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Madame du Barry (1743.8.19.~1793.12.8.)
루이 15세의 마지막 애첩. 본명은 잔 앙투아네트 베퀴(Jeanne Antoinette Bécu). 뒤바리 부인이라고 불리지만 프랑스어 표기는 Madame du Barry, 그러므로 '바리 부인', 혹은 '바리 백작부인(Comtesse du Barry)'이 맞다. 같은 평민 계급이라고 해도 부유한 집안의 딸로 교양을 갖추었던 마담 드 퐁파두르와는 달리 원래부터 창녀였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신분이 낮다. 그녀의 후견인이 된 바리 백작은 처음부터 그녀를 국왕의 애첩으로 만들 생각이었으며, 실제 그녀를 본 국왕은 곧 매료되어 그녀를 베르사유 궁전에 들이게 된다. 다만 국왕의 애첩은 법도상 반드시 기혼녀여야 했고, 그래서 바리 백작은 그녀를 자신의 남동생과 급히 결혼을 시켜 그녀를 입궁시켰다.
한국에는 베르사유의 장미 덕분에 악랄하고 거만한 여자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따뜻하고 소탈한 인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직접 보면 방탕한 요부보다는 오히려 영성체하러 나온 순진한 시골처녀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하니 흠좀무. 하지만 국민들은 가차없어서, 뒤바리 부인은 내내 창녀라는 타이틀이 붙은 채 죽을 때까지 까였다.
어찌 보면 의외로, 어찌 보면 당연히, 권력이나 정략에는 관심이 없었고 외교나 정치 같은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것을 싫어했다. 오히려 이렇게 정치에 간섭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후세의 호의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사치스러운 물품, 특히 보석[1]을 굉장히 좋아해서 루이 15세에게 졸라 시도때도 없이 보석과 각종 사치품을 질러대는 바람에 국민 여론은 굉장히 나빴다. 어차피 애첩이 좋은 여론을 받은 적은 없는 프랑스지만...
당시 왕비 마리 레슈친스카가 사망한 프랑스 궁정에는 여주인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왕의 애첩으로 자리잡은 뒤바리 부인은 사실상의 왕비 역할을 했다. 루이 15세의 딸들은 이 점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했기에, 뒤바리 부인은 공주들과는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이러한 뒤바리 부인의 지위를 처음으로 위협한 것이 바로 왕세손비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오스트리아의 공주인 그녀는 매춘을 금지할 정도로 윤리적으로 엄격했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영향[2]으로 애첩에 대해 대략 충공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빅투아르를 필두로 한 루이 15세의 공주들은 프랑스에 온지 얼마 안 되었기에, 프랑스어가 서툴러 궁중 생활 적응에 애먹고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접근, 뒤바리 부인에 대한 악평을 열심히 늘어놓았다. 이 영향으로 마리는 뒤바리 부인을 몹시 싫어하게 되어, 어떤 공식 석상에서도 말을 걸지 않게 된다. 신분제였던 당시 프랑스 귀족 사회에서는 신분이 높은 귀부인이 먼저 말을 걸어주기 전에 신분 낮은 귀부인이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뒤바리 부인이 사실상 프랑스의 왕비였다지만, 형식상으로 이 당시 프랑스 궁정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귀부인은 왕세손비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루이 15세의 공주들과 마리는 이 점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뒤바리 부인을 견제했던 것이다.
뒤바리 부인은 처음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호감을 보이며 친해지려고 했으나 왕세손비가 아예 말을 걸어주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 뒤바리 부인은 계속 참다가 결국 격노해 루이 15세에게 달려가 울고불고 하소연을 하게 되었는데, 외국에서 시집온 어린 손자며느리가 귀엽긴 하지만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던 루이 15세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직접 불러 타이르거나 딸들을 말리는 대신, 오스트리아 대사를 불러 공식적으로 따져 버린다. 엄청나게 당황한 대사가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가서 사태를 전했고, 비록 첩이라는 존재를 불쾌해하긴 했어도 왕들이 첩을 거느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딸에게 압력을 행사한다. 결국 엄마의 지시를 들은 대사가 눈물로 설득해, 마리 앙투아네트는 베르사유 신년 행사에서 뒤바리 부인에게 말을 건네게 된다. 그 유명한, "오늘 베르사유에는 사람이 정말 많군요" 가 이 때 나온 말이다.[3]
이 사건 이후 뒤바리 부인은 승리에 젖어 의기양양했고, 세 공주들과 마리 앙투아네트는 분한 감정을 참고만 있어야 했다. 그러나 1774년 4월 27일 루이 15세가 천연두에 걸렸고, 세 딸들과 뒤바리 부인은 열을 다해 그를 간호했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인지한 왕은 고해사제를 불러 마지막 고해성사를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고해 신부는 뒤바리 부인을 출궁시키지 않으면 고해성사를 주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따라서 루이 15세는 그녀를 출궁시킬 수밖에 없었고, 5월 3일 그녀를 뤼엘[4]로 떠날 것을 명했다. 당시 루이 15세가 했던 말은 "마담, 나는 병이 들었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소. 이 휴식이 나로 하여금 늘 당신에 대한 가장 정다운 우정의 감정을 갖게 해주는구려."였다. 그러나 몇 시간 후 루이 15세는 자신의 정부를 불러올 것을 명했으나, 뒤바리 부인은 이미 떠난 뒤였다. 그리고 5월 10일 루이 15세가 사망했다. 뒤바리 부인은 왕 사망 후 잠시간 수녀원에 머물러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곧 조치가 풀려 자신의 루브시엥 성에서 은거하였다.[5]
