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의 군권 1인자 | ||||||||||||||||||||
주유 | → | 노숙 | → | 여몽 | → | 육손 | → | 주연 | → | 제갈각 | → | 손준 | → | 손침 | → | 주적 | → | 정봉 | → | 육항 |
오의 승상 | ||||||||||||||||||||||
손소 | → | 고옹 | → | 육손 | → | 보즐 | → | 손준 | → | 손침 | → | 복양흥 | → | 육개(左) | → | □연 | → | 장제 | ||||
주거 | 손은 | 만욱(右) |
『오서』 「제갈등이손복양전(諸葛滕二孫濮陽傳)」 | ||||
제갈각 | 등윤 | 손준 | 손침 | 복양흥 |
孫綝
(231~258)
1 개요
손견의 아우인 손정의 증손자며 손준의 사촌 동생으로 손은의 형이다. 할아버지는 손호, 아버지는 손작이다.[1]
2 생애
2.1 막장
후사가 없던 손준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장악했다.
처음에는 편장군으로 임명되었다가 손준이 죽자 그에게 뒷일을 부탁받아 시중, 무위장군이 되어 중앙과 지방의 모든 군사를 총괄했다. 손준을 대신해 조정의 정사를 주관했는데 여거는 이를 듣고 분하고 두려워하여 등윤을 승상으로 천거했으며 등윤과 함께 손침을 폐출하려 했다. 손침은 손준의 북정군을 되돌려 여거를 공격해 자살하게 했으며 등윤과 여거의 삼족을 멸했다.
그 후, 대장군에 임명되고 가절을 받았으며 영녕후에 봉해졌는데 손침은 자신의 존귀함에 의지하여 매우 오만했으며 항상 무례하게 행동했다. 손준의 당제이자 제갈각을 죽이는 음모에 가담한 손려는 손침 집권 후 대우가 얕아지자 장군 왕돈과 함께 손침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위의 진동대장군 제갈탄이 사마소 정권에 대항하여 거병하고 오나라에 투항을 청하자 손침은 문흠, 당자, 전단, 전역, 주이 등에게 병사 3만 명을 주어 구원하게 했으나, 이들이 오히려 참패하여 손침은 큰 원망을 샀다.
손침은 황제 손량이 정무를 본 이래로 많은 힐문을 받게 되어 두려워했다. 당시 손량은 큰누나 손노반, 장인 전상과 그의 아들 전기, 장군 유승과 함께 손침을 죽일 모의를 세웠는데 전상은 손침의 사촌 누나였던 자신의 부인에게 이 음모를 알렸다. 전상의 부인은 손침에게 알렸고 손침은 결국 손량을 폐출하고 반대하는 신하는 죽이고 일족은 유배보냈으며 손권의 여섯째 아들 낭야왕 손휴(孫休)를 황제로 세웠다.
득의양양해진 손침은 오자서의 사당을 불태우고 불교 사원을 파괴하고 승려들을 참수했다. 손침의 네 아우가 모두 후작에 임명되었고 모두 근위군을 관장하여 손침 집안의 권력은 천자를 기울게 할 지경이었다.
2.2 최후
손침의 권력은 대단했으나 손침과 손휴는 서로 두려워하게 되어 손침은 무창으로 나가기를 원했다. 손휴는 이를 허락하였으나, 장군 위막이 손침이 밖에 있으면 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으며 무위사 시삭은 손침에게 모반의 징조가 있다고 했다.
마침내 영안 원년 12월 8일, 건업에서 연회가 있었는데 손휴는 정봉, 장포 등과 함께 계획했는데 이날 왠지 태풍이 불어 나무가 뽑히고 모래가 날리자 손침은 불안하여 병을 핑계삼아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손휴가 사자 10여 명을 보내자 황제의 명령이라 할 수 없이 나섰는데 심복들이 가지 말라고 말렸다.
