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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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 피닉스 야구단 No.11
문성현 (文聖現)
생년월일1991년 11월 9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서울특별시
출신 학교남정초-선린중-충암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체격180cm, 87kg
프로입단2010년 4라운드 31순위
소속팀넥센 히어로즈(2010 ~ )
군복무상무(2015~2017)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36번(2010~2012)
강병식(2008 ~ 2009)문성현(2010~2012)이성열 (2013~2015)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0번(2013~2015)
이숭용(2008~2011)
오재일 (2012)
이성열(2012)
문성현(2013~2015)유선정(2016)
역대 허용투수
제 13대 허용투수
정찬헌
제 14대 허용투수
문성현
제 15대 허용투수
구승민
제 16대 허용투수
최금강
제 17대 허용투수
문성현
제 18대 허용투수

1 소개

넥센 히어로즈의 우완 투수. 그리고 넥센 투수진 5대 암덩어리 싸융짱문오의 문을 맡고있다...가 는 팀의 필승조로 활약하고, 은 상무에 입대했으며, kt wiz의 불펜 에이스 투수가 되면서 작년 싸융짱오가 먹던 욕까지 몰아서 얻어먹고 있다. 재결성 된다면 룸융납

한 시즌에 석 달만 뛰는 후반기 전용투수.진정한 가을남자

2 스카우팅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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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닭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 가능했다.

유망주 씨가 마른 2010시즌 드래프트에서 성공한 축에 드는 것으로 평가받은 투수. 넥센팬이 아닌 사람들은 1라운더로 잘못 알고 있기도 했다.[1] 구속과 구위로 밀고 나가는 투구 스타일을 보여준다. 변화구는 카운트를 잡거나 타이밍을 뺏는 용도로 사용하며, 삼진을 잡는 결정구는 거의 속구. 최고구속은 8월 7일 두산전에서 보여준 151Km/h. 작은 체구에 맞지 않게 구위가 좋은 편이고, 안타나 홈런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공을 던지는 배짱이 매력적인 투수이다. 1군에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도, 1군에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도 모두 이와 같은 싸움닭 기질에서 비롯한다.

전반적인 제구력은 2011 시즌 후반기 이후 좋아졌지만, 여전히 초반 제구력은 좋지 않았다. 문성현이 선발로 나오는 날은 1회를 잘 넘기느냐 아니냐로 그날의 경기 판도가 바뀔 정도였다. 초반만 넘기면 중반부터는 제구가 잡혀 좋은 모습을 보이지만, 초반에 제구를 못잡으면 그날 경기는 망했어요. 선발로 던질 때 110구 가까이 던질 수 있는 투수지만 대부분 7회를 넘기지 못하는 것은 전부 이것 때문이었다.

2013 시즌 시작 때는 칠 테면 쳐보라고 던졌고, 그래서 상대 타자들이 모조리 쳐버렸다(…). 그러나 후반기에 복귀했을 때는 키킹 높이와 타이밍에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도, 코너윅으로 계속 찌르는 안정적인 제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9월 말에 들어서 체력적인 문제를 보여주었는데, 특유의 작은 체구 때문에 내구성에 의문이 있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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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들어 슬라이더 구사율이 높아졌다. 슬라이더를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조라이더. #

2012시즌 불펜 피칭 중 갈비뼈 실금 부상을 입기 전에는 하드웨어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매우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강력한 구위의 포심을 주무기로 삼았지만, 부상 이후 13시즌 들어서는 투구폼이 좀더 간소해지고 포심의 구위와 구속 역시 떨어졌다. 대신 커맨드가 더 안정적이고 낙차큰 브레이킹볼의 스터프가 매우 좋아졌다. 14시즌 시범경기 기간에는 윤성환을 롤모델로 삼으라는 염경엽 감독의 기사가 나왔고, 체인지업 구사 역시 늘었다.

