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문화

서유럽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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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상이 상당히 유명하다지만, 정확히 말하면 여성복 한정이며 그것도 지역에 따라서 같은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상당히 다른 편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통의상은 홀란트 북부 폴런담(Voldendam)이라는 마을에서 입는 형태이다.

2 음식

치즈는 네덜란드의 명물이며, 하우다 치즈, 에담 치즈로 특히 유명하다. 유제품 생산이 많은 네덜란드답게 지역마다 각기 독특한 치즈가 있기도 하고. 더불어 하이네켄 맥주를 빼놓을 수도 없다. 이외 네덜란드 전통음식으로는 에르텐 수프, 하링, 팬케이크 정도.

사실 영국 요리의 명성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영국 못지않게 주변국들로부터 음식을 못 만든다는 편견이 있던 동네였다. 19세기에 어떤 관찰자는 "이곳 사람들은 그저 생존하기 위해 먹으며, 또한 매일 똑같은 것만 먹는다."라고 평할 정도였다.(『커리의 지구사』 참조) 그러나 현대에는 과거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다양한 향신료를 응용한 요리 기법이 많이 수입되고 주변 유럽 지역 및 동유럽, 아랍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식당을 많이 차려서 식생활에 딱히 부족함은 없다. 문제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때 정말 간을 못맞춘다는것. 물론 케바케지만 완전 짜거나 완전 싱겁게 먹는다. 자세한 건 네덜란드 요리 항목을 참고할 것.

3 종교

원래부터 상업국가로서 개방과 관용이라는 속성을 중요시하는 문화적 특성상 종교를 갖고 노골적으로 오지랖 부리거나 탄압하는 경향은 없었으며 이는 외국을 돌아다닐 때도 마찬가지라 에도 막부 시대의 일본과도 수교하였던 유일한 유럽 국가이기도 하였다. 당시 에도 막부는 기독교의 유입이 막부 체제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여겨 유럽 국가와의 수교를 통제하였지만, 네덜란드만은 포교에 거의 신경쓰지 않아서[1] 제한적인 상업 활동이나마 허용할 수 있었던 것.

다만 네덜란드 연방공화국 시대부터[2] 연합왕국 시기까지는 칼뱅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가톨릭, 아르미니안주의자,[3] 루터교, 재세례파, 유대교등의 비(非)칼뱅교 신자들은 '이단자' 혹은 '이교도'로 간주되어 드러내놓고 종교활동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건물 지하나 맨 윗층 다락방 등에 'schuilkerk'라는 비밀 집회소를 마련하여 거기서 종교활동을 해야만 했으나 그럼에도 동시기 다른 나라들보다는 상당히 유연했다. 그러다 벨기에가 떨어져나간 뒤 현재와 같은 국가 체계를 갖추게 되면서부터 종교와 사상의 자유가 완전히 인정받게 되었고 개신교, 가톨릭, 우파 세속주의, 사회주의의 네 진영별로 각기 다른 성향의 언론사와 학교, 정당 등을 조직하였는데 이러한 공존형태를 verzuiling(기둥화)[4]라고 부르며 후술할 공영방송 시스템에도 영향을 끼쳤다.

2차 대전 이후로는 세속화와 탈종교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개신교는 교단 분열과 2차대전 당시 교회가 취한 미온적인 태도[5]에 충격을 받은 국민들이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여기에 68운동의 영향까지 겹치면서 네덜란드 사회에서 영향력을 잃어버렸다. 그 동안 가톨릭교회는 1980년대까지는 개신교를 역전하고 현상유지를 하는 듯 하다가 90년대 이후로는 신자수가 급감하여[6] 서유럽에서는 일찍이 무종교 혹은 무신론자(47%)가 대다수인 나라로 변모했다.[7] 2004년 5월에는 국교회[8]와 개혁교회연합,[9] 루터교가 단일 교단으로 통합했다.[10]

