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S

1 개요

빙(BEING)계열의 팝, 록 그룹. 1991년에 결성되어 두 차례의 멤버교체를 겪은 뒤 1999년에 최종적으로 해체됐다. 멤버 교체 시기에 따라 음악성이 극명하게 갈리며, 팬덤도 그에 따라 나뉘어져 있다.[1] 가장 인기있던 시기는 빙의 전성기와 궤를 같이했던 2기 초~중반. 물론 전체적으로 좋아하는 팬도 있다.
WANDS라는 명칭은 타로카드의 완드에서 비롯되었는데, 나중에 1~2기 보컬 우에스기가 이름의 영문 표기를 Uesugi에서 Wesugi로 바꿈에 따라 W and S, 즉 보컬 우에스기(3기에는 와쿠) & 기타 시바사키(3기에는 스기모토)라는 의미도 추가되었다. 키보드는?

2 약력

2.1 1기 : 1991~1992년

WANDS는 1991년 9월 보컬 우에스기 쇼, 기타 시바사키 히로시, 키보드 오시마 코스케를 멤버로 결성되었고, 같은 해 12월에 드라마 호텔우먼의 주제가로 타이업된 싱글 寂しさは秋の色로 데뷔했다. 그러나 이 싱글과 두 번째 싱글 ふりむいて抱きしめて의 성적은 처참했다. 그리고 미쓰이생명 광고음악이었던 세 번째 싱글 もっと強く抱きしめたなら도 처음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때 빙에서는 당대의 인기 아이돌 나카야마 미호를 섭외하여 자사의 그룹과 합작 싱글을 냄으로써 세간의 주목을 받고자 했다. 처음에는 B'z가 물망에 올랐으나 불발되었고, 기회는 WANDS에 돌아갔다. 이 싱글이 발매되기 전 키보디스트 오시마 코스케가 탈퇴를 선언했는데, 표면적 이유는 음악성 차이였으나 일설에 따르면 아이돌과 합작하는 걸 오시마가 마음에 안 들어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세 번째 싱글의 결과는 대히트. WANDS의 커리어에 앞길이 활짝 펴게 해준 밑바탕이 되었다.
대체로 오시마 코스케 특유의 댄스 팝 스타일이 두드러졌던 시기이다.(寂しさは秋の色, もっと強く抱きしめたなら 등 그렇지 않은 곡도 있는데 이 곡들은 쿠리바야시 세이이치로, 타타노 요시오 등 빙의 다른 작곡가가 작곡했다.) 1~3번째 싱글과 1집 WANDS 앨범이 이 시기에 해당된다.

