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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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本主義, fundamentalism.

1 설명

...그[1]는 아주 오랜 세월 골지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열정적으로 믿었고 그렇게 가르쳤다...어느 월요일 미국 세포학자가 초청되어 골지체가 실재한다는 아주 확실한 증거를 제시했다.강연이 끝나자 노학자[2]는 강당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가 그 미국인과 악수를 하면서 열띤 어조로 말했다. "친애하는 동료여,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내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우린 손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쳤다. 근본주의자는 그런 말을 결코 할 수 없다.

리처드 도킨스 - 《만들어진 신》 中[3][4]

원리주의[5]라고도 한다. 독실한 신앙이 종교 교리에 충실한 것이라면, 근본주의는 여기에 경전의 내용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절대적 준수와 타종교, 심지어 같은 종교 안의 타종파에 대한 극단적인 배타성을 주장한다. 보통 엄격함이나 과격함 여부에 따라서 전통주의(Traditionalism)에서부터 극단주의(Extremism)까지 다양한 뉘앙스로 불리기도 한다.

안 그런 집단들도 있긴 하지만 흔하게 알려진 근본주의 집단들은 대부분 세속 사회와 충돌하여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교리에 확대해석한 나머지 경전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지키고 따르기 때문이다.[6] 의도만 보면 말 그대로 경전의 말씀대로 따르자는 건데 종교가 만들어진 당시의 상황이나 가치관이 현대인의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에[7] 문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근본주의 하면 보통 이슬람이나 그리스도교(그 중에서도 특히 개신교 계통) 등 일신교 계통 종교들을 떠올리기 쉬우나 실제로는 다른 종교도 근본주의는 당연히 존재한다.

근본주의자들은 나라에 따라서 권유 수준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막장스런 나라들은 아예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서 아예 나라 전체나 특정지역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경우도 있다. 간혹 예외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경우[8]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드문 수준이며 그나마 세속 문화를 존중하면서 자기네 공동체 안에서만 근본주의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만 그러하다.

한국의 경우 사실 근본주의 중에서도 막장에 치닫은 수준의 종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문제는 분명 있을 지언정 다른 나라들처럼 타 종교인을 상대로 살해나 테러 등의 종교 분쟁이 미약한 수준인데대신 돈독이 매우 심각하게 올라 있는게 함정 치안이 좋은 것도 있지만 도올 김용옥에 의하면... 한국은 샤머니즘적 기복신앙과 유가적 현실주의가 뿌리깊게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종교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는것.

근본주의나 극단주의와 같은 말의 문제는 이것이 일부 이단 논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가령 종교적 가르침에 의한 범죄가 일어났다 하면 해당 종교인들이 발벗고 나서서 자신들이 따르는 종교의 이름값을 지키기 위해 "이건 근본주의자들이나 극단주의자들이 책임이지 온건(moderate)주의자들은 상관 없음"이라고 하면서 비판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종교에 의한 테러가 많이 발생하는 서구권 등지의 경우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에 책임을 돌리지 특정 종교의 명백히 존재하는 교리에 대해서는 가치판단이나 비판이 쉽게 무력화된다는 폐해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부 이단 논리가 지지를 얻는 순간 세를 확장하여 자신들과 믿음의 방향이 조금 다른 집단에 이단이라는 식으로 낙인을 찍는다는 것에 있다.

아래 항목도 근본주의와 극단주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서술된 부분이 더러 있고, 무엇보다 종교적 교리와는 상관없는 민족주의 또는 부족주의적 동기에 의한 행동의 결과물을 근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오류가 많이 범해지고 있다. 가령 불교 항목에 있는 이슬람 대 불교라든지 힌두교 항목에 나와있는 힌두교 대 타 종교라든지 하는 문제들은 신도들이 불교나 힌두교의 교리를 근본주의적으로 실천한다기 보다는 부족주의나 민족주의에 더욱 강한 동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 항목은 읽는데 주의를 요하며 꽤 많은 수정이 필요하다.

2 기독교

2.1 개신교

근본주의 개신교는 유럽자유주의 신학[9]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미국의 보수적인 개신교 신학자들이 만들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2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처절한 실패를 맛보면서 사라졌지만, 이들은 미국 남부에서 계속 세력을 확장했고 나중에는 국수주의반공주의까지 장착한 기독교 정치세력인 기독교 우파로까지 발전했다. 특히,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은 진화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하는 세력이니 중요하다.(물론 극히 일부분은 진화론을 인정도 한다.) 성서그 글자까지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적은 정확무오한 하나님 말씀이니, 성서의 기록은 100% 역사적이나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보아서 진화론의 근거들은 먹히지 않는다. 창조과학은 이들의 팩트이다.

