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외부 전경[1]내부 전경
명동대성당 明洞大聖堂
기본 정보
위치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교가톨릭
홈페이지[공식 홈페이지]
지위주교좌성당(Cathedral)
건축 정보
축성1898년 5월 29일
건축가유진 코스트 신부
빅토르 루이 푸아넬 신부
양식네오 고딕(고딕 리바이벌)
착공1892년 5월 8일
완공1898년 5월 29일
건축 내역
전체 길이69m
전체 너비28m
종탑 높이45m

1 개요

  • 한국어 : 서울대교구 주교좌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성당 / 명동대성당
  • 라틴어 : Cathedralis Ecclesia Immaculatae Conceptionis Mariae Virginis in Myeongdong
  • 영어 : Cathedral Church of the Virgin Mary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in Myeongdong / Myeongdong Cathedral / Myeongdong Catholic Chruch
  • 프랑스어 : Cathédrale Notre-Dame de l'Immaculée Conception / Cathédrale de Myeong-Dong
  • 에스파냐어 : Catedral de la Virgen María de la Concepción Inmaculada / Catedral de Myeongdong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 74(명동2가 1-1)에 자리한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주보성인은 '원죄없이 잉태되신(無染始胎)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당의 정식 명칭은 '서울대교구 주교좌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성당'이고, 줄여서(?) '명동대성당', '명동성당'으로 부른다.

1898년에 건립된 이래 11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유적지이며,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고딕 양식 성당이자,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성지라는 자랑스러운 역사와 함께 당시 조선대교구장이던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주교가 조선총독부에 부역하고 독립운동가를 밀고한 대가로 확장된 흑역사를 동시에 가진 곳.[2] 또한 1909년 12월 22일 이재명 열사가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추도미사에 참석하고 빠져나오던 이완용을 습격한 장소이기도 하다.[3] 이완용을 죽였어야 했는데! 일제강점기의 명동성당은 친일행각으로 오명을 뒤집어쓰는데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 8월 15일에 (황국) 국위선양 평화미사를 거행하고 황군위문금을 모금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독재 정권의 폭정에 저항하여 3.1 민주 구국선언을 발표하는 등의 분투로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라는 영예를 얻게 된다. 김수환 추기경의 주도로 그 유명한 10월 유신 반대 크리스마스 미사와 6월 항쟁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각종 미사들이 여기서 집전되었다.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성의교정, 성신교정의 신입생들의 입학식이 매년 이곳에서 거행된다.

사실 명동의 최동단이기 때문에 명동역보다 을지로3가역이 가깝다. 명동에서 올 때는 오르막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걸어오는 경우라면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서 오는 편이 더 낫다. 을지로1가 쪽이라면 CGV 명동점이 있는 눈스퀘어에서 우리은행 명동금융센터 방향으로 직진해도 나온다.
명동역에서 올 경우에는 8번 출구와 가까이 있는 구)계성여자고등학교의 후문 쪽으로 와서 옆길을 이용하면 빠르게 갈 수 있다. 그 길로 가다보면 '명동성당 지름길' 이라며 간단한 안내 표시도 나온다.

이재명 열사 의거비

서울에 체류하는 영어권 외국인 신자들을 위한 영어 미사도 거행한다. 영어 미사는 주일 오전9시에 대성당에서 이루어진다.

2 건축

성당이 있는 명동 언덕은 한국 천주교에서 상당히 중요한 곳으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김범우 토마스의 집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한국에서 처음 천주교 예식이 거행된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김범우는 이승훈 베드로, 정약전 등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연구하고 자체적으로 공소예절을 드렸다. 포도청 당국이 이를 적발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명문가 자제라서 적당히 훈방 조치했지만, 김범우는 중인 계급이라 고문을 받고 귀양을 가다가 사망했다. 이후 개화기에 조선에서 천주교가 허용되고 나서 새로 성당을 짓기 시작한 것이 이 명동성당이다.

한국에 있는 고딕[4] 성당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본당의 높이는 23m, 탑의 최고 높이는 45m다. 중림동 약현성당을 설계한 코스트(Coste) 신부가 후에 명동성당을 설계하였고, 파리 외방전교회의 재정지원을 받아 1898년에 완성하였다. 구조적, 양식적으로 약현성당과 유사한 편.약현성당에 대한 이해 벽돌로 쌓은 교회이기도 하다. 20여종의 벽돌과 붉은색, 회색을 섞어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각종 민간 쇠붙이 생필품이나 철로 등과 마찬가지로 군수품으로 쓴다며 종탑의 종을 공출당할 뻔했고[5], 6.25 전쟁 때는 성당 전체가 폭격으로 날아갈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6]. 1947년과 1973년, 2009년에 보수공사가 있었다.

