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실존인물

< 유언

1 개요

실존 인물의 유언을 정리한 항목. 인물들의 사망 시점을 기준하여 시대순으로 추가바람.

2 한국

2.1 삼국시대

유언인물생몰년
지금 부왕이 나를 불효자라 하여 칼을 보내 자결을 명하시니, 어찌 아버님의 명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해명태자[1]BC12~AD9
저는 북명의 미천한 사람으로서, 왕의 두터운 은혜를 여러 번 입었습니다. 비록 죽더라도 살아서와 같이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괴유?~22
내가 만약 변명을 하면 이것은 어머니의 악함을 드러내어 왕께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이것을 어떻게 효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호동왕자?~32
내가 행실을 잘못했으니 장차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서 국양왕을 뵙겠는가? 만일 여러 신하들이 나를 차마 구렁텅이에 버리지 못하겠거든 산상왕의 능 옆에 장사 지내주기를 청하노라.왕후 우씨?~234
전일의 말은 희롱이었을 뿐이었다. 어찌 군사를 일으켜 이렇게까지 할 줄 생각하였겠는가.석우로[2]?~249
내가 죽은 뒤에 내 묘지기는 내 친히 돌아다니며 잡아온 한(韓)인과 예(穢)인들에게만 맡겨서 무덤을 지키고 소제하게 하라.광개토대왕374~413
내가 계림에서 개돼지로 살지언정 왜의 신하는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계림에서 매를 맞을지언정 왜의 벼슬은 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신라의 신하다!박제상363~419
과인이 생각할 때마다 늘 고통이 골수에 사무쳤다.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구차히 살 수는 없다.백제 성왕[3]?~554.12
우리 임금이 나에게 하나의 성을 맡겼으나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고 적에게 패하게 되니, 원컨대 죽어서 큰 귀신이 되어 백제인을 다 물어 죽이고 이 성을 되찾겠다!찬덕[4]?~612
전에 나의 아버지가 여기에서 숨을 거두셨다. 내가 지금 또한 여기에서 백제인과 더불어 싸우니, 오늘이 내가 죽을 날이다.해론[5]?~618
충신은 죽을지언정 임금을 잊을 수 없사오니, 원컨대 한 말씀만 드리고 죽고 싶습니다. 신이 늘 때를 보고 변화를 살펴 왔는데, 필시 병혁지사(兵革之事)가 있을 것입니다. 무릇 군사를 부릴 때에는, 반드시 싸울 땅을 살피고 골라야 합니다. 상류에 자리잡아 적을 이끌어 낸 다음에야 (나라를) 보전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다른 나라의 군사가 오면, 육로에서 침현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이 기벌포 벼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그 좁고 험한 곳에서 거병하여 그들을 막은 다음에야 (승리가) 가능합니다.성충[6]?~656
내가 아까 적진에 들어가 장수의 목을 베고 깃대를 꺾지 못했으니 깊이 한이 되는 일이다. 두번째 들어가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으리라.관창645~660
이 썩은 개새끼! 정신나간 놈(腐狗癡奴)!복신[7]?~663
너희 형제는 고기와 물같이 화합해 작위를 다투는 짓을 하지 말라.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이웃 나라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연개소문[8]603~665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성공이 쉽지 않음을 아시고, 수성(守成)이 또한 어려움을 생각하시어 소인을 멀리하고 군자를 가까이 하시어 위에서는 조정이 화목하고 아래에서는 백성과 만물이 편안하여 화란이 일어나지 않고 국가의 기반이 무궁하게 된다면 신은 죽어도 유감이 없겠습니다.김유신[9]595~673.7.1
이때까지 우리 강토는 삼국으로 나뉘어져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제 삼국이 하나로 통합돼 한 나라가 되었으니 민생은 안정되고 백성들은 평화롭게 살게 되었다. 그러나 동해로 침입하여 재물을 노략질하는 왜구가 걱정이다. 내가 죽은 뒤에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의 평화를 지킬 터이니 나의 유해를 동해에 장사 지내라.문무왕626~681.7.1

2.2 고려시대

유언인물생몰년
인생이란 원래 그렇게 덧없는 것이다.[10]고려 태조877.1.4~943.5.29
사람의 생은 하늘에 달렸으니 어찌 죄 있는 자를 용서하여 연명하려 하겠느냐. 또한 내가 대사면령을 내리고 죽으면 나를 계승할 자가 무엇으로 새로운 왕의 은혜를 베풀겠느냐.고려 성종[11]960.12~997.10
네 이놈! 너도 고려 사람이면서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강조#s-2[12]974~1010
내 병이 크게 더하여 형세가 다시 낫지 못하겠다. 이에 중한 소임을 에게 전하여 준다. 내가 지금 생각하니 평생에 행한 일이 잘한 것은 적고 잘못한 것은 많다. 나를 본받지 말고 다만 옛날 성현의 도를 생각하고 우리 태조의 교훈을 받들어 지위에서 게으르지 말고 길이 백성을 복되게 하라.고려 예종1079~1122.4
선사께서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셨구려. 내 갈 길은 결정되었소.금강거사 윤언이?~1149[13]
일체의 모든 진리가 이 가운데에 있노라.보조국사 지눌1158~1210.3.27
내가 이렇게 되었으니 반드시 불순한 모의를 하려는 자들이 있을 거다. 는 오늘부터 문병을 끊어라. 나는 죽을 때까지 너를 결코 부르지 않겠다.최충헌1148~1219.9
뒷날에 돌아오면 다시 여러분과 더불어 거듭 한바탕 흥겹게 놀겠소.보각국사 일연1206~1289.7.8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見金如石, 견금여석).최원직[14]?~1331
내가 내일 창릉에 배알하고 주정하는 체하면서 홍륜의 무리를 죽여서 입막음을 하겠다. 너도 이 계획을 알고 있으니 마땅히 죽음을 면하지 못할 줄 알아라.공민왕[15]1330.5~1374.9.21
내 평생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욕심을 품었다면 내 무덤 위에 풀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풀도 나지 않을 것이다.최영[16][17]1316~1388
우리 집안은 충효를 숭상하는 집안이니 조금도 낙심하지 말라.포은 정몽주[18]1337.11.22~1392.4.4

