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몬톨리우 (Roberto Martínez Montoliú) | |
생년월일 | 1973년 7월 13일 |
국적 | 스페인 |
출신지 | 발라게르 |
신장 | 175cm |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 |
소속팀 | 레알 사라고사 B (1991~1993) 레알 사라고사 (1993~1994) CF 발라게르 (1994~1995) 위건 애슬레틱 FC (1995~2001) 마더웰 FC (2001~2002) 월솔 FC (2002~2003) 스완지 시티 AFC (2003~2006) 체스터 시티 FC (2006~2007) |
지도자 | 스완지 시티 AFC 감독 (2007~2009) 위건 애슬레틱 FC 감독 (2009~2013) 에버튼 FC 감독 (2013~2016)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6~) |
에버튼 FC 역대 감독 | ||||
데이비드 모예스 (2001~2013) | → |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2013~2016) | → | 로날드 쿠만 (2016~) |
Roberto Martinez
위건의 생존신화를 이끈 생존왕
강등권이든 상위권이든 팀을 중하위권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 함정
그러나 에버튼에선 루이 반 갈 에버튼 Ver.
축구감독. 2007년 스완지 시티 AFC에서 첫 지휘봉을 잡은 후, 2009년 위건 애슬레틱으로 이직해 2013년까지 감독직을 맡은 뒤 2013/14시즌부터 에버튼 FC의 감독을 맡게 되었지만, 15/16 시즌 막바지에 경질되었다.
1 어린 시절과 선수 시절
스페인 발라게르에서 태어난 마르티네스는 자신의 고향팀이자 당시 스페인 4부리그에 속해있던 CF 발라게르 [1] 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9살 유스 경기를 뛰기 시작한 그는 모든 유스 아카데미를 거친 뒤, 16살이 되자 기대주라는 평가 아래 1991년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B팀이나 유스팀에서 보내던 그는 1992-93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약 40분을 뛴 것 외에는 별 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다음 시즌 4부리그에 있던 레알 사라고사 B팀 [2] 을 3부리그로 승격시키는데 공헌했지만, 해당 시즌이 끝난 후 고향팀인 발라게르로 돌아오게 된다. 한 시즌 동안 심적 부담감이 덜한 발라게르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유소년 축구교실을 운영하게 되는데 이는 훗날 자신의 감독으로서의 생활과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3]
1995년, 당시 잉글랜드 4부리그 팀인 위건 구단주 데이브 웰란으로부터 오퍼를 받아 수락한 마르티네스는 잉글랜드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팀 내 득점왕에 오르며 팬들의 사랑을 받은 그는 여섯 시즌 동안 180경기에 출전했고 3부리그 승격과 풋볼 리그 트로피 [4] 우승에도 공헌한다. 그러나 2000년을 기점으로 하향세가 찾아오게 되는데 2001년 승격한 팀에서 '방출대상자'가 되어 계약이 해지된 마르티네스는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의 마더웰로 이적하지만 8경기밖에 선발로 출전하지 못했고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팀이 파산 위기에 처하자 계약 해지를 당하게 된다.[5]
2002년에는 운 좋게 당시 잉글랜드 2부리그에 있던 월솔로 이적하지만 단 한 경기밖에 선발 출장하지 못하며 벤치워머 신세를 면치 못했다. [6] 결국 2002-2003 시즌 도중 단기계약으로 4부리그 팀인 스완지로 이적하고 여기선 좋은 활약을 하면서 주장자리까지 꿰차지만 새 감독 케니 자켓(2015년 기준 울브스 감독)이 온 후 주전 자리에서 밀리는 아픔을 겪는다. (...) 그래도 팀 선수층이 부족해지자 로테이션 멤버로 포함되며 팀을 3부리그 (리그 1) 승격시키는데 공헌했지만 다시 방출당하고, 2006-2007시즌 역시 4부리그 팀이었던 체스터 시티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여러 팀에서 뛰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고, 운까지 좋지 않던 마르티네스. 그러나 세상만사는 모르는 법... 감독이 되자 큰 반전이 찾아오는데... 괜히 생존왕이 된게 아니야
2 감독 경력
2.1 스완지 시티 AFC
2007년 2월, 스완지 시티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다름아닌 감독으로서 복귀하게 된다. 그것도 자신을 방출시켰던 케니 자켓의 후임으로! 굴러온 감독이 박힌 감독 빼낸다 감독 경력이 전혀 없었음에도 스완지 팬들은 그를 반겼는데 우선 팀에 대한 희망이 전무한 상태였고 (...), 마르티네스는 선수 겸 감독이 불가능했기에 감독직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때문이다 (......) [7] 마르티네스 본인은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으나, 체력적 한계로 인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감독직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이로서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감독에 데뷔한 그는 언론의 관심을 모은 만큼 파란을 일으키는 성적을 내는데 감독 데뷔 후 11경기에서 단 1패만을 기록하며 하위권에서 허덕이던 팀을 승격 플레이오프 근처까지 이끌며 시즌을 마쳤다.
