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on Allan Schwartz
1 개요
1951년에 태어난 미국의 군인. 19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냈다.
2 생애
1951년 12월 14일에 뉴저지 톰스리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타자기 판매원이었다. 집안은 유대인이었다. 1969년에 미국공군사관학교에 진학했고 1973년에 졸업하여 임관했다. 특기는 조종이었는데 주기종이 전투기나 폭격기가 아닌 수송기였다. 주요 근무 부대는 36공중기동비행대대(36th Airlift Squadron), 16특수작전비행단(16th Special Operations Wing), SOCOM 태평양사령부, 알래스카사령부, 공군11군, 통합군 수송사령부[1]등이었다.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에 특수작전 태스크포스로 참여하기도 했다. 2008년에 공군참모총장이 되었고 2012년에 퇴역했다.
교육으로는 1977년에 편대장학교(Squadron Officer School)를 수료했고 센트럴미시건대학교에서 1983년에 경영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4년에는 국방참모대학(Armed Forces Staff College)을 수료했다.
비행시간은 총 4400시간이며 주 기종은 C-130, MC-130, HC-130, MH-53, MH-60이다. 고정익의 비주류인 수송기 뿐만 아니라 항공기의 비주류인 회전익까지 몰았는데 공군참모총장까지 올랐다.[2]
미 공군에서 무인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무인기 조종사 양성을 활성화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그를 공군총장에 올린 것도 8할은 무인기 때문이다. 공군에서 무인기의 중요성이 높아지지만 무인기 조종사들이 풍부한 실전 경험에도 불구하고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홀대받으며 장군 진급은커녕 무공훈장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3] 속에서 전투기와 폭격기로 헤게모니가 양분되는 공군 고위급 장교단의 세력구도에 제3세력(?) 출신의 베테랑을 임명한 것은 이런 소수의 비주류를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재임시기 무인기 조종사의 양성이 매우 활성화하여 2010년대 미군은 무인기 조종사가 전투기/폭격기 조종사보다 많이 배출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무인기의 존재와 상관없이 유인 조종 특기의 중요성은 간과되어서는 안된다고 보기도 했으며, 공군의 유인기 파일럿들이 무인기 조종사를 한수 아래로 대하는 풍조는 계속되고 있다.
소련에서 격추당해 생포되어 전세계를 들썩이게 한 U-2 조종사 프랜시스 개리 파워즈에게 은성무공훈장을 추서했다.
한국, 정확히는 대한항공과 악연이 있다. 9.11 테러 당시 알래스카에서 근무하다 충격과 공포의 대한항공 085편 납치 오인 사건으로 F-15를 출격시키고 경우에 따른 격추 지시까지 내렸다. 때문에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도 가끔 등장한다.- ↑ 이름은 통합군인데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수송기를 험하게 굴리는 미군의 특성 때문에 사실상 공군만의 보직이다. 일반적으로 수송기 출신 공군 4성장군들의 진급 상한선이다.
- ↑ 참모총장 가운데 전투기나 폭격기가 아닌 첫 인물이다. 오사마 빈 라덴 레이드로 유명한 마셜 웹도 비주류 항공병과 출신이지만 중장까지 진급하는데 성공했다. 영국 공군도 2013년에 첫 헬기 출신 공군총장인 앤드류 펄포드 대장을 배출했다.
- ↑ 2006년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제거작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프레데터는 수백시간을 수색하고 정찰하며 알 자르카위를 포착해냈지만 알 자르카위를 끔살시키는 영예는 프레데터에게 좌표를 전달받은 F-16이 가져갔고, 해당 F-16 파일럿은 공군의 최고 영예인 공군십자장을 받았지만 무인기 조종사들은 그런 거 없다. 지못미. 오사마 빈 라덴 레이드에서도 정작 해군의 DEVGRU와 마셜 웹 장군, 윌리엄 H. 맥레이븐 제독이 주로 칭찬받고 쪽수도 계급도 후달리는 무인기 조종사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