비교적 고딕 양식에 충실하지만 전형적이라고 하기는 힘든데, 전형적인 고딕 성당과는 조금 다른 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평면 구성은 여느 고딕 성당처럼 십자가의 형상이지만, 십자가의 양 날개 부분인 트란셉트(transcept, 교차랑/익랑)가 짧기 때문에 완전하지는 않다. 엄밀하게 말하면 직사각형에 가까운 셈. 입구를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중앙의 통로에서 천장이 높은 곳은 네이브(nave, 신랑/중랑)라고 하며, 좌우의 낮은 통로는 아일(aisle, 측랑)이라고 하는데, 아일의 폭이 트란셉트에 맞먹는다.

첨두식 아치, 성당 입구와 창문리브볼트, 성당 내부리브볼트, 성당 입구
성당외벽, 플라잉 버트레스는 없음

실내 천장에 리브볼트(Ribbed vault)[7]를 사용한 점은 고딕양식에 충실한 점이지만, 전형적인 고딕 성당은 석재로 되어 있는 반면 명동성당의 리브볼트와 종탑 지붕은 하중을 줄이기 위해 목구조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석재 리브볼트가 기둥을 좌우로 밀어내는 힘을 감당하기 위한 구조물인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8]가 명동성당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성당이 건설되면서 발생했던 붕괴 사고 때문에 원 설계안보다 기둥이 굵고 작은 창을 가지게 되어 고딕보다는 그 이전의 육중한 양식인 로마네스크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3 역대 본당 주임신부

순서이름재임기간 순서이름재임기간
1대백규삼(장 마리 귀스타브 블랑)[9]1882~18902대정가미(카미유 외젠 두세)1890~1892
3대박도행(빅토르 루이 푸아넬)1892~19264대우일모(마리 피에르 폴 빌모)1926~1942
5대이기준 토마스[10]1942~19506대장금구 요한 금구1950~1957
7대양기섭 베드로1957~19628대이종순 라우렌시오1962~1963
9대신인식 바오로1963~196410대황민성[11] 베드로1964~1965
11대이계중 요한1965~196812대이문근[12] 요한1968~1971
13대최석우 안드레아1971~197214대김몽은 요한1972~1978
15대경갑룡[13] 요셉1978~198216대김수창 야고보1982~1986
17대김병도 프란치스코1986~198818대정의채 바오로1988~1988.9
19대조순창 가시미로1988.9~199420대장덕필 니콜라오1994~1999
21대백남용 바오로1999~200322대이성만 토마스2003~2004
23대박신언 라파엘2004~201024대여형구 미카엘2010~2013
25대고찬근 루카2013~현재

4 결혼식장

웬만한 결혼식장 홀을 압도하는 고딕 양식의 웅장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천주교 신자라면 한 번쯤은 명동성당에서의 혼배를 꿈꾸기도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까다롭다. 신랑 신부 둘 다 가톨릭 신자이거나, 최소한 둘 중 1명은 신자여야 한다. 만약 한 사람이 신자가 아닐 경우 혼인성사에 준하는 관면혼배를 받고 이 결혼으로 태어나는 아이에게는 가톨릭 유아세례를 줄 것을 서약해야 한다.[14] 그래서 다른 한쪽(특히 여자)도 개종하고 결혼하는 경우가 있다.

당해 혼배미사 일정을 전년도 하반기에 전부 추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대개 한 주에 1번 혼배미사 일정을 받는 여타 성당과는 달리 주 10회를 혼배미사로 배정하는데도 신청자가 굉장히 많아서 경쟁률이 엄청나다.

사실 쾌적하게 결혼식을 올리기에 좋은 곳은 아니다. 우선 시간이 굉장히 짧다. 위에도 설명했지만 주 10회라는 엄청난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한 부부 당 1시간간 안에 결혼식을 끝마쳐야 한다..[15] 축의금 1,000원 넣고 피로연 식권을 쓸어가서 정작 하객들은 앉아서 먹지 못하게 만드는 정장 입은 노숙자들이 많아 식권 관리의 난이도가 높은 결혼식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성당이라는 이미지 덕분인지, 결혼식에 있어 제약과 금지사항이 많다.

