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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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철안, 박순천, 박현숙

金喆安
1912년 04월 04일 ~ 1992년 01월 14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12년 경상북도 대구군(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어머니를 따라 경상북도 영덕군으로 이주하여 영덕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검정고시로 1931년 일본 메이지 대학의 정치학과 교외생으로 입학한 다음 강의록을 독학하였다. 한편 금릉학원 부설 금릉유치원 보모로도 근무하였다.

8.15 광복우익에 몸담아서 한국독립촉성 애국부인회 김천군 지부에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부인회 후보로 경상북도 김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권태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부인회 후보로 경상북도 금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여영복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였고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56년 대한민국 국회 보건사회위원회(현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우돈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반민주행위자로 지정되어 공민권이 제한되고 피선거권이 상실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김천시-금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백남억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선여부비고
1948제헌 국회의원 선거 (경상북도 김천군 갑)대한부인회-낙선
1950제2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북도 금릉군)대한부인회-낙선
1954제3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북도 금릉군)자유당-당선
1958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북도 금릉군)자유당-당선
1960제5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북도 금릉군)자유당-낙선
1963제6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북도 김천시-금릉군)자유당-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