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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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역대 국왕
24대 진흥왕 김삼맥종25대 진지왕 김사륜26대 진평왕 김백정
시호진지왕(眞智王)
김(金)
사륜(舍輪) / 금륜(金輪)
생몰년도음력? ~ 579년 7월 17일
재위년도음력576년 ~ 579년 7월 17일 (4년)


1 개요

웃음이 나라를 가볍게 만든다 하여 웃음을 판 자를 잡아들였다.
신라 제 25대 왕. 훗날 왕위에 올라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끄는 김춘추의 할아버지다.

2 이름에 대한 이모저모

이름은 사륜(舍輪), 혹은 금륜(金輪). 이 이름은 불교전륜성왕에서 따온 이름이다. 전륜성왕은 불법을 펼쳐 세상을 평정한다고 예언된 인물. 석가모니 탄생시 아시타 선인이 '이 아이는 자라서 출가하면 부처가 될 것이요, 왕이 된다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이 유명한 일화다. 전륜성왕은 금륜, 은륜, 동륜, 철륜이라는 네 아들을 두는데, 금륜이 4개국, 은륜이 3개국, 동륜이 2개국, 철륜이 1개국을 다스린다고 한다. 아들들이 수개국을 지배하는 왕이고, 전륜성왕은 그들을 지배하는 인물이니 사실상 황제. 따라서 불교국가에서 왕이 전륜성왕을 자칭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아소카왕이나 백제의 성왕도 그러한 인물들.

여담이지만, 시대가 좀 지나면 전륜성왕은 한 물 가고 미륵이 유행하게 된다. 궁예가 미륵을 칭했던 것도 시대상을 반영한 셈. 자칭 전륜성왕인 진흥왕은 아들들에게 전설에서 따온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사륜'은 '철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금륜과 은륜이 없기 때문에 진흥왕의 아들이 실은 더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고, 이를 반영하였는지 위서로 의심되는 화랑세기에서는 진흥왕과 사도부인의 딸(동륜, 사륜의 여동생)인 은륜공주가 나온다.

하지만 형 김동륜이 태자로 언급된 것을 봐서는 여동생 이름에 은륜을 집어넣는 것은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전개이고, 왕비에게 붙이지 않았다면 동륜 이전에 요절한 장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더 높다. 사학계에서는 거듭된 근친혼이나 당대의 높은 유아 사망률로 인해 어려서 죽은게 아닐까하는 의견을 내고 있고, 불교학계에서는 법흥왕이 금륜, 진흥왕이 은륜이라는 설을 보이고 있다.

3 생애

3.1 왕위에 오르다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사도부인. 비는 기오공의 딸 지도부인. 형 동륜태자가 죽자 어린 조카 백정[1]을 제치고 즉위한다.

신라 왕실은 자신들을 석가족의 가계에 일치시키려 노력했기 때문에 현대인이 보기에 오해할 만한 이름이 붙어버렸다. 백정은 석가모니의 아버지 '정반왕'에서 따온 이름. 정반왕은 동생 백반(白飯)[2]왕과 곡반왕을 두고 있었고, 이들이 바로 아난존자와 데바닷타의 아버지이다. 실제로 진평왕도 남동생이 둘 있었는데, 이름이 김백반과 김국반.. 그리고 진평왕의 왕후는 이름이 박마야. 이쪽은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에서 따온 이름. 따라서 진평왕이 아들만 낳았으면 "얘가 바로 석가다!"라고 할 판인데.. 딸만 태어나니 망했어요...

3.2 5년만의 폐위

즉위한 뒤 횡음하여 579년 결국 폐위되어 곧 죽었다. 기록 그대로 해석한다면 5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폭풍같이 검열삭제를 하다가 왕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 물론 패자는 말이 없으니 진실은 알 수가 없다.

일단 《삼국사기》를 보면 진지왕이 폐위되었다는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고, 진지왕이 딱히 방탕한 짓을 했다는 기록도 없다. 삼국사기 <진지왕본기>만 놓고 보면 노리부[3]를 통해 백제의 공격에 대비하고 성을 새로 쌓고 제사를 지내는 등 그냥 평범하게 일하다가 짧게 재위하고 죽은 것으로 보이는 왕이다.

방탕히 생활하다가 폐위되었다는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기록. 하지만 삼국유사를 봐도 도화녀 설화 외에 진지왕이 '어떻게 방탕한 생활을 했는지' 구체적인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진지왕이 모종의 정치적 갈등 끝에 폐위되었고, 이후로도 정치적 목적으로 폄하된 것이 아닐까 라고 보는 설도 있다.

다른 설도 있는데, 진흥왕의 중신이었던 거칠부의 지원을 받아 형인 동륜태자의 아들 백정(후의 진평왕)에게 갈 예정이었던 왕좌를 빼앗았다는 설도 있다. 그 증거로 삼국사기 진지왕본기에서 진지왕이 즉위하고 곧 거칠부를 상대등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거론된다. 그러나 거칠부가 연로해서 곧 죽음을 맞아 진지왕의 정치적 기반이 약해져서 백정을 지지하는 귀족들의 정치적 공세 끝에 결국 폐위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이므로 그냥 이런 시각도 있다는 것 정도로만 보자. 어쨌든 금방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인물이지만 제법 작지 않은 떡밥을 남긴 왕이다.

여담으로 형설출판사에서 단비(단숨에 합격하는 비법)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1•2)책에서 진지왕 부분에서 음란하다는 이유로 화백에서 폐위를 결정하여 쫓겨났다고 기재되어 있다.

