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이름 | 제임스 캘빈 롤린스 (James Calvin Rollins) |
생년월일 | 1978년 11월 27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
포지션 | 유격수 |
투타 | 우투양타 |
프로입단 | 1996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46번, PHI) |
소속팀 |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0~201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15) 시카고 화이트삭스 (2016) |
2007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 |||||
라이언 하워드 (필라델피아 필리스) | → | 지미 롤린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 → |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2001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도루왕 | |||||
루이스 카스티요 (플로리다 말린스) | → | 지미 롤린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후안 피에르 (콜로라도 로키스) | → | 루이스 카스티요 (플로리다 말린스) |
2007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득점왕 | |||||
체이스 어틀리 (필라델피아 필리스) | → | 지미 롤린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 → | 핸리 라미레즈 (플로리다 말린스) |
1 개요
메이저리그의 유격수. 2007년 내셔널리그 MVP이자,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2000년대 후반 전성기 '필리스 왕조'의 공신이던 선수다. 유격수로 30-30을 달성한 선수이며, 팀의 리드오프이자 수비라인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선수. 애칭은 J-Roll.
2 선수 생활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어머니가 소프트볼 선수라서 어릴 때부터 자연히 방망이와 공을 접했다. 가족들도 모두 운동에 능한 집안인데, 그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이 지미 롤린스였다. 1996년 드래프트에서 필라델피아에 2라운드에 지명을 받고 마이너리그에서 4년간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2000년 확장 엔트리 때 잠시 메이저리그의 맛을 본 후, 2001년부터 본격적인 풀타임 시즌에 들어갔다. 풀타임 첫 해 성적은 0.274 14홈런 54타점 46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하면서 유격수 및 신인으로서는 대단히 준수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 해 신인왕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1] 또한 알버트 푸홀스와 스즈키 이치로와 함께 신인으로서 올스타게임에 뽑히기도 했다.
그 뒤 팀의 주전 유격수로서 꾸준한 공격력을 보여줬다. 수비력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막장 수준의 수비력은 아니었다. 공격력은 리그에서도 빼어난 수준으로 평가받았는데, 매년 3루타를 10개 가깝게 치고, 도루를 30개 이상 할 정도의 빠른 발과 항상 180개 이상은 칠 수 있는 컨택, 그리고 두 자리 수 홈런을 치는 펀치력을 바탕으로 필리스의 주전 유격수이자 톱 타자로 활약했다. 도루 실력과 간간히 나오는 펀치력은 어릴 적 그의 우상인 리키 헨더슨의 최전성기만큼은 아니라도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은 되었다.
2.1 2007년: MVP 시즌
최고의 모습은 2007년. 이 해 타율 0.296에 30홈런 94타점 41도루, 38 2루타 20 3루타를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4번째로 홈런, 도루, 2루타, 3루타를 모두 20-20-20-20 이상 기록한 선수가 된 동시에, 유격수로 30-30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마침 팀이 막판 어느 어메이징한 팀을 제치고 극적으로 지구 1위를 차지하는 임팩트까지 겹치면서 그는 맷 홀리데이를 제치고 리그 MVP에 올랐다.
유격수로서 30-30에 20-20-20-20이라는 대업을 이뤄냈고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으면서 어필할 수 있는 건수가 매우 많았는데, 문제는 MVP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를 싹쓸이를 하는 바람에 논란이 나오기도 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각종 수비 지표에서 오마 비스켈, 트로이 툴로위츠키, J.J. 하디, 호세 레예스(지금이야 레예스의 수비력은 많이 떨어졌지만...) 등 경쟁자들에 비해 꽤 떨어지는 UZR를 기록하면서 골드글러브의 신뢰도에 의문이 생기는 이유가 되었고, 실버슬러거에서는 가중 출루율(wOBA)에서 핸리 라미레즈, 에드가 렌테리아에게 밀렸음에도 수상한 점, MVP에서는 각종 세이버메트릭스 승리 기여도 수치에서 MVP 5위 이내에 들수 있긴 해도 경쟁자들에 비하면 떨어진 점[2]에서 "30-30에 20-20-20-20이 지나치게 과대포장된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롤린스가 20-20-20-20이라는 역사상 4명 밖에 없는 대기록과 메이저리그 신기록인 716타수를 기록하는 등 리드오프로서 역사에 남을 시즌을 보냈고, 유격수 프리미엄에다가 9월 대분전으로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았다는 스토리가 기자들에게 어필을 했음을 감안하면 아주 터무니없는 수상이라곤 할 수 없다.
