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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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도훈 (金度勳 / Kim Do-Hoon)
생년월일1970년 7월 21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경상남도 통영시
포지션스트라이커
신체조건183cm
유스팀학성고등학교 (1986~1988)
연세대학교 (1989~1992)
소속팀상무 (1993~1994)
전북 현대 다이노스 (1995~1997)
비셀 고베 (1998~2000)
전북 현대 모터스 (2000~2002)
성남 일화 천마 (2003~2005)
지도자성남 일화 천마 코치 (2006~2012)
강원 FC 코치 (201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19 수석코치 (2014)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2015~2016.8)
국가대표72경기 30골
2000년 K리그 득점왕
샤샤(수원 삼성 블루윙즈)김도훈(전북 현대 모터스)산드로(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3년 K리그 득점왕
에드밀손(전북 현대 모터스)김도훈(성남 일화 천마)모따(전남 드래곤즈)
2003년 K리그 MVP
김대의(성남 일화 천마)김도훈(성남 일화 천마)나드손(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최용수
FW
김도훈
MF
안드레
MF
신태용
MF
전경준
MF
데니스
DF
강철
DF
이임생
DF
김현수
DF
마시엘
GK
신의손
200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도훈
FW
마그노
MF
신태용
MF
이성남
MF
이관우
MF
김남일
DF
최진철
DF
김태영
DF
김현수
DF
산토스
GK
서동명
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감독
김봉길
(2012~2014)
김도훈
(2015~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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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성남 일화전북 현대황제라고 불렸던 K리그와 한국 축구의 레전드.

인천 늑대들의 전 수장.울프마스터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출신이다. 전 축구선수 및 지도자이며, 2015년 현재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이다. 성남 일화 천마전북 현대 모터스레전드 선수이며, 나아가서 K리그에서 "기록의 사나이"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던 1990년대의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레전드급 공격수였다. 별명은 황제.

2 선수 시절

가장 인상적인 활약은 1999년과 2003년. 1999년 3월 28일에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브라질과 친선경기를 가졌을 때 후반 종료 직전에 브라질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서 브라질을 1-0으로 격파한 파란을 일으킨 주역이 됐다.#[1]

이는 아시아의 유일무이한 브라질전의 승리다. 일본이나 다른 아시아 나라들도 국대 경기로 여태껏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상대였다.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일본이 브라질한테 0-3으로 깨졌고, 국가대표팀이 아닌 올림픽 대표로서 일본이 1996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브라질을 1-0으로 이겼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전 0-3 대패로 인하여 2승 1패 거두고도 골득실에 브라질에게 밀려서 토너먼트 탈락 여담으로 당시 브라질 국대감독이던 룩셈부르고는 "한국 경기장이 나빠서 졌다."라고 변명(2002 한일월드컵 직전 한국 축구경기장 상태가 나쁜 건 사실이지만 브라질도 사실 좋은 경기력이 아니긴 했다)했다가 브라질 언론에게도 욕을 처먹었다.

그 외에 1994년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동대문운동장에서 터뜨린 바이시클 킥 골도 유명한 장면이다.# 여담으로 불교신자라고 한다. 1998년 월드컵 당시 최용수 대신 출전해 같은 기독교 신자를 넣었다고 차범근과 김도훈을 욕한 팬들이 있는데, 기독교 신자는 최용수였다. 최 감독이 3시합 연속 선발로 들어갔는데 한 시합은 쉬게 해주는게 도리 아닌가?

그 외에도 2003년에는 28골로 K리그 득점왕에 올랐는데 이는 데얀이 2012년에 31골로 깨기 전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당시 마그노도도 2명의 브라질 특급 스트라이커와의 경쟁 속에서 기록한 것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다. 사실 일찍 우승을 확정한 상태에서 팀이 김도훈에게 득점지원을 집중한 면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성남, 전북, 울산 다 마찬가지였다. 득점왕 경쟁 지원을 하느라 전북에선 프리킥 찬스가 나면 도움왕을 노리는 에드밀손이 밀어주고 득점왕을 노리는 마그노가 슛하는 패턴만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 실제 마그노의 27호골도 에드밀손이 밀고 마그노가 슛한거였다. 물론, 한국 선수로만 한정하면 지금도 역대 최고 기록이다.

