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란실바니아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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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란실바니아 공국
Principatul Transilvaniei
국기국장
1570년 ~ 1711년
1711년 ~ 1867년
위치동유럽
수도알바이울리아
→ 시비우
→ 클루지나포카
정치체제전제군주제
언어헝가리어
민족헝가리인
루마니아인
성립 이전동헝가리 왕국
멸망 이후헝가리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

1 개요

트란실바니아 공국은 1570년부터 1711년까지 트란실바니아 지역에 존재했던 공국이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는 자치공국으로 존속하다가, 1711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일부가 되어 1867년까지 오스트리아 관료들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았다.

2 공국 성립

트란실바니아 지역은 고대에 다키아라는 독립국가를 형성했었다. 이후 고대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해 그대로 로마에 예속되어 숙주가 되었고, 로마가 철수한 이후에는 서고트족, 훈족, 게피드족이 이곳을 영유하기도 하였다. 10세기에는 서서히 세력을 뻗치고 있던 헝가리인들이 이곳에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11세기 헝가리 왕국이 트란실바니아를 점령하면서 헝가리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헝가리 왕국의 점령 이후 트란실바니아는 두각을 드러내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13세기 중반부터 트란실바니아 안 7개 지역은 헝가리로부터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발칸 반도로 확장하는 16세기 이전까지 트란실바니아는 헝가리 왕국의 일부였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쉴레이만 1세발칸 반도로 진출하면서 당대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합스부르크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1526년 8월 29일, 헝가리군과 오스만군 사이에 모하치 전투가 발발하고 헝가리군이 여기서 대패하면서 트란실바니아의 권리는 오스만 제국이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이 전쟁의 패배로 헝가리는 후에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붕괴하고 독립국가가 될 때까지 국가의 자주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1541년 이후 헝가리는 합스부르크 헝가리, 오스만 제국의 직속 영토인 오스만 헝가리, 그리고 동헝가리 왕국(트란실바니아)으로 나뉘게 되었다. 동헝가리 왕국은 오스만과 합스부르크의 쌍방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자치공국인 트란실바니아 공국이 성립되었다. 오스만과 합스부르크라는 두 패권국 사이에서 트란실바니아는 여러 정치, 외교적 술수를 발휘해서 약 2세기 동안 자치 공국으로 성장한다.

3 전성기

16세기부터 17세기 동안 벌어진 종교개혁에 의해 칼뱅교, 루터교 신도들이 가톨릭과 이슬람 어느 종교에도 종속되지 않은 트란실바니아에 자신들의 종교를 번성시켰다. 1568년 투르타 칙령으로 가톨릭, 루터교, 칼뱅교, 유일신교가 허용되었으나, 대다수의 루마니아인들이 믿던 동방정교는 차별받았다.

160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체결된 평화조약에 의해 칼뱅교를 믿던 보츠커이 이슈트반(bocskai istván)이 트란실바니아의 영주가 되었다. 그의 치세에 트란실바니아는 문화, 예술, 종교 분야에 있어 부흥기를 맞이하였다. 이 부흥기는 라코치 2세에 의해 종결되었다. 폴란드 왕위를 노리던 그가 자치국이라는 제약을 망각하고 스웨덴과 연합하여 폴란드를 침공한 것이다.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라코치는 패배했고, 오스만 제국이 침공할 수 있는 명분까지 주고 말았다. 오스만 제국은 공국을 공격하여 트란실바니아는 자치국에서 완전한 속국이 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4 합스부르크 치하

오스만과 합스부르크라는 양 제국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며 이득을 챙기려는 공국의 외교정책은 라코치의 패배 이후 변화했다. 오스만의 위협에 당시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지도자였던 미카엘 어퍼피(Michael Apaffy)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국은
1686년부터 합스부르크의 보호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1683년 오스만의 빈 공성이 실패하고, 합스부르크는 트란실바니아에 영향력을 강화하였다. 이에 공국은 오스만과 연합을 맺으면서까지 합스부르크를 견제하려고 하였으나, 1687년 합스부르크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1688년 공국의 종주권은 오스만에서 합스부르크로 이동되었다.

이후 공국은 1691년 합스부르크 제국 내 독립 공국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독립 공국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공국은 가콜릭, 루터교, 칼뱅교, 유일신교 4종교를 인정받을수 있었다. 그러나 1699년 오스만과 합스부르크, 폴란드, 러시아, 베네치아 사이에 맺어진 카를로비츠 조약(Treaty of Karlowitz)에 의해 트란실바니아를 포함한 헝가리 지역이 합스부르크 제국의 공식적인 지배령이 되었다. 이로인해 막대한 세금이 과중되었고 합스부르크에서 가톨릭만을 유일 종교로 강조하면서 트란실바니아 주민들은 개종 문제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합스부르크 치하 여러 민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은 1711년 맺어진 사투마레 조약(Treaty of Satu Mare)으로 일단락되었고, 합스부르크는 트란실바니아 지배를 더욱 공고히한다. 이를 계기로 트란실바니아 영주는 오스트리아의 관료들로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자치 공국으로써의 트란실바니아 공국은 이것으로 운명을 다했다.

5 참고 문헌

  • 김정환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부코비나에 대한 역사적 일고찰" , 2009, pp. 235-273
  • 네이버 지식백과 "헝가리의 역사"

6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