 하다 우익의 폭행에서 구해준 마쓰오 사치라는 여인과 인연을 맺게 된다. 전쟁에 소집되어 소위로 복무하며, 나중에 중위로 승진한다. 전쟁이 진행될수록 부하들의 죽음을 맞이하다 러시아를 증오하게 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극중 노기 대장과 컨택트가 있다.
- 키노시타 쿠시(木下九市) - 니이누마 켄지(新沼謙治)분. 두부집 아들이며 처음에는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군생활에 빨리 적응해 체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차 총공격때 죽은 연대 나팔수의 나팔을 몰래 소지하고 있다. 노기를 비롯한 수뇌부가 모인 참모본부에 불쑥 들어와서는 연대 가는 길좀 가르쳐달라고 당당히 말하는 씬은 어리버리의 극한을 달리는 명장면. 전후에는 두부집으로 복귀해서 행상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 우메타니 키시마쓰(梅谷喜久松) - 유우하라 마사유키(湯原昌幸)분. 유곽에서 호객꾼 일을 했으며 훈련이 끝날 때 유곽 누님들이 놀러와 고참들의 주목과 사랑을 받는다.
- 우시와카 인타로(牛若寅太郎) - 사토 마코토(佐藤允)분. 현직 야쿠자였으며 의협심이 강하지만 반항심도 강하다. 전우인 요네카와를 특히 아끼며 고참들이 요네카와를 사적제제할때마다 항상 나서서 맞선다. 배짱도 좋고 문신이 있으며, 전후에는 야쿠자로 복귀했고, 엔딩에서는 군복을 입고 전쟁때의 일화를 토로하는 거리의 변사 노릇도 한다. 수금하는 사람들은 그의 조직원들(...)
- 요네카와 옷키치(米川乙吉) - 하세가와 아키오(長谷川 明男)분. 염색집 직인 출신으로 아내는 죽었고 자식 둘을 두고 있다. 전쟁에 나가는 통에 자식들을 적십자사에 맡기게 되었고, 항상 자식들을 그리며 집으로 돌아갈 날만을 꿈꾼다. 적십자사에서 아이들이 탈주했다는 소식을 듣자 탈영하여 난리가 나기도 했다. 아이들은 겨우 찾아 코가 중위의 아내가 된 마쓰오 사치가 맡아 줌으로써 안정을 찾았으며, 우시와카가 고의로 부상을 입혀 국내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하지만 함께 싸우겠다며 거부. 그리고....
- 마쓰오 사치(松尾佐知) - 나쓰메 마사코(なつめ まさこ)분. 반전운동가로 처음 등장하며 친구들과 함께 우익단체 앞에서 전쟁반대를 외치다 봉변을 당하지만 근처를 지나던 코가 타케시가 구해줌으로써 인연을 맺는다. 그후 정교회 성당에서 재회하게 되고, 이를 인연으로 결국 집에서 도망나와 코가 타케시와 결혼한다. 나중에는 코가 타케시가 가르치던 초등학교에 여교사로써 부임한다.
- 테라지마 대위(寺島大尉) - 키타무라 코이치(北村晃一)분. 코가 타케시의 상관으로 주인공들이 속한 테라지마 중대를 이끌고 있었으나, 1차 총공세 당시 유일하게 적 요새선으로 돌입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선두에서 중대를 이끌던 도중 포화를 맞고 부상당한다. 이후 부상 때문에 일본으로 전출가게 되고, 그의 중대는 중위로 승진한 코가 타케시가 맡게 된다.
2.1.2 실존인물
-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 나카다이 타츠야(仲代達矢)분. 제3군 사령관으로써 뤼순 공략의 지휘자이지만 능력 부족으로 실무는 이치지 고스케가 다 한다. 극중 실존인물의 필두격 존재로써 인간적인 고통과 내면연기를 국민배우 나카다이 테츠야가 뛰어난 연기력으로 소화해내어 극중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둘째 아들까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의 씬은 명불허전.
