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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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동 성바오로 성당
위치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중구 답동
문화재지정사적 제287호(1981년 9월 25일 지정)
종교가톨릭
홈페이지공식 홈페이지
지위주교좌성당

1 개요

인천광역시 중구 답동 3번지에 자리잡은 천주교 인천교구의 성당이다. 정식 명칭은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좌 답동 성바오로 성당이고, 줄여서 답동성당이라고 부른다. 주보성인은 '성 바오로'이다.

설립년도는 1889년도이며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가톨릭 건축물이자 중림동 약현성당 다음으로 설정된 본당이며[1] 내리교회[2], 성공회 내동성당[3]과 더불어 인천에서 유서 깊은 종교시설로 유명하다. 전체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1981년 사적 287호로 지정됐다.

건축물로서도 역사적 가치가 깊지만 천주교 인천교구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인천교구 연혁을 보면 현재 본당으로 승격된 부평 공소[4]나 소사 공소[5] 등 인천시내 여러 공소가 원래 답동성당의 산하 공소였다. 그러다가 각 지역의 신자 수가 늘어나면서 답동성당에서 분가해 본당을 설립한 뒤 널리 퍼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쉽게 말해 인천지역 모든 가톨릭 성당의 모(母)본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지역의 가톨릭 교세가 확장되고 답동성당이 낡고 좁다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현재의 답동성당으로는 교세를 수용하기 모자라며 주교좌성당이 더 필요하다는 비판 아닌 비판이 있다. 실제로 제2대 인천교구장인 故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가 생전에 답동성당의 협소함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해진다.

2 역사

19세기말,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7대 교구장이었던 프랑스인 블랑 주교의 결정에 의해 제물포에 건립되었다. 제물포에 성당이 건립된 것은 이곳서울의 관문이고 외국 무역의 거점이 될 수 있는 좋은 입지적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블랑 주교는 제물포에 유진 코스트[6] 신부를 파견하였고, 이후 페낭신학교에 있던 니콜라 빌렘[7]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를 맡아 인천지역 첫 번째 본당인 제물포본당(답동본당의 원래 이름)[8]을 1889년 7월 1일에 설립하게 된다.

빌렘 신부는 이듬해 지금의 성당 자리인 답동 언덕에 대지 3,212평을 매입함으로써 성전을 지을 공간을 마련한다. [9]

이후 부임한 마라발 신부는 수녀원 건립을 시작하는 동시에 코스트 신부로부터 성전 설계도를 받아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성전 건립이 잠시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결국 1897년 7월 4일에 완공되었다.

3 결혼식장

서울 명동성당과 마찬가지로 여러모로 역사와 전통, 특유의 웅장한 분위기를 보유한 성당이기 때문에 인천교구 관내 신자 중에서는 이 성당에서 혼배 미사 거행을 원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종종 나온 적이 있기 때문에 답동성당에 대한 인기도 높다. 명동성당은 주 10회의 혼배 미사 스케줄이 짜여 있지만 답동성당은 주 2회로 기회가 매우 적다. 이 때문에 답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렵다. 자세한 혼배 미사 계약 조건은 링크를 참조하자. 보면 알겠지만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다.

설령 계약을 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불편사항은 존재한다. 일단 주차공간이 상당히 부족하다. 마당에 주차할 수 있는 차의 대수는 100대가 채 못 된다. 더구나 입구가 성당 앞과 뒤에 각각 1개씩 밖에 없는데다 교구청 뒤쪽의 출구는 일방통행 차로이며 가톨릭회관에서 올라오는 차로 또한 좁기 때문에 주차와 출차 모두 빡세다.[10] 여기에 피로연장으로 쓰이는 답동문화관의 규모도 꽤나 좁다.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한다면야 답동성당 만한 결혼식장도 없다. 결혼식 전날에 상이라도 생기면(답동성당은 노인 신자 비율이 높아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주차는 그야말로 헬. 답동 성당에서 결혼 예정인 신자들은 반드시 결혼 전날에 사무실에 연락해서 주차장 통제를 제대로 해달라고 확인하자.