최근에는 여느 유럽 국가들처럼 난민과 이민자들을 통한 무슬림 인구가 증가하면서 반이슬람 감정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식민지로 부려먹던 인도네시아에게도 처음에는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인도네시아를 야금야금 먹을 때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면서 종교 가지고 억누르며 죽어라 덤비는걸 자신들이 겪었기에 일절 종교로 간섭하지 않았다. 포르투갈이 지배한 동티모르가 거의 모두 천주교를 믿는 것과 대조적.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기억을 잃자 결국 여기도 개신교를 인도네시아에 강요하고 차별대우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제국주의 나라와 같이 엄청나게 약탈하고 뜯어가긴 매한가지라 인도네시아에선 네덜란드에 대한 반감이 깊게 남아있다. 네덜란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지만 당연히 인도네시아에선 무시한다.[11]

3.1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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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까지는 베네룩스 3국 중 유일하게 개신교 위주의 문화를 갖고 있던 나라였다.(1849년의 종교 분포도) 사실 종교개혁 초기만 해도 카톨릭의 비중이 더 높았지만[12] 스페인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전쟁 와중에 현 네덜란드의 도시들 대다수가 개신교 진영으로 들어가면서 남부를 제외한 대다수 지역들에서 개신교가 퍼지기 시작했고, 성당을 교회로 개조하는 사례도 이때에 생겨났다. 칼뱅파에 의해 종교개혁이 주도된 관계로 독일 등 루터교 국가에 비하면 장식적인 면에서 매우 절제된 인테리어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개신교의 리즈시절이었던 19세기 중반~20세기 초에는 대놓고 개신교 정당이 힘을 쓰기도 했다.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의 창립자로도 유명한 아브라함 카이퍼[13]가 활동했던 반혁명당[14]이 대표적, 현재 이 정당의 후신은 네덜란드 기민당(CDA)이지만 과거 반혁명당 시절보다는 기독교색이 좀 옅어졌다.[15] 물론 현대에도 개혁당(SGP)[16]이나 기독교연합당(CU)처럼 개신교색이 매우 짙은 정당이 존재한다.

한국의 장로교와 비교하면 비슷한 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상당수 존재하는데, 일단 대체로 자영업인 교회가 드물고 임직에 있어서 기한이 존재하므로 목사가 부재중(vacant)인 교회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17] 또한 심방(교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도 목사가 아닌 장로가 맡는다.

역사적, 신학적 이유로 교단이 상당히 분열되어 있었으나 2차대전 이후 개신교 교세의 위축과 함께 어느 정도 군소교단들은 정리되었으며, 2016년 기준으로 네덜란드 개신교단(PKN),[18] 화란개혁교회연합 해방파(GKv),[19] 기독개혁교회(CGK)정도가 한국 장로교에서도 잘 알려진 교단들이고, 그 외에 재건개혁교회(HHK)Gereformeerde Gemeente라는 이름이 붙은 교회들도 있는데, 매우 보수적이라 여자들이 교회에 갈 때는 성당에서 미사보 쓰듯 모자를 꼭 쓰고 들어가야 한다. 또한 유럽 개신교 치고는 교인들의 출석률이 준수하고 소폭 성장세를 유지했던 교단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5년경부터는 보수주의 교단들도 성장세가 둔화되고 일부 교회와 관련 기관들이 폐쇄되는 등 먹구름이 드리워가는 상황이다.

바이블벨트로 통칭되는 지역들에선 지금도 일요일마다 교회 가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으며, 특히 마르켄(Marken),[20] 스파켄뷔르흐(Spakenburg)나 스탑호르스트(Staphorst)같은 지역들에서는 아예 전통의상을 입고 교회를 가기도 한다. 그리고 주일학교가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예배시간에 아이들과 어른들이 같이 앉아서 예배를 보는 것이 관습이라고 한다.

지금도 네덜란드가 한때 개신교 국가였다는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아직 팔리거나 마개조가 되지 않은 빛바랜 개신교 교회 건물들이고, 다른 하나는 왕실 그 자체이다. 왕비는 안나 파블로프나와 막시마 소레기에타처럼 다른 종교를 믿어도 상관 없지만, 아직도 국왕이나 여왕 자리에 오를 사람은 개신교도여야 한다.

당연하지만 스코틀랜드와 함께 한국 개신교에 꽤나 많은 영향을 준 유럽 국가이다. 상술한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과 그 후예들까지 확대하면 헤르만 훅세마와 코넬리우스 반 틸이 한국 신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 그 예이며 캄펜에 있는 신학교[21]는 부산과 천안 고신대학교와 자매관계이기까지 하다. 비록 근대에 영미권과 같은 선교사 파송은 단 한 번도 없었으나 장로교와 같은 칼뱅주의로써 신학적, 교리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통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언어적인 장벽만 극복하면 공감하기 쉬운 수준이고, 21세기에 와서도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보수적인 신학 분위기가 남아있는 점도 한국의 장로교와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한몫 했다.

