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연

대한민국드러머 및 방송인. 1967년 05월 01일 생.

참고로 성씨가 남궁(南宮)이고, 이름은 연(演)이다. 하지만 성씨가 (南)씨고 이름이 '궁연'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이런 오류를 피하고자 그의 이름을 남궁 연으로 띄어쓰기하여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1] 남궁연 또한 본인의 트위터 닉네임을 한자 이름을 띄어쓰기한 형태로 쓰고 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외손자로 잘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게는 윤 전 대통령의 아우인 윤완선 옹의 외손자, 즉 '외손자(外從孫子)'라고 한다. 손자(曾孫子)가 아니다

1986년 록밴드 백두산의 드러머[2]로 TV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민 이래 윤상,이문세 등의 백밴드 드러머를 거쳐 1993년부터 '남궁연 악단'을 결성하고 그 해에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참고로 백두산의 드러머였다는 이야기는 논란이 있는데 백두산의 다음 공식 팬카페에서 백두산의 리더인 유현상이 드러머로 활동한 전적은 없다고 부정했고, 오히려 남궁 연을 디스한 적이 있다.# 요점은 백두산에서 활동을 한 적이 없는데도 프로필상에서 백두산을 팔아먹어서 기분이 몹시 나쁘다고, 진실의 향방은 알 수없지만 같은 기간에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탑밴드를 출연하고 남궁 연과 잘지내는거 보면 어떤 오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윗에 말했듯 백두산의 정식 드러머[3]는 아니다. 다만 몇 번 정도 세션으로 무대 선 적 있어서 정식은 아니고 객원맴버인 건 확실한 것 같다.[4] 사실 90년대 무대에서 남궁연은 대형 가수의 네임드 세션맨 이미지가 강했단 건 사실인지라..


2002년 가을에는 '남궁연 악단'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하여 나름대로 인기를 얻으며 활동하기도 했는데, 물론 남궁연은 메인이긴 해도 드러머로만 나오며 객원보컬들을 섭외하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활동하였다. 타이틀곡은 '너도 당해봐'로 펑키 스타일의 신나는 리듬이 인상적이며, 특히 뮤직비디오 인트로에 절친 신해철이 찬조 출연도 해 주는 등 나름대로 인지도도 있던 편이었기에 라이브 밴드 연주로 MBC 음악캠프 무대를 한 번 서기도 했는데,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한 원곡의 객원보컬이 안나오고 MBC 소속 합창단 두 명으로 떼우는 등 사실상 남궁연의 드럼 쇼에 가까운 무대였다.

물론 컨셉 자체가 기존 락밴드의 정석적 구성에서 많이 탈피하여 밴드의 일반적인 드러머 포지션인 맨 뒤편이 아니라 보컬보다도 더 튀어나와 무대 맨앞에서 위치해서 드럼을 치는 방식[5]이었던지라 방송무대 또한 남궁연의 포커스에 맞출 수 있게끔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 무대는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화제로 돌았는데 게임작곡가 ESTi하이텔에서 "정말 신나는 표정으로 마음껏 두드려댄다. 공중파 가요순위프로에서 드럼이 메인이 된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무대"라고 평하기도 했고, 가수 김종서는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해서 "자기가 드러머인데 맨 앞에 서다니 고집이 센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후속곡으로는 보고 싶습니다가 있는데 나름대로 명곡이다. 이후 2004년에 솔로 2집을 발표하고 타이틀곡 Show Me Tell Me로 활동했으나 밴드 1집에 비해 별 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사라졌다.

본업은 음악이지만, 만능 엔터테이너의 원조로 모든 일에 열정적이고, 해내려고 하는 의지가 강한 인물이다. 이 나라 고딩들을 잠들지 못하게 했던 새벽 3시의 인기 라디오 프로 '고릴라디오'의 DJ를 무려 6년이나 맡았고[6], 이 외에도 영화평론가,시트콤 카메오,독립영화 감독[7] 등을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 네티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SBS '한밤의 TV연예'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고, 라디오 고정 패널로 활동한 경력도 상당하다.