2.2 2기 : 1992~1996년

나카야마 미호와 합작한 싱글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2]가 180만 장에 육박하는 대히트를 치자, 앞서 발매됐던 3번째 싱글도 덩달아 차트를 역주행, 160만장을 넘는 판매량을 달성했다. 이 때부터가 명실상부한 WANDS의 전성기였다. 90년대 초~중반을 휩쓸었던 계열 붐을 견인하는 간판급 밴드로서 WANDS는 時の扉, 愛を語るより口づけをかわそう, 世界が終るまでは… 등의 싱글과 2장의 앨범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등 호조를 보였다.
그러나 원년 멤버 2명은 대중 지향적인 팝 록 그룹으로서의 WANDS에 불만을 품었다. 팬클럽 회보를 통해 우에스기는 "하드 록 같은 걸 부르고 싶다. 라이브라면 역시 라이브 하우스에서 시작하고 싶다.", 시바사키는 "예를 들면, 라이브라면 WANDS의 곡만이 아니라, 커버곡을 연주한다든지."라고 말하는 등, 두 멤버는 그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편 신규 멤버였던 키무라는 반대로 팝 그룹으로서의 WANDS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했다.
이러한 음악성의 괴리는 4집 PIECE OF MY SOUL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Love&Hate처럼 기존의 WANDS 스타일을 유지한 곡들과, FLOWER, Crazy Cat, PIECE OF MY SOUL처럼 얼터너티브 록의 색채를 가미한 곡들이 한 앨범 안에 공존하고 있었다.[3] Jumpin' Jack Boy는 전자에 해당되는 경쾌한 곡이었는데 이 앨범에서 팝적인 색채를 줄이는 방향으로 재편곡됐다. 이 앨범은 2, 3집에 이어 또다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는데, 이것이 메가 히트 싱글 世界が終るまでは…가 견인한 결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때까지는 나름 성공한 변신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WANDS의 음악은 점점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침잠해 들어갔고, 판매량도 떨어져 갔다. 그럼에도 WANDS라는 틀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우에스기와 시바사키는, 결국 WORST CRIME 싱글을 끝으로 나란히 탈퇴를 선언했다.
전술한 바와 같이 2기 WANDS는 음악적으로 전형적인 빙 사운드였던 전반기(4~8번째 싱글과 2집 時の扉 그리고 3집 Little bit), 내향적인 가사에 얼터너티브 록 요소를 도입했던 후반기(9~11번째 싱글과 4집 PIECE OF MY SOUL)로 나눌 수 있다.[4] 다만 편곡은 양쪽 모두 하야마 타케시가 대부분을 담당했다.[5]
라이브 투어는 이 시기에만 개최되었다. 1기와 3기의 라이브는 전부 TV 방송분.

2.3 3기 : 1997~1999년

WANDS의 존속을 바랐던 키무라의 의향에 따라 새로운 보컬과 기타리스트가 합류했다. 보컬은 쟈니스 주니어 출신으로 보컬 오디션을 통해 영입된 와쿠 지로, 기타는 스기모토 잇세이였다. 둘 다 본래 성은 달랐으나 'W AND S'의 의미를 이어가자는 프로듀서의 의향에 따라 이니셜을 맞춘 예명으로 데뷔했다.
우에스기가 작사를 전담했던 1~2기와 달리, 싱글 타이틀곡에 한해 외부 작사가에게서 가사를 받아 썼다. 단 앨범 제작에서는 멤버의 참여도가 높은 편. 그리고 2기에서는 편곡을 하야마 타케시가 전담했던 데 비해, 3기에서는 1기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곡을 멤버들이 편곡했다. 밀도가 높고 중저음이 두드러지는 박력있는 사운드가 특징. WANDS의 정체성은 팝에 있다고 여겼던 키무라의 의향대로 2기 후반의 얼터너티브 락 느낌은 거의 빠졌지만, 오시마 코스케가 주도했던 1기보다는 밴드사운드를 훨씬 강조하였다.
안티가 가장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안티 팬덤의 주축은 우에스기와 시바사키가 탈퇴한 뒤에도 WANDS가 존속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기존 팬덤. 기존 팬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인지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했기 때문인지, WANDS는 차트상에서 내리막길을 걸은 끝에 최종적으로 해체를 선고받았다.
12~15번째 싱글과 5집 앨범 AWAKE가 이 시기에 해당된다.

3 멤버

보컬기타키보드
1기우에스기 쇼시바사키 히로시오시마 코스케
2기키무라 신야
3기와쿠 지로스기모토 잇세이

3.1 우에스기 쇼 (上杉昇, Show Wesugi)

