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진코트

(HMS 애진코트에서 넘어옴)
제1차 세계대전기의 영국 해군 군함
건보트어피스급
구축함스위프트급
잠수함X1급, M급
모니터함마샬 네이급, 애버크롬비급, 로드 클라이브급, 험버급, 고르곤급, M15급, M29급
정찰순양함어드벤처급, 포워드급, 패스파인더급, 센티넬급, 블론드급, 액티브급
장갑순양함크레시급, 드래이크급, 몬모스급, 데본셔급, 듀크 오브 에든버러급, 워리어급, 미노터급
방호순양함아폴로급, 아스트라에아급, 이클립스급, 블래이크급, 펄급, 에드거급, 파워풀급, 다이아뎀급, 애로간트급, 펠로루스급, 하이플라이어급, 챌린저급, 토파즈급
중순양함호킨스급
경순양함브리스톨급, 웨이모스급, 채텀급, 버밍험급, 버켄헤드급, 아레투사급(1913), 캐롤라인급, |칼리오페급, 캄브리안급, 센타우르급, 칼레돈급, 세레스급, 칼리슬급A, 다나에급, 에메랄드급A
순양전함인빈시블급 순양전함, 인디패티거블급, 라이온급, 퀸 메리급, 타이거급, 리나운급 순양전함, 어드미럴급 순양전함A, 인컴패러블급, 커레이저스급 순양전함
전함전드레드노트급로열 소버린급, 마제스틱급, 캐노퍼스급, 포미더블급, 뒤캔급, 킹 에드워드 7세급, 스윕셔급, 로드 넬슨급
드레드노트급드레드노트급,벨레로폰급, 세인트 빈센트급, 넵튠급, 오라이언급, 킹 조지 5세급, 에린급, 애진코트급, 아이언 듀크급 전함, 캐나다급,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리벤지급 전함
취소선: 계획만 되거나 건조 중 취소, 윗첨자A: 전후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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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S_Agincourt_1915.jpg
HMS Agincourt.
영국 해군의 전함

함명인 애진코트(Agincourt)는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의 대승리 중 하나였던 아쟁쿠르 전투에서 기원한 것이다. 아쟁쿠르는 프랑스 지명이고 이걸 영어로 읽은게 애진코트. 이 함명이 붙은 영국 해군 함선은 역사상 총 5척(건조취소된 경우까지 6척)이며, 이 항목에서 설명하는 것은 그 중 가장 유명한 1914년에 취역한 전함이다.

나무위키 특성상 함급이면 몰라도 정말 유명한 함선, 가령 야마토급 전함 같은 함선조차도 특정 함선에 대한 항목이 개설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HMS 애진코트는 말 그대로 기구한 운명을 지닌, 거기에 본의아니게 역사를 어느정도 영향을 끼친 배이기에 따로 항목을 개설한다.[1]

1 건조

드레드노트의 출현은 기존 유럽 열강국가간의 건함경쟁만 부추긴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세기 초 남미는 전통의 3대 강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가 각각 지역패권을 둘러싼 경쟁을 펼치고 있었고 자연스레 건함경쟁도 이루어졌는데 이를 ABC(Argentia, Brazil, Chile) 건함경쟁이라 불렀다.

물론 아무래도 국력이 유럽 열강에 비교하면 현격히 떨어지니 유럽 수준의 미칠듯한 건함경쟁은 어림도 없었으나 그래도 이들의 경쟁은 치열한 편이었고, 특히 드레드노트의 등장으로 비싸지만 제 값 하는 이 결전병기의 확보는 건함경쟁에서 확고한 우위를 선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기에 삼국 모두 드레드노트급 신형 전함을 확보하길 희망했다.[2]

그중 가장 적극적인 것은 브라질로, 커피와 목재 수출로 경제적 호황을 맞고 있던 브라질은 이를 바탕으로 영국에 전함 건조를 의뢰[3]하였다. 영국 암스트롱사는 브라질의 의뢰를 받아들여 1911년 9월 14일 기공에 들어갔다. 브라질은 자국의 주 이름 중 하나를 붙여 미나스 제라이스급 전함이라 명명하고, 함명으로는 리우데자네이루라 이름을 붙였다.

건조는 당시 영국 해군이 건조되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설계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아무래도 수출용이다 보니 많이 다운그레이드되었다. 대표적으로 주무장이 퀸 엘리자베스급이 2연장 15인치 주포 4기인데, 리우데자네이루는 2연장 12인치 주포 7기이다. 다만, 이는 충분히 납득 가능한 다운그레이드인데 15인치급 주포는 열강국가간의 전함간 해전에서나 의미있는 거라 아직 경쟁국인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12인치로도 충분히 의미있고 막강한 화력이었다.