4 성(性)

매우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나라로 유명한다.오죽하면 나라이름부터 (和蘭) 일명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 인권 측면에서도 상당히 개방적인 편으로, 동성결혼이 합법인 대표적인 유럽 국가다. 일단 매춘이 합법이고, 포르노 물품도 합법이다. 심지어는 TV에서 유흥업소 광고를 하기도 한다.[22] 2차대전 위령비와 홍등가가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는 좀 괴이한 나라이기도 하다.

물론 네덜란드 사람도 사람이라 모 관광객에 의하면 유흥업소에 가는 사람에 대해 "어휴 쯧쯧"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골에 있는 보수적인[23] 노인들은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5 미술

네덜란드는 미술이 굉장히 발달한 나라이다. 그러나 위의 종교 문단에서 언급했다시피 종교와 관련된 미술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16~20세기에 걸쳐 정물화나 세속적인 풍경화, 추상화가 많이 발달한 편이다.

바로크 미술의 거장 렘브란트나 프란스 할스, 후기 인상파의 최고봉인 빈센트 반 고흐, 차가운 추상의 아버지 피트 몬드리안 등 걸출한 화가들을 많이 배출했다.

6 방송

네덜란드의 공영방송인 NPO는 특이하게도 (NOS를 제외한)여러 가맹방송국들이 회원규모에 따라서 방송시간을 배정받아 프로그램을 제작-송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이러한 방식은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 네덜란드 특유의 관용적인 문화로 인해 타 국가들과 달리 중립적인 성향의 방송국 하나만 운영하지 않고 종교별, 이념별로 특화된 여러 방송국을 허용하되, 전파낭비를 막기 위해 주파수와 채널 수를 제한하면서 아예 시간별로 쪼개버린 것. 라디오만 있던 1920년대부터 중립 성향인 AVRO, 개신교 성향인 NCRV[24]와 VPRO[25] 가톨릭 성향인 KRO, 사회주의 성향인 VARA[26]가 가장 먼저 등장한 방송국들이고 1950~60년대 들어서 좀 더 다양한 성향으로 특화된 공영방송국들(EO[27], TROS 등)이 등장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는 네덜란드에서 종교적 영향력이 약화된 현실 및 예산문제를 반영하여 일부 방송국이 통폐합되었다.[28] 광고방송은 1965년 STER(네덜란드 방송광고공사)가 설립되면서 라디오에서 먼저 시작했고 TV 블록광고는 컬러TV가 개시된 1967년에 시작했다.[29] 대다수의 방송국들은 암스테르담이 아니라 남동쪽으로 19km 떨어진 힐베르쉼(Hilversum)에 있다.

민영방송으로는 RTL, SBS가 있다. 그러나 나라의 규모가 규모다 보니 RTL을 제외하면 딱히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지만 네덜란드의 TV 프로그램 제작 회사(Endemol, Talpa Media Group 등)들이 프로그램 포맷을 전세계에 수출하고 제작에도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TV 프로그램계의 히든 챔피언이라고 할 수 있다. SBS 계열사 중 베로니카(Veronica)는 좀 특이한 케이스인데, 1960~70년대 북해에다 배를 띄우고 자유라디오 방송을 하다[30] 네덜란드 당국에 찍혀서 잠시 공영화되고(...) 1990년대에 재민영화된 뒤 여러 과정을 거쳐 SBS 그룹 소속이 된 것이다.

전세계적 인기 프로그램인 1대 100, The Voice, 빅 브라더, Wheel of Fortune, Deal or No deal[31]의 포맷이 바로 네덜란드에서 나왔다.

의외겠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날로그 화면조정 화면이 바로 네덜란드에서 만든 것이다.

