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와쿠

迷惑(めいわく, 미혹)[1][2]

他人に迷惑を掛けるな(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

-일본의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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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人にめいわくをかけないようにしましょう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합시다.
1970년대 초 일본 공익광고 표어로 추정된다.

1 개요

일본 문화의 특색으로,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자'는 이념 자체는 공동체에서 살아갈 때 꼭 새겨들을 개념이지만, 이게 괴상하게 변질되었다는 게 문제. 무엇보다도 민폐 기준이 완전 제멋대로여서, 일본 현지에서 메이와쿠를 아무 데나 갖다 붙인다. 집단에서 좀만 튀거나 달라도 메이와쿠라고 낙인을 찍는 일이 무척 많아서, 이지메연좌제가 심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응징 수단으로 써먹는 이지메나 연좌제는 명명백백한 민폐다. 아니, 민폐의 수준을 넘어선다! 메이와쿠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알 수 있는 부분. 이들이 그저 겉으로만 조용히 살아가려는 습성을 배울 뿐, 배려심이나 진정으로 남을 생각하는 마음은 없다는 비판이 있다. 쉽게 말해서 사회적 처벌과 불이익이 두려워서 지킬 뿐, 마음 속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배려가 우러나와 규칙을 지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 부정적 측면

또 다른 문제는 메이와쿠의 범위가 넓다 못해 국가의 잘못된 점에 항의하거나 시위, 집회를 벌이는 것마저 메이와쿠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튀는 것을 피하고 평범하게 살려는 성향 때문에 한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바로 시위가 벌어질 만한 일조차도 언급하지 않고 회피하려고 들며, 정부에 전국적으로 불만을 품을 만한 일에도 시위에 나서는 경우가 기형적으로 드물다. 인류 역사 전체에서도 손꼽을 만큼 큰 실책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에게 항의하려고 모여든 일본 인민들은 겨우 만 명 단위였다.[3]인구 규모가 반도 안되는 대한민국에서도 백만 명 이상이 몰려들어서 시위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너무나도 격차가 크다. 시민이 이렇게까지 너무 조용하면 정부가 자기 마음대로 정치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반드시 나오게 되며, 거기에 높으신 분들 머릿속엔 '국민이란 우리가 이끌면 그냥 따라오는 존재'라는 인식이 박히게 된다. 일본이 세습 정치와 껍데기뿐인 민주주의로 비판받는 이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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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 제국 시절에 이런 문화가 없었을 리가 없지만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로 이 메이와쿠 문화가 갑자기 생겨난 건 아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일본 사회에서는 1970년대 초반까지 서구권이 일으킨 68혁명의 영향을 받아 전학공투회의 같은 조직이 등장했을 정도로 시민 운동이 잦았다. 당장 안보투쟁을 벌일 때만 해도 국회 앞에서 33만명이 몰려들었으며, 그 결과 기시 노부스케가 총리를 사임하기도 했을 정도. 그러나 68혁명이 평가가 엇갈릴지언정 독일의 과거사 청산을 이끌어내고 유럽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뒤바꿨으며,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 참여를 이끌어낸 것과는 달리, 일본의 시민 운동은 과거사 청산과 기성 세대의 부정에 실패했으며 전공투적군파를 비롯한 좌익세력이 엄청난 실책까지 저지른 결과[5] 좌익과 시위를 혐오하는 사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사상이 메이와쿠와 겹쳐 시너지를 일으켰고, 거기에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사회 지도층이 교체되지 않아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까지 합쳐져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가 조성된 것.