성남 일화 천마에서는 리그 우승 3연패를 비롯한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레전드 선수로 존경을 받고 있으며, 또 하나의 기록의 사나이로 불리는 신태용성남 일화 천마 감독과 같이 황금콤비를 이루면서 만든 득점의 수를 합치면 무려 200개도 넘는다.[2] 여담으로, 신태용은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을 하면서 무려 99득점을 기록했다.[3] 이 쯤 되면 K리그의 레전드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동시대에 황선홍, 최용수, 이동국 등 훌륭한 공격수들에 가려져서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으나, 국대에도 꾸준히 선발되었고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정상급 공격수였다. 한때 유행이었던 J리그의 한국국대 수집 때에 빗셀 고베로 이적을 해서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빗셀 고베는 3명의 외인용병 슬롯을 김도훈-하석주-최성용 한국 국가대표로만 채웠다. 그리고 J리그에서의 평가도 매우 높았다. 1998년 월드컵에서 황선홍은 부상, 최용수는 컨디션 난조로 멕시코전에 원톱으로 선발출장했으나 본인도 컨디션이 별로였고 후반전엔 다리에 쥐가 나서 침을 맞아가면서 뛰었다. 그러나 반응은 "최용수, 황선홍 어디가고 쟤가 나왔어?"였다. 안습...그리고 이 월드컵 이후론 이동국이 나타났다(...) 네덜란드전에서는 초반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옆그물을 때리는 인상적인 장면을 보이기도 했다. 해설진이 골로 착각할 정도...

그 이후에도 한국 국가대표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였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고 나서도 5골을 기록할 정도로 주전 공격수로 많이 활용되었으나 북중미 골드컵 대회 종료 이후부터 거의 기용되지 않았다. 아예 월드컵을 몇달 남기고 떠난 해외전지훈련에서는 데려가지도 않았다... 사실 김도훈의 공격수 능력만 봤을때 월드컵 엔트리에 들어가도 무방했지만 후에 히딩크가 밝힌 엔트리 탈락 이유는 김도훈의 쓸데없는 행동 때문이었다. 골드컵 대회에서 4강전 코스타리카와의 일전에서 3:1로 패한뒤 3,4위전으로 밀린 한국은 약체 캐나다와 경기를 치뤘다. 선제골은 김도훈이 넣었지만 이후에 자책골도 그가 넣었다... 캐나다 선수가 크로싱한 볼을 걷어낸다는 것이 김도훈의 머리를 맞고 한국 골대 안으로 들어간것. 히딩크는 어느 언론의 인터뷰에서 김도훈은 충분히 능력이 있는 공격수이지만 불필요한 행동을 보여주곤 했다고 언급한적이 있다. 이것이 괜한 착각이 아니었는지 김도훈은 성남 일화 소속으로 출전한 클럽대항전에서 중국 프로팀과 경기를 가졌는데 여기서 또 자책골을 기록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엔트리에서 제외된 이동국의 경우 상당히 동정심도 있었고 의외라는 반응도 있어서 어느 정도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김도훈은 그런 면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적었다. 아니 아예 묻혀버렸던 것이 맞는 표현일듯. 사실 월드컵 1,2년 전만 해도 주전 공격수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엔트리가 제외된 때도 월드컵이 성황일 때도, 대회 종료 이후에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본인도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고 크게 상심하는 언급을 내비친 기사나 인터뷰도 있긴 하지만 팬들은 김도훈과 월드컵과의 관계를 거의 의식조차 안했다. 뭐 어찌됐든간에 축구선수로써 아무래도 월드컵 출전을 하지 못한 것은 굉장히 큰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야 결과적으로 대회 성적을 우수하게 마친 감독은 그 선택자체가 옳았다는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지만 객관적으로 봤을때 김도훈의 능력 자체는 월드컵 엔트리에 들어도 무방할 정도였다. 사실 김도훈도 탈락을 해서 실망했지만 그 이유를 잘몰랐다고 한다. 주전공격수로 5골을 넣으며 합격점을 받았는데 막상 탈락하니 굉장히 서운했지만 후에 자신이 조커가 아닌 선발 타입인걸 감안하면 아마 그것으로 탈락된것 같다고 언급했다.[4] 월드컵 탈락 이전까지 보여준 국가대표선수로써의 플레이도 전체적으로 좋은편이며 프로선수로써의 기록은 더할나위없이 뛰어난 정도. 더군다나 큰 상심을 겪었을 법도 한데 월드컵 종료 후 K리그에서 28골을 몰아치며 당시 한 시즌 최다 득점, 현재까지도 유지되는 한국 선수 한시즌 최다득점을 기록을 올린 점은 선수로써의 자각과 자기 관리도 그만큼 뛰어났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마음의 소리의 작가 조석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 선수 중 한 명이다.[5]