마왕 신해철과는 매우 절친한 사이. N.EX.T 2집 이후부터 콘서트에서 퍼커션 세션을 맡았고, N.EX.T를 해체한 이후에도 신해철에게 공연, 앨범작업 등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야심만만에 동반 출연해서 프로그램 해커(...)[8] 잡는 최종보스로 군림했다. 김제동도 못 잡는 신해철을 신해철의 프로젝트 'MONOCROM' 투어에도 함께 했는데, 대화 스킷에서 '일상으로의 초대'를 '일산으로의 초대'[9]로 소개하며 '돈 좀 부쳐줘/내 통장 속으로'로 즉석 개사하기도(…) 2005년 2월 26일에는 당시 같은 시간대에 진행하던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MBC)과 남궁연의 고릴라디오(SBS) 사이에서 사상 초유의 스튜디오 간 실시간 전화연결을 벌였다. 그리고 방송 직후 남궁연을 찬양하는 멘트를 남긴 고스 청취자들에 대한 신해철의 피의 숙청이 이어졌다(…). 이 외에도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함께 프로젝트 앨범을 작곡했고, 신해철이 기타리스트 김세황의 결혼식 주례사를 서 달라고 부탁하자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방송 진행자 시절 보여준 반듯한 만물박사 이미지와는 달리 고딩 때는 속칭 노는 애였다고 한다. 얼마나 골 때렸냐면 어느 날 같은 반 학생과 싸움을 해 그 학생을 거의 반 죽여놨다. 그래서 부모님이 학교로 소환되셨는데 부모님이 학생주임 선생한테 선처를 요구하기는 커녕 저 놈 경찰에 신고해서 사람 좀 만들어달라고 했다고(...)[10] 그도 그럴 것이 남궁연의 아버지는 학계에서도 알아주는 대학교수였고, 외조부가 윤보선 대통령의 동생이라 정계-학계에서 빠방한 남궁연의 부모님은 당연히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는 억압받는 분위기에서 지냈으니...

갓 스물 때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녔다고 하는데 남궁연의 나이 29에 어머니가 직장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 마저 3년 후에 돌아가시며 부모님과의 갈등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두 부모님께 불효했던 후회로 맨머리를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남궁연이 음악으로 전념하기 전에는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11] 하지만 신학을 접고 상대적으로는 늦은 스무살에 드럼을 독학으로 배웠다고[12][13]

여담으로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도 출연했으며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한때 이휘재가 나와 결심했어!를 외치며 히트친 인생극장 특유의 주제곡이 남궁연이 작곡한 것이다.

2012년 9월, 나는 가수다 2를 위해 재결성한 시나위에 드럼으로 합류했다.

여담으로,아이폰5광고 나레이션을 맡았다고 한다.

내일도 칸타빌레에도 출연했다. 바로 타니오카 하지메 포지션 캐릭터인 안건성 역. 일본판 배우가 오리지널 배우였다면 이 쪽은 진짜 음악가이다. 대신 대머리라는 설정은 당연하지만 남궁연 사정상...

흔히 쓰레기통으로 불리는 맥 프로(신형)를 샀다고 한다. ###

1999년에 스타크래프트 앨범인 스타크래프트 OST vol.1에 작곡진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1. 참고로 현행 한글 맞춤법에선 성과 이름을 붙여써야 하지만 이 경우에는 이렇게 성과 이름을 띄워서 쓰는 것이 예외적으로 허용되므로 이 표기법은 전혀 문제될게 없다.
  2. 정식 드러머 아니고 몇 번 정도 세션으로 무대에 선 적 있다.
  3. 맴버
  4. 참고로 드럼은 김도균한테 배웠다고 한다.
  5. 신해철의 영국 유학 영향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일례로 당시 모노크롬은 기타의 크리스 상그리디가 앞으로 나와있는 것 외에도 댄서(진짜로 비보잉만 한다), 래퍼 등을 같이 무대에 올려서 뭔가 축제 장터 악단스러운(...) 느낌을 많이 냈다.
  6. 1기 '고릴라디오'는 새벽 3시에 진행됐고, 2기는 시간을 옮겨 밤 10~12시 슬롯에서 방송됐다.
  7. 전두환이 정치자금 청문회에서 '본인은 29만원밖에 없어'라고 거짓말을 했다가 몸에 장착된 거짓말 폭탄이 폭발해 죽는다는 내용의 영화다!
  8. 토크 예능에 나오기만 하면 씬스틸러가 된다고 해서 남궁연이 붙인 별명. 방송 프로그램도 program이니까.
  9. 당시 신해철이 돈이 궁해 일산으로 집을 옮긴 후 빌빌대며 만날 자기한테 하는 얘기가 돈 타령이었다고...
  10. 이 사건은 실제로 신문기사에 단신으로 오르기도 했다 카더라(...)
  11. 가끔 CCM 계열 세션들과 함께 공연을 갖는 걸로 유명하다.
  12. 이렇게 되면 1986년에 백두산에서 드럼을 쳤다는 얘기랑 어느정도 모순된다. 67년생인 그가 20살에 드럼을 독학으로 시작하였으면 86년에 시작했을텐데 국내 최고의 메탈밴드가 드럼 초보자를 선뜻 멤버로 영입 하기는 힘들테니까. 물론 시작한지 몇달만에 초고수가 된 괴수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말이 안되는데다 지금 실력을 보면(...)
  13. 인지도에 비하면 의외지만 프로세션맨들 사이에서는 드러머로서 뛰어나다고 말하기엔 힘들다는 평가가 대세. 독학으로 키운 실력의 단점을 여전히 상당수 가지고 있는데다 YOSHIKI만 하겠느냐만은 발전이 더디다고. 물론 드럼 외적인 면으로도 잘 나가는것에 대한 부러운감도 없지 않을테니 어느정도 거슬러 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