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델피에로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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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za Del Pi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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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어시 찔러주시는 하얀 드록바는 무시하자
많은 순간, 많은 경기에서 많은 이들을 웃고 울게했던 그의 '메롱' 세레머니.[1]

이름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Alessandro Del Piero)
생년월일1974년 11월 9일
국적이탈리아
출생지코넬리아노
신체 조건173cm, 73kg
포지션포워드
소속 클럽칼치오 파도바 (1991-1993)
유벤투스 FC (1993-2012)
시드니 FC (2012-2014)
델리 다이모스 FC (2014)
국가 대표91경기 27골
"이탈리아에서 아름다운 게임을 불러오는 사람."

ㅡ 롭 휴즈

"그가 곧 유벤투스이며, 유벤투스가 곧 델 피에로다."

루이스 피구

"신사는 숙녀가 원할 때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

유벤투스의 영원한 카피타노, 그리고 디에스(No.10)[2]
판타지스타

1 개요


로베르토 바조의 뒤를 이은 판타지스타이자 비안코네리 군단의 위대한 주장[3].

이탈리아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마지막 판타지스타. "진정한 천재(IL Fenomeno Vero)"[4].
핀투리키오[5]라는 별명다운 우아한 드리블 능력과 뛰어난 테크닉, 높은 득점력, 이타적인 플레이, 다양한 공격 롤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 능력까지 갖춘 공격의 토탈 패키지였던 선수이자, 아주리 군단과 유벤투스를 대표했던 유일무이한 선수. 이탈리아 판타지스타 혈통의 적통이자, 어쩌면 마지막 판타지스타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델 피에로의 노쇠화, 그리고 은퇴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후계자가 될 이탈리안 판타지스타의 재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6].

섀도우 스트라이커(Shadow Striker)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던 1990년대에 혜성같이 등장하여, 플레이메이킹과 팀의 주 득점원을 동시에 수행하는 섀도우 스트라이커의 개념을 보여줌과 동시에 완성시킨 교과서라고까지 불린 3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7]

흔히들 간단히 줄여 알레, 델피.델레알피??? 한국한정 대패로 골을 넣으면 혀를 내밀고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세레모니로 유명하지만 본격적으로 해축이 보급된 2000년대 중반부터 세리에 A 중계가 거의 없었고 이탈리아 국대 방송또한 잘 틀어주지 않았기에 대다수의 해축팬들은 알레에게 전용 세레모니가 있는 줄 모른다.

2 커리어

세리에 B팀이던 칼치오 파도바의 유스였던 그는 1991년 성인팀으로 승격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나 많은 경기를 뛰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1993년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한창 유망주 발굴하던 재미에 빠졌었던 마르셀로 리피 감독의 요청으로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제 1기 리피의 아이들(Lippi's Bleeding)의 시작이자 전설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994년 3월 20일, 당시 강팀이었던 파르마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파르마를 4-0으로 아주 박살을 내 버린다.[8] 참고로 이게 데뷔 첫 선발출전이었다. 흠좀무. 이후 유벤투스의 에이스였던 바조를 완벽하게 밀어내며 주전자리를 꿰찬다.[9]

그리고 전설의 공격수가 화려한 막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데뷔 이후 유벤투스는 94/95, 96/97, 97/98, 01/02, 02/03 세리에 A 우승[10], 95년부터 98년까지 3시즌 연속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하여 95/96 우승, 96/97, 97/98 준우승, 그리고 02/03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라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했다. 혹자는 이 시기를 유벤투스의 진짜 화양연화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그 속에서 델 피에로는 97/98 시즌에만 32경기 21골을 넣었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0경기 10골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득점왕을 석권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비드 트레제게와 영혼의 투톱을 결성한다.