2.3 조선시대 · 대한제국

유언인물생몰년
내가 이미 고려를 배반했는데 지금 또 이 편을 배반하고 저 편에 붙는다면, 사람들이 비록 말하지 않더라도 홀로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겠느냐?삼봉 정도전[19]1342~1398.8.26
신은 본토(本土)의 사람으로 타국에서 죽사온즉, 시체를 불태워 도로 본토에 장사지내어 전하께서 신으로 하여금 본토의 풍속을 따르게 하소서. 또 전하께서 조심조심 덕을 닦아 영원히 조선을 보전하시기 바랍니다.이지란1331~1402.4.9
나를 조상님들이 계신 함흥 땅에 묻어다오.조선 태조[20]1335.10.11~1408.5.24
나는 죄가 없는데 매를 견디지 못해서 죽는다!강상인[21]?~1418
태평한 시대에 나서 태평한 세상에 죽으니, 천지간에 굽어보아도 부끄러운 것이 없다. 이것은 내 손자가 미칠 바가 아니다. 내 나이 70이 지났고 지위가 재상에 이르렀으며 성상의 은총을 만나 간언하면 행하시고 말하면 들어주시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경암 허조1369~1439.12.28
정승의 몸으로 어찌 걸어가겠느냐! 초헌(가마)을 대령하라!절재 김종서[22]1383~1453.10.10
북소리 둥둥둥 목숨을 재촉하는데 서풍에 뉘엿뉘엿 해는 지려 하누나. 황천에는 주막도 없다 하는데 오늘밤엔 뉘 집에 자고 갈거나(절명시).매죽헌 성삼문1418~1456.6.8
(신하들이 예종에게 양위하는 것을 반대하자) "운이 떠난 영웅은 자유롭지 못한 것인데, 너희들이 나의 뜻을 어기고자 하느냐? 이는 나의 죽음을 재촉하고자 하는 것이다."[23]
"석실은 유명무실한 것이므로 쓰는 것이 옳지 못하다.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무덤에 석실과 석곽(石槨)을 마련하지 말라."[24]
세조1417.9.29~1468.9.8
영웅의 재주를 잘못 썼구나.남이1441~1468.10.27
"아무쪼록 앞으로 일본과 실화(失和 : 분쟁유발)하지 마시옵소서." 또는 "인생이란 여기서 그치는가!"보한재 신숙주[25]1417~1475.6.21
너희는 대학과 중용은 너무 많이 읽지 말거라. 죽을 때가 다 된 지금도 그 글들이 눈에 선하구나.괴애 김수온1410~1481.6.7
처음 부지런하고 나중에 게으른 것은 인지상정이니, 원컨대 나중에 삼가기를 처음처럼 하소서.압구 한명회[26]1415~1487.11.14
화장하지 말고 절 옆에 묻어주오.매월당 김시습[27]1435~1493.3.31
신이 바라는 것은 특별한 것은 없으나, 다만 경연에 부지런히 임하시고 형벌과 시사는 법도에 맞게 하소서.보진재 노사신[28]1427~1498.9.6
신이 중죄를 범하였는데 몸과 머리가 나누어짐을 면하게 되었으니, 성상의 은혜가 지극히 중한데 감히 조금인들 지체하겠습니까?이세좌[29]1445~1504
국가에서 신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이다.
신의 나이 70이 다 되고, 몸에 병이 쌓여 있으니, 죽어도 다른 생각이 없겠습니다만, 신이 소시부터 변방에서 일하였으며, 나라 일에는 크고 작은 것 없이 모두 진심 갈력하였습니다. 신이 반복하여 생각해 보아도, 한가지 죄도 없습니다. 이 말을 주상께 전달하기 바랍니다.
이극균[30]1437~1504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걸을 수 있습니까?내시 김처선[31]?~1505.4.1
죽어도 여한이 없으나, 다만 미인을 바치지 못한 것이 유한입니다.임숭재[32]? ~ 1505
중전이 보고 싶다…연산군[33]1476.11.7~1506.11.6
나라가 간신배에게 속아 공신을 죽이려 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간언하지 않는가?신윤무[34]?~1513.10.24
성상께서 내 목을 보전하고자 사약을 내리셨거늘 어찌 너희들이 내 목을 얽으려 하느냐!정암 조광조[35]1482.8.10~1519.12.20
(자식들에게) 내가 헛된 이름으로 세상을 속였으니 너희들은 부디 이 글을 모두 태워 나의 허물이 더 무거워지지 않도록 해라.지정 남곤[36]1471~1527.3.10
복성군과 박씨에 대해서는 신으로서는 아는 바 없다. 그러나 신(臣)이 조정에 죄를 짓고도 3∼4년을 연명하였으니 천은(天恩)이 중하다.이항? ~ 1533.6.2
원수 김안로!소요정 심정1471~1531.12.1
세자에게 자리를 물려 주고, 대신들이 따른 뒤에라야 내 노열(勞熱)이 덜해질 것 같다. 이러한 때에는 자리를 벗어나지 않을 수 없다.중종1488.3.5~1544.11.15
경들은 내 기후(상태)를 보라…인종[37]1515.2.25~1545.7.1
죽고 사는 이치를 안 지 오래이니 마음이 편안하구나.화담 서경덕1489~1546
내가 죽거든 관을 쓰지 말고 시체를 그냥 동문 밖에 내쳐두어 개미와 벌레들이 내 살을 뜯어먹게 하여 천하 여인들의 본보기로 삼으라.황진이?~?
그대도 한잔 마시겠는가?금호 임형수[38]1514~1547
내 기운은 마찬가지이니 문안하지 말라.명종1534.5.22~1567.6.28
저 매화, 물 줘라.퇴계 이황1501.11.25~1570.12.8
하늘의 해가 참 맑구나.남명 조식1501.6.16~1572.2.8
널 내가 낳았구나.쌍취헌 권철[39]1503~1578.8.1
내 몸은 다만 나라를 위할 뿐. 이로 인해 병이 심해져도 이 또한 천명이다.율곡 이이[40]1536.12.26~1584.1.16
올해는 내 나이 세 번째 아홉수에 해당하는 해인데 마침 오늘 연꽃들이 서리를 맞아 붉게 변했으므로 미리 말했던 것처럼 바로 내가 죽을 날이다. 내가 죽은 다음에는 내가 지은 시들을 모두 불태워 나처럼 불행한 여인이 다시는 조선땅에 태어나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허난설헌1563~1589.3.19
내가 죽거든 내 목에 있는 사마귀를 근거로 하여 내 시신을 거두도록 하거라.송상현[41]1551~1592
김해 부사 이종인이 여기에서 죽는다!이종인[42]?~1593.6.29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김천일1537~1593.6.29
장부가 국난을 당하여 어찌 구차하게 살기를 바라랴. 이 땅이 나의 죽을 곳이다!중봉 조헌[43]1544~1592.8.18
뜻을 먼저 이루지 못하고 몸이 먼저 가니 천명임을 어찌할 것인가. 또한 적이 도망쳐 물러가면 나라는 회복되겠지만 조정의 붕당은 누가 능히 깨뜨릴 것인가.학봉 김성일1538~1593
이 녀석이 소용없는 짓을 하는구나.송강 정철[44]1536.12.6~1593.12.18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충무공 이순신[45]1545.3.8~1598.11.19
힘써 좋은 일만 생각하고 힘써 좋은 일만 행하라.서애 류성룡1542.10.1~1607.5.13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였는데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구나.서산대사 휴정[46]1520.3.26~1604.1
형제 사랑하기를 내가 있을 때처럼 하고, 참소하는 말이 있어도 듣지 말라.선조[47]1552.11.11~1608.2.1
이 세상에 조금만 머물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오래 머물렀구나.사명당 유정1544.10.17~1610.8.26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소!!!교산 허균[48]1569.11.3~1618.8.24
하늘이 나의 무죄를 내려다보고 계실 것이다. 살아서는 효자이고 죽어서는 충신이다.[49] or 여러분, 한때의 가난을 한탄하지 말고 참고 견디시오.[50]관송 이이첨1560~1623.3.14
우리가 죽게 된 것은 모두 네 탓인데, 네가 어떻게 충신이며 효자가 될 수 있는가.이위경[51]1586~1623.3.14
내가 죽으면 어머니 무덤 발치에 묻어 주어라.광해군[52]1575.4.26~1641.7.1
조정에서는 내가 마음대로 군사를 훈련시키거나 기르지 못하게 했다. 강적을 대적했으니 죽는 건 내 직분이나 다만 그것이 한이로구나!성은 남이흥[53]1575~1627.1.21
속이 답답하니 담배를 피우고 싶구나. 불을 가져오라.선원 김상용[54]1561~1637.1.22
너도 똑같이 될 것이다. 이놈아!심기원[55]1587~1644.3
작은아버지(小叔, 당시 봉림대군. 즉, 효종. 혹은 인평대군으로 보는 설도 있다)와 조 귀인이 이 어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니, 너희는 커서 이 원수를 갚아다오!민회빈 강씨1611~1646.3.15
내가 죽거들랑 내 눈을 뽑아서 남대문에 걸어 두거라! 이 나라가 망하는 꼴을 지켜보겠노라!김홍욱[56]1602~1654
이제야 정신이 드는군. 가귀(어의 신가귀)가 아니었다면 큰일날 뻔 했다.효종[57]1619.5.22~1659.5.4
내 어찌 대신의 뜻을 모르겠는가. 다만 정신이 이러하여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현종1641.2.4~1674.8.18
내가 죽거든, 비갈을 세우지 말고 시호를 청하지도 말며, 다만 조그만 표석에 이름 석 자만 쓰라.동춘당 송준길1606.12.28~1672.12.2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백호 윤휴[58]1617.10.14~1680.5.20
학문은 마땅히 주자를 바탕으로 삼고, 사업은 효종께서 하고자 하시던 뜻(북벌)을 주로 삼으라. 또는 "천지만물이 생긴 까닭과 성인이 만사에 응하는 길은 오직 직(直)자 한 자뿐이니, 이것은 공맹(孔孟) 이래 전해 온 것이다."우암 송시열1607.11.12~1689.7.24
충무공 집안에 충의가 서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음을 듣지 못했느냐? 왜 나를 죽이지 않느냐!이봉상1676~1728.3.15
아버님, 아버님 잘못하였습니다. 이제는 하라시는대로 하고 글도 읽고 말씀도 다 들을 것이니 이리마소서.사도세자(양력) 1735.2.13~1762.07.12
수정전…. 수정전….정조[59]1752.9.22~1800.6.28
땅을 내려다보며 죽느니 하늘을 쳐다보며 죽는 것이 낫겠다.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60]1760~1801.4.8
깨끗이 목욕시켜다오.연암 박지원1737.2.5~1805.10.20
집 뒤의 동산에 매장하고 지관에게 물어보지 말라.다산 정약용1762.6.16~1836.2.22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가포 임상옥1779~1855
저 등잔불을 꺼 주시오.김삿갓1807.3.13~1863.3.29
죽는 기분 말인가? 처음 죽어보는 거라 잘 모르겠군. 내 죽은 다음에 다시 말해주지.정지윤[61]1808~1858
나의 마지막 시간이 다다랐으니 잘 들으시오. 내가 외국인과 연락한 것은 나의 종교를 위해서이고 나의 천주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내가 죽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해 영원한 생명이 바야흐로 시작되려 합니다. 여러분도 사후에 행복하려면 천주를 믿으시오.김대건 안드레아 신부[62]
1821.8.21~1846.9.16
때가 오매 천하가 모두 한 힘이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쩔 수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세운 것이 무슨 허물이랴.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해몽 전봉준1854~1895.3.30
시끄럽소! 일국의 총리로써 동족에게 죽는건 천명이야! 남의 나라 군인의 도움까지 받아서 살고싶지는 않소!도원 김홍집[63]1842~1896.2.11
차라리 물고기밥이 될지언정 왜놈에게 죽을 수는 없다.해운당 김하락[64]1846~1896.7.13
주상이 보고 싶구나. 아직도 오지 않았는가.흥선 대원군[65]1820.12.21~1898.2.22
살려주시오.명성황후[66]1851.9.25~1895.8.20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만번 죽은들 무엇이 아깝겠는가(軍不能守國 臣不能盡忠 萬死無惜).박승환1869.9.7~1907.8.1
나라와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 죽지 않고 어이하랴.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의 주권도 회복하지 못했으니 충성도 못하고 효도도 못한 몸이 죽은들 어이 눈을 감으랴.의병장 왕산 허위1854.4.1~1908.10.21
형님, 형님! 누가 나를 찔렀소?신돌석1878.11.3~1908.12.12
내가 죽더라도 신문만은 살아서 조선 사람들을 구하게 해야 한다.어니스트 토마스 베델[67]1872.11.3~1909.5.1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에게 한 마지막 말은 (실질적 유언)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옆에 묻어두었다가 나라를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한국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안중근 의사[68]1879.9.2~1910.3.26