2 주인이 바뀌었어요

건조가 착실히 진행되던 1913년, 영국과 암스트롱사로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고객인 브라질 정부가 배 살 돈 없음 GG를 해버린 것이다! 브라질은 무리한 군사경쟁과 함께, 자원수출에 의존하는 경제의 한계에 봉착해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상태로, 특히 1913년에는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목이던 고무의 국제가격이 폭락하여 그야말로 망한 상태였다.(…)

영국 정부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고객이 돈이 없다고 배째는데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영국 해군이 이를 인수하기엔 아무래도 주포가 다운그레이드된 것도 있는데다 평시에 갑자기 예정에도 없는 함선 인수비용을 요구하면 의회에서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임이 명백했다.

이런 상황에서 암스트롱사에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오스만 제국이었다. 1912~~13년에 걸친 제1차 발칸 전쟁 당시 오스만 제국은 그리스 해군에게 꼼작없이 당하여 에게 해 제해권을 완전히 내어주고 에게 해 도서지역을 상실해야 했다. 종전 후 오스만 제국은 해군의 중요성을 깨닫고 신식 전함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당시 영국과 독일이 주도한 건함경쟁으로 인해 중고함 매물이 없었고, 전함을 발주넣고 설계 들어가 착공하여 취역시켜 인도받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건 자명한 일이었다. 오스만 제국에게 있어 느닷없이 주인을 잃고 방치된 리우데자네이루는 알라가 내려준 축복이었다.

이에 오스만은 바로 협상을 개시, 성금까지 모아가며 전함 구매예산을 확보하고 이를 지불, 영국측은 새로운 대체 고객 확보에 매우 만족해하며 건조를 계속했다. 이때 함명은 브라질이 명명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오스만 제국이 명명한 오스만 1세로 바뀌었다.[4]

건조는 착실히 진행되었고, 해가 바뀌어 1914년 여름 오스만 제국은 엄선한 정예 해군요원들을 영국에 보내었다. 배가 완성되었으니 이를 인수받기 위함이었다. 마침내 근대적인 신형 전함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오스만 제국은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고, 반면 주변국 특히 그리스는 오스만이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확보했단 사실에 절망에 빠져 있었다.[5]

3 주인이 바뀌었어요 2

그런데 오스만군 장교들이 배 인수받을 준비 다 하던 1914년 여름의 유럽 국제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라예보 사건으로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더니 8월 1일에는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했다. 그리고 8월 3일, 독일이 프랑스에 선전포고하고 중립국 벨기에를 침공하면서 전화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문제는 영국은 프랑스, 러시아와 삼국협상을 맺은 동맹이었으며 동시에 벨기에의 중립을 보장한 상태였다. 독일-프랑스간 전쟁에선 중립을 지킬 수 있어도 벨기에의 중립이 침해당할 경우 즉시 참전하겠다는 기존 영국 정부의 방침대로 영국 정부는 즉각 전쟁 준비에 착수했다.

그리고 당시 해군성 장관이던 윈스턴 처칠은 급격히 성장한 독일 해군과의 결전을 앞두고 단 1척의 전함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오스만 1세가 곧 오스만 제국에게 인수된다는 것에 주목했다.(…)

이에 처칠은 즉시 군을 보내어 오스만 1세에 이미 승함한 상태였던 오스만군 장교들을 다 강제로 퇴함시키고 배를 점령, 유니언잭을 게양하고 영국 해군 선적에 편입시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미 오스만 제국은 배값을 100% 다 지불한 상태였다. 이건 뭐 날강도가 따로 없다

당연히 오스만 제국은 이에 격분하면서 강력히 반발하여 항의했으나, 처칠은 쿨하게 "그까이거 임대료 주면 될거 아님?" 하면서 겨우 1000파운드를 제안했으나 전함 가격에 비교하면 새발의 피…. 거기다가 처칠은 단순히 배가 필요해서 뺏은 것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 세계대전이 터진 상황에서 오스만을 잠재적인 가상의 적국으로 단정하고 전함을 넘길 수 없다."라는 의지로 배를 압류한 거라서 오스만의 항의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오스만은 친독파와 친영파가 갈라져서 대립을 하고 있던 상황으로, 처칠의 생각과는 다르게 독일의 잠재적인 동맹국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오스만 여론이 급격히 친독으로 기운 것은 전적으로 처칠의 전함 강탈덕분이었다.(…)[6]