또한 구약(특히 레위기)의 여러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해 지키려는 이들도 있는데, 예수가 온 신약시대 이후 구약의 전통적인 제례는 폐지된 걸로 간주하지만 종파에 따라, 혹은 교회에 따라 이런것들을 지키는걸 중시해서 각종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을 광적으로 지켜 수혈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돼지고기 등을 먹지 않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등 이런 종파들은 이단으로 몰리기도 하지만[10] 소위 기성종단 가운데서도 목사의 주도로 이런 행위를 지키는 자들이 늘어나 문제가 되고 있다. 초창기 유대교 율법의 엄격성은 이슬람 샤리아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빡빡한데 21세기에도 이런걸 지키려하니 문제가 안될 수가 없다.[11] 교리 외에도 과거의 생활습관이나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경우도 있는데 유명한 미국의 재세례파 가운데 아미시 분파는 17세기적 전통을 현대까지 지키고 있다.


(아미시 부부가 마차를 타고 이동을 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이 21세기에도 차량이나 전기,통신 시설을 거부하고 17세기 방식으로 살아간다.)

흔히 인터넷 상에 알려진것과 달리 개신교 근본주의는 개신교 그 자체가 그렇듯 교파마다 좀 다르게 나타나는 편이다. 일례로 장로교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 성서비평, 신비체험, 방언, 세속주의를 모두 마귀의 산물이라고 철저하게 배척한다.

대한민국의 하드코어 근본주의 계열 기독교 대안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스마트폰, 게임, 인터넷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그것도 가정 내에서도 규제하라고 학부모들에게 지침을 내릴 정도.

근본주의 개신교에서는 오직 성경으로 정신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성경에 나와 있지 않는 전례나 교리들을(그리고 로마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에서는 성경에 직접 나와있지 않지만 그리스도교의 전통이라 보는 것들)[12] 다 '비성경적이다', '로마 가톨릭의 잔재다' 하여 배척한다.

칼뱅주의 계열 근본주의 개신교도들은 자신들이 보수 정통 개혁주의 개신교도라 생각한다. 근본주의 성향 신자들더러 근본주의적이다라고 디스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진짜 보수 정통 교단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자유주의 이단'며 스스로를 쉴드치는 경우가 있다.극우파가 자기를 극우파라고 하는 거 봤나

다만 칼뱅주의로 한정하자면, 제대로 된 근본주의를 고수하는 교단들이나 교회들 중에는 입교과정이 매우 까다로우며 외부인에 대해 꽤 얌전하고 조심스럽게 대하는 경향을 가진 부류도 있다. 물론 그만큼 한번 입교한 뒤로는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한게 사실이긴 하지만 무조건 문턱 밟자마자 자동가입되는 형태는 아닌 셈.[13] 사실 흔히 생각하는 길거리 예수쟁이 민폐 이미지는 거진 침례교나 오순절주의에서 유래한 것이며 정통 개혁주의 교리와는 거리가 멀다.[14]

신관에 있어서는 다른 교단에 비해 엄격한 심판자 하나님[15]을 강조한다. 때론 거의 코즈믹 호러에 가까우리만치 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며, 이로 인해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매우 엄격한 도덕 기준을 적용한다. 그러나 이게 지나친 나머지 자신의 도덕적 문제를 은폐하기도 하며, 이로 인한 사건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탈동성애 운동을 벌이던 목사가 게이 매춘을 하다 걸린 것이 대표적.

한편 개신교가 자유주의 일변도에 몰락 추세까지 보인다고 알려진 서/북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도 미국이나 한국처럼 과격하고 폭력적인 경향은 없으나 극도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교리를 가진 개신교 교파들이 일부 존재한다. 영국의 Exclusive Brethren, 네덜란드의 일부 독립 개혁교회 분파들과 북유럽의 레스타디안주의가 극도로 보수적인 교리를 갖고 있으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성경구절을 그대로 실천하려 하므로 출산률이 국가 평균을 웃도는 편이다. 그러나 미국식 근본주의 기독교와는 분명 특징이 다른 점도 존재하므로 '근본주의'로 불리는 일은 드물다.

2.2 가톨릭(전통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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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전통주의자들은 새 미사를 거부하고 트리엔트 미사를 고수한다. 사진은 트리엔트 미사의 거양성체 모습.

흔히 가톨릭은 교황청의 지도를 일률적으로 받고 다른 종교들에 보다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며 나주 성모동산 사건의 사례처럼 자동 파문하는 제도가 있으므로 근본주의가 아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성 비오 10세회처럼 근본주의에 근접한 단체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단지 개신교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다.