2.2 이후
그리고 이듬해인 2008년에는 부상으로 빠진 경기가 있었지만, 11홈런 58타점 47도루를 기록하며 필리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생애 첫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했다.
2009년까지는 건강했던 롤린스는 그러나 2010년부터 잦은 부상으로 결장이 잦아졌다. 2010년에는 88경기 출전, 2011년에는 137경기에만 출전했다. 전성기인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못해도 150경기 이상은 출전했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 여기에 성적도 꾸준히 하락세를 그렸다. 하지만 2011년에는 오히려 롤린스도 롤린스지만 체이스 어틀리가 부상으로 넋을 잃은 시즌을 보냈고 라이언 하워드까지 신나게 풍기짓이나 하는 마당에 셰인 빅토리노, 헌터 펜스와 함께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도루나 수비를 제외한 공격 비율스탯은 실망스럽기 때문에 2011 시즌 종료 후에 FA로 풀리는 그를 필리스가 굳이 잡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루벤 아마로 단장은 롤린스를 잡을 의지를 표명하였기 때문에 홈 디스카운트를 전제로 필리스 잔류 가능성도 어느 정도 예상되었고, 선수 본인은 5년 계약을 원한다고 하는데, 나이와 커리어, 전망을 감안하면 대개 4년을 넘어가는 계약은 페이롤 압박이 큰 필리스에겐 무리라는 평과 팜에는 프레디 갈비스라는 좋은 유격수가 대기하고 있다 보니 협상에 있어 난항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롤린스는 3년 $33M 보장 + 11M 베스팅 옵션 계약에 합의하여 필리스 복귀가 결정되었다. 롤린스는 자존심을 약간 굽히면서 실속을 챙겼고 필리스는 페이롤 유동성이나 규모 면에서 크게 문제되지 않는 선에서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대우를 잘 해줬다는, 양측에게 모두 좋은 계약으로 호평받았다. 현지 언론에서는 아직 한창인 나이의 롤린스 계약을 두고 역대급 필리(all-time great)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설레발까지 나오기도 했다.
2011년 초반엔 팀 사정상 후안 피에르에게 1번을 내주고 3번을 치기도 하며 고생하였다. 타율과 출루율도 똥망하며 헌터 펜스와 함께 필리스 타선의 물방망이화의 주범으로 꼽혔다. 누구네들처럼 뛰지도 못하는 것보다야 낫지만...
그래도 딸이 태어나 출산휴가를 다녀온 뒤로는 분유버프를 받았는지 출산휴가 이후 32경기에서 7홈런 .315 .351 .580로 각성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후 다시 부진에 빠지며 타율이 2할 중반대로 떨어져서 시즌 막바지에 이르렀고, 8월 30일 경기에서는 팝플라이를 치고 안일한 주루 플레이를 펼치다 찰리 매뉴얼 감독에 의해 본보기성으로 교체되기까지 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할 5푼 타율에 23홈런 30도루. 수비도 최고는 아니어도 평타 이상을 찍어줬으며 타율은 떨어졌지만 완전히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적당한 파워를 다시 보여준 시즌이라 하겠다. 시즌 종료 후 필라델피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러나 2013 시즌에는 홀로 160게임을 출장하며 유격수 자리에서도 준수한 수비를 보이는등 분투했으나, 정작 공격력에서 장타력도 까먹고 달랑 홈런 6개만 쳐내는데 그치며, 필라델피아가 물타선이 되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2014년에는 찰리 매뉴얼 감독의 후임인 라인 샌드버그 감독과의 불화설까지 제기되는등 이래저래 침체를 겪으면서 3할을 치는 어틀리의 파트너로서 그냥저냥 제 할 일은 해주는 편이다.