그가 묻힌 진지왕릉은 폐위된 왕답게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진지왕릉으로 지정된 그 무덤이 진지왕릉이 맞느냐는 이설이 있다.

4 가족관계

아들로는 용춘(김용춘. 일명 용수)[4]이 있으며, 서자 비형랑이 있다. 용춘의 아들이자 진지왕의 손자가 바로 태종 무열왕. 《삼국유사》에는 비형랑에 대한 신비한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이걸 보면 의외로 유부녀는 그냥 놔두는 변태라는 이름의 신사지만 유부녀의 남편이 죽자마자 저승에서 돌아오는 집념의 소유자로 그려지고 있다.(...)

즉 내용에 따르면 진지왕이 사량부의 서녀(庶女)인 도화녀의 미색에 반해 그녀에게 동침을 제의했는데 도화녀가 자신이 유부녀라고 밝히며 그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에 진지왕은 쿨하게 물러났는데 그 뒤에 폐위되어 죽고 이어서 도화녀의 남편도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도화녀에게 진지왕의 혼령이 찾아와서 이제는 동침하자고 제의하여 그 혼령이 도화녀에게 며칠간 머물렀다. 그리고 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가 비형랑이라는 것이다. 비형랑은 귀신을 부리는 능력이 있었는데 진평왕이 사촌뻘인 비형에게 관직을 주어 북천에 다리를 놓는 등의 일을 시켰다고 한다.[5]

화랑세기》 필사본에 따르면 즉위한 뒤 정사를 멀리하고 쾌락에 빠져 어머니 사도태후가 폐위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미실 역시 자신에게 황후의 자리를 약속하고도 지도황후에게 빠져 말을 바꾼 진지왕에 대해 한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태후의 뜻을 알고 힘을 합쳐 폐위시켰다고 한다. 다만 화랑세기 필사본 자체가 현재까지도 위서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책이므로 그냥 참고만 하자.

5 삼국사기 기록

一年秋八月 진지왕이 즉위하다
一年 이찬 거칠부를 상대등으로 삼았다
二年春二月 신궁에 제사지내다
二年冬十月 백제가 서쪽 변경의 주와 군에 침입하다
二年 내리서성을 쌓다
三年秋七月 진에 사신을 보내다
三年 백제에게 알야산성을 주다
四年春二月 백제가 성을 쌓아 길을 막다
四年秋七月十七日 왕이 죽다

실제로 기록만 따지고 보면 이 사람이 폭군인지 확실히 의심스러워진다. 그리고 백제 침공을 받은 사람이 바로 노리부인데 진평왕 때 상대등을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노리부는 바로 김유신의 작은 할아버지이다. 당시 백제는 3만 대군이라는 엄청난 군사로 침공했는데 이를 막았다. 그렇다면 노리부가 진지왕을 배신했을 수 있는데 나중에 김춘추와 사돈이 되었다는 것은 원수와 손을 잡았다는 이상한 상태가 된다.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6.1 드라마 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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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왕 전문 배우' 임호가 맡았다. 그런데 임호가 그간 맡은 왕 중 최단시간에 폭풍처럼 사라지는 왕이 돼 버렸다.

왕이 되기 위해서 미실과 동침하고 진흥왕의 유언을 얼씨구나 조작하여 자신이 진흥왕 다음 왕으로 등극하였다. 허나 미실의 세력이 워낙 급속도로 커졌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미실이 협조 조건으로 내 건, 그녀를 황후로 만들어주기로 한 약속을 없던 것처럼 하려고 한다.

결국 미실은 진지왕이 이용가치가 없어졌다고 판단, 이 사람과의 사이에서 난 당시 갓난아기였던 비담까지 버리고, 평소 묵혀 두었던 원화의 신분을 이용, 화랑들의 낭장결의로 결국 진지왕을 왕좌에서 탄핵해버린다.

그 다음 거취는 어느 경우에도 언급되는 경우가 없고(심지어는 아들들인 김용춘, 김용수에게도) 결국 2회 분량에 폭풍처럼 시청자들에게서 잊혀져 갔다... 다만 나중에 진지왕이 자신에게 비담을 부탁했다는 문노의 언급이 나오긴 나온다.

하지만 후에 미실김춘추에게 직접적으로 '조부이신 진지왕을 내가 죽였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의 결말은 대충 예상할 수 있다.

6.2 드라마 대왕의 꿈

담당 배우는 손효원.

김용춘비형의 아버지이며, 김춘추의 할아버지가 된다. 여기서는 여타 사극과 다르게 부패한 신라 사회를 개혁하려는 개혁가로 묘사된다. 그 때문에 기존의 귀족들과 대립하다가 끝내 친어머니인 사도태후와 숙흘종을 위시한 귀족세력에 의해 폐위되고 만다.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

역시 위 2.1번 항목과 마찬가지로 폭풍처럼 사라졌다(...) 드라마 전개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1. 후에 진평왕이 되는 인물. 백정은 이름이다.
  2. 실제 뜻도 흰 쌀밥이다!!
  3. 김유신의 큰 할아버지
  4.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동일인물로 나온다. 《화랑세기》 필사본에만 용수가 형이라고 나온다. 다만 《화랑세기》는 위서논란이 있기때문에 곧이 곧대로 믿을수가 없다.
  5. 건국대학교 사학과의 김기흥 교수는 자신의 저서 천년의 왕국 신라에서 비형랑은 용춘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