2.4 일제강점기

유언인물생몰년
죽기가 쉽지 않더군. 약을 마시려다가 입에서 약사발을 세 번이나 떼었다. 내가 이렇게도 어리석은가. 내가 죽은 후 내 글은 창강 김택영에게 맡기거라.매천 황현[69]1855~1910.9.7
나는 죽어 수십만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기어이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이재명 의사1890~1910.9.13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부재 이상설1871.1.27~1917.3.2
비록 가보진 못했지만 우리 아버지 고향이 조선인데 8도라고 들었다. 내 한발 한발에 조선에 살고 있는 민중들, 노동자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 새로운 사회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겠다. 8보(步)만 걷게 해다오[70]김알렉산드라1885~1918.9.16
정부… 정부!예관 신규식[71]1880.2.22~1922.9.25
내가 보니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 같으니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 (...)-이완용1858.6.7~1926.2.12
일명(一命)을 겨우 보존한 짐은 병합 인준(認准)의 사건을 파기하기 위하여 조칙하노니 지난날의 병합 인준은 강린(强隣)이 역신(逆臣)의 무리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제멋대로 선포한 것이요 다 나의 한 바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유폐하고 나를 협제(脅制)하여 나로 하여금 명백히 말을 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내가 한 것이 아니니 고금(古今)에 어찌 이런 도리가 있으리오. 나 구차히 살며 죽지 못한 지가 지금에 17년이라. 종사(宗社)의 죄인이 되고 2000만 생민의 죄인이 되었으니, 한 목숨이 꺼지지 않는 한 잠시도 이를 잊을 수 없는지라. 유수(幽囚)에 곤(困)하여 말할 자유가 없이 금일에까지 이르렀으니, 지금 한 병(病)이 심중한 일언(一言)을 하지 않고 죽으면 짐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나 지금 경에게 위탁하노니 경은 이 조칙을 중외(中外)에 선포하여 내가 최애최경(最愛最敬)하는 백성으로 하여금 병합이 내가 한 것이 아닌 것을 효연(曉然)히 알게 하면 이전의 소위 병합 인준과 양국(讓國)의 조칙은 스스로 파기에 돌아가고 말 것이라. 여러분이여, 노력하여 광복하라. 짐의 혼백이 명명(冥冥)한 가운데 여러분을 도우리라.순종[72]1874.3.25~1926.4.25
이놈 자식들! 너희들 내가 뒈졌나 안 뒈졌나 보러왔지?월남 이상재1850.10.26~1927.3.29
할 일이…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이 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그게 한스러워서…백야 김좌진1889.12.16~1930.1.24
문간에 검정말이 모는 검은 마차가 자신을 데리러왔으니 가야겠다.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소파 방정환1899.11.9~1931.7.23
내 몸은 묻지 말고 뼈를 생물 표본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만지며 공부하게 하라남강 이승훈[73]1864.3.25~1930.5.9
사형은 이미 각오했으니 더 이상 남길 말은 없다.윤봉길 의사1908.6.21~1932.12.19
내가 죽거든 시체가 왜놈들 발에 차이지 않도록 화장해 재를 바다에 뿌려달라.단재 신채호[74]1880.12.8~1936.2.21
레몬 향기를 맡고 싶다…(레몬 향을 맡게 하자 그 직후)좋다…이상[75]1910.8.20~1937.4.17
목인(睦仁)[76]아, 목인아, 네가 큰 죄를 지었구나!도산 안창호1878.11.9~1938.3.10
내가 죽거든 무덤을 만들지 말고 과일나무 아래 묻어 거름이 되게 하라. 나는 독립을 못 보아도 너희들은 꼭 볼 것이니…한서 남궁억1863.12.27~1939.4.5
이놈들아! 천조대신보다 하나님이 더 높아!이기풍[77]1865.12.23~1942.6.20
내 삶이 유언이다.규암 김약연[78]1868.9.12~1942.10.29