다음 시즌인 2007-08 시즌에는 초반부터 무서운 기세를 일으키며 팀을 3부 리그 (풋볼 리그 1) 챔피언에 등극시키며 2부리그로 승격시키는데 공헌한다. 스완지가 20여년만에 2부리그로 올라온 2008-09 시즌에는 리그 초반 31경기 단 5패만을 기록할 정도로 놀라운 상승세를 이끌었고, FA컵에서는 지난 대회 챔피언이자 당시 프리미어 리그 팀인 포츠머스 FC를 2-0으로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킨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후, 소속팀 선수들이 야망이 아닌 돈때문에 더 큰 클럽들로 이적하는 걸 비판한 그는 팀에 대한 애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인터뷰에서는 "몰아내지 않는 한 팀에 잔류하겠다" 고 이야기했으나, 스완지에서는 감독을 구하던 스코틀랜드의 강호 셀틱과 프리미어리그 팀 위건의 오퍼를 받아들였고 결국 마르티네스는 이전 구단주와 인연이 있던 위건으로 이직하게 된다. 이때 웰란 구단주는 1.5m 유로의 이적료에 3년 계약을 제시했고 "재임 기간동안 팀이 강등당하더라도 해임하지 않겠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엄청난 구애를 보냈다. 그러나 위건으로 이적하자 스완지 팬들은 그를 배신자라고 비난하며 분노했다. 이에 대해 마르티네즈는 사과의 뜻을 보이면서 "선수로서 커리어 하이라이트를 보냈고 프리미어리그 팀이 된 위건의 감독 제의를 거절하기엔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2.2 위건 애슬레틱
2009-10시즌부터 위건의 감독이 된 마르티네스는 데뷔전인 아스톤 빌라와의 원정 경기를 승리로 이끌며 기대를 받는다. 그러나 이 해의 위건은 정말 도깨비팀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는데 첼시, 리버풀, 아스날 등을 잡는 이변을 일으킨 반면 승격팀 울버햄튼에게 패했고, 3번의 대형 떡실신을 당했다. 맨유에게 5-0 패, 토트넘에게 1-9 패, 첼시에게 0-8 패. 이 중 토트넘전 패배는 프리미어리그 팀 최초로 한 팀이 9골을 기록한 경기로 위건 팬들에게는 뼈아프고 심장까지 아픈(?) 경기였다. 다행히 16위를 기록하며 강등은 면했지만 -42라는 최악의 골득실을 기록하고 말았다.
위건이 이렇게 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밖에 없었던건 팀 내 재정이 안 좋았고 지원이 너무나 미약한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전통적으로 럭비 도시로 알려진 위건은 2부리그나 3부리그 팀보다도 적은 관중을 기록할 정도로 티켓 판매량이 적고 구단 예산 자체도 빈약하다.[8] 이 때문에 매 시즌 초와 겹치는 이적시장에서 타 클럽들의 관심을 받는 팀내 주전 선수들을 이적시키는 건 불가항적인 일이었고 팀내 조직력이 무너지면서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티네스는 반쪽짜리 스쿼드로 팀을 프리미어 리그에 잔류시키는 모습을 보이며, 축구 팬들의 찬사를 받는다. 2011-12시즌 위건에서 그의 진가가 드러나는데 시즌 초 8연패를 기록하고 시즌 개막(2011년 8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위건은 단 4승에 그치며 강등이 유력한 것으로 보였다. 30라운드 당시 19위에 그친 위건은 강호들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있어 최하위이던 울버햄튼보다도 강등 확률이 높게 점쳐지던 상태였는데...마르티네스는 이때부터 믿을 수 없는 마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생존왕의 2011-12시즌
리버풀 - 스토크 - 첼시 - 맨유 - 아스날로 이어지는 죽음의 5연전에서 첼시전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에게 승리를 거둬 승점 12점을 얻으며 순식간에 강등권을 탈출했다. 이후 풀럼전에서 패배하자 분노한 듯, 뉴캐슬 - 블랙번 - 울버햄튼 3연전을 모두 스윕하며 시즌을 15위로 마치는 위엄을 보인다. 이때 기적에 가까운 모습을 연출한 마르티네스에게 국내 축구팬들은 베어 그릴스 에서 따온 생존왕이라는 칭호를 수식하게 된다.