선수로서의 재능도 최고급인데 더불어 멘탈까지 훌륭해 감히 멘탈甲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는 인격적으로도 완성된 사람. 01/02 시즌부터 주장 완장을 달기 시작해 팀이 06/07 시즌 칼치오폴리로 인하여 세리에 B로 강등되었고, 알레 자신에게도 수많은 러브콜에 있었음에도[11] 의리 하나로 다비드 트레제게, 파벨 네드베드, 지안루이지 부폰, 카모라네시 등과 함께 끝까지 팀에 남으며, 지안피에로 콤비?! 20골이나 득점하여 세리에 B 득점왕을 차지함과 동시에 팀이 세리에 A로 복귀하는데 공헌했다. 이 때 멘트가 걸작이다. 신사는 숙녀가 원할 때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12]

팀 강등이 결정되자 동료들과 팬들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복귀시즌에 곧바로 세리에 A 득점왕 접수(21골). 팀은 리그 2위로 곧바로 챔피언스리그 직행티켓을 따냈고, 그 때 그의 나이 34세... 나이? 그건 먹는건가요 우걱우걱

09/10 시즌을 시작으로 페라라 - 자케로니 - 델 네리라는 막장 감독 3연타가 불러일으킨, 유벤투스가 칠벤투스라 조롱당하기까지 한 유벤투스의 흑역사 2기(...) 속에서도 홀로 활약하고 있다. 노년가장이란 말이 나올정도로 팀내 최다 경기 출장이면서도 1경기당 0.5 포인트씩은 올렸다.
10/11 시즌 서포터 선정 팀내 MVP로 뽑혔다.[13]

노년가장 대패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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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37살 먹은 노년가장의 슈팅.jpg

물론 당시 30대 중반까지 넘겼기에 노쇠화가 이루어지며 풀타임 출장에 난조를 보였으나, 여전히 팀에 공헌했던 모습을 보면 유명한 선수의 이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현대 축구에서는 그야말로 충성심의 화신급의 선수로 볼 수 있다.

잘 살펴보면 이 사람도 은근히 선수생활에 굴곡이 많았다. 한창 커리어 하이를 찍던 때에 난데없는 금지약물 복용 혐의를 받지 않나(결국 무혐의였다.), 상대 수비수들의 집중견제로 부상을 달고 산 적도 있었으며, 부상에 잇따른 슬럼프로 한때는 주전경쟁에서 밀려난 적도 있었으며, 모두들 잘 아는 칼치오폴리 사건에 휘말려들었던 아픈 과거가 있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유벤투스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금 이탈리아의 제왕의 자리를 되찾는 그 순간까지.

11-12 시즌에 들어서 노쇠화로 인한 체력부담으로 선발출장보다는 슈퍼서브로 활약했으며, 그럼에도 출장시간 대 공격포인트 부분에서 팀내 1, 2위를 다투고 있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주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

2011년 겨울, "이번 시즌이 유벤투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다"라는 인터뷰를 하여 유벤투스 팬들이 눈물을 뿌리게 만들었다. 시즌 종료 후 타 리그로 이적할 것이라 했으며, 유벤투스가 아닌 세리에A에서는 더 이상 뛰지 않겠다고 한다. 팬들과 구단은 피눈물을 흘리며 재계약을 요청했으나 선수 본인의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신사도 언젠가는 숙녀곁을 떠날때가 있다., 주로 MLS 쪽과 강하게 링크되고 있으나 확정적인 이적기사는 나오고 있지 않다.

본인은 계약을 연장하고 싶어했으나 유벤투스 구단측, 특히 새로운 수뇌부인 아넬리측이 델 피에로를 쳐내고 자신의 팀을 만들고 싶어했다는 얘기가 많다.

