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바나(미국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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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RVANA
멤버크리스 노보셀릭커트 코베인데이브 그롤
포지션베이스보컬,기타드럼,백보컬

우린 메인스트림을 몰아냈어요. 그리고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너바나는 메인스트림에 다가가지 않았고 메인스트림이 너바나에게 다가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저희에겐 큰 위기였죠.

ㅡ 크리스 노보셀릭, 2014년 록큰롤 명예의 전당 헌정식에서[1]

1 개요

너바나의 대표곡 Smells Like Teen Spirit 뮤직 비디오

미국의 록 밴드.
밴드 이름 너바나는 번뇌와 고뇌가 소멸한 상태를 말하는 불교 용어 열반(니르바나)의 영어식 표현이다.

엘비스 프레슬리[2] - 비틀즈[3] - 레드제플린[4] - U2[5]와 같은 록음악의 역사에 또 다른 한 획을 그은 밴드라고 할 수 있다. 일개 그룹의 범주를 넘어 90년대 전 세계 대중 음악계를 강타했던 새로운 음악적 조류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는 밴드이다. 얼터너티브 록이 90년대 초 음악시장을 장악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는 80년대의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상업성이 극대화된 당시 록 음악의 틀을 깨고 언더그라운드 씬, 펑크와 같은 마이너 음악이 가진 가능성을 재평가하게 만들었다.[6][7] 덕에 2000년대 초반까지 록 음악이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분화를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데뷔 이후 미국에서만 2500만 장의 음반판매고를 올렸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75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2 활동

2.1 초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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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미국 워싱턴 주 애버딘에서 보컬/기타의 커트 코베인, 베이스의 크리스 노보셀릭이 결성했다. 결성 뒤 시애틀 주위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에서 공연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1988년 인디 레이블 서브 팝(Sub Pop)에서 처음으로 싱글을 발매했다. 그 뒤 불과 600달러를 들여 첫 앨범 Bleach를 내놓았다.

이 앨범은 예상과는 다르게 차트상에도 오르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많은 라이브 공연들과 미국 투어에 힘입어 언더 씬에서 확고한 팬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1980년 후반부터는 이미 지역을 넘어서는 언더그라운드 록의 기대주가 되었고, 그 잠재력을 밴드 멤버나 외부의 많은 레이블들도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1990년에는 첫 앨범 Bleach의 드러머였던 채드 채닝을 해고하고 데이브 그롤을 드러머로 영입했다.

한편, Sub Pop으로부터 실력에 비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낀 커트와 크리스는 이때부터 미 전역 및 전세계에 음반 배급망을 갖춘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하기를 원했고, 많은 유명한 메이저 레코드 레이블들이 너바나와 계약하기 위한 물밑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커트 코베인이 존경하고 교류가 많았던 소닉 유스의 서스턴 무어의 권유로 당시 소닉 유스도 속해 있었던 게펜 레코드와 1991년 초에 계약을 맺고 메이저 데뷔 앨범을 프로듀서 부치 빅과 작업하기 시작했다.

2.2 Nevermind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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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바나는 소닉 유스의 멤버 킴 고든의 추천을 받아 LA에 있는 사운드 시티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시작했고, Smells Like Teen Spirit을 비롯하여 In Bloom, Lithum과 같은 Nevermind 앨범의 주요 수록곡들을 만들어 냈다. 멤버들은 녹음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녹음한 뒤에 프로듀서 부치 빅이 마스터 테입을 들려주자 너무 깔끔한 사운드에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 하려고 했다가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고 귀찮아서 놔뒀다고 한다.[8] 한편 그러는 사이에 밴드는 각종 페스티벌에 참가해서 인지도를 쌓았다.

