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레치아 보르지아(오페라)

1 개요

Lucrezia Bor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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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묘약,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로 유명한 도니제티가 빅토르 위고가 지은 운문 사극을 바탕으로 작곡한 오페라. 프롤로그 -> 1막 -> 2막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토리는 전체적으로 몇 부분 생략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원작에 충실한 편이고, 1833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공연하지 않은 오페라 중에 하나이다. 아마, 근친에 민감한 국내 검열지나치게 심해서 일거다.

국내에서는 보통 루크레치아라고도 부른다. 가장 부르기 쉬워서 일지도...
밑에 내용 보면 알겠지만, 초연때는 성공하다가 그 다음엔 아오안 취급받더니 세기의 소프라노들의 활약으로 부활하게된 케이스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2 찬밥 취급

19세기의 이탈리아 오페라는 벨 칸토를 배척하고, 현실주의에 충실한 베리즈모 열풍이 일어났던 시기이다.[1]때문에 안나 볼레나, 노르마, 청교도, 몽유병의 여인, 오리백작,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위시한 벨 칸토 오페라들이 거의 모든 오페라 극장에서 공기화 내지 찬밥취급을 당했던 시기나 마찬가지.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역시 그러한 유형에 속했고, 19세기 이후 공연하는 일이 없어져 관객들의 뇌리에 서서히 잊혀져갔다. 안습

3 부활

1950년대 이후 그 동안 찬밥과 아오안 취급을 받던 벨 칸토 오페라들은 마리아 칼라스, 레일라 젠체르, 조운 서덜랜드 같은 명소프라노들에 의해 다시 부활하게 된다.
마리아 칼라스는 노르마안나 볼레나를 극장에 다시 올리게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조운 서덜랜드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2], 텐다의 베아트리체를 극장 레퍼토리에 다시 올리게 해주었고, 레일라 젠체르는 마리아 스투아르다로베르토 데브뢰를 부활시켰다.

그리고, 1965년 4월 20일.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그 동안 잊혀졌던 또 다른 벨 칸토 오페라가 비평가와 관객들에게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바로, 초연 이후 완전히 잊혀졌던 도니제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였고, 요넬 파를레아의 지휘에서 이뤄진 콘서트 형식에 의한 공연이었다.

당시 타이틀롤은 메조 소프라노 마릴린 혼이 맡은 예정이었다. 근데, 혼이 갑작스런 이유로 콘서트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자, 카네기 홀 측에선 급히 신예 소프라노 한명을 데려오게 한다. 혼의 대타로 오게된 신예 소프라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이었고, 이름은 몽셰라 카바예 였다. 공연이 임박해서야 혼의 대타로 급히 오게된 카바예는 당시 리허셜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한다. 근데, 결과는 예상외로 대성공(!!!) 이었고,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이 콘서트 형식 공연 이후 다시 극장 레퍼토리로 부활하게 되었으며, 카바예 역시 미국 타임지에서 "눈부시게 뛰어난 여인"이라는 뜻을 가진 "La Superda[3]"라는 찬사를 받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입지를 확고한 것은 물론 다음해에 메트로폴리탄 극장에 데뷔 무대도 가지게 된다. 즉,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카바예의 명성을 확고히 하게된 계기를 마련한 배역이라고도 볼 수 있다. 카바예는 같은 해에 알프레도 크라우스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녹음도 했고, 파트너였던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공연도 같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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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레치아로 분한 몽셰라 카바예

카바예의 뉴욕 카네기홀 콘서트 형식 공연을 계기로 수많은 벨 칸토 소프라노들이 루크레치아역을 맡게되었다. 1970년대에는 레일라 젠체르베벌리 실즈, 조운 서덜랜드가 대표적이었는데, 이 중 서덜랜드는 카바예의 뒤이은 루크레치아라고 불릴 정도로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영국 런던 오페라 하우스 로열 코벤트 가든에서 자주 공연했고, 소속사 데카에서도 전곡반을 녹음하기도 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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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레치아로 분한 조운 서덜랜드

카바예, 서덜랜드, 실즈, 젠체르의 활약으로 루크레치아는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세계극장에서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로 군림하게 된다.[5] 후에 또 다른 소프라노들이 루크레치아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에디타 그루베로바, 르네 플레밍, 마리엘라 데비아가 그들이다. 그 중 마리엘라 데비아마르첼로 알바레스와 같이 출연한 2002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공연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그런데, 영상물은 출시하지 않았다. 매우 좋은 공연이거늘. 유튜브에 영상만 올라와있다. 슬픈일이다. 미국에서는 르네 플레밍이 메트와 LA 오페라 극장, 샌프란시스코 극장에서 루크레치아 역을 불러 큰 환호를 받았으며 그 중 2011년 샌프란시스코 실황이 DVD로 나와있다.[6]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공연하지 않은 오페라이지만, 외국에서는 베리즈모에 밀려 찬밥취급 받다가 명소프라노들의 활약으로 다시 부활해서 무대에 자주 올려지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마리아 스투아르다시몬 보카네그라와 함께 그 진가가 늦은 편이라 볼 수 있겠다.