그리고 11-12시즌 막바지, 9년만의 세리에A 우승이 확정됨에 따라 근 20년 동안 충성을 바친 유벤투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그야말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보통 우승이 아닌 구단 최초의 무패우승, 잘 하면 UEFA 최초의 무패더블까지도 거두며 떠날 수 있게 되었기에 팬들과 구단은 이번 시즌 우승을 알레에게 바치는 헌사라며 알레를 찬양하고 있다. 그냥 제발 재계약 해주세요 알레느님 챔스에서 보고싶단 말이예요

그리고 2012년 5월 13일. 아탈란타와의 리그 최종전에 선발출장하여 전반 28분 팀의 2번째 골을 작렬시켰다. 그야말로 홈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까지 판타지스타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후반 들어 교체. 교체되는 순간 유벤투스 스타디움에 모인 모든 관중과 아탈란타 선수들마저 열렬한 기립박수를 보냈고, 경기가 약 3분간 중단되며 레전드 of 레전드의 마지막 모습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우승팀 입장식에도, 선수단은 물론 팀 스탭들까지 다 입장한 후 마지막으로 입장하며 스쿠데토와 우승컵을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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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종료 후 그가 구단과 팬들에게 남긴 장문의 이별 편지로 인하여 유벤투스 팬들은 그야말로 눈물의 도가니가 되었다. 구단의 라커룸을 정리하고 약 1개월 정도를 유유자적하며 지냈던 듯. 그리고 여름 이적시장 막바지에 호주의 시드니 FC와 계약, 호주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팀 성적에 따라서 어쩌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알레옹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또 중계없음으로 외국방송으로 봐야겠지 ㅅㅂ? 다음은 편지 전문.

2012-06-30

이제 끝입니다. 저와 유벤투스와의 계약은 오늘로서 막을 내립니다.
꽤 오래된 뉴스이긴 해도 "공식적"이란 말은 꽤 강하게 다가오는군요. 제게는 슬픈시간은 아닙니다. 전 어떤 후회도 회한도 없습니다. 요즘 전 제가 비안코네리로 지내왔던 지난 시즌들과 추억들 그리고 저의 꿈이 실현되고 있었던 그 순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수많은 추억들과 기쁨과 환희,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해서 요 근래의 쓰라린 순간까지 오늘 확실하게 보여지고 있었고 토리노에서 가진 나의 마지막 경기후 나눈 포옹 속에서 어느 순간 떠올려진 순간들이 희미하고 거의 사라져가는 것 까지도 보여지더군요. 5월 13일에 찍힌 제 사진에는 제가 영원히 간직하고픈 모든 것들이 제 마음에 영원히 세겨져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말입니다.

얼마전 휴가를 떠나기 앞서 비노보에 있는 제 락커룸을 정리하고 훈련장을 떠날 때, 여러분이 저와 사진을 찍거나, 제 사인을 받기 위해, 또는 저와 악수를 하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땡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 낮이거나 절 기다리시는 걸 몇 개월 동안이나 해 오셨던 팬들 여러분이 기다리고 계시던 그 장소에 멈춰 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제가 여러분에게 작별의 인사와 그동안 저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해 감사드린다는 차례가 되었군요.

선수들은 왔다 갈 뿐이지만 유벤투스는 계속 남아있습니다. 나의 팀동료들도 거기에 있을 것이며 아울러 전 그들에게 무운을 빕니다. 전 언제나 그들의 열렬한 팬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제 팬들 역시 계속 남아계실 것이고 바로 여러분들이 유벤투스입니다. 여기 남겨진 제 유니폼 역시 전 계속 가감없이 사랑할 것이고 존중할 겁니다. 넘버 10이 들어간 제 이름이 세겨졌던 제 유니폼이 내 후의 어떤 이가 입을 것을 생각하니 행복감이 넘칩니다. 아울러 전 그 유니폼을 입게 될 그 누군가 -그가 이탈리아인이든 다른 해외출신이든- 에게 기쁨을 느낍니다. 그 역시 이 유니폼을 그토록 입기를 희망했었을테니까 말이죠. 아울러 그 누군가가 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한다면 제가 저 이전의 레전드들과 챔피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했었던것과 같이 그러려고 한다면 제겐 더 없는 영광이 될 거구요.

내일부터 전 더 이상 유벤투스의 선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전 언제나 여러분들 중 한명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자 이제 새로운 모험을 할 차례로군요. 19년전의 그때의 여름과 같이 전 지금 굉장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들 고맙습니다.