그러나 손침은 사양할 수 없다면서 미리 군대를 정비하고 관소에 불을 질러 신호하라고 일렀다. 손침이 궁궐에 온지 얼마 안되어 관소에 불이 나자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손휴는 밖에 군사들이 많은데 왜 나서냐고 말렸지만 손침은 기어이 나서려고 했다. 그러자 정봉과 장포는 곁에 있는 자에게 눈짓하여 손침을 사로잡게 했고 묶었다. 이 때 손휴와 손침의 대화가 걸작이다.
손침: "원컨대 저를 교주로 유배보내 주십시오."손휴: "경은 어찌하여 등윤과 여거를 유배보내지 않았는가?"
손침: "그럼 원컨대 저를 관가의 노비로 만들어 주십시오."
손휴: "경은 어찌하여 등윤과 여거를 관가의 노비로 만들지 않았는가?"
손휴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손침의 목을 베고 그의 삼족을 멸했으며 손준의 무덤을 파헤쳐 인수를 빼앗아 관을 부쉈다가 다시 묻었다.[2] 이는 손노육 등을 죽인 죗값으로 그 외에 손준과 손침에게 죽은 제갈각, 등윤, 여거 등은 모두 사면되어 이장되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
또 제갈각 등의 무리로서 유배갔던 이들도 다시 불러들이면서 손준과 손침이 같은 황족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서 황실 족보에서 삭제해 그들에게 손씨 성을 없애 고(故)를 붙여 고준(故峻), 고침(故綝)이라 불렀다.
3 평가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오서 제갈등이손복양전〉 끝에 손준과 손침에 대해 흉악한 행실이 가득해 본래부터 논할 가치도 없는 자라고 깠다.[3]
4 미디어 믹스
삼국지 11 |
삼국지 12,13 |
삼국지 시리즈에서의 능력치는 백하팔인 수준까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매우 낮은 능력치를 가지고 나온다. 다른건 다 백하팔인 수준으로 바닥인데 지력만은 그래도 60대를 찍는 정도.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9/무력 40/지력 59/정치력 8로 처참하지만 투함 하나는 해전에 유용하다. 의리가 0이라서 다른 손씨보다 아군으로 만들기 쉽기도 하다. 문제는 야망도 15라서 배신이고 독립이고 뭐든지 무시무시할만큼 잘한다는거... 9에서 딱 4명(손침,공손연,동탁,원술) 뿐인 독보적인 수치이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25/무력 40/지력 65/정치력 8/매력 6으로 총합이 144밖에 안된다. 특기가 4개로 상업, 혼란, 위압, 간첩인데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느낌이다. 특히 정치가 8밖에 안 돼서 상업 특기가 의미가 없다.
삼국지 11에서도 능력치가 안 좋다. 가장 높은 지력이 65에 능력치 합이 141. 손준은 그래도 가장 높은 무력이 70이라도 되는 반면 손침은 그야말로 답이 없다.
삼국지 12에 나온 그의 일러스트는 매우 간사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손준과 더불어 일러스트에서도 대우가 좋지 않은 편. 근데 전법이 쓸만한 전공성강화이다. 지력도 65이라서 약간이나마 쓸만하다. 흠좀무.
삼국전투기에선 사촌형인 손준이 폭주형제 렛츠&고의 세이바 레츠로 나와서 동생인 세이바 고로 나왔다. 덤으로 손준과 손침이 세이바 형제로 패러디된 건 폭주를 했기 때문으로 즉 막 나갔기 때문이다. 사망할 때, 막장질을 고작 2년밖에 안했으니 그동안 전횡을 해봐야 얼마나 했겠냐고 쉴드 쳐 주는데, 참고로 그 동탁도 막장질을 2년 밖에 못 했다. 손휴가 손침을 주살한 후역사대로 손준과 손침을 고씨로 개명시키지만 그냥 고씨라고만 나와 단순히 원래 있던 고(高)씨로 개명시킨건지, 아니면 원래대로 고(故)씨로 개명시킨건지 이 만화만 봐서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