무브먼트와 구속에서 무브먼트와 낙차큰 변화구를 무기로 하는 스타일로 변화를 준 셈, 하드웨어와 내구성에 한계가 드러난 이후 선발 투수로서 괜찮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14시즌의 타고투저 들어서 잘 던지다가 대량실점으로 무너지는 경기가 반복되면서 14시즌 들어서 밸런스와 멘탈 자체가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이전처럼 코너윅을 의식하다 스트라이크 존 근처에서 노는 볼을 던지는 게 아니라 아예 공이 몰리거나 날리는 일이 많아졌고 특히 장타 허용 이후에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의 투쟁심을 모두 잃어버린 상황. 그래서 시즌 중간에 2군으로 내려가 40여일간의 캠프를 다녀왔는데, 그 후로는 좋아진 모습을 보이며 승수를 쌓아갔고, 자신의 개인통산 최다승인 9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15시즌에는 5월 5일까지 총 5번의 선발기회를 받았으나 자신의 강점이였던 과감한 승부가 전혀 보이지 않으며 볼넷과 장타허용률이 심각한 수준으로 상승하였고, 결국엔 5월 5일 경기가 끝난 후 염경엽 감독이 문성현을 롱릴리프로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15시즌 즈음부터는 자신의 하드웨어가 작다는 것을 인정하고 무리하게 타점을 높이기보다 사이드암 스로의 느낌으로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기사

3 아마추어 시절과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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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고 시절, 팀의 황금사자기 우승을 이끌며 MVP로 선정된 바 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좋은 구위를 선보이면서 팀의 우승을 이끌었는데, 드래프트에서는 4라운드 31순위로 순위가 꽤 밀렸다. 아무래도 투수치고 작은 체구가 단점으로 작용한 듯. 여기에 충암고가 고교야구 쪽에서 워낙 괴상한 응원[2]으로 유명한 지라, 학교 명성에서 약간 깎아먹고 들어간 것도 한 몫 한 듯하다. 여담으로 신인 드래프트에서 어느 늙은 복학생이 1라운드에서 안뽑히자 구단주가 매우 기뻐하며 스카우트팀에 뽑으라고 했지만 스카우트 팀이 안뽑아서 매우 실망했다가 다음 라운드에서 문성현을 뽑으면서 못 뽑으면 잘라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은 뒤 결국 지명했다고 한다. 이는 넥센-한화 시범경기에서 아프리카 넥센 편파해설방송에서 이장석 구단주가 직접 언급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2009년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3경기 11⅔이닝 16탈삼진 1실점 맹활약하면서 대회 MVP로 선정되어 낮은 지명 순위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줬다.

4 프로 생활

4.1 2010 시즌

시즌 초에 강진에 박혀 있다가 5월 5일 1군에 등록. 그 후 5월 8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1군 데뷔 첫 등판을 하게 된다. 이후 11일, 1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도 중간계투로 등판. 140km/h 후반의 구속과 싸움닭 기질을 보여주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시진 감독이 미래의 소방수라고 언급하고, 자신도 인터뷰에서 중간계투 체질이라고 하였으나 이미 마무리엔 손승락이 있었다. 게다가 선발진이 붕괴한 상황이라 땜빵으로 선발진으로 투입되었고, 첫 선발 경기인 롯데전에선 1⅓이닝 5실점으로 털렸지만 6월 15일 SK전에선 6이닝 2실점으로 호투, 20일 두산전에선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는 등 안정감을 찾는다.

그러나 이렇게 선발로 잘해줄 때는 타선이 죽어서(…) 승을 못 거두고, 후반기에 다시 계투로 돌아갔을 땐 체력이 떨어져 홈런공장장 가동(…) 결국 시즌 종료 직전에 고원준을 구원하여 구원승을 얻는데 성공한다.

2010 시즌에 32경기 69⅓이닝 1승 5패 평균자책점 4.93을 기록했다.

4.2 2011 시즌

4월초 넥센의 선발진은 나름대로 탄탄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용병 나이트와 유일한 좌완 선발 금민철, 무릎 부상에서 회복된 사이버 투수김영민, 작년 후반기 가능성을 보여 준 김성태, 금지어가 선발진에 버티고 있어 넥센 팬들은 문성현이 필승계투나 셋업맨으로 뛰는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김영민이 무릎 부상이 재발해 또 다시 무너지면서 문성현은 다시 선발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름대로 선발에 대한 욕심은 가지고 있는 듯.

시즌 첫 선발 등판은 2011년 4월 22일 삼성 라이온즈전. 5⅔이닝 3피안타 1피홈런 2자책점의 성적을 냈다. 나름 호투했지만 이 시기 넥센의 타선은 김민우 혼자 치던 때라 당연히(...)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그 이후 선발진에 투상수김수경, 트레이드로 넥센에 온 심수창이 선발진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금민철이 시즌 초 팔꿈치가 나가면서 시즌 아웃, 금지어가 트레이드되어 LG 트윈스로 가게 되었고 김성태도 부상으로 시즌을 마치면서 결국 문성현은 시즌 끝까지 선발 투수로 공을 던지게 된다.[3] 어째 하나 들어오면 하나가 빠져서 계속 있어야 하는 모양새.

