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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元萬
1908년 8월 11일 ~ 2001년 10월 22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도암(道巖)이다.
1908년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1928년 일본 도요대 예과를 중퇴하였다. 1952년 용산고등공립학교(현 서울 용산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53년에는 경인합동음료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자유당 황성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 신파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듬해인 1961년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당 서민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1월 신민당 정치훈련원장이 되었다. 같은 해 2월 치러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승환과 복수 공천을 받아 서울특별시 용산구-마포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신민당 부총재가 되었다. 1974년 8월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 총재 체제가 출범하자 정일형 등이 창설한 계보인 화요회에 가입하였으며 비주류가 되었다. 그리하여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 때는 신도환, 고흥문 등과 함께 이철승을 지지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노승환과 복수공천을 받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본인은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를 은퇴하였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58 |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용산구 을) | 민주당 | - | 당선 | |
1960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용산구 을) | 민주당 | - | 당선 | |
1963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용산구) | 민주당 | - | 낙선 | |
1967 |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용산구) | 신민당 | - | 당선 | |
1971 | 제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용산구) | 신민당 | - | 당선 | |
1973 | 제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용산구-마포구) | 신민당 | - | 당선[1] | |
1978 |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용산구-마포구) | 신민당 | - | 낙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