2014년 6월 14일(미국시간 기준)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2235번째 안타를 치면서 기존에 마이크 슈미트가 가지고 있던 프랜차이즈 최다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기존 최고 기록자인 슈미트가 경기 중에 나와서 축하해 주었고 롤린스 본인도 기록은 홈에서 세우고 싶다고 밝혔는데 소원도 성취했다. 시즌 최종 .243 .323 .394 17홈런 55타점으로 유격수치고 나쁘지 않으나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필리스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최고 유망주 코리 시거가 2016년부터 메이저 데뷔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1년을 확실히 책임질 수 있는 선수를 데려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5 시즌 개막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는, 약속의 8회를 시전하며 다저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결승 3점 홈런으로 팀의 개막전 승리를 이끌었다 !
...이였는데, 그 다음 날에는 히 드랍 더 볼을 포함한 본인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패배에 일조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커뮤니티에서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롤선빈...... [3] [4]
6월 초에 접어들며 다저스 팬들에게는 그저 민폐로 낙인찍혔다. 공격에서는 열에 아홉 수준으로 맥을 끊는 건 기본이고, 수비도 본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중. 6월 5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 2회말 만루에서 흔들리는 카를로스 마르티네스 상대로 병살타를 치며 제대로 맥을 끊었고, 8회초에도 본헤드 에러를 저질러 역전패 단초를 제공하여 공수에서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까였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보는 팬들은 내년에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다저스 특급 유망주 코리 시거가 올라오기까지만 버티자고 입을 모으는 중.
7월에도 수비는 이름값은 해주지만 방망이는 여전히 로또성. 8월 4일 친정팀 필리스 원정 때 타석에 들어서자 필리스 팬들은 기립박수로 맞이해준다.
8월 19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인터리그 원정 2차전에서 2점 홈런을 치지만 팀은 무기력하게 무너지며 패배했다. 그런데 하위 켄드릭의 부상으로 주전 2루수 공백이 생긴 다저스가 웨이버 공시된 체이스 어틀리를 데려오면서 반년도 안 지나 어틀리와 팀을 옮겨 키스톤 콤비를 재결성하게 되었다.
시즌 후반기에서 들어서는 확실히 전반기에 비해서는 타율이나 출루면에서 점차 좋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콜업된 코리 시거의 활약에 대해서도 시거가 이미 주전이라고 인정하는 발언을 하는 등 괜히 베테랑이 아니라는 호평도 듣고 있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10월 4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는 1일 감독을 맡았고 이날 적절한 투수 교체, 대타 투입 등으로 인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팀도 6:3으로 승리하며 감독으로서의 첫 승(?)도 얻은 것은 덤.
포스트 시즌에서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5경기 중 단 1경기인 3차전에만 선발투입이 됐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며, 대타로도 시원치 않으면서 시즌을 마감. 코리 시거의 자리잡기까지 시간벌이용 선수였지만 실망스러운 내용으로 다저스에서 1년을 마쳤다.
2015 시즌 종료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시범경기에서부터 맹타를 휘두르며 25인 로스터에 진입 성공, 개막 후 두 번째 경기에서도 결승 홈런을 기록하며 죽지 않았음을 과시하는 중.
하지만 정규시즌 들어와선 41경기에서 타율 0.221 2홈런 8타점을 기록하며 폭망했고 결국 6월 10일에 지명할당 조치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공격적인 면에서는 포지션 부담을 감안할 때, 상당한 실력을 보여주는 타자다. 한창 잘 나갈 때는 매년 180안타 이상을 기대할 정도로 컨택도 좋았고, 빠른 발을 이용해 리그에서 가장 많은 3루타를 생산하던 타자였다. 여기에 적당히 2루타도 잘 쳐주고, 간간히 홈런도 10개 이상 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 단, 20홈런을 우습게 넘기는 중장거리형 타자는 아니다. 하지만 최대 20개까지 기대할 수 있는 평균적인 중거리 타자 정도의 장타력은 가지고 있다.