특징이라면 전반기인 5월, 6월, 7월 세 달과 후반기인 8월, 9월, 10월의 모습이 다르다. 시즌 후반으로 오면서 제구도 변화구도 안정을 찾아가는중. 투구폼도 전보다 부드러워졌다. 넥센 팬들로부터 넥센의 모든 투수중에서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른 선수로 평가받았다. 물론 털릴 땐 경기 초반부터 롸끈하게 털리는 건 전반기나 후반기나 같았다.

2011 시즌에 1군 30경기 130⅔이닝 5승 12패 평균자책점 4.34를 기록했다. 규정 이닝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나이트 다음으로 팀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하였다.

2011년 9월 18일 이숭용의 은퇴 경기이자 이숭용의 통산 2,001번째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선발승을 올리며 의미있는 승리를 챙겼다. 그 때 삼성의 선발은 장원삼......

4.3 2012 시즌

일본에서 스프링캠프 도중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자격으로 진술을 위해 2월 29일에 잠시 귀국했다. 신원 미상의 인물에게 조작 제의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이를 거절했으며, 혐의가 인정된 금지어와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이 덕분에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에서 문거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무런 탈 없이 조사를 마치고 다시 스캠 마무리를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다.

2012년 팀의 2선발로 나왔다. 첫 경기인 4월 8일 잠실 두산 전에서는 4이닝을 채 소화하지 못하고 5실점하면서 무너졌다. 두 번째 선발 등판인 4월 14일 삼성전에서는 이닝을 길게 소화하면서 6.2이닝 4실점으로 버텼지만 승리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세 번째 선발 등판인 4월 20일 경기에서 두산의 김선우와 맞대결해 먼저 3점을 내줬지만, 팀 타선의 도움을 받고 길게 버티면서 7이닝 3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4월 28일 청주 한화와의 경기에서는 이번에는 부진하며 5이닝 5실점을 기록했다.

5월 첫 등판인 5월 4일 광주 KIA와의 경기에서는 6이닝 3실점으로 9개의 삼진을 잡으면서 호투했지만, 노 디시전. 1회의 3점이 야수들의 실책성 플레이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볼 때, 본인으로서는 다소 아쉬울 듯. 5월 9일 선발 예정이었지만, 불펜 피칭 도중 갈비뼈에 실금이 가면서 2군에 내려가서 재활하게 되었다.

올스타 브레이크 무렵에 복귀했는데, 팀에서는 불펜 필승조로 쓸 예정이다. 7월 24일 KIA와의 원정 경기에서 5:1로 앞선 8회말에 등판해 2이닝 퍼펙트로 막으면서 팀 승리를 지켰다. 그러나 다시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사실상 시즌 아웃되었다.

4.4 2013 시즌

개막일인 3월 30일 KIA전에 나이트, 한현희에 이은 넥센의 3번째 투수로 등판했으나, 포풍 볼질과 3실점으로 속꽉남 등극하며 경기를 깔끔하게 말아먹고 말았다. 팀은 문성현의 실점을 만회하지 못하고 스코어 10:9로 패배하였고 문성현은 이날의 패전투수가 되었다.

그 이후 2군으로 내려갔다. 초반에는 2군에서도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7월 현재 2군에서 구위가 살아난 모습을 보여주고있어 팬들을 다시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다 하반기에 들어 김병현이 크게 부진한 틈을 타 김병현 대신 선발 투수로 기용되었다.

7월 26일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하였으나 최형우에게 홈런을 맞는 등 3이닝 5실점 3자책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었다. 이후 다음에 등판한 7월 31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시즌 첫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5이닝 2실점으로 무난한 투구를 보여 드디어 승리투수가 되었다.

8월 8일 SK 와이번스 전에서는 김상현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는 등 5.2이닝 4실점의 투구 내용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이 날은 팀의 타자들의 방망이마저 식어 그의 패전을 가려줄 수 없었다.

8월 18일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 세 번째 선발 등판을 했다. 이전에 對 삼성전 성적이 좋지 않아 우려를 샀으나, 6이닝 3실점으로 시즌 첫 퀄리티 스타트에 성공하였다. 팀은 손퇴물의 승락극장이 열렸으나 장원삼에게 5점을 얻어냈고, 이후 계투진이 3이닝 1실점으로 막아 승리를 거두었다.

8월 24일 KIA 타이거즈 전에서 네번째 선발등판을 했으며,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며,또다시 승리를 따내었다.