2.5 광복 이후

2.5.1 1940년대

1940년대
유언인물생몰년
선비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이야기 할 필요 없다.[79]김용환1887~1946
이보시게, 만공. 우리가 함께 한 게 일흔 다섯 해이나, 오늘로 자네와 내가 이별할 인연이 되었나 보구려. 그럼 잘 있게나.만공 선사1871.3.7~1946.10.12
조국… 조선…몽양 여운형1886.5.25~1947.7.19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호머 B. 헐버트[80]1863.1.26~1949.8.5

2.5.2 1950년대

1950년대
유언인물생몰년
장관님께 내가 죄송해하더라고 전해주게.채병덕1914.4.17~1950.7.26.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이우근[81][82]?~1950.8.11
나는 나비밖에 모르는 사람이오.석주명[83]1908.11.13~1950.10.6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늘 내 소원이었지요, 좋으신 하느님께서 내게 이런 은총을 주셨어요.패트릭 번 주교[84]1888.10.26~1950.11.25
오늘 죽을 것을 아니까 여러 가지 절차를 밟지 말고 간단하게 처리해주시오. 그런데, 수상(김일성)께서 내 처와 두 아이를 외국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해놓고 아직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소. 꼭 약속을 지켜달라고 수상께 전해주시오.이정 박헌영[85]1900.5~1956.12
내 죄는 정치활동 밖에는 없는데… 마지막 술 한 잔을 달라.죽산 조봉암1898.9.25~1959.7.31
이 벼! 끝을 보지 못하고 내가 죽어야 하다니!우장춘 박사[86]1898.4.8~1959.8.10

2.5.3 1960년대

1960년대
유언인물생몰년
시간이 없는 관계로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진영숙 열사[87]?~1960.4.19
저 아우들을 먼저 치료해주세요.김치호 열사[88]?~1960.4.19
나도 잘못은 있기에 억울하다는 말은 안한다. 그런데 죄다 나에게만 책임을 넘기고 자신은 억울하다는 이[89] 들이 있다. 그들에게 적어도 자기 잘못은 인정하라고 말하고 싶다.이정재[90]1917.1.6~1961.10.19
죽음을 앞에 두고 '조선어 첫걸음'을 시작하려 한다. 최후에 이르러 나는 나를 진우로 인식한 것이다(옥중편지 중에서).이진우[91]1944 혹은 1945~1962
내 가슴에 붙은 죄수번호를 뗴어달라,최영오 일병?~1963.3.19
점자책은 쌓지 말고 꽂아 두어라[92]송암 박두성[93]1888.4.26~1963.8.25
천당이 가까운지 알았더니만 멀어… 멀어 …박수근1914.2.21~1965.5.6
이제 저의 천명이 다하여 감에 아버지가 주셨던 사명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늙어 버겁습니다. 바라옵건데, 우리 민족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하시옵소서. 우리 민족을 오직 주님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굳세게 서서 국방에서나 경제에서나 다시는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이승만1875.3.26~1965.7.19
더 일할 나이에 조국통일도 못해보고 눈을 감으니 한스럽고 죄송할 뿐이다. 모름지기 평생의 소원인 통일 성업을 꼭 이루어 주기를 바란다.김종오1921~1966

2.5.4 1970년대

1970년대
유언인물생몰년
내가 죽거든 한국땅에 묻어주시오. 내가 도와주던 소년, 소녀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맡아주시오.석호필 박사[94]1889.3.15~1970.4.16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게… /엄마… 배고파…[95]전태일 열사1948.9.28~1970.11.13
모든 재산을 공익재단에 기부하라.유일한 박사[96]1895.1.15~1971.3.11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맨주먹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오늘의 기아산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나라와 내 민족의 덕이다. 나라가 독립되고 국력이 신장되지 않으면 아무 사업도 할 수 없다. 내가 좀 더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한스럽다. 온 겨레가 잘살아보자고 일으킨 새마을운동에 적극 참여하길 바란다.[97]학산 김철호[98]1905[99]~1973.11.22
나는 괜찮아…박정희 [100]1917.11.14~1979.10.26

2.5.5 1980년대

1980년대
유언인물생몰년
사랑하는 내 조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며 내가 한 일들이 비록 미흡하고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그러나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헌신했지만 건군 초기에 나와 함께 일한 동지들을 잊을 수 없으며 그들은 누구보다도 바르고 굳건한 신념으로 해군을 만들어 보려고 힘써왔고 오늘날의 대해군의 발전에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또 우리는 동족상잔의 전란을 몸소 겪었으며 일제의 탄압과 그 무서운 고문도 직접 겪었다. 따라서 바라는 것은 이 땅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당의 학정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또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피로써 싸워준 UN군의 고귀한 희생에 감사해야 한다. 내 나라를 도로 찾으려고 고귀한 생명을 바친 우리 조상들의 사무친 한과 나라를 지키려고 싸우다 산화한 장병들의 넋과 한을 잊지 말고 다시는 내 조국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잘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손원일 제독1909.6.22~1980.2.15
대한민국만세! 대한민국만세! 대한민국 육군만세!!박흥주[101]1939.12.15~1980.3.6.
이 세상에 부끄러운 일을 절대 하지 않았다. 나의 최후진술을 자자손손 전해 다오. 그 속에 나의 진실이 있다.김재규1926.3.6~1980.5.24
내 죽거든 마당이 보이는 넓적한 곳에 묻어달라김정호1952.5.27~1985.11.29
내일 시청에 나가야 하는데…이한열 열사1966.8.29~1987.7.5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고 죽겠다! 영등포 교도소에서 죽지 못한 게 한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나라의 법이 이렇다!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있고, 내 할 말 다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시를 한편 남기겠다. 내 유언을 한마디로 줄이면 나는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었던 염세주의자이다!!지강헌[102]1954~1988.10.16

2.5.6 1990년대

1990년대
유언인물생몰년
사장님, 저 괜찮으니까 오늘 퇴원해서 내일 녹음에 들어가야겠어요.가수 김현식1958.1.7~1990.11.1
추락한다. 탈출하겠다. 전방에 마을이 보인다. 탈출 불가…이상희 대위1968~1991.12.13
참선 잘 하그래이.성철 큰스님1912.4.6~1993.11.4
내 소원은 죽은 다음 대성산혁명렬사릉 동지들 옆에 묻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주겠다고 김정일 당 조직비서도 내게 약속했다.김일성[103]1912.4.15~1994.7.8
간첩...이한영1960.4.2~1997.2.25

2.6 21세기

2.6.1 2000년대

2000년대
유언인물생몰년
에이, 괜히 왔다 가네.중광 스님1934~2002.3.9
"아들아, 내가 이제 가야겠다. 근데 너 내가 왜 죽는지 아느냐?" (장소팔) / "아니 아버지. 금방 회복되실 텐데 어찌 그런 말씀을… 돌아가신다면 몸이 아프셔서." (아들) / "아니다. 심심해서 죽는다. 너도 늙어봐라. 늙으면 진짜 할 일도 없고 심심해 죽겠다. 그래서 세상을 뜨는 거야(더 재밌는 게 없나 하고)."만담가 장소팔1922~2002.4.22
엎드려! 쏘란 말이야...!윤영하 소령1973.11.24~2002.06.29
내 한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깨달음을 준다면, 나 죽은 게 아깝지 않아요.육우당.[104]1984.08.07~2003.04.26
落ち葉は秋風を恨まない(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장명부[105]1950.12.27~2005.4.13
노 대통령에게
나는 살고 싶습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발 이라크에 한국 군인들을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제발,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그들의 자식을 이라크에 보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모든 한국 군인들은 이라크에서 나가야 합니다.
제발, 제발.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왜 당신은 왜 당신은 한국군을 이라크에 보냈나요?
고국에 게신 한국 동포들,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발, 대통령님! 제발 부시! 제발, 노무현 대통령! 제발 이라크에서 나가주십시오.
제발, 나는 살고 싶습니다. 나는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
김선일1970.09.13~2004.06.22
나 살고 싶다!김형은[106]1981.4.25~2007.1.10
어머니… 어머니 아아, 어머니…권정생1937.9.10~2007.5.7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 사채니 뭐니 나와는 상관이 없는데 나를 왜 괴롭히는지 모르겠다.최진실1968.12.24~2008.10.2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김수환 추기경1922.7.2~2009.2.16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노무현 대통령[107]1946.9.1~2009.5.23

