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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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ume 데이비드 흄
1711년 4월 26일 ~ 1776년 8월 25일

서양철학사에서 손에 꼽히는 천재 철학자

철학자가 되어라. 그러나 그대의 모든 철학 가운데서도 여전히 인간으로 남아 있어라.

1 생애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1], 역사학자. 서양철학사에서 보기 드문 조숙한 천재인데 아래에 소개할 그의 주요 주장들을 처음 생각해냈을 때 그의 나이가 18세였고 첫 작품인 『인성론』[2]을 출판했을 때가 28세였다.[3] 역작 중의 역작인 이 책을 써내고 흄은 커다란 부와 명성을 얻을 줄 알았으나 그런 것 없었다(...) 결국 흄은 철학자로 명성을 얻지 못하고 대중들을 위한 역사책을 써내며 부와 명예를 손에 얻게 되었다.

2 저작

수많은 저작을 남기는 다른 철학자들과는 달리, 흄은 친절하게도 철학에 관련된 저작들은 한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밖에는 남기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철학적 가치가 높은 저작은 『인성론』과 『인간 지성에 대한 탐구』[4]. 전집을 편찬하면 20권이 넘어가는 다른 철학자들과는 달리 철학과 학부생도 주요 저작을 다 읽을 수 있는 친절한 철학자이다. 이는 그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글쓰기를 선호하였고, 주로 역사서 저술[5]에 힘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철학적인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단지 저 2권 및 그로부터 출발한 다양한 입장을 빼놓고는 현대 철학의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주요한 입장들을 서술할 수가 없다. 그를 온전히 인정하는 입장은 소수일지 모르나, 그를 빼놓고 논하는 철학은 불가능하다는것이다.

3 흄의 철학

수많은 근대철학자들 중에서 하나의 입장 전체를 대변하는 사람이자 현대에서도 끊임없이 인용되는 두 명 중 하나.(다른 한 명은 칸트) 특히나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완전히 부정하고 직관에 대한 호소와 경험을 신뢰하며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철학에 적용하는 등 현대 철학의 다양한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실로 대단한 업적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근대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영미)철학의 시조라고도 불릴 수 있겠다. 특히나 실체 혹은 과 같은 개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기존의 경험론자(로크, 버클리)와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적 방법론과 경험론을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그는 경험론 vs 합리론으로 나뉘어지는 수많은 근대철학의 입장들 중 최고의 경험론자이자 가장 철저한 근대정신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현대 철학에 있어서 논리실증주의, 초기 언어철학(언어의 명료한 의미 분석을 통해서 몇몇 논쟁이 해소된다는 입장), 대다수의 메타 윤리(윤리는 감정에 기반하는가 vs 이성에 기반하는가?), 공리주의 vs 의무론, 공리주의 vs 자유주의, 반-형이상학(인과에 대한 회의주의 포함) vs 형이상학의 부활과 같은 다양한 입장에서 흄의 입장은 어찌 되었건 한 번은 반드시 거치는 입장이다. 비록 철학과 수업에서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없이 철학을 진행할 수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셈.

3.1 인식론

그의 철학적 입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명제는 '오직 경험으로부터 (논리학과 수학을 제외한)모든 지식과 그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의 입장은 '모든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설명 가능하다.'는 단순한 전제에서 시작한다. 이를 위해서 그는 '인상(Impression)'의 개념을 도입한다. 그는 로크버클리와 같은 기존의 경험론자들이 관념(Idea)으로 뭉뚱그려 설명했던 것을 인상과 관념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인상은 뚜렷하고 생생하며, 인식자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원초적인 지각으로서 감각(외부지각)과 반성(내부지각)에 의해 생기는 표상이고, 관념은 인상이 사라지고 난 후에 회상 또는 상상을 통해 생성하는 지각이다. '인상'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감각기관으로 직접 받아들일 때에 얻게 되는 그 무언가이고, 관념은 그것을 간접적으로 받아들일 때에 얻게 되는 그 무언가이다. 이 구분은 단어만 보면 어려워 보일지 모르지만, 기억과 감각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이를테면 당신이 보고 있는 이 컴퓨터 화면은 컴퓨터 화면의 인상이다. 그러나 눈을 감고 나서 이 화면을 떠올리게 될 때에 얻게 되는 그 무언가는 관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관념은 인상의 복사물(copy)이라는 점에서부터 그는 경험적 세계에서는 반드시 적용되는(수학, 논리학, 대수와 같은 연역적 영역은 적용되지 않는다.) '복사 원리(copy thesis)'라는 하나의 입장을 이끌어낸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지는 모든 관념은 '경험 가능한' 개별적인 인상들에 기인하며, 이러한 인상이 없으면 관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합리론 쪽 철학자들이 내세웠던 수많은 형이상학적 가정들을 죄다 거부한다. 이를테면 실체, 힘, 충족 이유율, 자아(!)와 같이 기존의 합리론자들이 선호했던 개념들은 그에 상응하는 어떠한 인상도 우리가 가질 수 없으니 몽땅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것이다.데카르트: 앙대 이러한 태도는 칸트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후의 철학자들이 상당 부분 공유하는 입장이며 이는 그가 근대 후반기를 열어젖힌 인물인 이유와 현대와 근대의 철학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비록 현대의 형이상학자들이 흄의 주장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오죽하면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스테디셀러인 『서양철학사』에다가 흄 이후 형이상학자들의 주요 일거리 중 하나가 흄의 주장을 논박하는 것이지만 그 수많은 비판 중에서 신뢰할 만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써놨다. 자기들 일거리를 없애려는 사람 덕분에 오히려 일거리가 늘어났다.