게다가 메이와쿠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것조차 제각각이다. 자기네 안마당에서 폐를 끼치는 행위는 처벌과 불이익이 두렵기에 극도로 꺼리지만 직접적으로 자신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 외국에 대한 '메이와쿠'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행 중에 당한 창피는 버리고 오면 된다(旅の恥は掻き捨て)"는 일본 속담이 이를 보여 준다[6]. 쉽게 말해서 자기 집단 안에서는 폐를 끼치면 안 되지만 그 스트레스를 타 집단에 풀어버리는 것은 상관이 없다는 얘기. 실제로도 일본은 세계적인 규모의 민폐를 타 집단에 풀었던 일이 잦다. 사실 일본뿐 아니라 이렇게 빡빡한 규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다른 곳에 가서 풀어버리는 사례는 꽤 많은 편이지만, 일본처럼 국가 대 국가단위로 어그로를 끌어버리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또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문제나 아시안 홀로코스트, 일본군 위안부 문제[7] 같은 문제에서도 오히려 자신들이 타국에 폐를 끼쳤다는 사실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둘러대기에 급급하다.

한때, 특히 일본 대중문화 개방 초기에 몇몇 지일파들이 일본인의 시민의식과 메이와쿠, 와(和)정신이 한국에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찌감치 국민성이 다른고 경제성장도 해서 이제는 옛 이야기일 뿐일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빠른 경제성장에 비해 시민의식이 뒤떨어져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일본과 비교하여 훨씬 못 미치는 예는 여전히 많다. 일본식 메이와쿠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시민의식의 고양은 필요하다.

앞서 설명된 문제점들은 메이와쿠 문화에 의한 일본의 예절 문화가 생활 태도 자체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강요 아닌 강요때문에 변질되었기에 일어난 것이다. 자연적인 예절은 인본주의 사상에 입각해 상대와 나는 평등하며 누구에게나 자유가 있다는 기본 사상을 교육받고 나서, 나머지는 구체적인 사회적 약속을 따르는 것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메이와쿠 문화는 처음부터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말 것, 그런 사람은 사회적으로 용납받지 못할 것이라는 속뜻을 가진 문화이며 이는 인본주의적 밑바탕이 없이는 결국 '폐를 끼치는 사람은 그저 나쁘다'는 인식으로 귀결된다. 고로 역으로 내게, 혹은 내 집단에게 폐를 끼치는 자는 배척하게 되는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서유럽이나 북미 쪽의 여유로운 예절과는 달리 일본의 예절 문화가 다소 빡빡하게 느껴지는 점이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상대가 무례해도 내가 잘해야 한다'는 사상보다는 '내가 잘하니까 상대는 무례해선 안 된다'는 사상에 가깝다.

3 긍정적 측면

메이와쿠의 부정적인 점이 많이 서술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메이와쿠 의식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예절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악폐습으로 치부하는 것만은 지양해야 한다. 상술한 관련 문제들은 집단윤리 문제나 정치적 무관심, 국수주의 등 애초에 문제가 분명한 사상이나 현상과 관련되며 변질한 결과 나타난 것들이고, 긍정적 측면 또한 많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남을 폐를 끼치지 않는 문화 덕분에 타인의 생활에 간섭하지도 않고 오지랖도 부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처럼 취업을 했냐, 결혼을 했냐 등등을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않는다. 다만 착각하면 안 될 것이, 그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마저 유보한다는 말은 아니다. 공동체가 생각하는 정도에서 벗어날 경우 공동체에서 꺼림 혹은 이지메를 당하는 것은 일본인 특유의 공동체주의의 소치.

그리고 패션이나 개성에서 유독 일본만 남 시선을 신경쓰는 것도 아닌 것이, 우리나라에서 역시 남 시선을 신경 쓰느라 유행을 중시하고 남을 따라하려는 옷차림을 하지 않는가?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지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외부 시선을 신경쓰느라 유행이나 트렌드를 따른다기보다는 단지 '그 편이 멋지다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 더욱이 일본에서도 이러한 몰개성화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이 남 시선 신경을 쓰지 않고 개성을 중시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갸루라던가... 다만 직장인 패션(소위 단정한 양복에 단색 넥타이 등), 학생 패션(당연하겠지만, 교복) 등 '복색'에 따라 구분하는 문화 역시 여전히 메이와쿠의 소산이므로 대학 때나 취업 이전에는 실컷 갸루를 하건 폭탄머릴 하건 개성적인 패션을 즐기다가 취업만 하면 머리 검게 물들이고 단정한 양복 입고 획일적인 사회로 녹아드는 순응적 인간상이 일본에 유독 심한 것은 사실이다.