2.6.2 2010년대

2010년대
유언인물생몰년
Everything is good.[108]이태석 신부1962.11.5~2010.1.13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법정 큰스님[109]1932.10.8~2010.3.11
오늘 안으로 모든 실종자들을 책임지고 구조해내겠다.한주호 준위1957.9.8~2010.3.30
그동안 잘 대해줘서 고맙다.[110]손창섭1922~2010.6.23
아버지 대신 내가 아파야 하는데… 미안해, 미안해.박용하1977.8.12~2010.6.30
그 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최고은[111]1979~2011.1.29
공을 던지고 싶다….최동원[112]1958.5.24~2011.9.14
내려오다 죽을 뻔 했네. 목표 A지점에 도착 실패. 눈과 가스를 동반한 낙석으로 운행 중단한다. 전진캠프로 하산할 예정이다.박영석[113]1963.11.2~2011.10.20?
아직도 봄날 반짝이는 햇살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당신을 난 가슴 한가득 품고 떠납니다. 지난 40년간 늘 나를 위로해 주던 당신에게 난 오늘도 이렇게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오래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강영우[114]1944.1.16~2012.2.23
모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머니 사랑한다.우정호[115]1988.9.30~2012.8.23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묘역에 묻어 달라.채명신1926.11.27~2013.11.25
충사.. 죠죠.. 러브라이브..
다음주까지 기다려야 겨우볼수있겠네요
어우 뭔 제주도를 3박4일로 가는지..링크
하루카씨 [116]1996 or 1997.07.24~2014.04.16
살려달라고요.유언 링크레네미아(어르미)1996년경~2014.04.16[117]
나가려는데 문이 안 열린다. 하지만 헬기도 오고 구조하고 있으니 걱정마라. 괜찮다.최창복추가바람~2014.04.16[118]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수협통장에 돈이 있으니까 아이 등록금으로 써.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 해.끊어.양대홍추가바람~2014.04.16[119]
만약 사랑하는 사람에게 못다 하고 떠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가 남기는 이야기 편지 또한 내 유언장이다.
결혼 전 자살 충동의 경향이 굉장히 센 편이어서 조절하는 훈련이나 치료를 방았는데 아이들이 생기고부터는 너무 행복해서 저절로 치유가 됐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고 당신의 아들, 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신해철[120]1968.5.6~2014.10.27
6개월만 더 있었으면...김자옥[121]1951.10.11~2014.11.16
짱구는 꼭 마무리 짓고싶다.오세홍[122]1951.7.17~2015.5.22.
통합과 화합.김영삼 대통령.[123]1927.12.20~2015.11.22.
아…큰일을 마쳤네.이기택1937.7.25~2016.2.20.
코미디언 중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으니 조의금을 받지마라.구봉서1926.11.5~2016.8.29.

