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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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法麟
1899년 8월 23일 ~ 1964년 3월 14일

대한민국의 전 종교인,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9년 경상북도 영천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남도 동래군(현 부산광역시)로 이주하였다. 1914년 영천 은해사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고 범산(梵山)이라는 법명을 얻었다. 이듬해인 1915년 범어사의 명정학교 1년 과정을 마친 후 강원에서 사교과를 수료하였다. 그 뒤 신학문을 익히기 위해 경성부휘문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다가 1918년 불교중앙학림(현 동국대학교)으로 편입하였다.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한 이후 일제의 눈을 피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잠깐 활동하였다. 1929년 조선불교 선교양종승려대회를 개최하여 불교의 자주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한편 조선어 사전 편찬에도 참여하다가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수감되었다.

8.15 광복신탁통치에 반대하여 반탁 운동에 참여하였다.

1952년 10월부터 1954년 4월까지 문교부(현 대한민국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 동래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1956년부터 1958년까지 자유당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조일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부터 이듬해에 별세할 때까지 동국대학교 총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