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원(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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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在原
1942년 6월 18일 ~

대한민국의 출판인, 정치인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1942년 충청남도 천안군(현 천안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 고위정책과정을 수료하였다. 유엔군 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정책기획 장교 등을 역임하고 대한민국 해병대 대위로 예편하였다.

이후 도서출판 물결을 경영하면서 신민당 홍보대책위원을 겸하였다.

1978년 변호사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황명수를 대신하여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공천을 받아 충청남도 천안시-천원군-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고, 민주공화당 김종철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이택돈, 이택희, 유한열, 엄영달, 박병효 등과 자민동지회를 구성하여 김영삼총재 후보로 지지하였다. 같은 해 8월 YH사건 당시 박권흠 대변인이 경찰의 곤봉에 맞아 부상당하자 임시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1980년 신민당 김영삼 총재 특별보좌역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말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고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3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선 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신한민주당 내에서 계파 놀음에 소외받는다고 생각하고 신보수회라는 서클을 만들었다. 결국 1986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중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87년 민중민주당이 다시 신한민주당에 흡수되자 신한민주당 대변인,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공천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천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김종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충청남도 천안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함석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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