알레산드로

여담이지만, 그의 등번호 10번은 12-13시즌이 시작될 때까지도 누구에게도 배정되어 있지 않다가, 결국 카를로스 테베즈가 유벤투스에 오면서 10번을 받게 되었다. 이로서 유벤투스 10번 = 이탈리안 판타지스타라는 공식 파괴

2012년 11월, 클라스는 영원하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이 4경기 3골 기록 중. 여담으로 델 피에로가 시드니 입단식을 치루던 날 시드니 홈구장은 난리가 났었다. 이게 시드니 구장인지 유벤투스 홈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 시드니에서의 등번호는 10번 이다. 꼴지하고 있는 시드니에서 밥 값하는 선수

2013년 1월 19일, 웰링턴 피닉스와의 경기에서 무려 4골을 몰아치며(PK 포함) 팀의 7-1 승리를 견인했다.

2014년 5월, 시드니 FC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MLS 진출을 타진 중이다. 8월 28일 새롭게 출범하는 3개월간의 단기 리그인 인도 슈퍼리그의 델리 다이모스 FC로 이적하였다. 10경기 출전 1득점. 인도 슈퍼리그는 가을 기간에 치뤄지는 단기 리그 이기 때문에 재계약을 하지 않고 현재 타 팀 이적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2015년 6월, 이탈리아 언론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와의 인터뷰에서 은퇴의사를 밝혔다. 당장 유럽의 코치를 시작할 것은 아니며 미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3 플레이스타일

공격과 관련한 모든 분야에서, 즉 드리블, 패싱, 플레이메이킹, 킥 등 공격수로서 모든 면에 있어서 최상급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노쇠한 이후에도 충분히 먹히는 한방을 가지고 있었다. 키퍼가 도저히 손쓸 수 없는 각도로 슈팅을 날리는 델 피에로 존은 그의 한때 전매특허였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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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 피에로"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모습. 불꽃간지 프리킥.
특히 전혀 예측하지 못할 각도로 뚝 떨어지는 프리킥은 예나 지금이나 공포 그 자체다. 90년대부터 2000년대를 통틀어 최고의 킥커를 손꼽을 때 항상 Top5 이내에 들어가는 S급 프리킥커.[14] 특히 08/09 챔스 조별예선 VS 레알 마드리드 전 때 천하의 카시야스가 손도 못 뻗어보고 데꿀멍해야 했던 프리킥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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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 프리킥? PK랑 다른게 뭐야?

그도 사람인지라 나이를 먹다 보니 몸놀림이 예전같지 않다...라는 세간의 혹평도 따랐으나, 정확히는 젊은시절 장기부상후 연속된 부상으로 인해 스타일을 바꾸었다.[15][16] 오히려 나이를 먹으며 발 끝은 더더욱 날카로워졌다는 호평이 따르고 있다. 체력은 좀 문제긴 하지만...

4 기타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다섯 사람중 한 명이자 그 중 유일한 비 바르셀로나 선수였으나 15/16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서 프란체스코 토티가 교체 출전하면서 기립박수를 받아 유이한 선수로 바뀌었다.[17]

프로 데뷔는 다른 곳이었지만, 현재는 그냥 유벤투스 그 자체. 유벤투스 클럽 역사상 최다출장 및 최다골, 역대 최장기간 주장 역임 등 나서는 경기 하나하나가 현재 유벤투스의 역사가 되었다.

세리에 A에서만 통산 187골로, 이는 역대 세리에A 최다득점 9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18] 그리고, 이것저것 대회 다 포함해 비안코네리 유니폼을 입고 "그려넣은" 전체 골 수를 따지면 통산 290골. 세리에 A의 전설 쥐세페 메아자의 기록(인테르-282골)을 깨버렸던, 세리에 A 역사를 통틀어 원클럽 최다득점기록이었다. 이후 이 기록은 프란체스코 토티에 의해 경신되었다. 오오 알레신 오오

선수 통산 클럽 기록은 호주리그, 인도리그 포함 777경기 316골이다.