3 세계

  1. 고구려 2대 유리왕의 둘째아들로, 첫째 도절을 이어 태자에 올랐다. 이웃 황룡국에서 선물한 강궁을 꺾어 이웃나라와의 화친을 깼다는 이유로 자결을 명받았다. 이 말을 한 직후 나가 들판에 창을 꽂고 말을 타고 뛰어들어 자결했다.
  2. 나해 이사금의 아들로 이 시기 신라의 명장으로 유명하다. 왜국 사신이 왔을 때 그의 무용을 띄워주자 술김에 "기회가 되면 너희 나라에 쳐들어가 너희 왕은 소금 만드는 노비로, 왕비는 부엌데기로 만들겠다"(…)라고 말한 것이 침공의 빌미가 되었다. 이 말을 남긴 직후 왜왕에 의해 화형에 처해졌다. 그의 아내는 이를 한으로 여겨 왜군 사신이 왔을 때 접대를 자청하고는 똑같은 방식으로 화형시켜 버린다. 이 결과 다시 대대적인 침공을 당하는데, 이번의 경우엔 격퇴할 수 있었다. 뒷날 우로의 아들은 흘해 이사금이 된다.
  3. 얼마 후 고도(苦都)가 명왕(明王)을 사로잡아 두 번 절하고 “왕의 머리를 베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명왕이 “왕의 머리를 노비의 손에 줄 수 없다”고 하니, 고도가 “우리의 법에는 맹세한 것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하더라도 노비의 손에 죽습니다”라 하였다(다른 책에는 “명왕이 호상(胡床)에 걸터 앉아 차고 있던 칼을 속지(谷知)에게 풀어주어 베게 했다”고 하였다). 명왕이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고 눈물 흘리며 허락하기를 “과인이 생각할 때마다 늘 고통이 골수에 사무쳤다.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구차히 살 수는 없다”라 하고 머리를 내밀어 참수당했다. - 일본서기
  4. 신라 진평왕 때 가잠성 성주. 가잠성을 공격한 백제군과 싸웠으나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이 말을 남기고 느티나무에 머리를 부딪혀 자결했다.
  5. 찬덕의 아들. 아버지의 공덕으로 출세해서 가잠성을 탈환했다. 그러다가 다시 백제군이 성에 쳐들어오자 이들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했다.
  6. 옥사에서 굶어 죽어갈 때 쓴 상소문이다. 의자왕은 이 상소를 무시했고, 결국 백제가 생존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7. 백제 부흥군의 장군. 풍왕과 갈등하던 끝에 결국 제거되었는데 복신의 처형을 망설이던 부여풍에게 달솔 덕집득이 반역자는 살려둬서는 안된다고 하자 덕집득을 노려보며 욕한 말이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말.
  8.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는 연개소문 아들들의 권력투쟁으로 멸망. 이 유언 역시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음.
  9. 병석에 있을 때 문병을 온 문무왕에게 한 말.
  10. 실제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뜬구름처럼 덧없는 인생이 예로부터 이러한 것이니라."(浮生 自古然矣)
  11. 죽기 직전 대사면령을 내리자는 신하 왕융의 상소에 내린 대답.
  12. 통주에서 패하여 거란군에게 사로잡혔는데 요 성종의 회유를 받자 고문을 받으면서도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함께 잡힌 부장 이현운이 거란에 충성을 맹세하자 그를 걷어차며 일갈한 말.
  13. 고려시대의 문신. 동북 9성으로 유명한 윤관의 아들로 김부식과 대립했다. 말년에 은거하여 '관승'이라는 승려와 함께 풀을 엮어서 만든 암자에서 지냈는데, 관승은 윤언이에게 "먼저 가는 사람이 여기 앉아 죽으면 죽어서 변전한다"고 말했다. 죽던 날 식사를 마치고 관승에게 "내가 갈 때가 되었으니 작별을 고하오"라고 말했고 관승이 전송하자 이 말을 남기고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암자 벽에 사세구를 써 놓고 앉은 채로 죽었다고 한다. 윤언이의 사세구는 사세구/한국 항목 참고.
  14. 뒤에 나오는 최영 장군의 아버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에서 보이듯 이를 최영이 한 말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다.
  15. 그러나 최만생은 홍륜 일행에게 공민왕의 계획을 알려주고 같이 공민왕을 살해했다. 그후 홍륜과 최만생은 이인임에게 처형을 당했다.
  16. 무덤에는 정말로 풀이 나지 않았지만 후세에 풀을 심었다고 한다.
  17. <박시백조선왕조실록>에서는 끌려가면서 이성계에게 "이제… 왕이 되려는가?"하고 말하고는 한바탕 크게 웃으며 형장으로 간다.
  18. 살해되던 날 아침 집안을 떠나면서 식구들에게 한 말
  19. 이방원의 습격을 받자 아들 정담이 "오늘 일은 정안군께 빌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라고 묻자 그에 대한 대답. 이보다는 절명시로 남긴 <자조(自嘲: 스스로를 비웃다)>가 유명하다. 사세구/한국 참고.
  20. 죽기 전 아들 태종에게 한 말. 그러나 태종은 창업자를 변방에 모실 수 없다는 이유로 장지를 도성 근처에 쓰되, 아예 함흥의 흙과 억새를 아버지 무덤의 봉분으로 삼았다. 원래 이성계는 사랑했던 아내 신덕왕후의 정릉에 같이 묻히고 싶었던 듯 하지만 아들이 신덕왕후를 증오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정릉에 묻히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함흥에 묻히자고 생각해서 이런 유언을 한 것 같다.
  21. 조선 초기의 무신. 태종 이방원을 도와 공신의 반열에 올랐으나 세종이 즉위하고 태종이 상왕으로 있을 때 세종의 장인 심온을 제거하려는 태종의 옥사에 휘말려 거열형으로 죽었다. 거열형을 당하기 직전에 한 말이다.
  22. 수양대군에게 철퇴로 얻어맞은 다음 기적적으로 살아나자, 다시 살해하러 찾아온 수양대군의 부하들에게 자신이 투옥되리라 생각했는지 친 호통. 이 직후 살해되었다. 두번 죽은 셈.
  23. 그리고 다음 날 바로 세상을 떠났다.
  24. 이 유언 때문에 기존의 석곽묘를 쓰지 않고 석회를 다져넣었는데, 되려 공기의 유입을 막는 이런 구조가 시체가 부패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이따금씩 발견되는 사대부 미라도 바로 그것.
  25. 첫번째 유언은 징비록에 나오고, 두번째 유언은 연려실기술에 나오는 유언으로 두 말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한 말이라고 한다. 실록에 기록된 공식적인 유언은 "장례는 간소하게 치르고 불교의 법을 따르지 말며 저승 가서 읽을 책 몇 권을 관에 넣어 달라"이다.
  26. 죽기 직전에 성종에게 올린 말. 이 말을 마치고 죽었다고 한다.
  27. 그후 3년뒤에 사람들이 무덤을 파보니 시체가 전혀 썩지않고 살아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은 김시습이 죽어 부처가 되었다고 여기고 화장을 해 사리를 봉안했다.
  28. 세조~연산군 대의 문관. 글에 뛰어난 문사였다. 사림파에 강경한 태도를 취해 미움을 많이 샀으나, 무오사화 때는 "청론하는 선비는 조정에 있어야 한다"면서 한 사람이라도 살리려는 모습을 보여 후일 사림에게 욕을 먹지는 않았다. 연산군은 그를 무척 총애했으나,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결국엔….
  29.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사형 집행을 담당했었다는 이유로 자결을 명령받았는데, 죽을 상황에서도 '은혜가 지극히 중하다' 고 하는 것은 '몸과 머리가 나누어짐을 면하게 되었' 기 때문. 조선 시대에는 그나마 시신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는 사약형이 가장 명예로운 처형법이었고, 그 다음이 교수형, 그리고 다음이 참수나 능지처참 등이었다. 연산군이 이세좌를 숙청한 내용은 갑자사화 항목을 참고 바람.
  30. 이세좌를 위해 온건한 의견을 올렸으며, 연산군에게 검소와 절약을 권하는 이유로 죽음을 당했다.
  31. 연산군의 학정에 간언하다가 전신에 화살을 맞았다. 그리고 광기에 휩싸인 연산군이 칼로 팔다리를 자른 후 걸어보라라고 명하자 처선이 조롱한 말.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연산군은 처선의 혀를 잘라버렸다…
  32. 연산의 대표적 총신. 2012년 한국 영화 간신의 주인공이 바로 이 사람이다. 연산에게 수많은 미인을 바치며 그의 타락을 도왔으며 죽는 유언까지도 연산에 대한 아부였고 연산은 그를 매우 총애하여 그의 집으로 직통되는 길을 민가 수십채를 헐어 놓고 했으며 그가 죽자 매우 상심했다 한다. 바로 위의 사람과 참 대비된다...
  33. 연산군은 중전 신씨와 같은 곳으로 유배되지 못했다. 신씨는 일찌기 연산군의 학정을 그만하라고 눈물을 흘리며 간했으나 연산군은 그 말을 듣지도, 그렇다고 그녀를 내치지도 않았다. 장녹수를 비롯한 난잡한 생활 속에도 황금에 중전의 덕을 기려 세기라고 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34. 중종반정의 공신. 의정부 소속 종이었던 정막개의 고변으로 인해 역모 혐의를 받게 되었고 결국 매를 이기지 못한 끝에 혐의를 인정하고 능지처참당했다. 집행 직전에 대간이었던 집의 김협을 보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며 김협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정막개는 이 불분명한 역모 고변으로 노비 신분을 벗어나 정3품 당상관 자리에 올랐다.
  35. 사약을 받고 나서 절명하지 않자 집행을 빨리 끝내기 위해 나졸들이 조광조의 목을 줄로 얽으려고 하자 이런 말로 일갈했다. 곧 독한 술을 가져다가 잔뜩 마시고 나서 절명했다고 한다. 공식적인 유언으로 '관을 무겁게 하면 먼 길 가기 어려우니 관을 가볍게 하라'는 말을 남겼다.