3 은퇴 이후 지도자 생활

성남 일화 천마의 코치로 활동하다가 강원 FC의 코치로 옮겼다. 2014년 대한민국 U-19팀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2015년 1월 12일 밤 본인도 '저런 팀을 누가 맡지?' 했던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계약에 합의하고 사인을 마쳤다. 계약 기간은 1+1년이다.#

다함께 몰아쳐 사자를 사냥하는 늑대축구를 표방하고 출발한 시즌, 김도훈 감독의 인천 유나이티드는 2015년 8월 24일 현재 리그 6위에 랭크돼 있다. 공격력, 수비력, 조직력 모두 수준급에 올라왔다는 평가. 늑대축구를 표방한 것에 걸맞게 스피디한 역습 전개에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 8월 22일에는 선 굵은 역습 축구로 리그 1위를 순항하는 전북 현대를 잡아내기까지 했다. 충격을 받았는지 최강희 감독은 이 경기가 끝난 후에 "닥공 축구를 버릴 것"이라 선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그의 지도력 덕분인지 울산 현대와 바뀐 것 아닌가 할 정도의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김인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을 운반하고, 수비라인 교란시키고, 때론 펄스 나인에 가까운 역할을 맡기기도 하는 등 지장으로서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공격도 수비도 지지부진했던 예년과 달리 목적 의식이 뚜렷한 경기 방식에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과 많은 리그 팬들이 김도훈 감독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더불어 직관 보는 재미도 함께 늘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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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마다 상당한 패션 센스를 선보여 언론과 팬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완생을 향해'...'패션왕' 김도훈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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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현충일에는 인천 상륙작전을 기념하는 의미로 맥아더 장군의 복장을 하고 사인회를 열었다.

성남 김학범 감독과 사제대결에서 잇따라 0:1로 패하였다. 특히 33라운드에서 상위 스플릿 진출을 확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패하여, 같은 날 전북을 잡은 제주에 승점 1점차로 밀리는 바람에 하위 스플릿이 확정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김도훈 감독은 선수시절 성남과 전북의 레전드였는데 인천이 성남에게 1-0으로 밀리고, 전북이 제주에게 3-2로 졌기 때문에, 친정팀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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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스플릿 탈락 확정 뒤 슬픔에 못 이겨 기자회견 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전까지 눈물을 억지로 참아가다가 이 날 부상을 당한 조수혁 골키퍼 이야기가 나왔을 때 결국 울음이 터지고,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한 채 기자회견을 끝내고 나갔다.

여담으로 저 우는장면이 나온지 며칠뒤 인터뷰에서 아이가 울보아빠라고 놀리니까 저때 언급은 하지말자고 셀프 흑역사화 하기도(....)

이후 대한축구협회 FA컵 결승전에서도 FC 서울에게 패하여 아깝게 준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상위 스플릿 확정도, FA컵 우승도 모두 그 결과를 결정짓는 경기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본인도, 선수들도, 팬들도 상당히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전 시즌들의 경기력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라는 평가. 그동안 코치로만 활동했지 감독으로서는 첫 시즌인터라 불안감을 보이는 팬들도 많았으나 시즌 내내 돌풍을 일으켰던 터라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졌음에도[6] 평가는 상당히 좋다. 벌써부터 내년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

인천과의 다년계약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2016년 초에는 거의 15-16시즌 아스톤 빌라 FC 급으로 폭망한 경기력을 보여줬았다. 이대로면 경질은 확실해질 듯... 했는데 12라운드에서 성남 FC를 상대로 첫 승을 거둔 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상대로 무승부[7], 수원 FC 상대로 2승을 거두는 등 조금씩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과연 이 상승세를 계속 유지하고 강등권을 탈출할 수 있을지가 관건.

하지만 부진을 거듭하며 진전은커녕 강등권 탈출이 요원해 보이자 결국 2016년 8월 31일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인천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시즌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벌써부터 타 구단으로의 재취업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물러나기 직전 극도로 부진한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없는 살림에도 인천을 FA컵 준우승으로 이끄는 등 나름대로 괜찮은 리더십을 보여줬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7시즌 감독직을 새로 맡을 것으로 가장 유력해 보이는 구단은 역시 본인이 선수로 활약했던 수도권의 모 구단. 한국의 퍼거슨이 슬슬 지도력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와중에 올해 말이면 구단과의 계약이 끝나기에 벌써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권의 옛 명가 역시 유력한 다음 행선지중 하나로 거론되는 중.