1~2기 보컬. 1972년 5월 23일생. 빙 음악진흥회의 연습생이었다가 19세에 WANDS의 보컬로서 데뷔했다.
2기까지 작사는 모두 그가 담당했다[6]. 통속적인 가사가 많았지만 작사 센스는 있는 듯. DEEN의 このまま君だけを奪い去りたい, ZYYG의 君が欲しくてたまらない[7], MANISH의 声にならないほどに愛しい 등 다른 가수들에게도 가사를 제공했으며, 그 곡은 나중에 WANDS의 앨범에 수록되기도 했다. [8] 작곡가 오다 테츠로[9]는 2007년 한 인터뷰에서 "(우에스기는) 재능이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품을 쓰기를 바란다"라고 말한 바 있다.
보컬로서는 감성으로 승부하는 타입. 발라드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노래를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果てしない夢を 싱글에 참가한 보컬들 중 가장 가창력이 출중하다는 평도 많았으나, 라이브에서는 발라드를 제외하고는 신나게 뛰어다니느라 삑사리를 자주 냈다. 마이크대를 들고 춤을 추거나 두 팔을 벌리고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흉내를 내는 등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않으니 삑사리를 안 내고 배기나 3기 보컬 와쿠 지로에 비해 す를 '수'에 가깝게 발음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주의해서 들으면 구별해 내기 쉽다.
90년대 중반부터 너바나(미국 밴드)커트 코베인에 경도된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패션에서만 그러한 경향이 나타났으나, 곧 노래에도 영향이 갔다. 얼터너티브 록을 도입하려 했음은 물론, 가사에서도 커트의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4집 앨범의 타이틀곡 PIECE OF MY SOUL은 대놓고 너바나를 연상케 하는 요소를 가사에 심어넣었다. 가사 중에 "少しずつ 消えるくらいなら ひと思いに散ればいい?"라는 구절은 커트 코베인의 유서 말미에 적혀 있던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라는 문장을 번역한 것이며, 2절 후렴구의 'PEACE OF MYSELF'는 '나 자신의 평화', 즉 열반(니르바나)이다. 우에스기의 이와 같은 행보로 인해 WANDS는 음악성의 변화를 겪는 데에 그치지 않고, 1997년에 대대적으로 멤버를 교체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전술한 바와 같이 우에스기만 록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바사키보다 우에스기가 더 노골적이었다.)
1997년에 WANDS에서 탈퇴하고, 이듬해 시바사키와 함께 al.ni.co라는 유닛을 만들었다. 본디 우에스기는 솔로 활동을 하려고 했으나 시바사키가 이를 돕겠다며 참가한 것. 따라서 거의 전곡을 우에스기가 작사작곡했고 시바사키는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렀다. 시바사키가 탈퇴한 뒤에도 솔로활동을 계속하다, 2006년에 '네코다마시(猫騙)'라는 밴드를 결성해서 솔로활동과 병행하고 있다. 우에스기가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같은 깃털모자를 쓰고, PV에 검푸른 필터를 깔고 눈에 형광색으로 빛나는 효과를 넣는 등 기괴한 분위기가 특징. 그러나 비주얼적인 면에 비해, 곡은 al.ni.co 시절에 비하면 그나마 덜 매니악하다. 솔로에서는 컬트한 곡 외에도 Frozen World[10]같이 WANDS 시절을 연상케 하는 발라드도 냈다. 2012년에는 Animelo Summer Live에 출연하여 오다 테츠로와 함께 世界が終わるまでは를 불렀다. WANDS 시절에 비해 상당히 후덕해졌다.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출신으로 X JAPANhide와 고등학교 동문이다. 우에스기가 7년 후배.

3.2 시바사키 히로시 (柴崎浩, Hiroshi Shibasaki)

1~2기 기타. 1969년 12월 13일생.
야마하 음악원 출신으로, BAD 오디션[11]을 거쳐 스튜디오 뮤지션으로서 일하고 있다가 WANDS의 멤버로 발탁됐다.[12] 처음에는 곡 제작에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으나[13], 2기에 들어서는 커플링곡과 앨범 수록곡 가운데 상당수를 그가 작곡했다. 기타리스트로서는 테크닉과 감성을 모두 갖추었다고 평가된다.
1997년에 우에스기와 함께 WANDS를 탈퇴, 1998년에 al.ni.co를 결성했다. al.ni.co에는 우에스기를 돕기 위해 합류했기 때문에, 기타 연주와 편곡 담당에 머물렀다. 작곡은 딱 한 곡만 했다.(세이렌 앨범의 Prayer) 그러나 2001년에 "앞으로는 자신의 음악을 하고 싶다"리며 탈퇴, strange egg라는 인디밴드를 만들어 활동했다. 기타는 물론 보컬까지 겸하였고, 라이브 활동에 중점을 두되 음반은 발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프로로서는 세션과 작곡 활동을 계속했다. 대표적인 곡이 아이카와 나나세의 오와리나이 유메(이누야샤 3기 오프닝)인데, 2소절에서 들리는 남자 목소리의 코러스가 그의 것. TV 라이브에서도 기타 세션과 코러스를 담당했다. DEEN의 타가와 신지가 낸 2번째 기타 솔로 앨범 Global Groove에도 게스트로 참여했는데, 해당 앨범은 한국에서도 발매되었으나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2005년에 abingdon boys school의 멤버로 합류하였다. 이후의 경력은 해당 항목 참조.