그래서 그는 데카르트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회의주의에 도달한다. 보다 정확히 말해서 흄은 자연과학의 근본이 되는 '필연적 인과'개념을 거부한다.[6] 그가 보기에 자연과학의 모든 사건은 오직 시간과 공간의 연접, 그리고 순서에 따라서만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직접 '인과'라는 무언가, 혹은 '힘'이라는 것을 느낄 수는 없다. 하나의 당구공이 다른 당구공을 쳐서 밀어낼 때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두 구체가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이며, 그것을 여러 번 관찰할 때에 마치 어떤 법칙이 '있는 것 처럼' 착각하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과의 필연성은 이 '착각'이 실재한다는 것에 기인하며, 그에 상응하는 인상 따위는 사실 존재하지 않기에, 인과적 법칙은 거부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만 수 많은 사건으로부터 인과적 법칙을 추론해 내는 현상 자체는 우리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효용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과학 자체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에 주목하는 입장을 자연주의라고 불리게 된다. 인간의 지식에 대한 흄의 이러한 입장은 『인간오성탐구』 1권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후덜덜한 문구로 요약되어 있다.

도서관에서 신학이나 형이상학에 관한 아무 책이나 집어 들어서 다음과 같이 물어보라. 그 책에 수와 양에 관한 추상적인 추론이 들어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사실과 존재에 관한 경험적인 추론이 들어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 책은 그냥 불 속에 던져버려라. 왜냐하면 그것에는 오로지 궤변과 헛소리들만 적혀있기 때문이다! 본격 분서를 권하는 철학자 학생들은 좋아라하겠지.

3.1.1 '귀납의 문제'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에서 인과필연성 개념을 논박하는 가운데, 귀납추론의 정당성을 논박하는 다음과 같은 논증을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전제: 수학이나 논리학을 제외한 "사실 문제"를 아는 것은 귀납 논증에 의존한다.
  • 가설: 귀납 논증은 정당한 추론 방식이다
  • 가설에 대한 논거1: 왜냐면 귀납 논증은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항상 잘 먹혔으므로, 앞으로도 잘 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 논거1에 대한 논거2: 왜냐면 미래과거와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논거2는 수학이나 논리학 명제가 아니므로 사실 문제다.
  • 전제에 의하여 논거2는 귀납논증에 의존하며, 곧 논거2가 정당하기 위해선 가설이 옳아야 한다.
  • 하지만 현시점에서 가설에 의존하는 것은 순환논증이므로, 곧 논거2는 정당한 논거가 될 수 없으며, 곧 논거1 또한 정당한 논거가 될 수 없다.
  • 가설에 대하여 논거1을 제외한 별도의 마땅한 논거는 없는 것 같다.
  • 결론: 따라서 가설은 비합리적이다.

물론 귀납추론이 없다면 과학 같은 것이 제대로 이루어질리가 만무하므로 은 여전히 귀납추론을 쓸 수 있다고, 오히려 써야만한다고 말한다. 딱히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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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흄의 공리

인식론과 관련하여 흄이 과학적 회의주의에 기여한 부분. 아래는 원문을 인용한다.

증언 자체가 기적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고 증언이 거짓일 가능성이 그 증언이 입증하고자 하는 사실보다 더 기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어떤 증언도 기적을 입증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누가 와서 자기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을 보았다고 내게 말한다면, 나는 즉시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있을지 곰곰히 생각할 것이다. 곧, 이 사람이 나를 속이려거나 다른 사람에게 속은 것은 아닌지, 또는 그 사람이 말한 사실이 정말로 일어났던 것인지를 따져 볼 것이다. 나는 하나의 기적을 다른 기적과 견주어 보다가 기적의 성격이 더 큰 것을 거부할 것이다. 만일 그 사람의 증언이 거짓일 가능성이 그 사람이 말한 사건보다 더 기적적이라면 그럴 경우에만 그 사람은 나의 믿음이나 의견이 잘못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3.3 윤리학