4 논란

2016년 4월 12일 인천 유나이티드가 리그 4연패라는 부진에 빠져 있는 와중에 중국 전지훈련 기간 중 간부직원이 전지훈련비를 빼돌려 감독·코치진과 함께 유흥주점에서 술 파티를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5 플레이스타일

큰 키와 훌륭한 몸빵을 이용한 포스트플레이도 훌륭하였고 위험지역에서의 볼컨트롤이나 퍼스트 터치도 의외로 훌륭했다. 다만 페널티 박스 안에서는 매우 우수한 공격수였지만 박스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효용성이 떨어지는 면이.... 사실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플레이스타일 자체가 활동량이 많거나 빠른편은 아니었고 최전방에서 배급되는 패스를 충실히 받아먹는 타깃형 타입이었는데, 특히 소위 '줏어먹었다' 라고 할 정도로 쉬운 상황에서의 득점이 많아서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줏어먹기만 한다', '운이 좋아서 공이 그쪽으로 굴러갔을 뿐이다'라며 스트라이커 능력에 대해서 폄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우수한 한국 공격수가 많기도 했고... 하지만, 정작 다른 축구인들이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그의 위치선정과 오프 더 볼에 능했다는 점에 대해서 매우 높게 평가했다. 그때는 저평가 됐지만 지금 다시 보면 확실히 피니쉬가 훌륭하다. 또한 오버헤드킥 등 임팩트있고 화려한 골도 곧잘 넣었으며 아크로바틱한 플레이가 특징이었다. 현재에도 역대 K리그 득점랭킹에서도 최상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많은 기록을 세웠다. 특히, 부천 SK를 상대로 항상 골을 넣는 공포의 선수였다.#

잉글랜드의 공격수 앨런 시어러와 유사한 스타일로 K리그 팬들에게는 한국의 앨런 시어러라고 불렸다. 플레이 스타일도 그렇지만 그 밖에도 비슷한 점이 많은데, 공교롭게도 앨런 시어러와 김도훈 모두 나이(1970년생)와 신체 조건(183cm)이 똑같고, 자국리그에서 뛰어난 족적을 남겼다는 점도 일치한다. 심지어 두 선수 모두 1998 FIFA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월드컵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는 부분과, A매치에서 통산 30골을 기록했다는 점도 같다. 그리고 동시대 국대에 뛰어난 공격수가 많아서 한국의 로이 마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6 선수 이력

  • 울산 학성고등학교 - 연세대학교 - 상무
  • 전북 다이노스 / 전북 현대 : 1995~1997, 61경기 23득점
  • 비셀 고베 (일본 J리그 1부) : 1998~1999, 58경기 27득점
  • 전북 현대 : 2000~2002, 92경기 40득점
  • 성남 일화 : 2003~2005, 104경기 51득점
  1. 당시 도움 최성용. 당시 빗셀 고베에서 같이 뛰던 동료였다.
  2. 실제로 신태용은 감독이 되면서부터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팀을 꾸렸지만 선수들이 해이한 모습을 보일 때, "나랑 김도훈 코치가 합작해서 넣은 골만 200개가 넘는다. 근데, 넌 뭔데 빈둥거리나?"며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3. 다만, 신태용은 선수 시절 포지션으로는, 박남열과 호흡을 맞춘 경우가 더 많았다.
  4. 히딩크호는 그전까지의 대표팀과 달리 정통 스트라이커 타입은 딱 2명(황선홍, 최용수) 뽑고 윙 포워드나 멀티 능력있는 선수들에게 눈을 돌렸다. 처음부터 주어진 자리가 많지가 않았다.
  5. 마음의 소리 212화 '내가 축구 선수가 된다면' 편에서 소개된 바에 의하면 국내 선수 중에는 김도훈을, 해외 선수 중에서는 해리 키웰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6. 그리고 인천은 그 하위 스플릿에서도 1위를 고수하고 있다!...가 윤정환 감독의 울산 현대가 하위스플릿을 씹어먹어 하위스플릿 최종순위는 울산이 1위, 인천이 2위로 시즌을 마쳤다
  7. 이것도 무승부지만 거의 이길 뻔했던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