가톨릭 전통주의자들은 교회 미사에서 현대 음악이 도입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들은 새 미사(바오로 6세 미사)는 개신교의 영향에 오염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트리엔트 미사를 고수한다. 개신교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는 현대 가톨릭과 달리 전통 가톨릭에서는 개신교를 여전히 이단 열교라고 부른다. 현대 가톨릭은 개신교에 대한 이전의 규정을 공식적으로 폐기한 것은 아니나 대개 개신교를 '갈라진 형제'라고 부른다.[16] 동성애자들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는 전통 가톨릭은 현대 가톨릭보다 더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현대 가톨릭 교회의 경우에는 성생활을 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영성체와 기타 성사를 받는 것을 금지하되 미사 참례 자체는 금지하지 않지만, 전통 가톨릭에서는 성생활을 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영성체는 물론 미사 참례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동성애 성향 자체에 대해서는 전통 가톨릭이나 현대 가톨릭이나 미사 참례와 영성체 자체를 못할 죄로 보지 않는다. 전통 가톨릭에서도 성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미사 참례와 영성체 둘 다 허용하고 있다

더 자세한 것은 전통 가톨릭 항목을 참조하자.

3 이슬람

이슬람 근본주의는 15세기까지 기독교 문명보다 더 잘살던 이슬람 문명이 계속 기울면서 이들도 기독교 문명의 산물인 입헌정치,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를 수입해서 부흥하려 했으나 망했다. 그래서 20세기에 들어서자, 이런 와중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 본연에 충실하라, 샤리아가 아닌 모든 외세의 이념은 악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시작했다. 이를 풀려는 의무가 바로 지하드[17]다. 쿠란 자체가 시대에 뒤처지지 말라고 하라는 후대의 해석에 따름을 생각하면 굉장한 모순이다.오히려 역주행 이슬람 근본주의의 설명은 이슬람 근본주의 항목 참고.

이슬람 근본주의는 교리적 근본주의와 공격적인 극단주의가 둘 다 짬뽕된 형태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명확히 분리하기가 어렵다.

4 불교

불교는 이미 교리나 일화에서부터 드러나듯, 비교적으로 타 종교나 사상에 대해 호전성이 덜하다. 즉, 태생적으로 극단적 근본주의가 발생하기 힘든 조건을 안고 있다. 이는 모든 갈등과 싸움 또한 집착과 갈애의 결과물로 보는 불교의 특성에 기인는데, 집착과 갈애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불타의 핵심 가르침(지혜)과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자연스레 얻어지는 바른 행위(자비)가 불가사상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임을 생각해 볼 때,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에게 총질을 한다는 것은 불자들에게 있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불가사상은 근본주의에 근접할 수록 흔히 보이는 결벽증에 의한 대립과 불화는 커녕, 오히려 갈등을 야기하지 않으려는 성격이 더 두드러지는 특이한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향성이 옳았을 때의 얘기고, 지역의 토속종교 및 문화와 쉽게 융합하는 특유의 친화력때문에 오히려 민족성을 강하게 띄게 되어, 이런식으로 변질된 불교는 매우 강력한 배타성과 광적 공격성을 내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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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물은 '아신 위라투'. 미얀마의 승려로, 이슬람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보여, 테러마저 불사하는 위험한 인물이다. 성현의 말씀이야 어떻든 결국 어디에나 못난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이는 불교도 마찬가지다. 태국에서 또한 비슷한 양상의 이슬람·불교간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의해 강제합병 당한 티벳의 경우 또한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독립운동 초창기에는 상당히 거친 모습을 보였다.

근본주의를 논하기도 전에 이미 불가사상이 생활의 전반과 동일시되는 티벳인들을 생각해볼 때, 불교를 탄압하고 수백수천의 사찰을 불태운 중국 공산당은 천하의 개쌍놈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이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달라이 라마가 비폭력노선을 지향하면서 폭력저항은 힘을 많이 잃었다. 티벳인에게 달라이 라마는 그냥 '부처' 그 자체다. 부처님이 폭력을 쓰지 말라했으니 그걸 어떤 티벳인이 거역할까? 이때문에 티벳지역은 가까스로 미얀마나 태국의 꼴이 나지 않게 되었다. 만일 달라이 라마가 폭력 노선을 지지했다면... 아니, 묵과하고 넘어가기만 했어도 지금쯤 티벳 지역의 자살폭탄 테러는 아랍계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이러한 평화노선이 과연 티벳에게 좋게 작용했는가는... 글쎄... 그건 따로 생각해볼 문제.

