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컵스의 레전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前감독.
이름 | 라인 디 샌드버그 (Ryne Dee Sandberg) |
생년월일 | 1959년 9월 18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워싱턴 주 스포케인 |
포지션 | 2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78년 드래프트 20라운드 필라델피아 필리스 지명 |
소속팀 | 필라델피아 필리스 (1981) 시카고 컵스 (1982~1994, 1996~1997) |
지도자 | 필라델피아 필리스 3루코치 (2013) 필라델피아 필리스 감독 (2013~2015) |
시카고 컵스의 영구결번 | |||||
10 | 14 | 23 | 26 | 31 | 42 |
론 산토 | 어니 뱅크스 | 라인 샌드버그 | 빌리 윌리엄스 | 퍼거슨 젠킨스 & 그렉 매덕스 | 재키 로빈슨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라인 샌드버그 | |
헌액 연도 | 2005년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76.2% (3회) |
1984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 |||||
데일 머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 라인 샌드버그 (시카고 컵스) | → | 윌리 맥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990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 우승자 | |||||
루벤 시에라 (텍사스 레인저스) | → | 라인 샌드버그 (시카고 컵스) | → | 칼 립켄 주니어 (볼티모어 오리올스) |
1 개요
초창기 로저스 혼스비 이후 한동안 사라졌던, 아니 혼스비가 돌연변이처럼 보였던 시대에 등장해 2루수도 공격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선수다. 물론 공격만 능했던 것은 아니고, 수비도 빼어났던 공수겸장의 2루수.
아울러 시카고 컵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컵스의 공격을 이끌면서 컵스가 맞이한 1980년대의 짧은 중흥기를 진두지휘했던 선수다. 역대 최고의 2루수 중 한 사람으로 꼽히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
통산 성적은 0.285 2,386안타 282홈런 1,061타점.
2 선수 생활
2.1 필라델피아 필리스 최악의 실수
고교 시절 미식축구와 야구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낸 선수였다. 미식축구 쿼터백으로 올 아메리칸 올스타에 선정될 정도여서 대학에서 장학금 제의를 받았지만, 1978년 드래프트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20라운드에 자기를 지명하자, 미식축구 대신에 야구를 선택했다. 그리고 필리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히 실력을 쌓으면서 마침내 1981년 확장 엔트리 기간에 메이저리그 물을 맛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당시 필리스는 샌드버그의 재능에 대해 그리 높게 평가를 하지 않았다. 원 포지션은 유격수로서는 그리 신통치 않다고 판단했고, 당시 필리스의 주전인 래리 보와를 넘기는 어려울 거라고 봤다. 당시 래리 보와도 팀의 신뢰를 받지 못하던 판국인데, 그 보와도 넘기 어렵다는 판단은 한마디로 별 쓸모가 없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다른 포지션을 전향하자니 3루는 마이크 슈미트가 있었고, 2루나 중견수도 신통치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결국 필리스는 유격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의 주전 유격수인 래리 보와에 라인 샌드버그를 끼어서 컵스의 주전 유격수인 이반 데헤수스를 트레이드 해 온다. 그리고 이 트레이드는 필리스의 역사적인 재앙으로 남게 되었다. 이미 주전 라인업이 1981년 당시 모두 30세가 넘었던 필리스는 타선의 힘을 보탤 젊은 피를 그렇게 날려버리고 말았다.
2.2 시카고 컵스의 상징
필리스의 판단이 오판이었음은 신인 시절에 이미 드러났다. 1982년 3루와 2루를 오가면서 0.271에 홈런 7개 타점 54개, 도루 32개를 기록하면서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안착한 것. 그리고 1983년 2루 포지션에 고정된 후, 생애 첫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면서 수비에서 이미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1991년까지 9년 연속 내셔널리그 골드글러브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의 재능이 드러난 것은 1984년으로 이 해 샌드버그는 0.314 19홈런 84타점 32도루를 기록하며 타선을 이끌었다. 특기할 사항은 이 해 2루타가 36개, 3루타가 19개로, 만일 홈런과 3루타를 하나씩만 더 쳤다면, 역대 3번째로 20-20-20-20을 달성했을 것이다. 이 해 가장 유명한 것은 컵스의 철천지 라이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전국 방송 경기인데, 6월 23일 벌어진 경기에서 샌드버그는 브루스 수터를 상대로 9회말 동점 솔로 홈런, 그리고 10회초 두 점을 내준 상황에서 다시 동점 투런 홈런을 치면서 일약 자신의 이름을 전국구에 알렸다.
이런 경기나 기록 외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샌드버그의 활약을 바탕으로 컵스가 마침내 39년만에 PO에 진출했는데 성공했다는 점. 이 때의 활약으로 샌드버그는 1984년 내셔널리그 MVP에 올랐다. 다만, 아쉬운 것은 PO였는데, 샌드버그 자신은 0.368로 맹활약했지만, 컵스는 먼저 2승을 따내고 내리 3연패하면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게 지면서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샌드버그의 활약은 꾸준히 이어지면서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2루수로 자리잡았고, 컵스도 암흑기를 벗어나 1989년에 다시 PO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때도 샌드버그 자신은 0.400의 타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지만, 팀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패하며 다시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염소의 저주는 계속 이어졌다.