4.1 사진

신혼부부 당사자들에게 있어 가장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성당 내에서의 본식 스냅사진 촬영을 오로지 명동성당 내의 사진부에서만 할 수 있다. 즉 신랑신부 본인들이 찍고 싶은 외부 사진 업체를 불러다 쓸 수 없다. 명목상으로는 혼인미사 전례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사실은 명동성당 사진부가 이를 독점하기 위한것이라는 음모론(?)이 있다. 또한 사진부 자체의 사진이나 앨범 퀄리티가 썩 좋지 않고 가격도 싸다고는 하기 힘들어서 은근히 불만이 높다. 그나마 찍고 난 사진의 선택이나 앨범의 레이아웃 등은 최대한 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실제 제작할때도 본인들이 참여해서 의견을 말해가며 작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최소한의 위안일지도. 웹을 찾아보면 본식 스냅때 사진을 찍었다고 샘플 사진을 올려놓는 업체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예전에 적당히 신랑신부의 지인 하객이라고 말하고 들어가서 찍은 편법 사진들이다. 그나마도 2013년경부터는 이런 꼼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자 아예 DSLR 카메라는 무조건 입장을 금지시켜 버렸다.

윗글에 짧게 덧붙이자면 타성당에서 외부사진업체들을 불러서 쓴 경우 혼배미사 중간에 제단에까지 올라와서 사진을 찍는 경우가 빈번하다. 신랑신부 입장에서는 좋은 사진을 찍고 싶겠지만 혼배미사가 가톨릭 7성사 중 하나이고 경건한 예식인것을 감안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나마 명동성당 사진부가 가진 약간의 장점이라면 시중가보다 좀 저렴하다.

다만 독점이라고 해서 너무 기분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말자. 많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종파들은 종교의식을 함부로 사진 찍는 것을 좋지 않게 본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식의 촬영권한을 자신들에게 소속된 집단에게 부여하거나, 설령 외부인에게 허용하더라도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철저히 사전 심사하는 건 흔한 일이다. 당장 집 근처 아무 성당에 찾아가서 대뜸 미사를 촬영하는 것은 엄청 무례한 일로 취급되며, 성당 관계자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주의사항을 듣는게 필수이다. 비슷한 원리로 이태원의 이슬람 모스크에서도 외부인의 촬영은 곱지 않게 보며, 철저히 사전에 허가받아야만 한다. 혼인성사는 단순히 멋지고 예쁘게 올리는 결혼식이 아니라, 성사임을 명심하자.

4.2 피로연

하객들에게 대접할 피로연 식사는 명동성당과 협력관계인 부페업체를 이용하게 된다. 단 식 날짜와 시간대에 따라서 피로연 장소는 무조건 정해주는 곳을 이용해야 한다. 성당 맞은편의 서울로얄호텔이 걸리면 중후한 분위기로 괜찮지만, 코스트홀(중에서도 1층)이 걸리면 안습. 메뉴는 3종류의 가격대로 선택이 가능하다고 말해주지만 실제로 보면 시식 날에는 한 종류(중간 가격대)의 식사만 맛볼 수 있고, 저렴한 가격대 메뉴는 중간대에 비해 빠지는 메뉴가 많아 선택하기 어렵다. 실제로는 그냥 가운데 메뉴를 고르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

4.3 그외

명동시내 한복판이라서인지 주차장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고,[16] 하객들의 주차에 대응하려면 근처의 미래에셋 센터 지하 주차장 주차권을 사야 한다. 축가, DVD영상 상영, 화환, 신부대기실 장식, 포토테이블 같은 것도 금지. 거의 명동성당에서 식을 올린다는 것 하나만으로 포기하거나 제약받는 것이 매우 많다.