아무튼 더이상 폭력적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수 없게 된 티벳인들은 현재 소신공양이라는 걸 하는데, 쉽게 말해 분신자살이다.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것. 물론 독립운동[18]인 만큼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해 과연 이것이 불교의 근본주의와 연관이 되는가에 있어 논란이 있을 법 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한때 신정일치 종교국가였던 티벳임을 감안해볼 때 이러한 독립운동 또한 일부나마 '극단적 근본주의'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을 쉬이 부정하기는 힘들다.

소신공양 모습은 다소 충격적일 수 있어 링크만 달아 놓는다.

베트남 소신공양 [1]
티벳 소신공양 독립운동 [2]
티벳 소신공양 독립운동 2 [3]

한편, 소신공양은 한국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4대강 정비 사업에 반발해 소신공양한 문수스님이라든가... 사미니 스님이라든가...

소신공양 자체가 아닌 자신의 뜻에 더 신경써달라고 한 고인의 유언에 따라 관련 사진자료는 첨부하지 않는다.

여하튼 간에, 여기까지 읽었으면 알겠지만 소신공양이라는 것은 보통 정치적인 색채를 띄고 있는데, 이처럼 불교가 극단적 행각을 벌일 때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다른 극단적 사상과의 결합이 관찰된다. 사실 이건 생각해 보면 근본주의가 아니다. 차라리 '극단주의'라고 볼 순 있을지 몰라도, 순수하게 근본주의라 하기엔 '너무 오염된 사상'이다. 애초에 자결은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불교교리에서 옳지 못한 행동으로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항상 모든 극단을 지양하고 '중도(中道)'를 따를 것을 가르치는데, 불교 근본주의자가 가장 극단적인 선택이라 여겨지는 자결을 택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물론 그 목적과 내용에 따라 소신공양이 매우 거룩한 행위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앞서 말했듯 정치적이거나 기타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의 얘기지 불교의 원리주의적 해석에서는 분명 잘못된 행위다.

이하 서술내용은 한국불교, 특히 조계종에 한하여 작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최대 불교종단인 조계종도 기본 이념은 불교 근본주의에 기초를 둔다. 실제로 불교정화운동이란 이름으로 한창 근본주의를 내세울 때의 조계종은 불교의 발전과 비불요소철폐라는 명목으로 나이에 상관없이 신도들은 무조건 승려에게 존칭을 쓰도록 규정하고, 한국 불교 특유의 발자취에 해당하는 삼성각, 산신각도 철거하며 불사라는 이름으로 자연에 손상이 큰 확대 재건축도 서슴치 않았고, 절에서 하는 천도재와 49재 등도 비불적 성격이 크다며 대폭 단순화하고 축소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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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佛法)에 대처승(帶妻僧)없다."
당시 일본잔재라 여겨진 대처승(혼인한 승려)에 반발하여 '불교정화운동'을 벌이는 모습

근본주의가 절정에 이르던 시절에는 불자보감(불자독송집)에 토속신 전각에 참배하지 말라고 적거나, 불교와 민간신앙의 결합을 불교의 입장을 강조하는 쪽[20]으로만 설명도 하였으나 다시 줄어든 지금은 불자보감에도 딱히 참배 말라는 말은 없고, 불교와 민간신앙의 결합 부분도 보다 현실적인 내용[21]으로 바뀌었으며, 불교정화운동을 진행했던 조계종은 견원지간인 태고종 측의 승려를 초청해서 사라진 전통 재법을 다시 진행도 했다.[22] 한국 불교계의 어두운 흔적.

그러나 그 반작용으로 각종 사고와 신도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점차 사그라들었고, 지금은 신도들의 별 저항이 없는 대규모 절 개축불사라고 쓰고 절 확장공사라고 읽는 일만 하는 정도. 이것도 문화재로 지정한 사찰의 무단 개보수로 학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부른다.[23] 또 승려의 존대 문제는 승려들의 자질 문제와 맞물려 여전히 문제고,(특히 2012년 조계종 승려들의 흡연/도박 행위가 언론을 타면서, 그 사이 한국불교계 내부에서 쉬쉬하던 승려들의 자질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났다. 2015년에는 승려들의 성보 도둑질 의혹사건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현재 성보 도둑질은 허위고 모 불교 언론사의 허위기사라는 게 밝혀졌지만 과거 성보 분실은 사실이며, 이외 대처승 문제나 비리 문제 등과 관련해 조계종과 진보 성향 불교 언론들의 충돌이 심해지는 중.)서울 조계사는 명색이 조계종의 중심사찰이라는 점 때문인지 이때 간략화한 사찰의례를 계속 쓴다.