2015년에는 네덜란드판 내귀에 도청장치(?) 사건이 일어났었다.(##)

7 영화

로보캅, 토탈 리콜, 원초적 본능, 쇼걸, 스타쉽 트루퍼스 등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폴 버호벤(Paul Verhoeven, 파울 페르후번)이 네덜란드 출신이다. 당시에 상당히 센세이션을 일으켜서 지금도 네덜란드 영화 흥행 수익 1위는 이 사람 영화다.

하지만 네덜란드 영화 자체론 그다지 인지도가 없다. 그나마 딕 마스(Dick Maas)의 영화들이 잘 알려진 편. 국내에도 알려진 영화라면 두 낫 디스터브가 있다. 사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나름 융성하려고 하는듯 했다. 흥행작도 나오고 걸출한 감독들도 나오고... 근데 딱 폴 버호벤이 헐리우드 넘어간 시점부터 망테크를 타는 바람에 (...) 상기한 딕 마스 말고는 히트작이 하나도 없던 암흑기도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낫긴 하지만 그래도 영 힘을 못 쓰는 편. 자국 영화가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다. 폴 버호벤 이후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영화 감독이라면 알렉스 반 바르메르담 정도가 있다. 사실 유명세로 보자면 테오 반 고흐가 더 유명하긴 한데 그 쪽은 영화보다 살인사건이 유명하다. 안습.

가족 영화가 유달리 흥하고, 제작 지원을 많이 해주는 나라기도 하다.

8 음악

프랑스와 더불어 일렉트로니카 장르가 상당히 발달한 나라이다. 하드스타일이 탄생한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 세계구급 DJ인 마틴 개릭스, 하드웰, 티에스토, 아민 반 뷰렌, 아프로잭, Angerfist가 모두 네덜란드 출신 DJ이다.

네덜란드에서 제일 큰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인 '암스테르담 뮤직 페스티벌', 일명 AMF라는 행사가 있다.

2013년 DJMag에서 실시한 DJ TOP 100에서 상위 10명중에 6명이 네덜란드 출신 DJ였다(...). 거기에 세계 최대의 EDM 레이블이라 불리우는 Armada Music과 Spinnin' Records도 모두 네덜란드에 있다.

또한 영국에서 시작된 레이브장르를 이어 하드코어 테크노씬이 완성되는데에 큰 영향을 끼친 국가이다.
해피 하드코어,개버등 그 시대 메인스트림 하드코어 테크노는 거의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었다.

그 영향력인 대단해서 더 보이스 오브 홀란드에도 디제이가 공연을 하고 국왕 취임 기념 왕립 오케스트라와 디제이의 콜라보레이션도 하지를 않나.. 또 2010년대 초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렉트로니카 프로듀싱 열풍이 불기도 하였다.

마이클 잭슨이 꽤나 인기를 끈 국가들 중 하나이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네덜란드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으며 투어도 많이 진행했다. 1988년 Bad World Tour 때 최초로 로테르담에서 6월 5일부터 3일 연속으로 공연했고, 1992년 Dangerous World Tour 때 역시 로테르담에서 6월 30일과 7월1일에 페예노르트 스타디움에서 공연했다. HIStory World Tour 때 1996년에는 9월 28일, 30일, 10월 2일에 암스테르담 아레나에서 공연했고 1997년 6월 8일과 10일에 역시 암스테르담 아레나에서 공연했다. 총 공연횟수는 10회이며 공연도시는 2개시 관중 총합 48만 6천명에 전회매진을 기록했다.