  36. 초기에는 역시 촉망받는 신진 관료였으나 조광조 일파가 수구세력으로 몰아가면서 돌변하여 결국 기묘사화에 앞장선 인물. 이후 국정도 나름대로 무난하게 이끌고, 외교문서는 사실상 전담했으며 영의정 자리에도 올랐다. 하지만 조광조를 죽인 일을 후회하여, 자신의 글을 자식들에게 모두 불태우게 했다. 이로서 당대의 명필이자 뛰어난 문사였던 남곤의 글은 고작 시 한 수만 전해온다. 다른 기묘사화의 주도자들이 후에 조광조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약을 받고 죽은 반면, 남곤은 천수를 누렸는데 아마도 이런 반성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37. 그 전에 유조로 조광조의 억울함을 신원하고 이복 동생 경원대군에게 전위한다는 명을 내렸다.
  38. 그냥 평범한 유언같지만 사실은 사약 마시기 직전에 사약을 가지고 온 의금부 서리에게 농담으로 건넨 말이다.
  39. 권율의 아버지. 40이 넘도록 니트벼슬살이를 하지 않던 아들 권율에게 이 말을 남기고 죽었는데 이 말에 권율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벼슬길을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고 한다.
  40. 죽기 이틀 전에 남긴 말. 북쪽 변경으로 부임가는 서익을 만나려 했는데 가족들이 이를 말리자 한 말이다. 서익에게 <시무 6조>를 써 주고 이틀 뒤에 사망했다.
  41. 북향사배를 끝내고 다시 전투에 임하면서.
  42. 임진왜란 때 의병장.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수세에 몰리자 남강에 뛰어들어 자결했다. 왜병 두 명을 양팔에 끼고 강물에 뛰어들며 한 말. 이것은 선조수정실록의 기록이고 선조실록에서는 진주성 촉석루에서 분전하다가 이마에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43. 금산에서 1400여명의 의병으로 열배의 적에 포위당했을 때 피신하라는 부하의 말에 대답.
  44. 숨이 끊어지기 직전 아들이 손가락에 피를 내어 그의 입에 넣어주자 한 말.
  45. 한국사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유언이라고도 할수 있는 이순신의 이 유언에 대해 최근에는 '후대에 누군가 임의로 붙여넣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정황상 그런 어감의 유언을 남기셨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戰方急, 愼勿言我死"이란 말은 가장 신빙성이 높은 1643년 이전 판본에는 등장하지 않고 그것을 바탕으로 찍은 1712년과 1795년 판본에만 등장한다. 즉 누군가가 임의로 붙여넣었다는 것. 자세한 것은 http://lyuen.egloos.com/4961197. 그런데 여기서 한번 더 와전되어,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위인전의 창작. 불멸의 이순신에도 나와 유명해졌다. 적에게는 당연히 알려서는 안되는거고(...) 잘 알다시피 여기서의 대상은 바로 아군이다. 전투중 지휘관이 전사한 사실을 알면 병사들이 얼마나 사기가 떨어지고 당황하겠는가?
  46. 입적 직전 자신을 그린 영정을 보고 한 말.
  47. 죽기 직전 광해군에게 남긴 말. 그러나 그의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48.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반란(혹은 혁명)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것을 부정했다.
  49. 첫번째는 반정의 주모자인 이귀에게 처지를 하소연했으나 무시당하고 한탄에 차서 한 말. 당시 같이 참형당한 이위경이 아래처럼 반발했다고 전한다.
  50. 두번째는 이이첨의 유언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것을 이위경이 했다는 설도 있다.
  51. 처형 직전 이이첨에게 반발하며 내지른 말. 그러나 이해득실에 따라 요리조리 편을 바꾼 이위경이 이렇게 몹몰이 할 자격이 있을지는….
  52. 유언대로 광해군은 어머니 공빈 김씨의 무덤 밑에 묻혔다.
  53. 조선 인조 때의 무신. 이괄의 난 진압 때에도 활약했으나 정묘호란 때 안주성을 지키다가 성이 함락되자 화약에 불을 지르고 자결했다. 자결 직전에 남긴 말.
  54. 김상용은 지독한 혐연가였으나, 강화도가 청군에 의해 함락되자 화약고에 불을 질러 자폭하기 위해 불씨를 찾았는데도 없자 거짓으로 담배를 피우겠다며 불씨를 달라고 한 말이다.
  55. 자신을 산채로 5토막 내서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한 김자점에게 한 말. 이후 김자점은 효종 즉위 후 반역을 꾀하다 처형되었지만, 심기원처럼 처형되지는 않았다.
  56. 인조, 효종조의 강직한 신료로 김자점을 맨 처음 탄핵한 사람이기도 했다. 민회빈 강씨의 죽음의 억울함을 지목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형신을 받고 죽었다. 심지어 구언의 기간이었는데도! 김홍욱은 조정의 신료들에게 말하는 자를 죽여놓고 무사한 나라가 있었소? 라면서 왕을 설득해줄 것을 청했으나 죽게 될 것이 자명해지자 평소때 성격이 살아나서 밑에 나오는 오자서의 유언을 본뜬 말을 남기고 죽었다. 참고로 영조비 정순왕후 김씨의 5대조이자 추사 김정희의 7대조.
  57. 머리 위에 있던 종기를 어의 신가귀가 따서 피가 쏟아지자 한 말. 그러나 이 직후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었다.
  58. 송시열의 라이벌. 주자에 대한 해석을 두고 대립하여 송시열에 의해 사문난적으로 몰린 것으로 유명하다. 숙종 때 환국으로 인해 사약을 받았는데 사약을 받기 전 남긴 말.
  59. 정조가 의식을 잃으며 되뇌였다는 말. 수정전은 당시 대비 정순왕후 김씨가 있던 곳이다. 정조 24년(1800) 6월 28일, "상이 무슨 분부가 있는 것 같아 자세히 들어보니 ‘수정전(壽靜殿)’ 세 자였는데 수정전은 왕대비(王大妃)가 거처하는 곳이다."란 기록이 있다. 독살설 떡밥과는 별개의 문제. 참고로 정순왕후 김씨는 정조가 승하하기 직전까지 정조의 병간호를 했다.
  60. 정약용의 셋째 형
  61. 정수동, 혹은 정만서로 알려진 조선 후기의 해학가. 죽기 직전 친구들이 그 기분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하는데 그를 소개한 어떤 책에는 아내에게 질문으로 한 말인 "저승에서도 외상 술을 마실 수 있을까?" 라 소개되어 있다.
  62. 여기부터는 양력.
  63. 이후 군중들에 의해 정병하와 함께 구타, 사망하고 갈갈이 찢겨져 종로-광화문을 돌아다니게 된다.
  64. 구한말 의병장으로 일본군에게 참패를 당한 후 폭우가 쏟아질 때 물에 빠져 순국하였다.
  65. 대원군은 죽기 직전까지도 연신 고종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고종은 끝내 부친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아 불효자란 오명을 쓰게 되었다.
  66. 매천야록의 기록이다. 사바틴 보고서에 의하면 말할 틈도 없이 죽었다
  67. 서양인이지만 한국을 위해 공헌한 일이 상당하고 한국 땅에 묻힌 인물이기에 이쪽에 기재한다.
  68. 안타깝게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69.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절명시를 남기고 아편덩어리를 삼켜 음독자살하였다. 아편을 삼킨 직후에 한 말.
  70. 일본군에 의해 처형되기 직전에 남긴 최후 진술
  71. 독립운동가로 신해혁명에 참가한 유일한 한국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중추적인 역할과 함께 쑨원의 국민당 정부로부터 정부승인 받도록 이끄는데 커다란 활약을 했다.
  72. 실제로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전해지기로는 순종은 이 유언을 이준구에게 남겼다고 하는데 이준구는 순종보다 한달정도 빨리 사망했다. 망령의 유언.
  73. 일제의 방해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하나 성리학적 윤리가 남아있던 당시에는 시신을 해부하는 것이 금기로 여겨지던 터라 지켜지 않았을 수도 있다.
  74. 그러나 그의 시신은 주변인들의 중론을 따라 국내로 들어와 안장되었다.
  75. '멜론 향기를 맡고 싶다'는 말이 와전되었다고도 한다. 여성 음부의 냄새를 맡고 싶다는 의미였다고…
  76. 무쓰히토. 일본의 메이지 덴노의 이름이다
  77. 한국의 장로교회 목사이자 순교자이다. 1907년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 7인 중의 한 사람이다. 한국인 최초의 목사가 되어 제주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神社參拜)에 완강히 거부하며 호남지방 교회지도자들과 연대, 반대투쟁을 하다가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죽었다.
  78. 독립운동가로 간도에서 교육 활동과 기독교 보급에 힘썼다. 제자들이 임종 직전 남길 말이 있냐는 말에 대한 질문. 김약연은 윤동주의 외숙부이기도 하다. 김약연은 간도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명동학교를 세웠는데 윤동주, 문익환 등이 여기서 수학했다.
  79. 평생을 파락호인척 하고 주변사람들 몰래 임시정부에 독립군자금을 송금한걸 사람들에게 알리자는 친구의 말에 대한 대답.
  80. 이분 역시 외국인이지만 한국에 상당한 공헌을 하였고, 한국에서 사망했으며 한국의 묘지에 안장되었으므로 이쪽에 기재한다.
  81. 동성중학교에 재학하다 한국전쟁 발발로 학도병으로 입대하여 1950년 8월 10일 71명의 학도병만으로 인민군의 진격을 막은 포항여중 앞 전투에서 전사했다. 전사하기 직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부분.