사실 불교개혁 문제는 이미 구한말을 거쳐 일제시기부터 한국 불교계 내부에서 나오던 문제였다. 당시 한국 불교계는 기존의 구습에서 벗어나는 한편, 일본 사회에서 대중화한 일본불교의 형태를 보고 한국불교 역시 일본불교처럼 대중화하여 불교의 위상을 높이자는 주장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대처승 문제가 나와 타락한 승려들의 논의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으나, 이는 만해 한용운같은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한 스님이나 불교계 인사들도 불교의 대중화의 일부로 대처승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었지 단순히 타락한 승려들의 주장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당시의 개혁주의자들이 한국 불교 내 토속신앙 관련 건물/문화의 철폐, 승려가 양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는 것 등 각종 개혁을 외친 까닭은 근본주의를 내세워 불교의 배를 불리자는 게 아니라, 개혁과 대중화를 거쳐 한국 불교를 건설적으로 발전시키자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현재는 불교 교단과 구성원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많이 변질한 감이 있다.

또한, 근래 남방불교(상좌부 불교)가 국내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것이 근본주의와 결합하여, 일각에서 기존의 대승불교를 전면 부정하고 초기불교(라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남방불교와도 다른 극단주의)로의 회귀를 강요하며, 또는 아함경이나 이른바 부처님의 말씀을 담았다는 '빠알리 니까야'[* 물론 이것이 진본인지 확증할 수 없어 논란이 많다. 대다수 학자들은 이 경전의 일부분은 아함경 등 타 경전과의 겹치는 내용 및 논지의 일관성 등으로 볼 때 부파불교 이전 수행 공동체의 가르침이리라고 본다. 따라서 일부 부처의 진설을 포함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확증이 어렵다. 초기불교만이 진짜 불교의 가르침이니 이것만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근본주의 불교라는 것은 그저 서구 기독교 신학 방법론의 영향을 받은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기도 한다.참조링크데바닷타의 종단이 왜 사라졌나도 모르는 듯하다.

하지만, 대승의 가장 큰 문제가 방편의 남용으로 인한 갖은 미신 및 기복신앙, 상좌부에 반발해 쓸데없이 양만 늘린 자기변명 성격의 방대한 경전에 있는 만큼 근본주의로의 회귀가 꼭 나쁜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서양인들에게 더 큰 홍보효과를 가져오는 등 장점도 굉장히 많다는 점을 인지해야한다. 불과 얼마전 '하버드 스님'으로 유명한 현각스님이 이와 관련해 논란이 있었던 것도 단순히 종단 내부의 부패 때문 뿐만이 아니라, 비불적요소를 해결하지 못하고 기복신앙에 미쳐있는 한국불교의 현 세태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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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각스님이 조계종을 떠날것임을 천명했을 때, 조계종단이 나서 자성할 것을 요구하는 불자들의 시위 모습

여기서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은, 교단 내부에서 비불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과, 외부에 나가서까지 타집단에 시비를 거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로 구분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근본주의가 위협이 되는 것은 후자와 같이 그 사상이나 이념이 다른 외부사상을 폭력적으로 핍박하기 때문이지, 전자에서 처럼 스스로 자정작용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행위 자체는 결코 욕먹을 짓이 아니다. 예를 들어, 상기한 삼성각/산신각 등의 비불요소 제거운동은 '민족주의'나 '문화재보존'의 측면에서 비판받을 수 있을진 몰라도, 그것이 '근본주의'이기 때문에 비판 받을 수는 없다. 아니, 생각을 해봐. 교회에다가 강제로 삼성각을 설치하면 당연히 교인들이 난리가 날텐데, 그렇다고 해서 이를 무속신앙에 대한 핍박으로 보는건 말이 안되잖아. 애초에 거따가 설치한 놈이 이상한거지 애당초 어느모로 보나 비불적인 것을 불교에 불교인 양 집어넣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 불교인에게 누가봐도 불교가 아닌것을 그저 '다양성 존중'을 위해 무작정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결코 평화적 해결책이 아니며, 그저 또다른 형태의 폭력일 뿐이다.