1990년 40홈런을 치며 홈런왕에 올라 역대 세 번째로 2루수 홈런왕에 오르기도 했는데, 1993년부터 장타력이 급감하더니, 1994년에 시즌 도중 부진한 성적을 이유로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미련이 남았는지 1996년에 다시 컴백해서 조 모건이 가지고 있던 2루수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하고 은퇴했다.[1]
3 플레이 스타일
한동안 메이저리그에서 2루수의 전형은 작전 수행 잘하고, 발 빠른 타입의 선수였다. 그런데 샌드버그는 그런 전형을 깨뜨리고, 공격이 되는 2루수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선수였다. 2루수로 홈런왕에 올랐고, 매년 20홈런 가깝게 쳐낸 장타력이 그의 주 무기였다. 전통적인 2루수로서의 역할에도 부합했는데, 발이 빨라서 50도루도 기록한 적이 있다. 30도루 이상 시즌이 5회, 나이가 들면서 도루를 자제하기는 했지만, 발도 빠른 선수였다.
이런 공격력 외에도 뛰어난 수비력으로 정평이 난 선수였다. 그가 기록한 통산 수비율 0.989는 메이저리그 2루수 최고 기록으로 남았고, 123경기 연속 무실책 기록이라는 2루수 최다 기록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2] 9년 연속 골드글러브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수비력 또한 출중했다.
무엇보다 샌드버그에 의해 2루수라고 해서 공격이 약하다는 것이 결코 핑계가 될 수 없다는 점이 증명되었다. 샌드버그 이후 공격력도 겸비한 2루수들이 등장하면서, 2루 포지션도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그 서막을 연 선수가 바로 샌드버그다.
4 은퇴 이후
세 번의 도전을 거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세 번 걸린 것은 아무래도 첫 해에는 500홈런 - 3000안타의 에디 머레이, 두 번째 도전 때는 3,000안타 달성자인 폴 몰리터와 1이닝 마무리의 시초 데니스 에커슬리와 겹쳤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듯. 당연한 이야기지만, 컵스에서는 그의 등번호 23번을 영구결번시켰다. 다만, 하필 그가 뛴 시대에 시카고에서 하늘을 날던 농구계의 소인배와 겹치는 통에 23번의 대명사는 되지 못했다.
다른 슈퍼스타급 선수들이 현역 시절 번 돈으로 은퇴 이후, 즐기면서 인생을 사는 것과 달리, 그는 컵스의 감독을 목표로 마이너리그 감독부터 감독 수업을 받았다. 버스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고생을 감내하면서 마이너 감독으로 수업을 쌓았지만, 컵스 감독의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심 컵스 감독직을 기대했던 그는 결국 2010년을 끝으로 컵스 산하의 마이너리그 감독 직에서 물러나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트리플A 팀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필리스의 할아버지 감독님 찰리 매뉴얼의 건강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유력 후보로 종종 거론되었으며 필리스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차기 감독으로 점찍어놓은 상태였다. 또한 친정팀 컵스나 라이벌 카디널스가 2011년 종료 후 감독 인선에 돌입했을 때도 거론되었다.
2012년 종료 후, 필리스의 3루 코치로 임명되었다. 매뉴얼 감독의 건강이 좋지 않고 계약도 2013년을 끝으로 마무리되는 가운데 본격적으로 빅리그 감독 수업을 받게 될 모양. 그리고 시즌이 시작되자 3루 코치 뿐만 아니라 사실상 벤치 코치의 역할까지 겸했는데, 매뉴얼 감독이 퇴장당했을 때 임시 감독을 맡아 선수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8월 중순 매뉴얼 감독이 해임된 감독 자리에 남은 시즌을 맡을 감독 대행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시즌 중엔 필리스와 3년 계약을 맺으면서 옵션이 실행될 경우 2017년까지 필리스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2014년까지는 현역 감독 중 유일한 명예의 전당 입성자였다가, 2015 시즌에 폴 몰리터가 미네소타 트윈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유일한 입성자는 아니게 되었다. 시즌 전에 지미 롤린스 등의 여러 베테랑들과 마찰을 빚어서 팬들을 불안케 하기도 했다.
결국 현지시각 6월 26일자로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내려오라는 놈은 안내려오고..
5 기타
- 조카인 제러드 샌드버그(Jared Sandberg) 역시 야구선수로 활동하여 메이저리그까지 밟았으며, 은퇴하고 마이너리그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다른 어린 조카인코드 샌드버그(Cord Sandberg)[3]는 2013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 나오는 촉망받는 외야수 유망주이다. 다만 쿼터백으로도 전미에서 손꼽히는 재능이라 미시시피 주립대의 풋볼 장학금 제안을 받아놓은지라 야구를 선택할지는 미지수인데, 3라운드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냅다 지명했고, 슬롯머니를 상회하는 계약금에 합의했다! 필리스 팬들은 혈통(?)과 파워 포텐셜을 겸비한 조시 해밀턴 타입의 5툴 플레이어를 영입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