위에서 메이와쿠의 긍정적인 측면으로 조명된 '타인의 생활에 간섭 혹은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다'는 말은 더 나아가 일본의 전반을 지배하는 개인주의와도 연관되어 있는데, 공동체주의에 가까운 개인주의라는 말이 얼핏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개인이 개인을 절대 강제하지 않으나 사회와 시스템에 의해 행동양식이 강제되는 공동체주의라고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강제하는 대상이 공동체이기에 예컨데 거리에서는 질서를 지킨다는 당연한 시민의식은 나 이외의 누군가가 있을 때는 지켜지지 않는다. 시부야의 뒷골목이나 하다못해 청소부가 도심만큼 지나다니지 않는 일본 중소도시의 경우 여기가 일본인가? 싶을 정도로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사람이 많은 대로변 도심지에서는 그 누구도 쓰레기를 버리려 들지 않을 겠지만, 만일 누군가가 쓰레기를 버린다 해도 일본인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비난하진 않을 것이다. 이것이 '메이와쿠'이다.
만일 한국이나 미국의 대로변에서 누군가가 쓰레기를 버린다면 누군가가 나서서 그에게 직접적 비난을 가할 것이다. 그러나 대로변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사람은 뒷골목에서도 잘 버리지 않으려 한다. '왜'버리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본인이 납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메이와쿠 의식이 없는 미국의 경우 문화의식을 공동체가 강제한다기보단 개인의 양심에 맡김으로써 대로변과 뒷골목의 갭이 일본만큼 심하지 않다.

이전에 '한국은 나쁜 쪽으로 남 눈치를 보고 일본은 좋은 쪽으로 눈치를 본다'라고 쓰여 있었는데 이는 각각의 민족정서에 대해 심각할 정도의 인식 결여에 의해 쓰여있었으며, '좋은 쪽 나쁜 쪽' 눈치는 따로 없다. 심지어 메이와쿠는 어느 정도 돌려 말하면 한국에서도 '눈치' 중국에서도 '꽌시'등으로 어느 정도 존재하는 개념이지만, 한국이나 중국의 기준이 훨씬 널럴할 뿐이다.

  1. '사람을 미혹하다' 할 때의 그 미혹이다. 본래 한자상으로는 우리나라 식의 뜻이 맞지만 일본식 조어가 되면서 의미가 변화한 대표적 케이스.
  2. 일본에서도 각각 떼어서 迷い(마요이), 惑い(마도이)라 하면 그냥 '미혹하다'라는 뜻이다. 두 글자를 합쳐야 비로소 '폐를 끼침'라는 뜻이 된다.
  3. 사실 이런 경우는 메이와쿠보다는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더 크다. 일본/정치의 문제점 항목 참조.
  4. 이에 대해서는 최근 들어 약간의 수정사항이 있음. 확실히 일본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기는 하지만 최근들어서는 아베 신조 총리의 안보법안 통과에 반대하는 집회가 일본 전역에서 열리고 가족단위로 참가하여 현재까지도 집회가 열리고 있는 중이며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국민의 권리를 주장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작정 메이와쿠 취급하는 것은 거의 사라진 편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움직임과는 별개로 사회적으로도 1인 가정, 독신, 미혼이 늘어나면서 개인주의 확산과 동시에 이런 변질된 메이와쿠 문화는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5. 사실 안보투쟁도 반전시위로 시작했지만 소련의 대일공작으로 반미/반정부 시위로 변질되었다.
  6. 사실 이 속담은 이런 경우(= 여행지에서 비매너 및 민폐 행위에 대한 면죄부)에 쓰라고 생긴 말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객지에 나가서 무지 등으로 인해 실수(길을 잃고 헤맸다든지)하는 등 창피한 일을 겪었을 때 위로해 주는 말로 쓰는 것이 맞는 용례이다.
  7. 그 외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사과와 배상 문제, 히시마 섬을 비롯해 일본에 강제징용된 사람들의 문제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