2012-13 시즌에는 위건의 FA컵 우승을 이끌며 위건의 첫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가져옴과 동시에 UEFA 유로파 리그 출전권까지 얻는데 성공한다. 다만, 팀내 부상자들과 재정 악화로 리그에서는 지난 시즌과 달리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생존왕의 모습을 보일 수 없었고 결국 위건의 챔피언쉽으로의 강등은 막을 수 없었다.아무리 생존왕이라도 자원은 있어야되는데... 선수가 지렁이나 나뭇가지도 아니고... FA컵 우승 3일 후 아스날전에서 위건의 강등이 확정될때 마르티네즈 감독의 체념하는 표정은 아쉬움과 연민을 자아내는 대목.
한편 이때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맨유의 새 사령탑으로 취임하면서 2013/14시즌부터 감독자리가 공석이 될 상황이던 에버튼은 마르티네스 감독을 차기 사령탑 후보로 낙점하고, 위건에게 오퍼를 넣게 된다. 위건은 당초 "보내지 않겠다" 고 이야기했으나, 곧 마르티네스 감독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입장을 바꿔 에버튼의 마르티네스 감독에 대한 접근을 허락했고 마르티네스 감독은 며칠 뒤 결정을 내리게 된다.
2.3 에버튼 FC
첫 시즌 한정 마느님
이후 두 시즌은 마발놈
생존왕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유로파권에서도 강등권까지 내려가는 기적
어린 반 할
2013년 6월 6일 (한국시간), 마르티네스는 에버튼 감독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취임회견에서 켄라이트 구단주의 이야기에 따르면 에버튼은 차기 감독 후보로 3명을 정했었는데, 여기서 선임된게 마르티네스. 마르티네스 감독은 에버튼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인 모예스 감독에 이어 에버튼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겠다" 고 이야기했다. 현지 팬들의 반응은 선임 당시에는 찬반 논란이 있었으나, 마르티네스 감독 선임 기자회견 후에는 호감으로 돌아서며 큰 지지를 보냈었다.
그후, 꿀영입과 챔피언스리그에 도전을 할 수 있는 성적을 보여주며 순항중이다. 전술도 괜찮아서 에버튼팬들 입장에서는 전임인 모예스급으로 훌륭한 감독이라는 평을 받는다. 모예스는 맨유가서 망한게 함정 임대위주의 영입이지만, 위건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던 맥카시의 완전 영입이나 콜먼의 포텐폭발 베인스의 재계약등이 시너지를 내게 했다.
하지만 14/15시즌은 유로파 리그의 병행에서 오는 피로와 완전이적시킨 루카쿠의 부진 등 악재들이 생기며 리그 11위에 머물며 부진을 면치 못하였다. 이때 마르티네즈는 첫 시즌때와 비슷한 전술을 유지했으나 이미 대비 준비가 된 상대 팀들에게 고전하며 무너졌다. 시즌 초에는 에버튼 팬들도 팀의 고전을 어느정도 이해하는 분위기였으나 시즌 중 중위권팀들에게 5연패를 당해버리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팬들이 늘어났다. 그래도 유로파 리그 16강 탈락 이후 막판 5연승으로 어느정도 만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재계약은 성공.