4 등장인물

5 명반과 영상물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돈 파스콸레, 사랑의 묘약에 비하면 인지도는 덜하지만, 무대에선 비교적 자주 올라오는 편이다. 허나, 녹음된 음반은 많이 있지 않다. 그나마, 몽셰라 카바예조운 서덜랜드가 남긴 스튜디오 전곡반과 몇 개의 실황반이 나와있는데, 전곡반의 경우 카바예는 RCA에서, 서덜랜드는 소속사인 데카에서 녹음했다.

먼저, 몽셰라 카바예가 RCA에서 녹음한 음반에 대해 언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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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RCA에서 출시된 몽셰라 카바예판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전곡반

몽셰라 카바예가 타이틀롤, 알프레도 크라우스가 제나로, 에치오 플라젤로가 엘폰소 데스테, 셜리 버렛이 오르시니를 맡고, 요넬 파를레아가 지휘한 이 음반은 성악가들의 기량에 비해 지휘자의 역량이 아주 부족한 음반이라 하겠다.

우선, 전성기 시절 몽셰라 카바예의 절창은 매우 훌륭하다. 밑에 소개되는 서덜랜드의 루크레치아가 모성애 넘친 어머니라고 한다면, 카바예는 기품있는 여인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한 마디로 엉성한 지휘자 때문에 가수진들이 조낸 아까운 연주.엉엉, 슬프다..
그나마 카바예의 루크레치아를 듣는다는 의미에서 이 음반이 존재한달까? 하지만, 루크레치아의 아리아 "Tranquillo ei posa...Com' è bello!"는 카바예가 별도로 녹음한『Presenting Montserrat Caballe』에서 부른 것이 더 좋았다. 카를로 펠리체 칠라리오의 지휘도 전곡반의 요넬 파를레아 보다 집중력있게 잡아준 것은 물론이거니와, 반주가 시냇물처럼 유유자적하게 흘러가기도 했고. 그리고 지휘자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사실 벨칸토 오페라에선 지휘자가 큰 잘못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

그 다음은 조운 서덜랜드데카에서 녹음한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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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에 녹음된 서덜랜드판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벨칸토 오페라의 부흥에 큰 기여를 한 조안 서덜랜드의 목소리가 1970년대 후반에 들어 무거워지고 극적으로 변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부르기에 낮은 테시투라를 요구하는 루크레치아 역에 딱 들어맞는다. 확실히 저음역대가 그 전보다 탄탄해졌고 콜로라투라 기술도 전성기의 그것을 유지하고 있어, 카바예보다 음악적으로는 더 완벽하다고 할 수 있겠다.

서덜랜드뿐 아니라 평생 그녀와 많은 벨칸토 오페라를 공연한 남편 리처드 보닝의 지휘 하에, 그들과 자주 호흡을 맞췄던 메조소프라노 메릴린 혼, 가장 어린 나이에 라 스칼라 극장 데뷔를 한 테너 지아코모 아라갈, 수많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활약을 한 스웨덴의 명바리톤 잉그바르 빅셀 등 다른 가수들도 최상급 실력을 보여준다.


루크레치아 보르지아의 영상물도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도 완성도 높은 영상물은 꼽자면 두 가지 인데, 모두 조운 서덜랜드가 타이틀롤을 맡은 것이다. 하나는 1977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실황, 또 하나는 1980년 런던 코벤트 가든 극장에서 열린 실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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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실황 D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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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시리즈로 나온 DVD

우선, 1977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실황에 대해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당시의 서덜랜드의 가창은 아직까지 전성기 였다는 점도 있고, 무엇보다 비쥬얼에서도 몰입감이 강하다.

다만, 화질이 밑에 소개되는 런던 코벤트 가든 실황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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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런던 코벤트 가든 실황. 시중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영상물이다.

위 영상물이 전성기의 모습이 남아있던 서덜랜드를 볼 수 있는 축복을 선사한다면 이 영상물은 조운 서덜랜드, 알프레도 크라우스라는 두 노익장이 출연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1. 베르디 오페라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으나, 베르디는 마지막 벨 칸토 작곡가가 맞다. 그렇기에 베르디가 벨 칸토를 망쳤다는 얘기는 심히 곤란하다.
  2. 루치아의 경우 칼라스가 새로운 해석을 보여줬지만, 극적 표현과 음악의 아름다움이 복합적으로 이뤄진 루치아는 서덜랜드가 앞선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서덜랜드의 장기 레퍼토리가 루치아 이기도 하고....
  3. '라 수페르다'라고 발음한다.
  4. 서덜랜드의 루크레치아 공연 중엣 1977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루크레치아 실황, 1980년 ROH 루크레치아 실황 모두 DVD로 발매되었다. 이 중 시드니 공연은 음반도 나왔다.
  5.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 청교도,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사랑의 묘약에 비하면 그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비교적 자주 공연되는 것은 사실이다.
  6. 블루레이로 나왔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플레밍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블루레이 발견한 분이 있으면 추가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