단지 불교가 지금 껏 여러 비불적 민속신앙을 받아줬다고 해서 앞으로도 반드시 받아줘야 한다고 말한다면, (기복신앙을 지양하는) 불자들에게 있어 이는 '호이가 계속되면 그게 둘리인줄 알아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수 밖에. 쓸데없는 반발만 일으킬 뿐이다. 즉, 극단주의적 근본주의는 비난받아야 마땅할 지언정, 비불요소 제거등, 하나의 종교로서 그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 자체에 태클을 거는건 불교입장에서 억울하기 짝이없다는 것.
IS처럼 타종교인을 참수하는 것도 아니고, 산신각 방문객을 매달아 화형시키는 것도 아닌데 겨우 잘못된 기복신앙좀 없애보려 하는 것 까지 '극단적 근본주의'라고 부르는 건 분명한 이중잣대다. 아마도 불교가 토속화된 역사가 길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테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중잣대가 맞다는건 쉽게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부분으로 한국 불교의 정체성 논란이 있다.
한국불교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원효의 '화쟁'에서 기인한 통불교성격을 갖는다. 통불교라 함은 그 의미 자체가 서로 다른 관점과 쟁점을 모두 화해시켜 통합한다는 것을 뜻하므로 정체성 논란이 있는것 자체가 황당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실 대한불교조계종은 공식적으로는 간화선 수행을 하는 남종선을 정통 불교 수행법으로 보며, 중국 남종선 중 임제종파의 법맥을 잇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게다가 진각종[24]이나 미륵종[25]같은 일부 종단을 제외하면 태고종을 비롯한 다른 한국 불교 종단들 또한 상당수 선종에 속한다.
한국 불교의 본질이 이럴진데 현대불교가 대중 포교를 중시하면서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간화선보다 염불선이 일반화되질 않나, 승려들의 간화선 수행 축소되고 [26], 불교학이 발전함에 따라 선불교의 정체성 자체가 도전받는다든가[27], 남방불교 수행법이 경쟁적으로 유입되는 등 여러가지 작고 큰 문제들이 선종의 존립 자체에 큰 위기를 안겨 주고 있다. 남방불교 수행의 경우, 기존에 소승이라 폄하되면서 외면받기 일쑤였으나 실질적으로 초기불교의 모습이 더 살아있다는 장점이 있어 불교 근본주의 운동이 거세짐에 따라 다시 각광받게 되었다. 특히 간화선보다 일반인의 접근이 쉬운 위빠사나 수행이 들어오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포교당/대중선원에서 간화선보다 염불선과 위빠사나를 중시하는 등 갖은 논쟁(링크 모음:@@@###)이 일어나고 있다

현대에 들어 화자되는 극단적 근본주의 불교는 이러한 선불교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여과 없이 남방불교를 대체재로 삼는 양상을 보인다.
즉, 근본주의로 회귀하면서 한국불교에 깃들어있는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맛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조계종을 넘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고, 선방에서조차 이미 승려들의 40%가 전통적인 간화선을 하지 않고 다른 수행방법을 선택하는 등, 간화선이 아예 사라지게 생겼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28] 윗물이 이러니, 벌써 이로 인한 혼란이 일반 신도층까지 퍼져 아예 조계종에서 수행법에 대한 혼란과 논쟁을 정리한 책을 교단에서 펴내기까지 했는데도 불구, 쉽게 혼돈의 상태가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사실 생각해보면 쉽게 넘길 문제도 아니다. (대승비불설 항목 참고.)

이에 조계종에서도 2013년 간경과 염불 수행을 안거로 인정하면서 실상사에서 간경안거를 시작하고 봉선사에 염불원을 설립하였으며[29], 염불만인회를 꾸준히 개최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기사 연도에 나오듯이 화두선 외의 수행 인정에 상당히 늦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마저도 조실이나 방장, 선원장 자격 기준이 되는 수선안거로는 인정되지 않아 여전히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청화스님이 조계종 원로 대접을 그나마 받은 게 신기할 지경이다[30]

여기에 조계종의 고승 송담선사가 탈종을 선언하면서, #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조계종 내부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2위인 태고종 역시 교단 지도부의 충돌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

5 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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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맞장뜨는(...) 하레디 유대인. 이들은 평소에도 경찰을 자주 무시하고 세속법을 더럽다(!)면서 언젠가는 자신들이 애들을 많이 낳아서 이스라엘을 하레디 국가로 바꾸리라고 믿는다. 이스라엘 강경파중에서 가장 강경한 집단이 바로 이들이다. 자세한 내용은 하레디 항목 참조.

흔히 이들을 바리사이파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AD 1세기경의 바리사이파는 어디까지나 평신도 신학운동이었을뿐 정계의 주류와는 거리가 먼 집단이었다. 그리고 신학적 경향이 딱히 근본주의적이지도 않았다. 이들이 근본주의적이었다면 예수가 율법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교리를 만드냐는 비난도 없었을 테니까.