다만 클럽에서의 대활약과는 대조되는 국대 활약상 때문에 까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단적이 예로 월드컵에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출장했으나 2002년 조별 예선에서 멕시코전에서 한 골, 그리고 2006년 독일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한 골이 전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뼈저린 것은 유로 2000 결승전에서의 역적질.

델 베키오의 선재골로 프랑스에게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아주리에게는 두 번의 완벽한 노마크 찬스가 있었지만 한명의 선수의 연달은 실수로 당시 당대 최강이었던 프랑스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릴 기회를 놓쳐버리는데 이것을 놓친 선수가 바로 델 피에로. 결국 프랑스가 대 역전 극으로 2:1로 우승해버린다.

그의 A매치 경력은 91경기 27골이다. 그래도 06년 우승멤버였으니 우승을 못한 것 보단 조금 나으려나

묘하게도 로마의 프란체스코 토티와 비슷한 축구 인생(?)을 살고 있다. 팀에 대한 충성심이나 비슷한 포지션, 그리고 젊은시절부터 주장을 맡은 점과 알레하면 유베, 유베하면 알레이듯, [19] 이러한 것들이다.[20] 차이점이라면 나이는 델 피에로가 2살 더 많고, 델 피에로는 파도바 유스에서 유베 유스로 옮긴것이고 토티는 어릴때부터 로마의 유스 팀에 속해있었다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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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소리지만 정말 볼때마다 탄성이 나오게 잘 생겼다. 전형적인 이탈리아형 미중년 이탈리안 판타지스타의 기본소양

델 피에로가 파릇파릇한 20대 초반이던 90년대 유벤투스 동영상을 찾아보라. 90년대의 델레알피에는 데이비드 베컴 뺨을 올려붙일 꽃미남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더군다나 당시 델 피에로와 함께하던 유벤투스의 투톱은 필리포 인자기. 부녀자들 하악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오아시스의 리더였던 노엘 갤러거와 친분이 있다. 오아시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노엘을 독일과의 4강전에 초대하기도 했고 그 경기에서 이기니까 결승전에 노엘에게 같은 옷을 입고 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다.

참고로 이 남자 정말 멋진남자다. 이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너란 남자 멋진 남자

5 기록

5.1 대회 실적

5.2 출전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91/92파도바이탈리아 세리에 B4000--
1992/93파도바이탈리아 세리에 B10100--
1993/94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1151020
1994/95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298101111
1995/96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29621116
1996/97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2284064
1997/98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3221411010
1998/99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821040
1999/00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3492192
2000/01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2592060
2001/02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321641104
2002/03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24164040
2003/04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22800135
2004/05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30144343
2005/06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321210103
2006/07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B352023--
2007/08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372132--
2008/09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31131296
2009/10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2392050
2010/11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33840103
2011/12유벤투스이탈리아 세리에 A23340--
2012/13시드니 FC호주 A 리그2414----
2013/14시드니 FC호주 A 리그2410----
2014델리 다이나모스인도 슈퍼리그101----

