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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 extra Ecclesiam nulla salus
영어 : Outside the Church, there is no salvation
한국어 :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1 개요
3세기 경에 카르타고의 주교인 성 치프리아노로부터 시작된 기독교의 명제.
2 교회는 구원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교회는 구원을 위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그 어떤 중개자도 없으며,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 안에서처럼 이 교회 안에서도 현존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구원을 위한 믿음과 세례의 필요성에 대해 분명히 선언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맏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요한 복음서 3,5)" 여기서부터 추론되는 것은, 자신의 탓으로 인해 교회 밖에 머무는 사람은 자신의 처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명백히 말한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로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3 그러나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고 모두 지옥에 갈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그렇다고 가톨릭 신자가 아닌 모든 이들이 단죄 받아 지옥에 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교부들은 교회 밖에 있는 덕스러운 이들이 구원될 수 있다는 점을 수용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이 '구원받지 못한다'에 대해서 비판적인 해석들이 꽤 나왔고 고위 성직자들도 생각이 바뀌어가는 추세이다.[1] 대표적인 인물로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수환 추기경이 있다.
3.1 리용의 성 이레네오
리용의 성 이레네오는 교회를 괴롭히는 이들에게 "교회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은 성령의 활동에 있어서 어떤 부분도 갖지 않는다. 자신들의 나쁜 가르침들과 증오할만한 행위들로 인해 그들 자신은 생명으로부터 배제된다."라고 했다. 이 때 유의할 것은 그가 '교회를 괴롭히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말했다는 것이다.
3.2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Extra ecclesiam nulla salus(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명제는 아프리카 교회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운동들을 거슬러 싸웠던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에게서 드러난다. 그는 분열이 구원의 길이 아니라 상실의 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의미에서 성 치프리아노의 명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결코 다양한 환경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상황에 이 명제를 적용한 것이 아니다.
3.3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는 "잘못되고 왜곡된 것일지라도 그의 의견을 방어하는 이, 어떤 고집스런 원한 없이, 특히 이 의견이 자신의 대담한 추측의 결과가 아니라 잘못으로 인해 처참한 생활을 하는 현혹된 선조들의 유산일 때, 만일 그들이 용의주도하게 진리를 찾는다면, 그들이 이 진리를 인식하는 한에서 이를 곧 끌어안게 될 것이며 이단자로 분류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이단자라 할지라도 자기가 원해서 된게 아니라, 태생적으로 된 것이거나 한 거고, 그가 진리를 찾으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를 이단자라 하면 안 된다는 말
그러므로 성 아우구스티노가 "Extra ecclesiam nulla salus"를 사용할 때, 이는 도나티즘 이단들이 가톨릭으로부터 결별할 때 그들을 지칭하여 이 말을 한 것이지, 선한 의지를 가진 이교도들이나 이단자들마저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한 것은 아니다.
3.4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덕스러웠지만 세례 받지 않고 죽은 발렌티니아노가 의화에 대한 원의로 인해 구원에 이른다는 점을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는 받아들였다.
3.5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큰지 모르니 이교도라고 해서 모두 지옥에 갈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3.6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가 믿는 이들의 교회는 유일하며 "이 교회 밖에서는 그 누구도 절대 구원되지 못한다"고 말할 때, 이 또한 역시 모든 이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교회의 일치를 깨트린 그룹으로 간주한 알비파와 카타리파 이단들을 염두에 둔 말이다.
3.7 피렌체 공의회
피렌체 공의회에서 공포된 교령 pro iacobitis에는 의심할 바 없이 Enchiridion에 나오는 아주 엄격한 표현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 교령 또한 강독을 통해서는 오직 가톨릭교회의 일치를 의식적으로 찢어놓는 사람들만을 염두에 둔 결론에 이르게 된다.
3.8 이교도들은 모두 지옥에 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교황청의 단죄
사실, 얀세니즘은 퀘스넬이 원했던 의미[2]에서 이 명제를 엄격하게 받아들였으며, 결국 얀세니즘은 1713년에 교도권에 의해 단죄되었다.
또한 교황청은 이와 비슷하게 "교회의 가시적 일치에 명백히 속하지 않는 모든 이들은 단죄된다"라고 주장했던 보스턴 이단이라고 불린 피네이를 거슬러서 단죄했다.
3.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하느님의 섭리는 자기 탓 없이 아직 하느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글에게는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사실 그들이 지닌 좋은 것, 참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교회는 복음의 준비로 여기며, 모든 사람이 마침내 생명을 얻도록 빛을 비추시는 분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4 결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실 교회 전승에서 "extra ecclesia nulla salus(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공리는 유일하고 비가시적인 가톨릭교회 외에는 더 이상 어떤 구원의 체계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교회론적 명제이지 구원론적 명제는 아니다. 다시 말해 교회 밖에서도 구원될 수 있는 선한 의지를 갖는 이교도들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무신론자라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선한 의지를 가지고 산다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3]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846 교부들이 자주 반복했던 이 단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적극적으로 이해할 때, 이 말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공의회는 성경과 성전에 의지하여 이 순례하는 교회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한 분만이 중개자요 구원의 길이시며, 당신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신앙과 세례의 필요성을 분명한 말씀으로 강조하시면서, 동시에 교회의 필요성도 확인하셨다. 사람들은 마치 문과 같은 세례를 통하여 교회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847 이 단언은 자신의 잘못 없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848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만 아시는 길로, 자기의 탓 없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끄실 수 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다.) 그러나 교회는 복음화의 필요성과 동시에 그 거룩한 권리를 가진다.”
가톨릭 교리서 846~848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