3.3 오시마 코스케 (大島康祐, Kohsuke Ohshima)

1기 키보디스트. 1970년 9월 4일생.
WANDS 데뷔 전에는 LOUDNESS의 서포트 멤버였다. 1기 WANDS의 색깔을 내는 데에 크게 공헌한 멤버였으나, 1992년에 음악성 차이를 이유로 탈퇴. SO-Fi라는 여성보컬 유닛을 결성해 활동했다. 그러나 탈퇴 후에도 WANDS에 곡을 몇 차례 제공했다. (時の扉, 恋せよ乙女, White Memories)
2000년부터 이름을 大島こうすけ로 바꾸고(발음 동일), 여러 가수의 곡을 작곡 및 편곡하고 있다. WANDS 탈퇴 후에 제작한 곡 중 대표작은 영화 오오쿠<남녀역전>의 주제가였던 아라시의 Dear Snow.

3.4 키무라 신야 (木村真也, Shinya Kimura)

2~3기 키보디스트. 1969년 7월 28생. 3기의 실질적 리더이다.
학창시절에는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하여 무사시노 음대에 진학했지만, 대중음악에 매력을 느끼고 대학을 중퇴하고 키보드 연주자로 전향. 이후 친구 시바사키의 소개로 WANDS에 합류하였다.합류 시점은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 싱글부터. 가입 당시에는 안경을 쓰지 않았으나, 어느 시점부터 검은 뿔테 안경을 썼고 그것이 키무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3기에서는 선글라스로 전환. 라이브에서는 상체를 격렬하게 흔들거나 음악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는 동작이 인상적이다.
원년멤버는 아니지만 WANDS의 정체성에 대해 가장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기실 WANDS가 이름에는 'W AND S'라는 뜻을 갖다붙였지만 태생부터 키보드의 비중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룹이기도 했으니...
현재는 송라이터, 프로듀서, 세션 뮤지션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3기 보컬이었던 마츠모토 지로(WANDS 시절의 예명은 와쿠 지로)의 솔로 앨범에도 곡을 제공했다. 키무신(きむしん) 명의로 애니메이션 GR 자이언트 로보, 게임 드래곤나이트4 윈도우판과 하급생2 등의 OST를 제작하기도 했다.

3.5 와쿠 지로 (和久二郎, Jiro Waku)