신기하게도 흄이 윤리학에서는 이러한 회의주의를 견지하지 않는다. 그는 우선 책임의 문제에서 언어의 의미를 통한 양립 가능론을 견지한다. 그가 보기에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문제, 혹은 책임의 문제는 언어에 속아넘어간 문제인데, (여기에서 우리는 칸트와는 달리 그가 현대 언어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엄밀하게 말할 때,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곤 하는 의미와는 달리 '결정'의 반대는 '우연'이며,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된다. 그러므로 이 두 개념은 충돌하지 않는다.(인성론 2권)

그리고 흄이 분석하기에, 우리의 동기는 오직 감정이다.(인성론 3권) 감정이 아닌 그 어떤 것도 (이를테면 이성)우리의 동기가 되기에는 불충분하며, 이는 우리의 언어적 직관에 의해서 타당해 보인다. 그러므로 도덕적 행위 역시 오직 우리의 도덕적 감정에 의해서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도덕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감정을 승인하도록 평소에 꾸준히 훈련을 쌓고 비도덕적이고 급박하며 이기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훈련을 쌓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써놓고 나니 철학자가 했던 말 치고는 너무 유치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처럼 어떠한 형이상학적, 철학적인 전제도 요구하지 않고 오로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만을 가지고 철학을 전개한 인물은 흔하지 않다. 다만 본인도 일반인의 상식과 직관을 중시했기에 자기 책이 잘 팔리지 않을 때 절망했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의 책을 읽어보면 그가 대체 왜 이 책을 일반인이 이해 가능하다고 했는지가 신기할 때가 많다... orz. 다만 영어 원서는 몇몇 철학 학파들에 대한 암시가 있긴 해도 철학 용어 자체는 전혀 없다시피하고 영어 자체는 어려운 말임에도 쉽게쉽게 읽혀지도록 잘 쓰긴 했다. 이걸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역시 알아먹을 수가 없게 되었지만. 또 그 영어가 아름답고 쉽게 읽히는 것과 별개로 에....음....어.... 문장 하나하나는 쉬운데 말이지....

흄과 칸트가 가장 심하게 갈리는 지점이 이 윤리학에서의 논의이다.(형이상학에서 둘은 회의주의자로 분류되고, 막상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칸트가 보기에, 인간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절대로 완벽하게 알 수 없고, 당연히 자신의 동기가 감정인지 이성인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이상향에 대해서만 논의해야 한다는게 칸트의 입장. 보다 자세한 논의는 칸트 참조.

4 트리비아

흄은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이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저서에서도 언급하듯 '백인들 외엔 문명화된 인종이 없다'라는 표현으로 대표된다. 소위 말하는 유럽이 동양의 저변을 뛰어넘은 게 17세기라고 가정해 봤을 때, 그의 철학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지만 본인 자체의 시야나 배경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그러나 모든 것을 자신의 경험과 감각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는 본인의 주의주장을 생각해 보면 이조차도 그럴 듯한 구석은 있다.

흄의 고향인 에든버러에 가면 흄의 동상을 발견할 수 있다. 1995년 공개. 발가락이 이상하리만치 튀어나와 있는 게 특징인데, 관광객들 철학과 학생들 이 하도 만져대서 닳아버렸다.
  1.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화폐수량설의 원조(!).
  2. "A Treatise of Human Nature" (1739). 영어로 써진 가장 위대한 철학저서로 꼽힌다.
  3. 이 부분이 칸트와 대비되는 부분인데 칸트가 그의 역작 『순수이성비판』을 출판했을 때는 이미 환갑에 가까운 나이였다. 하지만 칸트도 대단한 것이 그는 흄의 형이상학 비판을 접하고 충격을 받아, 자기 나름대로 흄의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10여 년이 걸린 끝에 『순수이성비판』을 내놓았다.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믿음들을 모조리 백지화하고 아예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낸 것이다. 흔히 서양철학사에서 천재의 전형으로 흄을 들고 대기만성의 전형으로 칸트를 드는 것도 이 때문.
  4. 흔히 『인간오성탐구』라고도 불린다. 흄이 본인의 첫 저서인 『인성론』이 호응을 얻지 못한 이유가 딱딱한 문체 때문이라 판단하고 『인성론』의 내용 중 중요한 부분들을 추리고 문체도 조금 더 다듬어서 출판한 책이 『인간 지성에 대한 탐구』. 쉽게 말해서 『인성론』의 대중용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정확해서 인성론보다 큰 호응을 얻었다. 칸트를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게한 책으로 추정된다.
  5. 흄이 처음으로 이름을 날린 건 그가 쓴 철학저서들이 아닌 역사저술이나 화폐론 덕분이었다. 흄의 담백하면서도 깔끔하고 품위 있는 문장력은 대중에게 사랑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참고로 영국의 역사를 썼지만 그의 저서에는 잔 다르크가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6.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흄은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이 서로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는것을 부정하지 않고 그러한 인과관계가 필연적이라는 것을 부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