쁘띠 트리아농 궁은 루이 15세 때 마담 드 퐁파두르를 위해 세운 별궁으로 18세기 중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세워졌는데, 정작 완공된 것이 마담 드 퐁파두르가 죽은 이후인 1768년에 끝이 났기 때문에 뒤바리 부인의 차지가 되었다. 하지만 베르사유에서 쫒겨난 이후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루이 16세에게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를 낳은 선물로 받는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에는 다행히 런던으로 피신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뒤 인생 최대의 병크를 터트리니,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러 파리에 들른 것(…). 이 때 파리는 극렬 과격파인 자코뱅당이 득세하고 있었고, 귀족도 부족해서 부르주아나 악덕 상인들까지 잡아죽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대체 왜 파리에 갔는지 아직도 얘기가 분분하지만 어쨌건 뒤바리 부인이 별로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는 평판이 여기서 입증되는 듯.(…)
재판을 받을 때까지도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듯 하다. 숨겨두었던 보석을 모두 제공할 테니 살려달라고 탄원했지만 네임드를 잡은 극렬파 자코뱅당이 그녀를 살려줬을 리는 만무하다. 결국 1793년 12월 8일 단두대에서 사형당한다.
선고가 있기 전 자신이 석방될 줄로 알았던 뒤바리 부인은, 사형 판결이 나자 목청이 찢어질 정도로 절규했다고한다. 마차로 단두대까지 호송되는 와중에도 계속 자신을 석방해달라고 애걸복걸하고 단두대가 눈에 보이자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가서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고 한다. 물론 더 이상 젊은 나이도 아니었고 나이가 들어서 뚱뚱해진 노부인이었기에 완력이 장난이 아니어서(...), 그녀를 단두대에 고정시키기 위해 사형집행인 수 십명이 달라붙어서야 겨우 고정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흠좀무.
칼날이 떨어지기 직전에도 계속 찢어지는 목소리로 단 몇 분만, 몇 초만이라도 사형을 연기해달라고 애원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녀의 목이 잘린 뒤에 광장에 있던 시민들은 긴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느낌이었다고.
유언은 "잠깐만, 난 할 말이 있소. 잠깐만!"[6] 이었다. 다시 한번 지못미.
18세기 프랑스에서 유명한 망나니 가문인 상송 가문의 4대 당주이자 프랑스 망나니들의 우두머리인 "무슈 드 파리"인 샤를 앙리 상송이 사형을 집행했는데, 공교롭게도 상송이 젊은 시절 여성을 유혹할 당시 뒤바리 부인과도 인사를 나누어 얼굴을 알았던 것. 그리고... 상송은 바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부부의 목을 날린 사람이기도 하다.
2 대중매체에서
만화/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의 초반 3화부터 등장하여 악역으로 나온다. 성우는 故 키노미야 료코. KBS판은 이경자, EBS판은 이소영.
루이 15세의 딸들에게 영향받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신을 천한 여자로 여기고 말을 걸지 않자 왕에게 하소연해 결국 인사를 받아낸다.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죽은 뒤 작중에서 퇴장한다. 그리고 나레이션으로 역사상의 사실처럼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음을 알려준다.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에도 나온다. 배우는 아시아 아르젠토. 밤에 루이 15세와 침대 위에서 하는 고양이 놀이 장면이 깨알같다.
만화 이노상에서는 마리 잔느 베큐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 실제 나중에 문제가 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사건에서 보석업자가 팔려고 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뒤바리 부인을 위해 루이 15세가 주문했던 것이었다. 다만 너무 사치스러워서 마리 앙투아네트도 루이 16세도 그 목걸이를 사지 않았다.
- ↑ 실제 마리아 테레지아는 매매춘을 전면 금지했다가 실패한 적 있고, 신하들이 첩을 둘 경우 굉장히 엄격하게 처벌했다.
- ↑ 다만 베르사유의 장미에 나오는, 그 뒤에 달려가 우는 건 어디까지나 만화의 창작이다.
- ↑ 베르사유 가까이에 있는 궁.
- ↑ 정치적으로 음모를 짜거나 정적을 만든 적이 없어서인지,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보복도 받지 않았다. 사실 루이 15세의 세 딸들이 조카 루이 16세를 닥달해서 뒤바리 부인을 처리하라고 했기에 그나마 수녀원으로 잠시간 추방했을 뿐이었다.
- ↑ 혹은 "난 할 말이 있소. 잠시만 시간을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