15/16 시즌에서도 에버튼과 마르티네스는 끔찍한 성적 부진에 빠져있다, 공격진에서는 로멜루 루카쿠가 확실한 해결사 역할을 하고 2선에 있는 선수들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다양한 공격 루트로 득점을 해도, 수비가 심각한 부진을 보이며 순위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이 잘 드러난 경기가 28라운드 웨스트햄과의 경기인데, 77분까지 2:0으로 앞서다 나머지 시간에 3골을 허용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에버튼의 가장 큰 수비 문제는 공중볼 처리 미숙. 패스 플레이를 바탕으로 한 전술때문에 모예스 시절 투박하지만 헤딩에 강한 마루앙 펠라이니나 스티븐 네이스미스 같은 선수들을 모두 팔아버렸다. 그 결과, 상대팀들은 강팀이든 약팀이든 단순한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시키기만 해도 골을 얻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경기는 리그 23라운드 웨스트 브롬위치전. 에버튼은 32차례의 슛을 날렸지만 단 한골도 넣지 못한 반면, 상대팀인 웨스트 브롬위치는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 슛 한 차례를 날린 것이 전부였는데 이게 경기의 결승골이었다. 위에서 언급된 웨스트햄전의 첫번째 실점과 두번째 실점은 모두 단순한 크로스 - 공중볼 경합 상황을 해결하지 못해 내준 실점. 더 큰 문제는 본인도 팀 수비 문제가 안 좋은 것은 인지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 마땅한 대책을 강구하거나 변화를 주지 않고 있어 실점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모예스 시절 에버튼 최대의 강점이 투박하지만 안정적인 수비 플레이 그리고 펠라이니와 팀 케이힐로 대표되는 헤딩 싸움이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
에버튼은 15/16시즌 리그 홈에서 승점 16점을 쌓는데 그쳤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리그 홈 최소 승점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1992년 이후 프리미어 리그 시대만 치면 구단 역사상 최소 리그 홈 승점이다. 또 리그 5경기가 남은 가운데, 팀의 리그 순위는 상위 10위권에 진입하는 것이 어려워진 상황이라 두 시즌 연속 11위 이하의 성적을 찍는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더 최악의 문제는 핑계'와 어이없는 변명으로 대표되는 인터뷰 스킬. 국내에서는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해 잘 안 알려져있으나, 영국 내에서는 상대팀 디스를 주저하지 않는 루이 반 할 다음으로 비난 받는 인터뷰들을 양산하고 있다. 리그 홈 경기 부진 문제를 팬 탓으로 돌리거나, 언론과 팬들의 지적에 대해 '드레싱룸에서 나는 야유 소리를 들어보라' [9] [10] 고 반항조로 말한 것은 대표적인 최악의 인터뷰. 특히 시즌 말 레이튼 베인스가 팀의 부족한 결속력을 지적하며 팀의 부족한 케미스트리를 지적하며 투지 있는 플레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한 지역 언론 기자의 보도를 찌라시로 모욕하며 선수에게는 사과를 받아냈다고 말했다가 팬들과 언론에게 거센 질책을 받았다. [11] 엄청난 비판이 나왔음에도, 마르티네즈는 사과는 커녕 인생 모든 걸 다 바쳐 이기는 팀을 만들겠다는 순정만화 클리셰 오그라드는 대사를 날리기에 급급했다. 더 웃긴 것은 이기는 팀을 만들겠다는 사람이 2016년 3월 1일 아스톤 빌라전 이후 7주째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
부임 당시와 달리 마르티네즈를 지지하는 에버튼 팬은 매우 보기 드물어진 상태이며, 전 세계 대다수의 에버튼 팬들이 마르티네즈의 경질을 구단에 요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마가놈, 마원장 [12] 등의 별명으로 까이고 있다.
그나마 FA컵에서 4강까지 오르는 모습을 보였으나 반 할의 맨유에게 극장골을 내주며 패배하는 바람에 더 위태로워질 수 없을 것 같던 입지가 더 위태로워졌다(...) 중계진들이 FA컵에서 패배할 시 경질될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한 걸 봤을 때 짧으면 즉각 경질이고 길어야 올 시즌이 에버튼에서의 마지막일 듯.
5월 12일, 강등권 싸움을 하던 선덜랜드에게 3대0으로 패하며 선덜랜드의 잔류의 은인이 되는 모습(...)을 보였고 에버튼이 10경기에서 1승밖에 거두지 못하는 극도의 부진 끝에 결국 에버튼 감독 자리에서 경질되었다.
2.4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그 후 8월 4일, 유로 2016의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 마르크 빌모츠 감독의 후임으로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이후 코칭 스태프로 티에리 앙리를 수석코치로 임명하고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3 기타
아내는 마더웰 시절에 만난 베스 톰슨이라는 스코틀랜드 여자로, 딸 Luella도 낳았다.