3기 보컬. 1970년 12월 11일생. 본명은 마츠모토 지로(松元治郎).
본디 쟈니스 주니어였다. 스케이트 보이즈와 헤이케파(平家派)라는 유닛에서 활동했으며 헤이케파에서는 리더이기도 했다.
우에스기와 시바사키가 탈퇴한 뒤 BAD 오디션을 거쳐 신생 WANDS의 보컬로 발탁되었다. 오디션에서 부른 노래는 WANDS 3집의 타이틀곡 'Little bit...'. 우에스기와 목소리가 비슷하긴 하지만 다소 탁하고 건조한 느낌이 있다. 감정 표현이 덜 두드러지기는 하나, 가창력은 제법 안정된 편.사실 우에스기처럼 막 뛰어다니지 않아서 음정이 흔들릴 일이 없긴 했다 3기 시절엔 TV 출연 빼고 뛰어다닐 라이브 무대도 없었잖아
3기 WANDS의 가사 중 그가 작사한 것은 왠지 애인이 변심하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짝사랑하던 여자를 떠나보내는 내용이 많다. 그 중 5집 수록곡 Please tell me Jesus는 애인과 친구가 바람피우는 광경을 목격하고 혼란에 빠지는 이야기잘못된 만남이며, 15번째 싱글의 커플링곡 FREEZE는 외도가 의심되는 애인을 얼음 속에 가둬 버리고 싶다는 얀데레스러운 내용.
해체 뒤 음악과 무관한 일을 하다 2012년에 본명인 마츠모토 지로 명의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0월 12일에 미니앨범 Reverb를 발매하였다. 2015년 현재 절판. 2016년 2월 2일 두번째 미니앨범 I come back again을 발표하고 새롭게 활동을 시작했다. 전작에 이어 키무라 신야와 안보 잇세이, Brand New Love 싱글의 작곡가 와타누키 마사아키가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

3.6 스기모토 잇세이 (杉元一生, Issei Sugimoto)

3기 기타. 1972년 5월 8일생. 본명은 안보 잇세이(安保一生).
와쿠와 함께 신생 WANDS에 합류하였다. 코러스도 전담했고 AWAKE 앨범에서는 몇 곡을 작사, 작곡하기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대신 키무라와 와쿠가 안티를 양분한 덕분에 안티 또한 적다
flow-war[14] 때까지만 해도 스기모토라는 예명을 유지했으나, 그 뒤로는 안보"Suginho"잇세이 명의로 활동 중. 2005년부터 2009년까지는 CANDYMAN, 2009년부터는 LIT-HUM이라는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WANDS 해체 이후에도 다른 3기 멤버들과 해체 뒤에도 계속 교류해 왔으며, 마츠모토 지로의 솔로 라이브에도 객원으로 참여했다.

4 디스코그래피

4.1 싱글

기수발매일제목순위비고수록 앨범
1기1991.12.04寂しさは秋の色63위WANDS
1992.05.13ふりむいて抱きしめて80위
1992.07.01もっと強く抱きしめたなら1위時の扉
2기1993.02.26時の扉1위
1993.04.17愛を語るより口づけをかわそう1위Little Bit...
1993.07.07恋せよ乙女1위
1993.11 17Jumpin' Jack Boy2위PIECE OF MY SOUL
1994.06.08世界が終るまでは…1위슬램덩크 2기 엔딩
1995.02.13Secret Night ~It's My Treat~1위[15]
1995.12.04Same Side2위
1996.02.26WORST CRIME~About a rock star who was a swindler~9위
3기1997.09.03錆びついたマシンガンで今を撃ち抜こう[16]4위드래곤볼 GT 4기 엔딩AWAKE
1998.02.11Brand New Love[17]17위
1998.06.10明日もし君が壊れても8위유희왕(토에이판) 엔딩
1999.03.31「今日、ナニカノハズミデ生きている」32위[18]

4.2 정규 앨범

기수발매일제목순위
1기1992.06.17WANDS10위
2기1993.04.17時の扉[19]1위
1993.10.06Little Bit…2위
1995.04.23PIECE OF MY SOUL1위
3기1999.10.27AWAKE18위

4.3 베스트 앨범

발매일제목순위비고
1996.03.16SINGLE COLLECTION+61위[20]
1997.11.06WANDS BEST~HISTORICAL BEST ALBUM~1위
2000.06.09BEST OF WANDS HISTORY17위
2002.08.25complete of WANDS at the BEING Studio47위[21]
2007.12.12BEST OF BEST 1000 WANDS52위
2008.05.27WANDS BEST HITS권외

4.4 콜라보레이션 싱글

나카야마 미호 & WANDS -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22]

