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반적인 의미
- 當者 : 바로 그 사람.
2 삼국시대의 인물
唐咨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와 위나라의 장수.
225년 6월에 이성군에서 병사 채방 등이 반란을 일으켜 서질을 살해할 때 당자는 우두머리로 추대된다. 그러나 임복, 단소, 왕릉 등의 공격으로 토벌되자 당자는 뱃길로 오나라에 도망가서 항복, 후에 봉해지면서 지절이 되었다.
235년에 여릉의 이환, 노합과 회계의 수춘, 남해의 나려 등의 도적이 일시에 반란을 일으키자 당자는 유찬과 함께 여대의 지휘 아래 이들을 공격해 236년에 수춘을 항복시켜 당자는 나려를 체포해 참수한다. 239년에 오나라의 장수 요식이 임하태수 엄강을 살해해 평남장군이라 자칭하면서 형주 남부와 교주 일대를 혼란에 빠뜨리자 여대를 따라 1년 안에 정벌한다.
252년에 위나라가 제갈각이 쌓은 성을 공격하기 위해 제갈탄과 호준에게 7만명을 주어 적을 공격하게 했는데, 당자는 제갈각의 명으로 여거, 유찬, 정봉과 함께 선두 부대로 파견되어 환가와 한종을 죽이는 공을 세우는데 이바지한다.
256년에 전장군을 지내던 당자는 손준이 문흠이 위나라를 공격하자는 건의에 대해 여거, 주이, 유찬(劉纂)과 함께 적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는데, 손준이 죽자 취소되었다. 손준이 죽자 여거, 문흠과 함께 등윤을 승상으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손침이 정권을 잡게 되며 이에 여거, 등윤이 반발하자 당자는 손침의 명을 받아 문흠, 유찬과 함께 여거를 공격한다.
257년 제갈탄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를 구원하기 위해 3만을 이끌고 문흠, 전단, 전역, 왕조 등과 함께 출병해 왕기가 포위하는 것을 완성하기 전에 샛길을 통해 수춘으로 들어가는 것에 성공하나 계속된 공격과 종회의 이간책으로 전단의 일족이 항복하고 사마소의 거짓 퇴각에 속아 제갈탄은 식량마저 낭비해 굶주림과도 싸우게 된다.
258년에 남아있는 무기를 총동원해 5, 6일간 밤낮으로 남쪽 포위망을 공격하지만 위나라의 투석기와 불화살에 공격 무기마저 다 파괴되면서 탈주병이 속출했으며, 제갈탄이 문흠과의 의견 차이로 문흠을 죽이는 사태가 벌어져 문앙과 문호가 위나라로 투항한데다가 제갈탄과 당자의 계책도 다하니 결국 위나라의 총공격에 제갈탄은 죽고 성은 함락되어 당자는 적에게 사로잡힌다.
손만, 손미, 서소 등과 함께 항복했으며, 위나라를 위해 힘을 다해 싸우지 않을 것이니 파묻어 죽이라는 주위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사마소가 중원의 도량을 보여주자는 의견에 따라 안원장군으로 임명된다. 오나라에서도 항복한 오나라 병사를 모두 살린 행위에 감동해 항복한 병사의 가족을 죽이지 않았으며, 사마소는 당자 등 항복한 오나라의 장수들을 이용해 오나라를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왕기의 반대에 이 계획은 포기한다.
제갈탄을 구원하러 262년에 종회와 사마소의 명에 따라 바다도 건널 수 있는 큰 배를 만드니 외부에서는 오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배를 만든다고 여겼다. 263년에 유선이 항복하자 종회에게 항복한 강유 및 촉의 관리들을 포로들 앞에서 종회가 말할 때 "당자는 포위당해 포로로 붙잡힌 후에 항복하고도 지금 정사에 참여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없다"는 문장에서 언급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성군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은 나오지 않지만 진나라와의 싸움과 배를 만드는 장면에서 등장하며, 정사와는 달리 항복한 당자의 가족들이 손침에게 살해당한다는 점이 나온다.
2.1 미디어 믹스
삼국지 11 |
삼국지 12,13 |
삼국지 시리즈에도 등장하지만 능력치는 대략 좋지 않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0/67/47/51. 누선 말고는 볼 게 없는 장수.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63/71/50/54/63에 특기는 치안, 돌격, 제독 3개뿐.
삼국지 12에선 원본에선 짤렸다가 PK에서 추가되었는데 얼굴이 폭풍 너프 되었다. 이 엄청난 사시를 보라.
삼국전투기에선 알렉스 루이 암스트롱으로 패러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