마침내 9월 24일 Nevermind 앨범이 발매되었다. 게펜 레코드는 당초에 소닉 유스가 1990년에 발표한 앨범 Goo의 판매량 25만 장 정도가 팔리리라고 예측했다. 앨범은 처음에는 빌보드 앨범 차트 144위를 기록하면서 게펜의 예상대로 가는 듯 했지만, 처음 찍어낸 5만 장이 순식간에 팔려나갔고, Smells Like Teen Spirit의 뮤직비디오를 MTV에서 계속해서 방영하면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발전하고 있었다. 91년 말 앨범은 50만 장이 넘게 팔렸고, 92년 들어서는 무려 3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이는 시대를 바꾸었다. 1992년 1월 11일, Nevermind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시대가 바뀌었음을 선언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사실,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 앨범을 밀어냈다는 말이 있지만 이미 Dangerous 앨범은 4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한 뒤 내려올 시기에 너바나가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또한,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지만 1주 후 브룩스에게 빼앗긴다.

또, 이 날 너바나는 SNL에 출연했는데, 노보셀릭과 그롤은 공연이 끝나고 입을 맞추었다. 이는 주류 문화를 비판하며 동성애를 지지함을 표시하는 행동이었다. 톱 오브 더 팝스에 나와서 대규모 깽판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 당시 연주 및 보컬 모두 립싱크를 해달라는 방송사 요청을 거부하며 출연조건을 조정하다 결국 연주는 MR로 대체, 노래는 라이브로 부르는 것으로 절충하여 공연했다. 방송사 측에서는 "그 정도 쯤이야..." 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나, 밴드는 방송시 누가 봐도 MR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도록 말도 안 되는 포지션을 취하며 연주했다.[9] 커트가 보컬톤을 극도로 졸리게 낮춰 부른 것도 이러한 의도의 연장선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영국의 한 언론에서 "가장 반항적인 퍼포먼스"에서 베스트 10에 선정하기도 했다.

2.3 In Utero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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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 Unplugged 공연에서 연주하는 모습. 이 공연은 나중에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1992년, 커트 코베인코트니 러브와 결혼했고, 8월에는 레딩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를 장식하면서 생애 최고의 공연을 펼쳤으며, 곧바로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서 여러 상들을 거머쥐었다. 액슬 로즈와 싸우기도 했다 또 딸 프랜시스 빈 코베인도 태어났다. 1993년 2월에는 In Utero 앨범을 발매해 또다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올랐다. 원래 제목은 I Hate Myself And I Want to Die였고, 동명의 곡도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커트 코베인은 자기 유머를 팬들이 진심으로 여겨 자기가 자살하고 싶어하는 줄 알까봐 제목도 바꾸고 곡도 넣지 않았다고 한다.

프로듀서는 부치 빅에서 당시 여러 얼터너티브 밴드와의 작업으로 유명세를 타던 스티브 알비니로 교체되었고, 커트 코베인은 최대한 무겁고 더러운 사운드를 수차례 주문했다고 한다. 인디 시절의 펑크 음악으로 돌아가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결과물로 나온 사운드가 멤버들도 놀랄 정도로 지나치게 무겁고 더러웠고 결국 게펜 레코드는 몇몇 곡을 손보고 발매하였다. 그러나 커트 코베인은 Nevermind 처럼 레코드사의 손을 거치면 자신이 원한 방향과는 다른 앨범이 나올까봐 우려해서 레코드사의 결정을 계속 반대했고 결국 시중에 나온 앨범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인디 시절 발매한 Bleach에서도 돈이 없어서 프로듀서는 커녕 제대로된 엔지니어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녹음실 대여날짜는 다가왔기에 일단 녹음을 하고 멤버들끼리 어떻게든 해보려다가 대충 마무리해서 발매한 것이었기에 코베인은 앨범의 사운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너바나가 발매한 모든 앨범들은 커트 코베인이 마음에 들어한 사운드가 실리지 못한 것이다.

In Utero 앨범이 발표된 뒤 너바나는 미국 투어도 다니고 MTV Unplugged에서 공연도 했지만, 코베인은 주류 록 밴드가 되어 버린 것에 복잡한 심경을 갖고 있었고, 다른 정신적 문제도 심해져서 헤로인에 깊숙히 빠져들었다. 거기에 팀 내부 불화까지 겹친다. 1994년 초, 너바나는 유럽 투어를 시작했으나 코베인은 3월 로마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후송되기까지 했다. 이후 헤로인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재활 시설에 들어갔으나 코베인은 치료를 견디지 못하고 병원에서 도망친 후 시애틀로 돌아갔다. 그리고....