이런 점 때문에 인천교구에서는 혼배 미사를 전문적으로 치를 수 있는 본당을 최근 들어 건립해 이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11]

4 역대 주임신부

순서이름기간
1대빌렘(J.Wilhelm)요셉1888.7 ~ 1890.10
2대르비엘(E.Le.Viel) 에밀1890.11 ~ 1893.4
3대마라발(J.Maraval) 요셉1893.4 ~ 1904.3
4대드뇌(E.Deneux)에우제니오1904.4 ~ 1937.6
5대임바오로1937.6 ~ 1958.10
6대버크(J.Burke,장) 요한1958.11 ~ 1963.8
7대설리반(H.Sullivan) 헨리코1963.8 ~ 1968.4
8대강의선 힐라리오1968.4 ~ 1970.1
9대박성규 베네딕도1970.1 ~ 1975.11
10대김병상 필립보1975.11 ~ 1980.2
11대김상용 힐라리오1980.2 ~ 1984.3
12대송주석 안셀모1984.3 ~ 1986.2
13대강용운 시몬1986.2 ~ 1992.2
14대정윤화 베드로1992.2 ~ 1996.2
15대이수일 제르바시오1996.2 ~ 2000.1
16대이학노 요셉2000.1 ~ 2004.1
17대김용환 세례자 요한2004.1 ~ 2009.1
18대이민주 세례자 요한2009.1 ~ 2014.1
19대정귀호 다니엘2014.1~

5 주변 시설 및 기타 정보

성당 바로 옆에 박문유치원과 인천교구청이 있고 성당 아랫편에 가톨릭회관이 있다. 박문유치원 옆에는 답동문화관이라고 명명된 벽돌 건물이 있는데 답동성당에서 혼배 미사를 할 경우 이 건물 2층의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원래 성당 뒤편에 인천박문초등학교가 있었는데 2001년 연수구 동춘동으로 이전했다. 이전 후 옛 학교 건물이 리모델링된 뒤 인천교구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꽤 넓은 성당 앞마당이 있는데 과거 인천박문초등학교가 있던 시절에는 운동장으로 쓰였다가 학교 이전 후 도로를 포장해 현재는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 주차 공간은 상당히 협소하다. 대신 대중교통을 통해서도 편리하게 올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12]

인천광역시중구가 적극 밀고 있는 개화기 거리 도보 관광 코스에 이 성당이 빠지지 않는데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내리교회와 신포시장, 차이나타운이 있다.

주교좌 성당이기 때문에 주일에 거의 매 시간 미사가 봉헌되는데 오후 5시 미사는 영어로 봉헌된다. 인천지역에 있는 외국인 신자들을 위한 미사인데 대부분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출신 신자들이 이 미사에 온다. 인천교구에 파견된 필리핀 신부님이 영어 미사를 집전한다.

더불어 주일 밤 9시에도 미사가 거행되기 때문에 낮미사나 저녁미사 참례가 어려운 이들에게는 미사 참례를 거르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 명동성당은 1898년
  2. 동인천역과 답동성당 사이 언덕에 있다.
  3. 자유공원 인근에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성공회 예배당.
  4. 현 부평2동성당
  5. 현 소사성당
  6. 서울대교구 명동성당과 중림동 약현성당을 설계한 프랑스인 신부.
  7. 안중근 토마스 의사 및 그의 집안과 친분이 있었으며,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기 전 고해성사를 주었던 프랑스인 신부.
  8. 역사적 의미에서 원래 제물포를 의미하는 지역은 현재 제물포역 인근 지역이 아니라 현 인천-동인천역을 인근으로 하는 포구지역까지 가리키는 지역명이였다.
  9. 1890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전임된 빌렘 신부에 이어 르 비엘 신부(신 바오로 1890~1893)가 2대 신부로 부임해 성당 건립 기금을 마련하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수녀를 요청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병으로 인해 휴양을 떠나면서 성전 건립은 1893년에 부임한 마라발(서요셉 1893∼1904년) 신부의 몫으로 넘어가는 등 건립을 위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0. 후술하겠지만 다행히도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상당히 쉽다는 장점이 있다. 답동성당을 중심으로 개화기 문화재 도보관광코스도 있으니 타지 하객 중 인천시내 나들이를 원한다면 주변 지역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11. 예를 들면 동막역 인근에 있는 동춘동성당이나 인천논현역 바로 앞에 있는 논현동성당이 그렇다.
  12. 수도권 전철 1호선 동인천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아울러 수많은 시내버스들도 가톨릭회관 앞 또는 신포시장 앞에 정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