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르 슈케르

현역 국가대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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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크로아티아 축구협회장으로 활동중인 모습
전체 이름다보르 슈케르
(Davor Šuker)
생년월일1968년 1월 1일
국적크로아티아
출생지오시예크
신체 조건183cm, 78kg
포지션중앙 공격수
소속 클럽NK 오시예크 (1984-1989)
디나모 자그레브 (1989-1991)
세비야 FC (1991-1996)
레알 마드리드 (1996-1999)
아스날 FC (1999-2000)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2000-2001)
TSV 1860 뮌헨 (2001-2003)
국가 대표69경기 45골[1]
1998 Ballond'or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다보르 슈케르
3위
호나우두
1998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호나우두
3위
다보르 슈케르
1998 FIFA 월드컵
골든 볼
호나우두
실버 볼
다보르 슈케르
브론즈 볼
릴리앙 튀랑
1998 FIFA 월드컵 득점왕
다보르 슈케르

1 개요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 국가대표를 지낸 레전드 축구 선수로, 크로아티아 축구의 상징이다. 現 크로아티아 축구협회 회장.

굵직굵직한 메이저급 국가대항전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고국을 이변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독일, 프랑스 등 당시 강호들을 상대로도 중요한 골들을 박아넣으며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뛰어난 위치선정과 순간적인 침투로 수비진을 교란했으며 특히 발바닥을 쓰는데 능해서 엇박자로 타이밍을 흐트려서 수비수를 제쳐내곤 했던 기술적인 최전방 공격수였다.

2 선수시절

2.1 자국리그

1984년 유고슬라비아 시절때 NK 오시예크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1989년 자국 최고의 클럽중 하나인 디나모 자그레브로 이적했고 청대시절의 활약과 1990 월드컵 대표 승선을 계기로 성장했지만, 1991년 유고 내전 발발로 인해 자국에서 축구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 해외진출을 모색했고 프리메라 리가의 세비야 FC로 이적했다.

2.2 프리메라 리가

세비야 FC로 이적한 슈케르는 첫해에는 인상적이지 못했지만 세 번째 시즌인 1993~94 시즌 리그 24골로 호마리우(FC 바르셀로나, 30골)에 이은 득점 2위로 시즌을 마치며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성적을 끌어올려 95~96 챔피언스 리그에서 6경기 출장해 4골을 넣은 슈케르는 국가대표의 활약과 함께 전성기를 맞으며 1996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구 유고 연방 몬테네그로 출신 스트라이커 프레드락 미야토비치와 투톱을 짠 슈케르는 96~97 시즌 24골로 득점 3위에 올랐고 97~98 시즌에는 리그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 4골을 터뜨리며 건재를 과시, 레알 마드리드가 유벤투스를 꺾고 챔피언스 리그 정상에 오르는 데 한몫했다. 그리고 1998 월드컵에서 생애 최고의 활약을 했다. 하지만 월드컵 이후 부상에 시달리고, 레알 마드리드의 혼란기로 인해 슈케르는 스페인 무대를 떠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아스날로 이적한다.

2.3 프리메라 리가 이후

하지만 아스날에서는 9번의 저주+부상 후유증으로 총 22경기 8골의 기대이하의 성적을 냈고 먹튀라는 오명을 쓴채 한시즌만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하지만 이미 부상 악화로 내리막길에 있던 슈케르는 웨스트햄에서도 자기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고, 분데스리가 1860 뮌헨으로 이적했지만 제대로 출장기회도 잡지 못하고 두시즌 동안 후보로 전락한 뒤 02/03시즌을 마치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유고슬라비아 축구의 황금세대라고 할 수 있는 1987년 FIFA U-20 월드컵 우승의 핵심 멤버 중 하나. 이 대회에서 6골로 득점 2위에 올랐다. 88년 서울 올림픽에도 올림픽 대표로 참가했으며 90년 U-21 유로 대회에서 6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팀의 준우승을 이끌어 대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는 등 유럽 최고의 축구 유망주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22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선정되었지만 당시 대표팀 주전인 다르코 판체프, 즐라트코 부호비치가 있었기 때문에 벤치에서 경험을 쌓는 정도였다.

국가대표 커리어의 시작은 유고 내전의 시작으로 인해 모국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부터. 모국인 크로아티아 소속으로 국가대표에 나서기 시작한 슈케르는 유고 내전으로 인해 유고슬라비아 연방 전체가 국제대회 출전정지 크리를 먹어 유로 92, 94 미국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본격적으로 크로아티아 국기를 달고 참가한 유로 96에서 크로아티아의 황금세대 멤버인 투톱 콤비 알렌 보크시치,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중 한명이었던 즈보니미르 보반, 윙어 로베르트 프로시네치키라는 화려한 공격진의 리더로 크로아티아의 8강을 이끌었다.

이후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최대의 황금기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때는 조별리그에서는 아르헨티나에게 아깝게 패하긴 했지만 자메이카,일본전에 1골씩 넣고 2승 1패로 16강에 안착한 후, 16강 루마니아전 결승골, 98년 최대 이변중 하나인 8강 독일전에서 3번째 골로 독일을 3:0으로 대파하는 주역이 되었고, 4강전 프랑스전에서도 선제골을 넣었지만, 하필 이날 인생게임을 한 릴리앙 튀랑때문에 1:2로 역전패하고, 3,4위전 네덜란드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2:1 승리를 이끌었다. 결국 1998년 제16회 FIFA 월드컵에서 6골로 득점왕에 올라 1998년 실버 볼에 선정되는 등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의 리즈 시절을 지휘했다.

아쉽게도 99년 부상 이후 기량이 급추락해 유로 2000에 출전했지만 예선 탈락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이비차 올리치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조별리그에서 예선탈락을 한 뒤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현역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은 하지 않고 자국에서 청소년 축구교실 등으로 활동하였고, 2014년 크로아티아 축구협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도 각별한 사이로 유명하며 홍명보의 경질 이후 차기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를 추천하기도 했다.
  1.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