다만 리드오프 치고는 볼넷을 얻는 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 문제. 그래서 2011년까지의 통산 타율이 0.279라는 점에 비해 출루율은 0.329에 불과하다. 볼넷을 가장 많이 얻은 시즌이 2008년과 2011년의 58개가 전부. 즉, 출루로서 팀에 보탬이 되는 타자는 아니다. 대신 나가면 매년 30개 이상의 도루를 보장하는 타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공갈포도 아니라서 삼진도 그리 많이 당하지는 않는다. 볼넷을 워낙 적게 얻어서 그렇지, 2004년 이후로 100삼진 이상 당한 시즌이 없다.
골드글러브를 네 차례나 수상할 정도로 수비력에서도 인정을 받는 유격수지만, 여기에는 이름값이 적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래도 그의 수비력을 폄하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 롤린스의 수비가 안 좋다고 하면 트로이 툴로위츠키와 오마 비즈켈을 제외한 모든 유격수들은 야구 때려쳐야 하고 데릭 지터는 지명타자나 봐야 한다(...) 2002~2012 11년간의 세이버메트릭스 수비지표를 보면 UZR가 J.J. 하디에 이어 2위고 DRS는 59로 4위다. 내구성이 뛰어나서 규정타석 채운 유격수 25명 중 가장 많은 수비 이닝을 소화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대상 150경기 환산 UZR 역시 5.1로 수준급이다. 2007~09년 골드글러브 3연패[5] 및 세이버메트리션들이 수여하는 필딩 바이블 상에서도 수상한 것을 보면 수비력이 허접한 것이 절대 아님을 알 수 있다.
4 기타
롤린스와 그의 전직 트레이너이자 현재는 부인인 요하리 스미스
야구 외적으로는 입이 방정이다. 가끔 보면 메츠의 몰락을 예언하면서 필리스의 우승을 예측하는가 하면[6] 2012년에는 "우리가 건강했으면 내츠는 2등이었을 걸?ㅋ"라면서 정신승리성 발언(…)을 했다. 2008년 미 대선 때는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하기도 했다.
- ↑ 신인왕을 차지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성적인데, 그 해 같이 나온 신인이 알버트 푸홀스와 로이 오스왈트라서(...)
- ↑ 당해 경쟁자로는 맷 홀리데이, 프린스 필더, 데이빗 라이트, 라이언 하워드, 체이스 어틀리, 치퍼 존스, 알버트 푸홀스, 핸리 라미레즈가 대표적인데, 특히 어틀리나 하워드의 경우는 롤린스가 30-30을 딴 것으로 MVP 만들어주자면서 동부 쪽 기자들이 어틀리 하워드의 표를 모두 롤린스에게 몰아줬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
- ↑ 단 이 날의 플레이는 감안을 할 게 있다면, 당일 경기는 우천으로 경기가 30분 가까이 지연되었던 나머지 선수들의 컨디션이 모두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야한다. 당일 우천으로 양 팀이 모두 경기 전 훈련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고, 특히 40에 가까운 노장이라는 걸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만했던 상황.
- ↑ 실제로 다저스의 팀 동료이자 당일 선발 투수였던 잭 그레인키는 롤린스의 실책에 대해 잡기 어려운 공이였으며 실책은 아니다라며 롤린스를 변호하기도 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실책으로 기록되긴 했지만.
- ↑ 이로 인해 트로이 툴로위츠키가 2010년에야 첫 골드글러브를 땄다. 툴로가 그간 가려졌던 것 때문에 이름값으로 땄다는 말을 듣는 것.
- ↑ 메츠를 싫어하기로 유명하다. 호세 레예스의 타율관리 행위를
졸렬하다고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