성당에서 올리는 결혼식중에서도 까다로운 게 명동성당에서 올리는 결혼식. 사실 천주교에서도 웬만하면 소속 본당에서 혼인성사를 올릴 것을 권하기 때문에 적당한 본당 건물이 있는 성당에 다닌다면 너무 명동성당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5 이것저것

네이버에서 명동성당을 검색하면 어린이 청소년을 담당했던 모 보좌신부가 연관검색어로 뜬다. 그 이유는 이 신부가 신자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극강 동안이었기 때문. 강론에서도 본인이 동안이라는 걸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으며, "저 같이 귀여운 신부가 이하생략". 사진을 올려라!! 심지어는 어떤 외국인 부부는 미사 도중에 이 신부가 지나가는 것을 보더니 "So cute"(...)라고 말한 것을 신부 본인이 강론 중에 직접 언급하며, 본격 글로벌 귀요미에 등극했다고 자화자찬하였다. 손발리 오그라진다

하지만 2012년 인사발령에 따라 이 신부는 명동성당을 떠났다. 미사 드리러가 아니라 신부 얼굴 보러왔던 신자들 안습. 한 술 더 떠서 다른 성당에 계시다가 아예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기 때문에 이제는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

근처에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는데 랜드마크로서의 상징성도 더 높지만 그 정류장을 코앞에 끼고있는 중앙극장에게 그 정류소명을 내주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극장 항목 참조.

토요일 저녁 6시, 7시 미사는 주일 미사로 진행된다. 이 중 7시 미사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사용한다. 원래 라틴어 미사였는데 미사를 집전하시던 신부님이 다른 곳으로 가는 바람에 미사를 드릴 수가 없어서 이렇게 바뀌었다. 신학교에서 라틴어 배우지 않나? 왜 다른 신부님은 라틴어로 못 드리지?? 그 전에 1학년 때 Missale Romanum(라틴어 미사 경본)을 줄텐데?!

한국 최초의 본당인만큼 사실상 속인적 본당으로 간주되어 신자들의 거주지와 상관없이 교적이 2만 개 넘게 소속되어 있으며[17], 1년에 한두번 정도 모집하는 평범한 본당들과 달리 2월과 8월을 제외하면 매월 예비신자 교리반을 모집한다. 천주교 군종교구 신병교육대 성당 급의 영세율을 나타낸다. 그리고 견진성사 교리반도 1년에 2회(상반기, 하반기) 모집한다.


6 주변 시설

  • 성당 오른쪽에 계성여자고등학교가 있다. 성당쪽에는 입구가 주변 건물과 비슷하게 생겨서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 보호색 명동성당 바로 뒤쪽에 있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이다. 본래 계성여자중학교도 함께 있었으나, 계성여중은 1980년대에 폐교되었다. 계성여고는 축제날과 졸업식날, 1년에 2번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그 이외의 미사들은 수녀원에서 미사를 드렸다. 특히, 축제날에는 본격적인 축제 시작 전 아침에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이 미사가 끝나면 교내 시상식이 있었다. 신성한 명동성당에서 와글와글 떠드는 여고생들과 그녀들을 진압하기 위한 고함소리가 난무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도심 공동화 문제로 학생수가 급감하는 문제가 발생해서 2016학년도부터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으로 계성여고를 이전했다. 이전 후에는 남녀공학으로 바뀌었으며 교명도 계성고등학교로 변경되었다.[18] 그 때문에 명동성당에서 하는 졸업식은 1997년생을 끝으로 영영 없어졌다. 같은 재단[19]으로 명동성당 뒤편에 있었던 계성초등학교는, 2006년 2월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역 인근으로 이전했다. 계성초등학교는 이전 후 촌지 사건 등 여러모로 뒤숭숭해진 듯. 암튼 계성여고도 기존의 아가씨 학교(?) 이미지를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잃어버렸다. 학교가 이전한 지금은 건물은 비워져 있으며 명동성당 3단계 개발사업때 리모델링 후 교구업무시설로 쓰일 예정으로 있다.
  • 명동성당 입구쪽에 자리잡은 가톨릭회관은 원래 여의도성모병원의 전신인 명동성모병원으로 지어진 건물이였다. 강남성모병원이 서울성모병원으로 엄청난 규모로 확장하기 전에는 그냥 성모병원으로 불렸으며 가톨릭중앙의료원(CMC)의 모태가 되는 병원이였다. 1986년에 여의도로 이사를 갔고, 이후 병원 건물은 가톨릭회관으로 리모델링 되었다.
  • 대성전이 사제서품식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협소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제 서품자가 최소 수십 명이라 손님을 모실 곳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대교구 사제서품은 대부분 잠실실내체육관, 올림픽공원에서 열린다(...) 그래서 2011년부터 총 4단계에 걸친 대대적인 종합개선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 주교 1명 서품이나 수도회 서품식은 가끔 명동성당에서 열린다.