기본적으로 율법은 해석이 필요한 면이 있다. 토라의 '안식일을 범하지 말라'는 규정만 해도,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예외는 무엇인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게 마련이며, 특히 율법 규정이 일상생활의 규범이 되는 1세기 유다인의 경우, 그러한 해석의 필요성은 더욱 강해진다. 바리사이파는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토라 이외의 전통까지 폭넓게 받아들여 율법을 해석한 학파다. 게다가 자기들과 해석이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거나 죽인것도 아니고(사실 위에 나온대로 바리사이는 평신도 신학 운동이었기 때문에, 그럴 권력도 없었다), 모두에게 이러한 해석을 따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다른 학파들과 논쟁이야 자주 벌였지만, 이건 모든 경전의 종교에서 흔한 모습이다. 이런면에서 바리사이는 근본주의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토라 이외의 전승을 일체 인정하지 않고, 토라의 준수만을 주장하여 바리사이와 극단적으로 대립한 사두가이파가 진짜 근본주의에 가깝다.[31] 그럼에도 사두가이파는 영혼멸절설을 주장했다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때문에 전문 학계가 아닌 곳에서는 여전히 오해가 널리 퍼져있다.

본래 초기 유대교에는 죽은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내세 개념이 희박했다. 초기의 유대교는 지극히 현세적인 종교였고, 죽은 자의 혼백은 지하세계인 셔올로 내려가 잠자는 것처럼 머문다고 믿었다. 그래서 구약성서에서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에 대한 관용 표현으로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다'고 종종 표현한다. 영혼의 부활 같은 개념은 상당히 후대에 생긴 것이며, 바리사이 파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토라 외에는 인정하지 않았던 사두가이 파는 영혼이나 내세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전통적인 신앙 형태를 고수했던 것에 불과하다.

현대 유대교에서 사두가이와 가장 교리가 근접한 분파로는 카라이파가 있으며 이들도 하레디 못지 않게 근본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다.[32] 하지만 1세기경의 사두가이와 다른 점들도 많으며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면 토라 외에도 이사야다니엘로 대표되는 네비임, 욥기시편 등 케투빔이 포함된 타나크[33] 전체를 인정한다는 점과 카라이파는 사두가이파와 달리 부활과 심판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링크1), (링크2) 애초에 이들은 사두가이파가 단절된지 오랜 시간이 지난 9세기쯤에 가서 생긴 분파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6 관련 문서

