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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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봉길 (金奉吉 / Kim Bong-Kil)
생년월일1966년 3월 15일
포지션공격수
프로입단1989년 유공 코끼리
소속팀유공 코끼리 (1989~1994), 137경기 23골
전남 드래곤즈 (1995~1998), 74경기 12골
국가대표4경기
코치전남 드래곤즈 (2005~2007)
인천 유나이티드 (2008~2012)[1]
감독부평고등학교 (1999~2001)
용인 백암종고 (2002~2004)
인천 유나이티드 (2012~2014)
199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차상해
FW
윤상철
MF
김판근
MF
신태용
MF
김동해
MF
이상윤
MF
김봉길
DF
최영일
DF
이종화
DF
유동관
GK
사리체프
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감독
허정무
(2010~2012)
김봉길
(2012~2014)
김도훈
(2015~)

1 소개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지도자.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2013년 인천 상승세의 원동력인 봉길매직의 주인공

2 선수 시절

프로경력은 유공 코끼리전남 드래곤즈에서 뛰었지만 부평동중-부평고라는 인천 축구의 명문트리를 탄 인천 순혈이다. 부평고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뒤 당시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 황선홍, 홍명보와 함께 대학생 선수로[2] 선발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연세대학교 졸업 후 부상에 시달리면서 제대로 된 실력을 보이지 못했고 당시 동기였던 고정운 등에 밀리면서 국가대표에서도 자리를 잃고 1998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은퇴하게 된다.

3 기나긴 코치, 감독대행 기간

은퇴 후 모교인 부평고등학교의 감독으로 활동했고 특히 용인 백암종고(용인 유소년 축구센터) 감독 시절에 고교 무대를 평정하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아 당시 연세대학교 선배였던 허정무 감독의 제의로 전남 드래곤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게 된다.

전남 드래곤즈에서 코치로 있던 중 고향 팀 인천 유나이티드의 제안으로 수석코치를 맡게 되었고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3]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하게 된다. 페트코비치 감독 시절 인천은 유병수의 등장으로 2009년 시즌에는 6강 PO에 진출하면서 승승장구했고 김봉길 역시 페트코비치 감독 밑에서 묵묵히 임무를 코치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페트코비치 감독이 2010년 시즌 도중 사임하게 되면서[4] 급작스럽게 감독 대행을 맡게 된다.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시작한 후반기 시즌에서 김봉길의 성적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단 2달 간의 감독대행이었지만 포풍 5연패... 첫승까지 무려 15경기가 걸렸고[5] 감독 대행이라는 꼬리표가 있긴 했지만 팬들의 욕을 많이 먹게 된다. 결국 시즌 막판에 취임한 허정무 감독이 취임하면서 다시 수석코치로 복귀한다.

2011 시즌 허정무 감독과 함께 팀을 꾸려나갔지만 결과는 망했어요...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이라는 13위로 마무리했다. 허정무 감독의 팀 리빌딩 실패, 유병수의 부진과 이적으로 인한 공격수의 부재, 유준수 등의 신예들이 기대만큼의 활약을 못한 것 등 많은 이유가 있었다.(그리고 유준수는 2012 시즌 후 방출당한다.) 또 인천 문학 경기장에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홈 구장도 옮기는 2012 시즌에는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2012시 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2012 시즌 초 인천은 그야말로 막장의 성적과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의 서포터 폭력 사태로 징계까지 받고 순위는 15위로 강등권에 몰리면서 팬들의 원망은 자자했고 결국 구단의 뒤숭숭한 분위기에 맞물려[6] 허정무 감독이 결국 사임하며 김봉길은 또 감독대행을 맡게 된다.아놔 또 페트코비치 시절 시원하게 팀을 말아먹었던 기억이 있는 팬들이 김봉길에게 바란건 그저 강등만 면하게 해주는 것. 그리고 새 감독이 올 때까지 팀을 잘 수습하는것. 그야말로 큰 바람도 아니었고, 김봉길이 감독이 된다는 생각보단 다음 시즌에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는게 낫다는게 팬들의 중론이었다. 그리고 2010년처럼 몇 경기 동안은 승리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FA컵 16강에서 내셔널리그의 고양 국민은행에게 패배하면서 까임은 절정에 다다르다시피 했다.