7 명동성당 개발계획

7.1 개요와 현황

2011061100329_1.jpg

정확한 명칭은 명동성당 특별계획구역 세부개발계획으로 명동성당을 비롯하여 종교, 역사, 문화, 건축적으로 의미 있는 건축물들이 밀집한 이 지역을 체계적으로 재단장해 명동 관광특구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이 계획은 2029년까지 20년간 총 4단계로 진행되게 되어있다. 명동관광특구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계획이라는 이유로 상당수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일리있는 지적이기는 했지만 1단계 사업의 결과를 보면 상당한 기우이기도 했다.

2015년 1월까지 진행되었었던 1단계 사업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업무공간으로 활용되는 교구청 신관이 지하4층~지상10층으로 증축되었고, 초기 명동성당의 경사로가 복원되었으며 주차장 등으로 쓰이던 상당 진입부가 광장으로 조성되었고, 대신 교구청 신관 지하에 주차공간이 새로 만들어졌다. 그로인해 차량으로 인해 혼잡해보이던 명동성당 진입부 부분이 상당히 깔끔하게 바뀌었다. 암튼 공사 전 우려했던 것에 비해 반응은 좋은 편으로 교구 사무 공간이 증축되고 지하 상가가 새로 생겼다. 사실 상가라고는 하나 내부가 광장처럼 넓고, 서점카페 위주로 입점하여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1단계 공사가 진행되면서 역시나 이런저런 문제점이 발생했는데[20][@] 이에 대해 시공사인 대우건설에서 서울대교구와 협의없이 공사 진행의 편의를 위해 진행하다 생긴 문제라며 사과를 하기도 했다.

현재는 2단계 사업단계로 교구청 신관이전으로 여유공간이 생긴 교구청 별관 수선이 이뤄지고 있으며 3단계는 계성여자고등학교의 이전으로 생긴 빈 공간에 교구 업무타운 조성과 대강당 증축 등이 추진된다. 마지막 4단계는 60년대 지어진 가톨릭회관 하부 일부를 수선하고 교육관을 철거하게 된다. 그 이후 선교센터를 구축하고 수선한 가톨릭회관 하부 필로티에 쌈지공원이 생길 예정으로 있다.

IE001195504_STD.jpg
▲ 공사 전 명동성당 진입로 모습. 사진은 4대강 공사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 장면이다.


7.2 비판과 견해

  • 명동성당 재개발 공사로 변화된 양상에 대해 "관광객들, 젊은이들 사진 찍고, 커피 마시고, 벤치에 앉아서 데이트하기 좋은 그런 곳이 되버렸다. 이게 신성함과 경건함을 추구하는 성당으로서 바람직한 모습일까?"와 같은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천주교 신자들도 많은 편.
  • 명동성당의 상가 조성은 명동 지역의 유난히 높은 땅값과 임대료에 대해 호시탐탐 눈독을 들였던 교구 고위성직자들의 염치없는 돈 욕심에 의한 큰 착오와 실수로, 이러한 상업 시설의 설치로 인해 명동성당의 '성지' 라는 정체성은 이제 표면상에만 남은 것일 뿐 실상 관광지로 전락해버린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의견도 있다. 극단적인 의견으로는 성지를 팔아 돈을 버는 추악한 짓이라는 의견도 있다.
  • 재개발 공사 완료 이후 명동성당만 세속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사목 내용도 변하고 있다고 한다. 복음 전파는 뒷전이고 본격적으로 문화 예술을 전파하겠다며 허구헌 날 음악회를 열어대고 행사를 치르는 바람에 정작 진지하게 신앙 생활하는 신자들은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는 의견도 있는 편.


8 기타

8.1 명동성당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와 경비원들 수 명을 해고했다가 언론에 떡하니 보도되어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

이 노동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바로 근처에 머물고 있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서신을 보냈으나 만나주긴커녕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뚜렷한 이유 없이 짤린 것도 억울한데 편지마저 씹히다니.. 정말 서러운 경우다. 그래도 추기경은 서울시장이나 국회의원 등 굵직한 인물은 교구청 접견실에서 다정히 만나준다.) 교구 성직자들은 강론 등의 메시지에서 대화의 필요성과 소통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고 역설하지만, 이처럼 분명히 듣고도 대답이 아닌 회피하고 함구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 불리한 진술을 요할 때 특히 그렇다.

