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역사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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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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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공국
몰도바몰다비아 공국소련몰도바
루마니아역사를 다루는 문서.


1859년부터 2010년까지의 루마니아의 영토 변경 기록. '청록색'이 그 당시의 루마니아 영토다.

1 루마니아의 등장

로마 제국이 이 지역을 속주로 둔 뒤부터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로마제국이 이 속주를 그냥 먹은 건 아니고 당연히 정복을 해야 했는데, 그 전에 이 지역에 나타난 강자가 바로 다키아 왕국이며, 이 정복과정이 다키아 전쟁이다. 그래서 루마니아는 다키아인을 자신들의 선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서방학자들은 다른 논리를 내민다. 로마인들이 다키아인들을 모조리 몰아내고 로마인을 이주시켜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 사람의 역사야 어쨌건, 땅의 역사를 따지자면 여기에 다키아가 있었다. 다키아와 그 멸망에 대해서는 각각의 항목을 참조.

로마 제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후, 루마니아 지역의 역사는 세가지 줄기로 다르게 뻗어나간다. 오늘날 루마니아의 북서부를 이루고 있는 트란실바니아와 남부인 왈라키아 공국, 북동부와 오늘날 몰도바에 해당하는 몰다비아 공국이 이들인데, 이 중 몰다비아의 절반은 현재 몰도바로 독립해 다른 나라가 되었고, 트란실바니아는 1918년에 루마니아와 합병될 때까지 줄곧 헝가리의 지배를 받아왔다[1], 발라히아[2]는 발라키아 혹은 왈라키아라고도 읽는다.

이 세 나라 가운데 근대의 루마니아 민족주의자들이 가장 중시했던 나라는, 왈라키아였다. 트란실바니아는 오랜 세월 동안 정치적 지배 민족이었던 헝가리인들과 문화, 상업적 엘리트였던 유대인들과 독일인들의 영향력이 강했고, 몰다비아 또한 폴란드나 우크라이나 같은 슬라브계 주민들이 많아 '어디까지가 민족적 의미에서 루마니아인들의 땅인지' 판단이 애매하여 근대 민족주의자들이 왈라키아를 가장 '순수하다'라는 이유였는데, 오늘날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도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면 1698년 이래 왈라키아 공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란실바니아와 몰다비아는 루마니아가 아니냐 하면 별로 그렇지는 않은데, 먼저 트란실바니아의 지방 귀족 출신으로 헝가리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야노슈 후냐디 같은 경우 루마니아에서도 영웅시하고 있다. 또 야노슈의 아들로 헝가리의 국왕이었던 마티아슈 1세 같은 경우 루마니아의 국가에까지 '위대한 그림자(mărețe umbre)'. 즉 위대한 조상으로 언급된다. 몰다비아도 마찬가지라, 오스만 제국의 공격에 맞서 싸웠던 몰다비아 공작 슈테판 3세는 루마니아의 지폐와 동전 몇 종류에 출연(?)했다.

변두리에 위치해 있는 나라로 보이지만, 루마니아는 중세 시대 그리스까지 문화 영향력을 뻗쳐나가는 등 유럽에서 상당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였다. 하지만 영 좋지 않은 곳에 위치한 탓에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제국, 헝가리 왕국, 폴란드 왕국 등에게 포위된 채 지지부진하여 발라히아 공국과 몰다비아 공국 두 나라로 나뉘어져 있던 구도가 500년 가까이 지속된다.

이 중 오스만 제국이 무시무시하게 성장하면서 오스만의 칼날이 루마니아를 겨누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왈라키아 공작 미르체아 1세와 드라큘라로 유명한 왈라키아 공작 블라드 3세, 몰다비아 공작 슈테판 3세 등과 같은 영웅들이 나타나 오스만 제국과 맞서 싸웠지만 오스만의 국력에는 중과부적이었고, 주변국과의 갈등도 겹치며 결국 왈라키아와 몰다비아는 오스만 제국의 신하국이 되고 트란실바니아 역시 공국이 되어 오스만 제국의 신하가 된다[3]. 그 후로도 루마니아는 16세기 후반을 시작으로 몇 차례 오스만 제국에 맞서 봉기를 일으켰고. 특히 1593년부터 1601년까지 왈라키아 공작을 지낸 미하이 2세(미하이 바테아줄) 같은 경우 오스만 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틈을 이용하여 세력을 넓혀 1599년부터 1600년까지는 트란실바니아 공작, 1600년에는 몰다비아 공작을 겸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루마니아 출신의 군주 한 명이 오늘날 루마니아 전체를 통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자신의 힘을 이용했다기보다 전쟁통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체제가 잠시 흔들렸던 것을 이용한데다 이웃한 강국이 폴란드가 몰다비아 지배를 노리고 있었기에, 통합 루마니아의 군주라는 지위는 반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다만 백일천하에 불과했다고 하더라도 루마니아 통합이라는 업적으로 인해 미하이 2세는 오늘날 루마니아의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루마니아 국가에도 등장할 정도.[4]

2 루마니아의 독립

1881년 카롤 1세가 독립전쟁을 마치고 즉위하므로서 독립에 성공하였고, 잘나가다가 1차, 2차세계대전을 겪고 망했다.

3 냉전

4 냉전 이후

차우셰스쿠 독재의 여파로 루마니아는 민주화 이후에도 체제 전환에 있어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4개국과 달리 한동안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으며 불가리아와 함께 한때 자본주의 정착이 실패한 국가로 손꼽히기도 했다. 이는 중유럽 국가와 달리 취약한 산업기반 그리고 차우셰스쿠 일족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구 공산당 지배 계층이 국영 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기업의 지배권을 시장 원리가 아닌 구 지배계층 간 나눠먹기 식으로 재분배한 것에서 기인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 같은 파열음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까지 상당한 고성장을 기록했다. 2008년 이후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경제 위기에 따른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2012년 이후 정상 궤도에 올라섰으며 2015년 명목 기준 1인당 GDP가 역사상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넘어 고소득 국가[5] 대열 진입을 앞두고 있다.

2004년 3월 29일 NATO에 가입하였으며 2007년 1월 1일에는 불가리아와 함께 EU에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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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배라기보다, 충청도가 대한민국의 일부를 이루고 있듯 그냥 헝가리왕국의 일부였다. 지형상으로도 트란실바니아는 카르파티아 산맥에 의해 다른 두 지역과 분리되어 있다.
  2. 영어 위키백과의 관련 항목 참조.
  3. 트란실바니아가 헝가리에서 떨어져나온 것에 대해서는 헝가리/역사 문서를 참고하도록 하고,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합스부르크 황가와 오스만 제국의 땅따먹기로 헝가리왕국 전체가 쪼개져버린 것이다.
  4. 다만 오늘날에는 미하이가 루마니아를 통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해 논란이 있다. 그의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통합을 꾀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으며, 이러한 해석은 후대의 민족주의적인 해석이 덮어씌워진 결과라는 것.
  5. 세계은행 기준으로 1인당 명목 GDP가 1만 2000달러 이상이면 고소득 국가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