그 다음 경기인 상주전이 사실상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 당시 상주는 수비의 주축들이 부상당하고 골키퍼마저도 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주에게 홈에서 지면 당연히 짐싸고 가야 할 상황인 것. 그렇지만 설기현의 결승골로 김봉길 개인의 프로 지도자 커리어 첫 승을 거두었고 그 뒤에 경남과의 무승부 이후 7월달 부산과의 경기에서 원정에서의 400일 만의 승리를 거둔 이후에는 승승장구하다시피 했다. 특히 서울전의 3-2 역전승은 그야말로 올 시즌 인천 최고의 경기라 불릴만했다.

4 정식 감독 취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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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과에 고무된 인천 구단은 7월 16일 김봉길 코치를 감독대행에서 감독으로 승격시켰고[7] 탄력을 받은 인천은 강등권 탈출은 물론이고 상위 스플릿까지 노리는 전력으로 급성장했다.

팬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찬양모드. 초반만해도 "역시 그렇지 뭐..." 이런 반응이었던 팬들도 매 경기때마다 올라가는 순위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고 심지어 시즌 초만해도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였던 상위리그 진출이 꿈이 아닐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는 중.

그 이후 포항에게 2:1로 패배하고 수원에게도 3:1로 패배하면서 위험하긴 했지만 8월달에 전남, 대전은 물론이요 디펜딩 챔피언인 전북을 전주성에서 꺾고 울산 원정도 승리하며 마지막인 제주 경기만 이기면 자력으로 상위에 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제주와 비기고 순위 경쟁을 하던 경남이 이기게 되면서 승점은 같지만 골득실로 아쉽게 하위스플릿으로 떨어지게 된다.

비록 감독경력은 짧지만 이런 지도력을 계속해서 발휘한다면 선수로서는 실패했지만 감독으로서는 성공하는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게 대부분인 상황. 앞으로의 일을 지켜볼 수 있는 신인감독이라 할 수 있다.

31라운드부터 나눠진 하위 스플릿 리그에서 김봉길의 인천은 인천 구단 사상 처음으로 19경기 연속무패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2012년 K리그 9위라는 성적으로 감독 첫 시즌을 마쳤다.

2013시즌에도 선수들과 팬들의 절대적인 믿음 속에 상위 스플릿 리그에서 순항중이다. 그의 인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구단에서 선수도 아닌 김봉길 감독과 함께 저녁식샤를 하는 이벤트를 열정도.

이렇게 그가 선수들과 팬들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얻는 이유로 물론 '봉길매직'이라 불리는 전략전술과 용병술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인터뷰 스킬을 꼽고있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언제나 자기 자신은 낮추면서 경기를 뛴 선수들에게 모든 공을 돌린다. 즉 못하면 내 탓이요 잘하면 선수 덕. 언제나 열심히 뛴 선수들, 열심히 응원해 준 팬들에게 공을 돌리는 감독을 어느 누가 미워할수 있겠는가. 입만 열면 사고를 치는 감독들이 많은 한국 프로스포츠계에서 이래저래 귀감이 되는 사람중 한 명이다.

2013시즌 3월 9일 인천의 역사적인 경기가 열린 경인더비 서울 원정. 전반 28분 아디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서가던 서울이 7분 뒤에 이석현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인천은 후반 6분 디오고가 역전골을 넣었지만 후반 23분 서울의 박희성이 동점골을 만들어 2:2가 된다. 인천은 동점골 실점 3분 후 김남일을 빼고 문상윤을 투입하는데... 후반 33분 인천의 역습상황에서 찌아고의 폭풍 드리블 이후 패스를 받은 문상윤이 역전 결승골을 넣어 인천 유나이티드가 리그에 참가한 2004년 이후 9년만에 서울 원정 첫 리그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오오 김봉길 매직 그리고 여전히 서울원정 리그유일승이다
김봉길 감독은 베르너 로란트 초대감독이 2004년 8월 삼성하우젠컵 서울 원정경기에서 후반 40분 마에조노2003시즌 안양LG 선수였으나 인천이적의 PK골로 1:0으로 승리한 이후 9년만에 서울원정 승리를 거두었고, 리그에서는 경인더비 서울원정 최초의 승장으로 등극한다.