- 이지치 고스케(伊地知幸介) - 이나바 요시오(稲葉義男) 분. 제3군 참모장으로써 극중에서 어그로를 끄는 역할을 주로 한다. 이나바 요시오는 마쵸 낭인 전문 배우로, 사무라이 영화에서 터프한 모습으로 자주 나왔으나, 203고지에서만큼은 어그로 전문으로 나왔다.
- 노기 야스스케(乃木保典) - 나가시마 토시유키(永島敏行) 분. 노기의 둘째 아들로 형에 이어 사단에서 전령임무수행중 포탄에 맞고 사망한다. 첫째 아들인 가쓰스케의 죽음으로 안그래도 힘들던 노기 대장은 둘째 아들의 죽음에 큰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된다. 극중에서는 야스스케와 노기대장이 만날 때는 늙은 노인이 둘째 아들에게 심적으로 의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을 연출한다. 즉 신파극 분위기잡는 포지션.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 모리시게 히사야(森繁久彌)분. 잘 알려진 양반. 극중에서는 러일전쟁을 반대하던 입장을 견지하다 고다마 겐타로와의 회동 이후 입장을 바꾸는 모습을 보인다. 극중에서 가끔씩 나와 정부측 분위기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 코야마 시게루(神山繁)분. 일본군을 독일군 카피로 만든 장본인이며 러일전쟁 당시에는 주전파이자 군부의 대부. 극중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정부측 분위기를 대변하는 역할로 나온다.
- 노기 시즈코(乃木静子) - 노기와 요코(野際 陽子)분. 노기장군의 아내이며, 극중에서는 두번 나온다. 집을 군중이 포위한 씬에서 나오는데 첫번째는 제3군 전사자들의 유족이 몰려와 비난하며 돌을 던져댈 때는 굳은 심지를 가진 노부인으로 나오지만, 마지막에 군중이 몰려와 승리에 감사하며 환호할 때는 둘째 아들까지 죽어 거의 폐인처럼 나온다.
- 고다마 겐타로(児玉源太郎) - 탄바 테츠로(丹波哲郎)분. 노기장군의 어려서부터의 친구이자 동문이었으며, 빨리 제3군이 뤼순 요새를 점령할 것을 재촉하다 지지부진하자 결국 직접 가서 203고지를 단숨에 점령해버리고 러시아 극동함대를 포격해서 격침시킨다. 극중에서는 노기를 몰아붙이는 역할로 등장하지만, 동시에 노기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 ↑ 이로부터 수십년 후 같은 일본군의 무다구치 렌야라는 양반은 자기 잘못으로 약 7만명의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데, 정작 자기 아들과 조카는 군대를 면제시켜주었다.
- ↑ 다만 이 주장은 노기 마레스케가 쇼와 일왕이 학습원에 재학하던 시절부터 인연을 맺고있던 사람이고, 후일 메이지 일왕이 사망하자 할복자살한 경력때문에 추앙받게되어 이지치가 잘못을 과하게 떠안은게 아니냐는 설도 있다.
자살도 경력이 되는 위대한 황군 - ↑ 본명 이경보(李慶甫)
- ↑ 정확하게는 시즈코의 모친인 사다코(貞子)가 리노이에 가문의 방계 출신이라고 한다.
- ↑ 사실 발라클라바 전투는 러일전쟁보다 50여년 먼저 일어났다. 역시
아시아 섬나라일본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 ↑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 후카사쿠 킨지와 함께 일본 파트를 감독했다.
- ↑ 도조 히데키는 노골적으로 개전을 고민하다가 에라 될대로 되라라는 대사를 날리고 덴노가 재가하고 독려한 여러 결정에 대해서 죄를 뒤집어 쓰고 죽는다.(...) 덴노는 은근히 무력하지만 막후의 의견결정자로 나오고 있고,무엇보다도 종전 선언을 들은 등장 인물들이 이렇게 빨리 끝낼수 있는데 왜 전쟁을 끌었냐고 혀를 차는 장면이 백미
- ↑ 다만 우익적 성향 문제는 여러 등장 인물들의 비참한 죽음을 통해 일본의 피해자 행세의 향기가 지나치게 난다는 점, 그리고 도죠를 무식하지만 덴노의 죄를 뒤집어 쓴 나름 희생양으로 그렸다는 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