9 관련 항목

  1. 서양인들을 입국심사할 때 성모 마리아 상본을 밟고 오게 했는데, 네덜란드 사람들만이 망설임 없이 밟았다고 한다.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게, 페리 제독 이전에 일본과 교류했던 서양인들은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덜란드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앞의 두 나라는 당시 유럽국가 중 가장 열혈(?)로 타오르는 가톨릭 신심을 자랑한 반면, 네덜란드는 당시 개신교 국가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축에 속했다. 물론 개신교에서도 성모 마리아는 매우 중요한 네임드이지만, 가톨릭에서의 대우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보니(...)
  2. 이 당시만 해도 개신교 인구는 의외로 10% 남짓에 불과했다.
  3. 지금도 '레몬스트란처'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데, 과거에 국가 단위로 철저하게 제재받은 역사 때문에 듣보잡 취급을 받는다.
  4. 네덜란드를 떠받치는 4개의 기둥이라는 소리이다.
  5. 물론 그에 못지 않게 나치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다 목숨을 잃은 목회자와 신도들도 많았다.
  6. 가톨릭이 23%, 신교도가 10%로 이는 20세기 초반 40%, 60%보다 많이 감소한 비율이다. 명목상으론 아직까지 가톨릭이 제1의 종교집단이라지만 실질적인 미사 참례율은 1~2% 수준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7. 그래도 의외로 서유럽 국가 치고는 개신교 신앙을 유지하는 지역들이 존재한다. 자세한 건 바이블벨트 문서를 참조하자.
  8. Hervormde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개혁교단
  9. 아브라함 카이퍼에 의해 국교회에서 분리되었던 교단. 극초기에는 애통(Doleantie)파라고 불렸다.
  10. 1962년부터 교단 일치와 통합 운동을 진행해오고 있었다.
  11. 다만 이것도 케바케라 이리안자야나 말루쿠 그리고 화교 같은 소수민족들은 오히려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민족 및 지역 간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인도네시아의 종교 문단과 기독교공포증 문서를 참조하자.
  12. 반대로 현 벨기에 지역에 개신교 비중이 높았다.
  13. 그 자신도 총리로까지 취임했다.
  14. 종교사상가 겸 정치인인 흐룬 판 프린스터러가 창당했으며, 프랑스식 세속주의와 혁명주의를 반대한다는 뜻으로 지은 당명이다.
  15. 1977년 반혁명당과 가톨릭국민당, 기독교역사동맹이 합당하면서 현재와 같은 당명으로 변경하고, 교회일치주의 성향으로 전환했기 때문. 그래도 기독교색이 독일 기민련보다는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16. 유럽에서 유일하게 기독교 우파와 비슷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규모는 군소정당이지만 역사가 100년 가까이 되며, 바이블벨트 지역에서는 말 그대로 꾸준한 지지를 얻고 있다.
  17. 이 경우에는 장로가 미리 준비된 설교 원고를 읽어내려가는 식으로 예배를 진행한다.
  18. 교단 자체는 진보적인 면이 강하나 '개혁연맹'이란 보수파도 존재한다.
  19. 1944년 개혁교회연합에서 교권 및 신학적 분쟁으로 분리된 교파이다.
  20. 이 마을도 전통의상으로 상당히 유명한데 가톨릭 마을인 폴런담과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서 상당히 대비된다.
  21. 정확히는 원래 두 곳이 존재했으나 먼저 설립되었던 총회파 아우더스트라트 신학교는 본문에 상술한 교단 통폐합의 영향으로 2012년 폐교되었고, 현재는 보통 브루데르베흐 15번에 위치한 해방파 신학교를 가리킨다.
  22. 1980년대 한때 독일이 포르노를 규제하자 네덜란드에 방송국을 세워서 독일쪽으로 포르노 방송을 했다. 부산에서 일본 공중파가 잡히는 이치와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
  23.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네덜란드 사회가 완전히 세속화된 것은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이다.
  24. 이름은 '기독교방송연맹'이지만 EO가 설립된 이후로는 비종교적인 프로그램의 비율이 많이 늘었다.
  25. Vrijzinnig Protestantse Radio Omroep, NCRV와 달리 소위 말하는 '자유주의'성향의 개신교 입장을 대변한다.
  26. Vereeniging van Arbeiders Radio Amateurs, 네덜란드 무선방송협동조합
  27. Evangelische Omroep(복음주의방송), NCRV보다 개신교 관련 프로그램의 비중이 더 많다.
  28. 현재 KRO와 NCRV는 모두 실질적으로 종교방송이 EO와 RKK로 넘어갔기 때문에 결국 통합되었고, AVRO와 TROS도 겹치는 부분이 많아 방송국 자체는 물론이고 이름도 하이픈 없이 쿨하게 붙여버렸다.
  29. 다만 광고 자체는 1970년부터 컬러화되었다.
  30. 이런 식의 방송을 해적방송이라고 불렀다. 당시 네덜란드 뿐 아니라 영국과 북유럽 국가들도 바다에다 배를 띄워서 자유라디오 방송을 했었다.
  31. 우리나라에서는 tvN에서 신동엽의 Yes or No란 이름으로 로컬라이징을 거쳐 방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