  82.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문근 사도 요한 신부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 신부는 여러 성가를 작곡한 작곡가이다. 이우근도 가톨릭계 동성중학교에 재학하는 천주교 신자였으며, 피난 와중에도 김대건 신부의 무덤이 있는 미리내 성지를 들렀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83. '나비 박사'로 유명한 나비연구가. 한반도의 나비를 깊이 연구하고 모든 종류를 정리했다. 그러나 6.25 전쟁을 만나 그가 평생을 기울여 채집한 나비 75만 마리로 만들어진 표본들이 불타버리고 말았다. 서울이 수복되고 국립과학관재건회의에 가던 중 대낮에 총메고 술먹던 청년과 스쳤는데 그가 저기 인민군장교가 간다며 붙잡아 쏴죽이고 거적에 말아 개천 옆에 유기했다. 이 말은 총에 맞기 직전에 한 말.
  84. 한국명 방일은(方溢恩). 초대 주한 교황청 대사.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평안도에서 사목하다 1949년 주교로 서품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도 서울에 남았다가 7월에 체포되어 납북되어 북한의 퇴각과 함께 수용소를 전전하다 중강진에서 순교했다.
  85. 1956년 처형 직전 남긴 말.
  86. 죽기 직전에 벼를 한번 보고 싶다고 제자들에게 말했고 제자들이 한국농업연구소에서 벼를 가져와 병상의 박사에게 쥐어주자 한 말.
  87. 1960년 4월 19일 데모를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의 첫 부분이다. 미아리 고개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 당시 한성여중 2학년.
  88. 1960년 4월 19일, 경무대 앞에서 경찰의 발포로 중상을 입었지만 같이 총상을 당한 고등학생들에게 응급처치를 양보하고 사망했다. 당시 서울대학교 수학물리과 3학년.
  89. 대표적으로 임화수.
  90. 1961년 사형 집행 전에 남긴 말.
  91. 재일교포. 여고생을 강간 살해했다는 혐의로 학급 내 무기명 투표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당시 18세). 미성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처형당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10년 12월 12일자 방송에서도 그를 다루었다.
  92. 점자책을 쌓아두면 책의 무게에 눌려 나중에 점자를 읽기 힘들어진다.
  93. 한글점자인 훈정음의 창안자.
  94. 영국계 캐나다인이지만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기에 여기에 기재. 이 유언은 그의 묘비에도 새겨졌다.
  95. 전자는 분신 이후 쓰러지면서 남긴 말이고, 후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남긴 말이다. 배고프다는 말 그대로 전태일은 분신을 감행하던 날 이틀 전에 라면 하나 먹은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한다.
  96. 이 말대로 유일한 박사의 전 재산은 유한양행에서 설립한 재단에 증여되었고 유일한 박사의 혈육인 유재란 여사도 그대로 행했다.
  97. 이 내용은 실질적으로 공개된 유언이고 사망 2일 전인 1973년 11월 20일 큰 아들인 김상문 전 삼천리자전거 대표(당시 기아산업 부사장)에게 한 말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맨주먹으로 사업을 시작해 오늘의 기아산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생각해보면 모두가 나라의 덕이다. 나라가 독립되고 국력이 신장하지 않으면 아무 사업도 할 수 없다. 부강한 조국을 건설하는 데 힘이 되기 바란다. 기업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업윤리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종업원들은 남이 아니라 내 식구요, 동기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항상 따뜻하게 보살피는 데 정성을 다하여라. 우리 회사에는 고생을 많이 한 임원들이 있다. 애비를 대하듯 그분들을 잘 모셔야 한다."
  98.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회사인 기아자동차와 국내 최대의 자전거 제조사인 삼천리자전거의 창업주. 박정희가 주도해서 일으킨 5.16 군사정변 후, 부정축재자들에게 막대한 벌금을 물게 했을 당시 기아도 5천만원이라는 엄청난 벌금을 물었음에도 불구하고도 새마을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지시했다. 평생을 기술자로 살아온 인물의 유언이었다.
  99. 참고로 출생년도가 서적마다 다르다. 1905년이라 기록한 책도 있고 1906년이라 기록한 책도 있다. 일단 여기서는 1905년이라 기록했다.
  100. 김재규에게 총을 맞고 주변에서 "각하! 괜찮으십니까!"라고 묻자 이 말을 했다고 한다. 흔히 박정희의 마지막 말로 알려져 있다.
  101. 김재규의 부하이자 10.26 사건의 가담자. 군사재판으로 1심 사형 확정후 집행장에서 최후진술
  102. 88년도에 일어난 지강헌 일당 인질 탈주극 사건에서 지강헌이 했던말. 그 후에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어달라고 하고서 그 음악을 들으며 그 후 유리파편을 목에 찔러 자살을 시도하다 경찰특공대의 총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던 도중 사망했다. 이 사건을 자세히 다룬 홀리데이라는 영화를 참고할것. 다만, 영화다운 허구도 섞여있으니 주의.
  103. 그러나 김정일은 우상숭배를 위해 유언을 무시하고 아버지를 엠버밍해서 주석궁에 박제했다. 김일성의 빨치산 출신 동지들이 수령의 유언을 지켜줄 것에 대한 공동명의로 된 제의서를 김정일에게 바쳤지만 묵살되고 말았다. 유언이 무시당하는 것은 한국사 태조들의 전통 게다가 김정일 본인은 아예 자신을 박제하게 했다.
  104. 청소년 동성애자이고 천주교 신자이다.이 내용은 유서 중 일부분.
  105. 죽으면서 자신이 운영하던 마작 하우스 벽에 남긴 글.
  106. 기사원문
  107. 노 전 대통령의 사저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 란 이름의 hwp 파일의 내용.
  108. 선종 직전에 남겼다는 말로서, 특이하게 영어로 유언을 남겼다. 의미는 "모든 일은 잘 될 것이다."혹은 "모든 것이 다 좋다."로 해석된다.
  109. 입적 전 날 남긴 말. 유언장에는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넙적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 달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고 쓰여있다.
  110. 부인에게 남겼다고 하는 말.
  111.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 2006년 영화 <격정 소나타> 제작 이후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다가 이웃집 문 앞에 이 말을 쓴 쪽지를 놓았는데, 이를 본 이웃사람이 최씨의 집을 찾아갔지만 최씨는 이미 숨져 있었다. 사망 전에 췌장염과 갑상선 항진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국내의 복지 수준과 민생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드라마의 제왕의 등장 인물 이고은은 이 최고은 작가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112. 가족들은 그가 의식을 잃을 때마다 야구공을 손에 쥐어줬는데, 혼수상태에 빠진 상태에서도 운명하는 순간까지 손에서 야구공을 꼭 쥐고 있었다고 한다.
  113. 한국 등산가로 8천미터 14좌 산을 최단시간으로 등정하고 북극과 남극도 등정하여 세계 최초 탐험가 그랜드슬램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러나 2011년 10월 20일 안나푸르나를 새로운 등정로로 올라가서 그 날 마지막으로 실종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기에 사망날짜가 정확하지 않다.
  114. 한국계 첫 백악관 차관보이자 한국인 최초 시각장애인 박사.
  115. KT 롤스터 소속의 게이머, 향년 만 24세. 사망 직전 어머님에게 남긴 말이라고 한다. 포모스에서 25세라고 한 것은 출생년도인 1988년을 1살로 보았기 때문.
  116. 본명은 최민석이다.안타깝게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117. 역시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이다.
  118. 세월호 희생자.마지막으로 며느리와 한 통화라고 한다.
  119. 세월호 사무장.역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이다.
  120. 2014년 10월 의료사고로 사망. 내용은 그가 생전에 썼던 유언장에 적힌 내용이다.
  121. 장남의 결혼이 이듬해 3월에 예정되어 있었다. 죽기 전 아들의 결혼을 매우 기대했고, 며느리가 될 사람도 매우 마음에 들어해 주변에 자랑했었다는 지인들의 말이 있었다.
  122. 암 투병 중이었던 그의 딸인 오소영씨가 성우 갤러리에 글을 올리면서 그의 말을 대신해서 전했다.
  123. 죽기 전 차남 김현철 씨에게 필담으로 남긴 유언이다. 글을 넘기기 전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이라는 말을 남겼고, 이 글을 쓴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아무런 말과 글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