2.4 코베인의 죽음과 논란

1994년 4월 8일, 코베인은 시애틀의 집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사망추정시간은 4월 5일 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커트 코베인의 자살은 수많은 논란을 몰고 왔다. 일단 경찰은 '하나뿐인' 문이 안쪽에서 잠긴 점, 유서의 존재, 타인의 지문이 없는 점 등을 들어서 자살이라고 발표하였으나, 어떤 사람들은 문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인 점, 유서의 끝 글씨체가 다르다는 점, 총에도 지문이 없다는 점, 코베인의 몸에 엄청난 양의 헤로인이 들어있었던 점 등을 들어 타살되었다고 주장했다. 타살의 배후에는 코트니 러브나 기획사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진실은 밝혀진 적이 없다. 코베인의 시신은 화장되어 일부는 코트니 러브가 가졌고, 일부는 뉴욕으로 갔다가 워싱턴 주로 돌아왔다.

2.5 커트 코베인의 죽음 이후

코베인이 사망하자 밴드는 사실상 해체되었고, 여러 컴필레이션 앨범들이 나오고 리마스터링이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코베인이 죽은 직후 발매된 앨범 MTV Unplugged In New York이 있다. MTV 언플러그드 공연 때 불렀던 노래들을 모은 것으로, 공연을 중간 리허설이나 잡담 부분을 빼고 노래만 엮은 것이다. [10] 너바나의 노래들 뿐 아니라 각 멤버들이 좋아했던 밴드의 곡들을 리메이크한 커버들은 아직까지도 유명하다.[11] 2002년에는 컴필레이션 앨범 Nirvana가 발매되었는데, 여기에 수록된 미발표곡 You Know You're Right가 전 세계에서 히트했다. 201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밴드 해체 후, 밴드의 드러머 데이브 그롤은 자신의 밴드 푸 파이터스을 만들었고 베이시스트 크리스 노보셀릭은 정치인이 되었다. 코트니 러브는 코베인이 죽기 전에 이미 홀(Hole)이란 밴드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은근 좋은 곡들을 많이 냈다. 영화배우로도 활동해서 <래리 플린트> 같은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이후에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 평가와 영향

평가는 '마지막 록 스타(커트 코베인)를 가진 밴드'. 물론 그 이전에 R.E.M., 펄 잼 등 얼터너티브 밴드는 있었지만, 돌풍을 일으킨건 너바나이다. 때때로 '너바나는 실력에 비해 거품이다'라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너바나 활동 이전 80년대는 메탈의 전성기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쇠퇴하고 있었고, 그 덕을 크게 본 게 바로 너바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잘생긴 외모의 커트 코베인 + 메탈의 쇠퇴 등의 버프를 받은 상태에서 '3장의 앨범만을 남긴 채 인기의 최절정의 순간 자살한 록스타'라는 이미지가 거의 신화화에 가까울 정도로 너바나를 급부상시켰다는 것이다. [12]

그렇지만 이러한 비판을 제쳐두고서라도, 결과적으로 그들은 시대를 바꾸었다. 그들의 파급력은 이미 록 음악을 넘어 패션, 예술 전 분야에 자극을 주었고, 당대 모든 젊은 이들의 대변자와도 같았으며 이들의 특유의 패배주의는 당시의 행동양식을 상징하던 것이었다. 너바나는 쇠퇴해가던 메탈 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록의 역사를 얼터너티브 록과 모던 록의 시대로 바꿔놓았다. 이는 록이라는 장르 자체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록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있을 수 있게 한 기반을 마련했다.