5.3 개인 수상

  • 브라보상 : 1996
  • ESM 올해의 팀 : 1995-96, 1996-97, 1997-98
  • FIFA 100 : 2004
  • 세리에 A 득점왕 : 2007-08
  • 세리에 B 득점왕 : 2006-07
  •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 1997-98
  • 올해의 이탈리아 축구선수 : 1998, 2008
  1. 2008/09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선취골을 뽑아내는 장면
  2. 이 말이 과장이 아닌것이, 실제로 델 피에로가 시드니로 떠나고 나서 구단에선 진지하게 10번을 영결시키려 했다. 델 피에로 본인이 거부. 이후 몇년간 공석으로 남아있다가 테베즈가 10번을 물려받고 현재는 포그바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지금은 포그바가 맨유로 떠난 뒤 다시 결번 상태이다. 사실 현재 스쿼드안에서 플레이스타일만으로 봤을때는 디발라가 임자이긴 한데
  3. 이전 글에서 델 피에로를 아주리 군단과 비안코네리의 위대한 주장이라고 표현했는데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은 전통적으로 공식적인 주장 임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델 피에로가 대표팀에서 뛰었던 시기의 주장은 파올로 말디니파비오 칸나바로였다. 즉 델 피에로가 비안코네리의 주장인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아주리 군단의 주장이라는 표현은 잘 못 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인테르에서 활약하던 호나우두가 천재(IL Fenomeno)라 불리자, 라이벌인 유벤투스 팬들이 "델 피에로야말로 진정한 천재"라며 붙인 별명이다.
  5. Pinturicchio. 예술가
  6. 실제로도 유럽의 명문 프로리그나 자국의 세리에 A에서 플레이 하고있는 이탈리아 출신 판타지스타들은 현재 전무한 상태다. 아니 판타지스타까진 아니더라도 이탈리아 축구의 장래를 짊어지고 갈 유망주마저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지안루이지 부폰이나 안드레아 피를로등 이제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선수들을 제외한다면 마리오 발로텔리 정도가 그나마 알려진 축에 속하는데 이 역시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비하면 중량감이 없다.
  7. 나머지 2명은 데니스 베르캄프라울 곤살레스.
  8. 이때 유벤투스는 바조를 비롯한 주전 선수들이 부상이 있어 부득이하게 델 피에로를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9. 실상 절묘하게 바조의 슬럼프가 겹치며 바조 안습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플레이스타일도 비슷한 데다 아직 짬밥이 안되니 감독 말도 잘 듣는 어린 영계 델 피에로를 중용한 리피 감독의 용병까지 겹쳐 소속팀에서는 물론 국대에서까지 델 피에로에게 밀려버리게 된다. 등번호까지 뺏긴다(...).
  10. 04/05와 05/06은 박탈당했다. 자세한 것은 칼치오폴리 항목 참조.
  11. 그동안 델 피에로를 눈여겨보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직접 영입의사를 타진했다.
  12. 유벤투스의 애칭인 La Vecchia Signora(귀부인). 오오 알레...
  13. 이미 96년도 시즌에 받은적이 있다. 15년이 지난 지금 또 받다니 당시의 유벤투스의 상황을 말해주는듯 하다.
  14. 다만 Top5 선정은 주관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을 맹신하지는 말자. 일단 5명중 두명은 주니뉴, 베컴 고정이기 때문에 나머지 3자리에 들어가는게 보통 쉬운일이 아니다.
  15. 심지어 스트라이커의 최전성기로 평가받는 20대 후반에는 부상으로 인한 기량하략과 플레이스타일의 변화로 갓 이적해온 풋내기뿐만 아니라 발레리 보지노프, 라파엘 팔라디뇨에게 주전경쟁에 밀리는등 시련의 시간을 지냈다.
  16. 지금 해축팬들도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97년도 장기부상이후 계속된 잔부상으로 스타일이 현재처럼 정착된것 뿐이지, 데뷔시절이나 97년 이전을 보면 호나우두처럼 압도적인 속도로 수비를 터는 플레이에도 매우 능하였다. 인테르 시절의 호나우두의 라이벌로 언론 및 대다수의 팬이 지목한것이 바로 장기부상 이전의 델 피에로. 별명만 봐도(호나우두의 일 페노메논(천재)vs델 피에로의 일 페노메논 베로(진정한 천재)) 알 수 있다.
  17. 나머지 5명은 디에고 마라도나 , 요한 크루이프, 호나우지뉴,안드레스 이니에스타.
  18. 06/07 세리에 B에서 넣은 20골을 포함하면 208골. 7위까지 단박에 UP!
  19. 토티도 로마나 마찬가지으므로.
  20. 다만 비슷한 포지션이라 해도 델 피에로는 좀 더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한정 된다. 토티의 경우는 공격형 미드필더부터 최전방 스트라이커까지 소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