ZYYG[23], REV, ZARD & WANDS - 果てしない夢を[24]
  1. 엄밀히 말하자면 2기 팬덤과 3기 팬덤이 갈리는 모양새.
  2. 가수 포지션의 '그해 겨울은'과 더 넛츠의 노래 사랑의 바보의 원곡.
  3. 그래도 이 때까지는 키보드 파트가 살아 있었다. 반면 4집 이후에 나온 싱글 2장은...
  4. 世界が終るまでは…를 과도기로 치기도 한다.
  5. Secret Night은 이케다 다이스케가, Same Side 싱글과 WORST CRIME 싱글은 멤버들이 편곡함.
  6. 단, もっと強く抱きしめたなら는 카피라이터 겸 작사가인 우오즈미 츠토무와 공동으로 작사했다
  7. 이상 2곡은 데뷔싱글로서 자신들의 곡 중에서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
  8. 이러한 가사 제공 후 셀프커버 패턴은 ZARD와 코마츠 미호, 사에구사 유카 IN db 등 다른 빙 소속 가수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9. BEING 소속의 싱어송라이터로 WANDS는 물론 ZARD와 DEEN, TUBE 등의 히트곡을 양산한 간판급 작곡가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아이카와 나나세를 프로듀스했을 때부터 소속사와 갈등을 빚다 결국 탈퇴. 2015년 현재까지도 음악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0. 우에스기의 솔로곡 중 한국의 음원사이트에서 유일하게 서비스되는 곡이다. 그의 근황을 잊고 살았던 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자.
  11. BEING의 자체 오디션. 이 오디션을 거친 뮤지션으로는 B'z의 보컬 이나바 코시, 오구로 마키, T-BOLAN 멤버 전원, BAAD와 doa의 기타리스트 오타 신이치로, ZYYG의 보컬 타카야마 세이키, DEEN의 전 멤버였던 드러머 우즈모토 나오키 등이 있다.
  12. 이와 같이 스튜디오 뮤지션 시절을 거쳐 데뷔한 또 다른 케이스로, 보컬 나카무라 유리를 제외한 GARNET CROW의 멤버들이 있다.
  13. 오시마 코스케와 공동작곡한 곡이 있기는 하다
  14. B'z의 서포트 밴드에서 출발한 밴드
  15. 쿠리바야시 세이이치로의 솔로 2집 앨범 <SUMMER ILLUSION>의 수록곡 It's My Treat를 리메이크함. 원곡은 가사가 영어였으나 우에스기가 일본어 가사를 새로 썼다.
  16. 코마츠 미호 작사작곡.
  17. 바로 다음 싱글인 明日もし君が壊れても와 함께 사카이 이즈미가 작사를 담당했다.
  18. GARNET CROW의 아즈키 나나가 작사했다. 작곡은 rumania montevideo의 미요시 마코토.
  19. 스카이의 '반전'의 원곡인 孤独へのTARGET, 포지션의 '그해 겨울은'과 더 넛츠의 '사랑의 바보'의 원곡인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Album Version~이 이 앨범의 수록곡이다. 후자는 나카야마 미호와 같이 부른 버전이 아닌 WANDS 단독 버전이다. 코러스를 담당한 여성 보컬은 우토쿠 케이코.
  20. 싱글 타이틀곡 외에 싱글 커플링곡이 2곡, 정규앨범 수록곡이 3곡, 신곡이 1곡 포함돼서 +6이다.
  21. 빙계열 추억팔이 상술의 첫 스타트를 끊은 시리즈 at the BEING Studio 시리즈의 두 번째 앨범.
  22. 한국의 가수 포지션의 '그해 겨울은'의 원곡으로 오다 테츠로가 작곡했다. 2번 주석 참고.
  23. 우에스기가 가사를 제공한 싱글 君が欲しくてたまらない로 데뷔했다.
  24. 타이틀곡에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던 나가시마 시게오가 게스트 보컬로 참여했으며, 사카이 이즈미와 우에스기 쇼가 공동 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