4 디스코그래피

4.1 정규 앨범

Nirvana Discography
198919911993
BleachNevermindIn Utero

4.2 라이브 앨범

  • MTV Unplugged in New York (1994년 11월 1일)
  • From The Muddy Banks Df The Wishkah (1996년 10월 1일)
  • Live At Reading (2009년 11월 3일)

4.3 컴필레이션 앨범

  • Incesticide (1992년 12월 14일) 해석하면 근친상간살해란 뜻이다. 흠좀무
  • Nirvana (2002년 11월)
  • Sliver: Best of the Box (2005년 11월 1일)
  • Nevermind (20th Anniversary Remastered) (2011년 9월 26일)
  • Nevermind (20th Anniversary Deluxe Edition) (2011년 9월 26일)
  • Nevermind (20th Anniversary Super Deluxe Edition) (2011년 9월 26일)
  • In Utero - 20th Anniversary (2013년 9월 23일)
  • In Utero - 20th Anniversary Super Deluxe (2013년 9월 24일)
  • In Utero - 20th Anniversary Remaster (2013년 9월 24일)

5 이야깃거리

이 밴드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가의 문제에 의견이 갈리고 있다.
우선 'Nirvana'에 대해 산스크리트어로는 '니르바나'라고 읽고, 힌두권에서는 '니얼바나', 미국에서 부를때는 '널버너' 와 '너배너' 두 방식으로 나뉜다. 대한민국에서는 '너바나'라는 표기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Nirvana 멤버들 역시 '너바나'(널봐나) 로 발음한다 한편 다른 의견, 대표적으로 배철수는 Nirvana를 '니르바나'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며,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Nirvana의 노래가 신청곡으로 들어오면 '니르바나'라고 발음한다. 그러나 과거에 배철수 본인은 이를 '너배너'로 발음하기도 했었는데,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는 줄곧 '너배너'만 고집하던 때가 있었다. 밴드 Nirvana가 화제였던 90년대 초반에 배철수 음악캠프에서 DJ 본인이 그렇게 발음했던것을 생각하면 배철수의 주장에 일관성이 없기도 하다.그때는 너바나가 무슨뜻인지 몰랐던게 아닐까

참조1 참조2
  1. "We repelled the mainstream. And see, there’s one thing you have to remember about Nirvana, is Nirvana didn’t go to the mainstream, the mainstream came to Nirvana. And that was our big crisis." ㅡ Krist Novoselic at Nirvana‘s 2014 Rock and Roll Hall of Fame Induction
  2. 초기 록큰롤의 전파
  3. 오늘날 락의 정립
  4. 70년대 하드락의 창시
  5. 80년대 얼터너티브 태동기
  6. 당대의 록의 메인 스트림은 LA 메탈을 필두로 하는 팝 메탈(혹은 글램 메탈)이었다. 다만 이들은 마치 현재의 아이돌 음악마냥 상업성이 짙어 (국내에선 록발라드로 알려진) 슬로우 록들만 무수히 쏟아져 나왔고 매너리즘에 빠져 비슷비슷한 밴드들이 양산되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너바나를 비롯한 시애틀 발 그런지 록그린 데이, 오프스프링, Sum 41 등의 네오 펑크/팝 펑크가 등장하면서 헤비 메탈의 전성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메탈 팬 중에는 너바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7. 메탈 역시 상업성에 찌들긴 했지만 헤비메탈 자체가 지나치게 테크니컬해졌기 때문에(특히 기타 솔로연주 같은 부분은) 혹자는 너바나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현대의 록은 일반인이 듣기엔 복잡하고 진입장벽이 높아져 마치 클래식과 같은 장르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8. 녹음이 완료될 때 까지 커트 코베인은 이 앨범의 사운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9. 손바닥으로 기타연주하기, 요가(?) 드럼, 아크로바틱하게 휘두르는 베이스 등
  10. 커트 코베인 평전에 따르면, 코베인은 공연 직전에 헤로인 중독으로 인한 자신의 컨디션 문제와 언플러그드 공연인데 몇 몇 곡에 기타 이펙트를 넣은 사운드가 들어가서 관객들이 자신을 사기꾼이라고 하지는 않을까 걱정 하고 공연 직전에 공연을 취소하려 했을 정도로 매우 노심초사했으나 공연이 끝난 후 매니저와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이번 공연은 정말 만족스러웠다고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11. David Bowie의 The Man Who Sold the World나 Lead Belly의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이 있다.
  12. 많은 평론가들이 '만약 커트 코베인이 자살하지 않았더라면 너바나가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을까' 하는 물음에 부정적으로 답한다. 그들의 음악성도 음악성이지만, 커트 코베인의 자살도 분명히 밴드의 인기에 영향을 미친 요소 중 하나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