  1. 저자의 지도교수라고 한다.
  2. 골지체를 부정한 그.
  3. 이 이야기의 출전은 확실치 않으나, 본래 A.그레일링의 연극 《종교론》(On Religion)이 원본이라는 견해가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출처 표시를 누락했거나, 아니면 해당 연극을 모르는 상태로 이와 유사한 사건을 직접 경험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무신론자들 사이에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진 건 도킨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4. 이 이야기에 대해서 《위험한 생각들》(pp.272-273)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가디언》 지의 언론인 A.브라운은 이 이야기를 "진취적이고 감동적일 수는 있으나 진부한 교훈극일 뿐" 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증거에 기초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리낌없이 단언한 것으로, 무신론자들 중에도 종교와 관련하여 자기들에게 부정적인 연구결과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종교인들 중에도 종교를 버리거나 바꾸면서 자신이 지난 인생을 거짓 속에서 살았다고 당당하게 인정하는 반례가 있다는 것. 뭐 물론 아예 말귀 자체가 안 통하는 근본주의자들로 한정해서 이야기한다면 말이 되기야 하겠지만... 자세한 내용은 해당 책을 구해다 읽어보자.
  5. 이것으로도 여기로 들어올 수 있다. 또한 근본주의자로도 여기로 들어올 수 있다.
  6. 교리적으로 원칙을 중요시하는 것의 경우, 근본주의는 아니며 구분되어야 한다. 또한 독실한 것과 근본주의도 다르다. 이를테면 성경 레위기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적혀있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돼지고기를 금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신자가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독실하지 않다거나 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이야기이고, 종파의 교리 그 자체가 근본주의인 경우는 답이 없어진다.
  7. 일단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경전이 현대인의 가치관과 다르다고 해서 그 경전이 쓰레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경전에서 현대적인 의미의 교훈과 메세지, 구원의 논리 등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은 문자 그대로의 과격한 해석을 지향한다.
  8. 한국의 지리산 청학동 이미지처럼
  9. 전통적인 자유주의 신학과 한국에서 생각하는 신정통주의 신학 모두를 말한다
  10. 여호와의 증인은 수혈 거부 같은 특정한 교리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전세계적으로 안 좋은 시선을 많이 받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1915년 울릉도에서 장로교인 40명이 재림교로 개종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가 극심한 피해를 입은 뒤부터 한국에서 이단으로 취급당한다.
  11. 게다가 기준을 정하고 해석하는 것이 목사 마음대로라는게 더 문제이다
  12. 성모신심, 고해성사, 견진성사, 사도신경 낭독, 예배당 제단에 촛불 놓기, 미사에서 향 피우기, 로마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처럼 매 주일마다 성찬례를 하는 것 등
  13. 오히려 눈치없이 굴면 교회 출입 자체를 거부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14. 이것을 신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칼뱅주의 교회는 예정설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 구원관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별개로 하나님의 선택을 중시한다. 반면에 오순절계통 등은 알마니안 주의를 받아들이는데, 알마니안 주의는 자신의 의지가 구원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에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하는 데 상대적으로 적극적으로 흘러가게 된다.
  15. '자비로운 하나님'이 아닌 '응징하는 하나님'
  16. 그렇지만 현대 가톨릭도 구원의 제1수단은 가톨릭교회라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 현대 가톨릭은 가톨릭이 구원의 최선의 수단이나 개신교에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반면에 전통 가톨릭에서는 개신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잘라 본다. 전통 가톨릭 내에서도 강경파('마리아의 군대' 등)는 개신교를 아예 '루시퍼가 성교회(가톨릭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만든 이단'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17. 물론, 십자군 전쟁때의 그 지하드와는 좀 다름
  18. 일제강점기를 통해 치욕의 역사를 맛본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으로는 이러한 티벳인들의 소신공양이 일견 숭고하고 비장하게 보일 수 있으나, 이러한 모습에 대해 '충격'이나 '혐오'에 앞서 '숭고함'을 느끼는 국민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음을 알 필요가 있다. 사실 대한민국은 21세기 들어서까지도 민족주의, 군국주의, (일본과 중국에 대한) 인종차별 및 비하, 전체주의, 극단적 애국주의 등등, 서양에서는 늦어도 20세기 중반에 거의 박멸수준으로 제거당한 각종 극단적인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합리화되고 심지어 '정의'라고 여겨지기도 하는 매우 특수한 국가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만큼 비참한 역사를 떠안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는 한데... 아무튼 그렇기에 비슷한 처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티벳을 보고 동질감이 드는 것이다.
  19. 이걸 세게 밀어붙인 승려 중 하나가 유명한 성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로 유명한 그 스님 맞다.
  20. 보통 불교가 이만큼 통이 크다는 식으로 우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불교가 하면 대인배, 기독교가 하면 기복신앙 지금도 조계종 청년회 홈페이지 등 몇몇은 이렇게 설명하는 일이 은근히 많다.
  21. 대중화를 위한 민간신앙의 수용이나, 양자간의 평화로운 결합 등으로 설명한다. 물론 불교가 주체이기에 불교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 자체는 그대로다.
  22. 구미래 저,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참조. 내용을 살펴보면 현실적인 신도들의 바람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는 공통점이다. 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절에서 여는 각종 법회/재가 절의 재정에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지금도 노보살/노거사들이 절에 칠성불공, 산신불공 등의 이름으로 바치는 각종 재화(돈이나 쌀 등)가 많다.
  23. 엄연히 문화재로 지정한 사찰의 내부구조를 다르게 뜯어고쳐 놓는다던가, 비닐장판과 전기/온수 난방을 목조건물에 넣으면서 흰개미를 어느 만큼 줄이던 재래 구들장이 없어지고 습기가 차 흰개미가 늘어난다던가. 후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도 전자는 못 변명할 문화재 파괴 행위다.
  24. 밀교 교단이다.
  25. 본래 증산교 계열의 무을교(戊乙敎)였으나 1964년부터 대한불교미륵종으로 개칭.(참조사이트.)
  26.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30%7C
  27. 선불교 사상의 근본이 되는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은 위경이다. 유명한 염화시중의 미소도 이 경전에 실린 것이다.
  28. 논쟁이 한창 불거지기 시작할 무렵 한국을 방문한 미얀마의 고승 파욱 스님은 상좌부불교의 자존심을 드러내며 간화선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29. 기사는 2014년이지만 2013년 설립이 맞다.
  30. 청화 스님 문중은 유일하게 염불을 주력 수행으로 정하고 있다.
  31. 출처: E. P. Sanders, The Historical Character of Jesus, pp. 44-47, 213-219
  32. 하지만 타나크 이외의 전통을 일체 인정 안하므로 오히려 다른 유대인들보다 편한 점도 있는데, 일례로 고기와 우유를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33. 케투빔은 시가(詩歌)서, 네비임은 예언서이다.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약성경 39권 배치가 유대교에서는 좀 다르게 나타나며, 히브리어로는 각각 첫 글자를 따서 타나크(Tanakh)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