기존 노동자들이 교적이 없어서, 교파가 달라서 고용 심사조차 제한된 이 사건은 2가지 견해로 볼 수있다. 교적이 없다면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려고 시도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것이다. 성당이 세워지고 존재하는 이유가 복음을 전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를 거행하기 위함이지 다른 이해득실과 타산에 그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종교에 따른 차이를 두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시각이다. 이러한 문제는 왕왕 벌어지는 일로 미션스쿨과 같은 종교적 목적을 가진 시설에서 종교에 따른 차이를 두는 것은 해당 운영단체에 있어서는 당연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종교적 자유를 요구한다고 보기도 한다.

해고된 청소노동자들의 용역 공백을 메우기 위함인지, 이 일로부터 몇 달 후 명동성당에 <봉사뱅크>가 생겼다. 이 아이디어를 착안하여 도입한 주임신부는 "피정하는 마음으로 한 3시간 정도 잡초를 뽑아보거나, 담배 꽁초 20개를 주워보거나, 성당을 자기 집처럼 여겨 화장실 휴지를 교체해보라." 는 등의 말로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8.2 유튜브 라이브캠

[명동성당 라이브캠(24시간 가동)]


가톨릭굿뉴스가 유튜브를 통해 직접 명동성당 라이브캠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점검 등의 사유를 제외하면 24시간으로 상시 가동중이니 궁금한 사람들은 한번 들어가보자.
  1. 2014년 개발 이후 성당 앞에 있던 예수상(길상사관세음보살상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조각가 최종태 씨가 제작.)이 위치가 성당 서편의 교구청 사도회관으로 옮겨갔다.
  2.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주교가 신민회안명근 야고보를 조선 총독부에 밀고한 대가로 총독부는 명동성당 주위의 부지를 넓히는 등의 혜택을 주었다. 이게 그 유명한 105인 사건 [참고]
  3. 정확하게는 성당 경내가 아니라 성당 언덕 아래의 길가가 습격 장소다.
  4. 보다 정확하게는 네오 고딕(고딕 리바이벌) 양식에 속한다.
  5. 이에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는 종을 치는 끈을 거두고 종탑을 폐쇄했다. 그래서 종은 무사했지만 대신에 성당에 있던 철제 난간이 뜯겨져 목제로 교체했다.
  6. 전쟁 당시 성당 인근에 주둔하던 인민군을 몰아내기 위해 미군 측에서는 그 지역을 싹 폭격한 뒤에 성당을 새로 지어주겠다고(!!!) 한국 가톨릭에 제안했지만 교계에서 결사반대했다.
  7. 롤빵 같이 둥근 천장을 볼트라고 하며, 리브는 천장의 뼈대를 말한다.
  8. 성당 외부의 독립된 기둥들로, 외벽이 밖으로 쓰러지는 것을 막아준다.
  9.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7대 교구장. 명동성당을 짓던 중, 1890년에 선종하였다.
  10. 명동성당 최초의 한국인 주임신부.
  11. 천주교 대전교구 제2대 교구장.
  12. 여러 성가를 작곡한 작곡가이며, 영화 포화 속으로의 모티브가 된 이우근 학도병의 형이기도 하다.
  13. 천주교 대전교구 제3대 교구장.
  14. 명동성당뿐만 아니라 어떤 성당이든 혼배 미사를 위해서 내거는 조건이다.
  15. 이것은 명동성당에서의 결혼식이 단순 행사가 아니라 '혼례미사'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간에 축가를 부르거나 할 시간은 없고 딱 혼례미사만 진행한 이후 퇴장하여야 한다.
  16. 하지만 2014년 이후 명동성당 지하주차장 확대로 승용차/SUV 약 300대 유료 주차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7. 명동의 주민등록 인구가 1만 명 선이다(...)
  18. 대구광역시에도 같은 교명을 가지는 유서 깊은 고등학교가 존재한다. 이쪽은 계명대학교 재단으로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계열이다. 대구 계성고등학교도 16학년도부터 학교를 새로운 곳으로 이전했는데, 이래저래 말이 많았다. 특히, 공사비 문제로 건설사와 마찰이 심했다.
  19.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계성여고/계성초교 외에도 산하에 가톨릭대학교와 동성중학교ㆍ동성고등학교도 있다.
  20. 부지 전체가 아니라 대성전만 문화재라서 대성전보다도 오래된 주교관이 문화재가 아닌 것, 땅 파는데 대성전 안 무너지도록 고려 제대로 했는지 논란, 조선시대 유적+근대유적 다 묻혀 있는데 무시하고 부숴버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