그러나 2014 시즌 전반기에는 영 기를 못 썼다. 2시즌간 돌풍을 일으킨 김봉길 감독의 전술이 이제 K리그 내 다른 감독들에게 파악당하며[8] 인천 특유의 축구가 실종해버렸고 김남일과 한교원이라는 핵심선수 2명을 빼앗긴 상황에 새로 이적해 온 선수들까지 골고루 부진을 거듭하면서(...) 최하위까지 순위가 내려가버렸다. 팬들은 그동안 해준게 있으니 꾹 참고 지지해주었지만 팀내에서는 입지가 불안해졌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이후에도 성적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7월 23일 포항 스틸러스전이 끝난 후 구단에서 '다음 3경기에서 2승을 올리지 못하면 경질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9] 더욱이 3경기 중 2경기가 상위팀인 울산, 전남과의 경기였기에 거의 불가능한 조건이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무려 3연승을 했고 강등권도 벗어났다. 또한 그 기간동안 터진 6골이 모두 후반전에, 4골이 교체선수가 넣으면서 자신의 경기 운영 능력도 입증했다.

전반기만 해도 최하위였지만 후반기 각성(...)후반기 승점으로만 따지면 4위다. 전반기 힘을 못 쓴지라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졌지만 우선 8위로 강등권 걱정에서는 벗어났다. But.....

5 해임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겸 인천 유나이티드의 구단주 등 구단 수뇌부가 보기에는 성적 부진이었으며, 외국인 선수 선발의 실패 등을 이유로 2014년 12월 19일에 김봉길 감독의 해임을 결정했다. 그것도 전화 한 통화로. 이로써 김 감독은 인천과의 계약 기간을 1년 남겨 놓은 채 지휘봉을 내려놓게 되었다.#

해임 이후 공부를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 '야인' 김봉길의 5개월, 백수와 공부 사이]

6 기타

김봉길 감독이 첨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지만 훈련방식을 바꾸게 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허정무 감독 시절엔 새벽훈련이라는 별 해괴한 훈련을 했었다.허정무 올대랑 국대 동시에 할 때도 쓸데없이 한 달에 한 번 소집 훈련 이딴 거 해서 다리몽둥이 부러뜨리더니 하여간 지 버릇 못 고친다. 전문가들이 인천의 부진에 대해서 분석한 결과 훈련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게 새벽훈련이었다고. 이후 김봉길이 새벽 훈련을 폐지하고 나서는 승승장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허정무는 감독이 아니라 스카우트로서 있었어야 했어.[10]

2013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신생구단 확장드래프트 포함)에서 김봉길 감독의 아들인 김신철이 2부 리그 부천 FC 1995에 지명되었다. 이로써 2013 시즌에 032 더비가 성사된다면 두 부자의 기묘한 관계가 시작될 것이다. 현재 경찰청에서 군 복무 중이다. 아쉽게도 김봉길 감독이 해임되면서 부자 간의 더비 경기는 성사되지 못했다.
  1. 코치→감독대행→코치→감독대행
  2. 황선홍건국대학교, 홍명보고려대학교 소속이었다.
  3.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감독을 맡았고 인천 감독 취임 직전에는 팀의 기술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4. 페트코비치 감독 본인은 병중인 부인의 간호를 위해 사임한다고 했지만 사임 후 바로 카타르 스타즈 리그알 아흘리의 감독을 맡으면서 이래저래 말이 좀 많았다.
  5. 2012시즌 허정무 사임 이후 감독대행기간까지 포함.
  6. 시즌 초 부터 선수와 직원들의 월급이 나오지 않았고 사장 선임 문제로 이래저래 말이 많았다.
  7. 감독대행 때까지 언제나 트레이닝 웨어를 입고 다녔는데 선수들이 정식 감독이 되었는데 양복입어야 하지 않느냐면서 양복을 사줘서 입었다고 하는 훈훈한 이야기까지 있다 관련기사
  8. 사실 인천 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김봉길의 축구 스타일은 짧고 빠른 패스 위주의 역습 스타일이라 상대팀이 수비라인을 뒤로 내려버리면 아무것도 하질 못한다. 덕분에 강팀을 상대로는 제법 선전을 했지만 인천보다 약팀을 상대로는 매번 고전을 면치 못했다
  9. 다만 이 내용은 3경기가 끝난 후에야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그 전까지는 구단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인천 구단이 김봉길 감독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킨 셈.
  10. 훈련방식도 문제가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허정무 감독이 재정이나 조직력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들을 영입하였기 때문이다. 김호 감독이 대전에서 실패한 이유와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