그리고, 이 꼬라지를 보고 있던 독일의 빌헬름 2세는 마침 영국 해군에게 추적당해 오스만 이스탄불로 피해있던 독일 몰트케급 순양전함 괴벤, 경순양함 브레슬라우 함과 그 승조원들을 오스만 제국에 선물하겠다고 공개선언했고, 괴벤 함은 '야부즈 술탄 셀림', 브레슬라우는 '미딜리'라는 함명으로 정식 오스만 해군 전함이 되었다. 그리고 오스만 정부는 영국에게 뒷통수를 맞은 것을 복수하기 위해서 독일과 동맹을 맺고 영국에다 선전포고를 하고 참전한다...[7] 결국, 처칠이 우려하던 최악의 상황을 처칠이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그리고 1차대전 중 영국은 독일의 편으로 돌아선 오스만 제국으로 인해 갈리폴리 전투라는 세계 전쟁사에 길이남을 삽질을 벌여야만 했다.[8]

어쨌든 8월 20일, 우여곡절 끝에 오스만 1세는 다시 HMS 애진코트로 이름을 바뀌어 정식으로 취역한다.

4 퇴역까지

이후 스캐퍼플로에 배치되어 제1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 섰으나 독일 해군이 함대결전을 회피한 관계로 실전은 딱 1번뿐인데 그 1번은 바로 세계 최대의 해전이라는 유틀란트 해전. 여기서 애진코트는 독일군 순양함들과 교전하며 어느정도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종전 후에도 몇 년간 현역으로 남아 있었으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전함들을 대거 폐기처분해야 할 처지에 놓이자 폐함처분되었다. 15인치급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을 지키기 위해 12인치급이었던 애진코트는 최우선적으로 희생된 셈.
  1. 소련의 강구트급 전함 마라도 별도 항목이 있긴 하다. 물론 마라 역시 함생이 지독하리만큼 기구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쪽이 더 기구한 팔자다. 적어도 애진코트는 두번씩이나 적의 공격에 가라앉지는 않았다. 자세한 내역은 마라 항목을 참고.
  2. 브라질은 1910년에 12인치 주포 12문을 장비한 미나스제라이스급 전함 2척(미나스 제라이스, 상파울루)을 영국으로부터 도입했고 아르헨티나는 1914~15년에 걸쳐 리바다비아급 전함(12인치 주포 12문으로 미나스제라이스급과 대등하지만 장갑과 속도가 더 우수하다.) 2척(리바다비아, 모레노)을 미국으로부터 도입했으며 칠레는 1911년에 영국에다 14인치 주포 10문을 장비한 슈퍼드레드노트급 전함 2척을 주문했지만 1차대전발발로 영국이 매수했고 1920년에야 주문당시 알미란테 라토르레 라고 명명했던 함만을 인수해 1척을 보유하게 된다.
  3. 브라질은 이미 미나스제라이스급 전함 2척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아르헨티나가 미국에 리바다비아급 전함 2척을 발주하자 우위를 유지하기위해 추가주문한 것이다.
  4. 이외에도 오스만 제국은 신조함 1척도 같이 주문해 레샤디에 라는 함명을 부여했다. 당연(?)히 이 배도 오스만 1세와 함께 처칠이 꿀꺽해버렸다. 즉, 오스만은 없는 살림에 부족한 돈은 프랑스로부터 차관까지 얻어서 구입한 전함 2척을 강탈당한 것이다. 이정도면 오스만 제국이 얼마나 열받았을지, 독일로부터 순양전함 1척과 경순양함 1척을 무상으로 얻었다고 참전까지 한것도 납득할수 있을 것이다.
  5.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구입할 여력이 없던 그리스는 미국으로부터 구식 전함(12인치 주포 4문장비) 2척(미해군시절 함명은 미시시피와 아이다호 였으나 그리스에 매각된뒤 킬키스와 림노스로 개명했으며 미국은 이 함정들의 매각대금으로 뉴멕시코급 전함 3번함 아이다호를 추가건조했다고...)을 도입했고 2차대전중 독일군의 침공을 받으면서 2척 모두 격침당했다.
  6. 적국에게 돈을 주고 무기를 사오는(...) 바보는 없다는 점에서처칠의 삽질이 맞다.
  7. 야부즈는 1971년에 퇴역하여 최장수 순양전함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8. 갈리폴리 전투는 터키의 입장에서는 구국의 승전이자 영국의 굴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