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필선

姜弼善
1918년 00월 00일 ~ 1990년 9월 22일

대한민국의 전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치인이다.

1918년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현 아산시 온양동)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말기 만주국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 내무성이 운영하는 경찰강습소 본과를 나왔다.

이후 만주국에서 모교인 중앙경찰학교의 조교수로 근무했다. 그리고 만주국 고등관 시험 행정과에도 합격했다.

8.15 광복 후에는 지린 성 창바이 현에서 한국인회의 회장을 맡아 잠시 만주에 머물다가 귀국했다. 고향인 아산군 온양읍에서 동방산업 사장, 온양극장, 온양정미소 사장을 지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영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민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제17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신민당에서는 충청남도지부 위원장, 지도위원 등을 지냈다. 한편 반 유진산계에 속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을 탈당하여 민주통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민주통일당 후보로 충청남도 천안시-천원군-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종철 후보와 신민당 황명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에 복당하여 해당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정재원에 밀렸다. 다시 신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종철 후보와 신민당 정재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3년 해금되었다.

만주국 국무원 치안부 소속으로 일한 경력으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 공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해외 부문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