오랜 영국 생활 덕에 영어가 매우 유창하다. 인터뷰 때만 대충 영어로 뭔말 할지 생각해놓고 말하는 선수들과는 매우 다르게 프리토킹이 자유자재로 가능하며, 외국 화자들에게서 두드러지는 부분인 억양도 크게 튀지 않는다. 리버풀과 첼시 감독을 지낸 라파엘 베니테스 등 스페인어권 출신 인물들이 영어로 말할 때면 스페인어 억양이 매우 강하게 드러나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안정적. 영국 BBC의 Match of the Day 진행자인 게리 리네커와 앨런 시어러가 진행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조추첨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잉글랜드가 D조의 우루과이가 톱시드인 조에서 이탈리아[13]와 첫 경기를 치르는 경악스러운 대진표[14]를 보고 징징대는 리네커와 시어러 사이에서 "그래도 너네는 조별리그만 뚫으면 편하자나..." 하며 위로한다. 하기사 스페인은 유로 2008부터 이어진 황금세대의 사실상 마지막 국제대회라는 점에서 이번 대회에 거는 기대가 큰데 첫 경기부터 네덜란드를 만나고 16강 뚫어도 잘못하다간 브라질 만나게 생겼으니 그거 하나는 부러울 수도 있겠다(...) C조가 주로 양민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토너먼트만 올라가면 편해지는 잉글랜드가 조별예선이 빡세게 걸린 것을 대회 준비를 좀더 철저히 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고 위로하는 모습은 잉글랜드 팬들에겐 그저 안습. 그리고 양팀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는 미담이 전해내려온다.
여담이지만 마르티네즈는 경기장에 입장하면 경기 끝날 때까지 벤치에 절대 앉지 않고 항상 터치라인에 서 있는다.
제이슨 데룰로의 팬이다. 실제로 2016년 2월 리버풀에 방문한 제이슨 데룰로의 콘서트에서 특이한 좌회전 춤을 추는 것이 한 팬에게 촬영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 2013/14시즌 현재 스페인 4부리그에 속해있다.
사실 4부리그 붙박이 - ↑ 스페인 리그 특성상 B팀 (2군팀)도 하부 리그에 참여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1992-93시즌 당시 레알 사라고사 A팀은 1부리그 상위권이었지만, B팀은 3부리그에서 4부리그로 강등당한 상태였다.
- ↑ 매 주말마다 9살 어린이들이 축구하는걸 지도했는데, 전술이나 구체적인 플레이를 이해하기 힘든 어린 아이들이보다니 세세하게 가르치기보단 자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게 유도했다고 한다. 본인의 자서전에서 마르티네스는 "적어도 15살까지는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플레이를 하게 해야 축구선수로서의 특별함을 가질 수 있다." 고 이야기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프로감독으로서도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는 전술을 구사하고 유스 시스템의 성장을 강조하는 현재의 마르티네스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유스 시스템의 기밀이었군 - ↑ 3~4부 리그 팀들간의 컵 대회
- ↑ 그런데 이 기간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자를 꼬셔서 결혼까지 했다. 오오!
- ↑ 그나마 선발출전한 레딩 전에선 퇴장을 당하고 만다 (...)
- ↑ 체스터 소속이던 마르티네스는 이적시장이 닫힌 2월 감독으로 선임되었기에 선수로서 뛰는건 불가능했다. 오로지 감독으로서만 활동 가능.
- ↑ 이 때문에 에버튼과 같이 엮어서 보는 경우도 있는데, 에버튼은 이적예산이 적을 뿐 주급예산은 리그 7위를 기록할 정도로 구단 운영에는 큰 지장이 없다. 반면 위건은 2012-13시즌 당시 이적과 주급예산 모두 리그 최하위를 기록할 정도로 안 좋던 상황.
- ↑ 번역 문제가 아니고 정말로 원문이 'You should hear the booing in the dressing room'이었다.
- ↑ 이때문에 현지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도 '도대체 드레싱 룸에서 나는 야유 소리를 듣는게 뭔 소리냐?'고 지적하면서 유머 소재로 사용할 정도.
- ↑ 당시 베인스의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는 리버풀 에코의 그렉 오 키프 편집장. 오 키프 기자는 에버튼에 대해 엄청난 애정을 보이지만 팀의 성적이나 경기력에 대해 섣불리 비판하는 것을 꺼리는 기자다. 팬들이 마르티네즈에 대해 비판과 비난을 쏟아낼 때도, 최대한 중립적인 태도로 기사를 보도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기자. 그런 기자를 마르티네즈는 '찌라시'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에버튼의 연고 지역인 리버풀의 지역 언론 대표 기자를.
- ↑ 리그 홈 경기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원정팀에게
보약승점을 헌납한다는 점에서 유래된 별명. - ↑ 유로 2012 8강에서 이탈리아를 만난 잉글랜드는 120분간 영혼의 10백을 선보인 뒤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 ↑ 더구나 경기 장소도 아마존 유역의 습도 99%인 동네라서 잉글랜드는 베이스캠프인 리우데자네이루로부터의 이동거리가 장난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