8월 30일에도 재차 KIA 타이거즈전에 등판하였으며, 1회에 1점을 내주었으나 나머지 6이닝동안 무실점으로 막는 7이닝 1실점의 시즌 최고의 역투를 펼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9월 5일 창원 NC전에선 타선이 부진한 중에도 6이닝 동안 2피안타 6탈삼진 4볼넷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그 자신이 승리투수는 되지 못했지만 팀 승리의 수훈갑이 되었다.

9월 17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선발로 등판. 7이닝 동안 9개의 삼진을 잡으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3회 초 타선이 5득점을 했는데, 그 탓에 긴장이 풀렸는지 연타를 맞고 1실점을 한 게 티. 1사 1, 2루에서 강정호의 포구 실책이 행운의 병살로 이어져 더 이상의 실점을 하지 않았다.

오재영과 함께 후반기 넥센의 구세주격인 선수. 물론 완벽한 피칭은 아니지만 선발진이[4] 완전히 무너진 넥센 히어로즈에서 평균 6이닝을 소화해주는 선발의 존재는 큰 보탬이 됐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2이닝 2피안타 4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썩을

4.5 2014 시즌

해당 항목으로.

4.6 2015 시즌

해당 항목으로.
5선발로 낙점받았으나 1승도 챙기지 못한 최악의 해. 게다가 잘 하는 날에도 지독하리만치 승리 투수의 운이 없기도 했다. 시즌 끝나고 상무 입대를 신청해 서류전형을 통과했고, 최종 합격하여 2016년부터 복무예정.

4.7 2016 시즌

7월 20일 승부조작에 가담한 이태양 , 문우람이 욕을 먹는 것과 동시에 재평가를 받으면서 뜬금 1승을 추가하게 됐다. 과거 승부조작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구단에 알렸다는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별개로 넥센 히어로즈 구단이 고척돔으로 옮기면서 덩달아 문성현에 대한 기대치도 올라갔는데, 그전까지 두들겨 맞은 것은 투수들의 무덤인 목동 야구장을 홈으로 써서 그렇고, 고척 스카이돔을 홈 구장으로 쓴다면 성적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실제로 홈 경기 성적에 비해 원정 경기 성적은 제법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6년 퓨처스리그에서 평균자책점 1위 다승 3위에 오르며 히어로즈팬들의 기대를 듬뿍받고있다

5 기타

  • 같이 청소년 대표도 한 안부장만큼은 아니지만, 나이 들어 보이는 외모 덕분에 문이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름 아니라 같은 팀의 선배이자 싸융짱문오 리더인 강윤구보다 동생이다![5]
  • 다른 별명으로는 '문생긴분'이 있다. 생각하는 그 뜻이 맞다 잘할때 별명은 원빈과 합쳐져 문빈(...). 하지만 두 별명 다 2014년부터는 쓰이지 않고 있으며, 2015년부터는 위에서 언급된 인스타그램 사건 때문에 #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배힘찬의 놀라운 역투로 재평가 되었다.그나마 잘할때는 잭 그레인키에서 따온 문레인키라고도 불린다. 사실 저 인스타그램 건도 어느정도 정상 참작은 해 줘야 하는 게, 어느 선수건, 특히 투수는 탈탈 털린 뒤에는 그걸 마음에 담아두기보다는 빨리 잊고 다시 시작하는 쪽을 권한다. 당시 경기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었던 탓에 좀 도에 지나치게 비난받은 면은 있다.
  • 김시진 경질 당시 SNS에 쇠고기 먹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가 된통 욕먹고 문고기, 문소고기, 문비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김시진이 박흥식을 빼가면서 문성현에게 쇠고기 사줘야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문성현이 호투하는 날에는‘이 분 쇠고기 많이 드셔도 되는 분’등의 글이 올라온다.
  • 혀갤러들 사이에서 전설같이 퍼진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입단식 당시 구단이 맘에 안 드는지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이에 미운털이 박혀 신상을 턴 한 혀갤러들의 전화를 받게 됐다. 사실 괘씸죄도 반영된 것인데, 문성현은 당시 아무 구단에서도 지명이 안 들어온 상황이였다. 안승민 항목에 있는 사진에도 나오지만 드래프트 당시 지명이 안돼 초조한 모습의 문성현을 볼 수 있다. 아무튼 4라운드 31순위라는 비교적 하위픽으로 지명됐고, 감지덕지해도 부족한 마당에 똥씹은 표정을 지었으니 보는 사람들은 못마땅할만 했다. 아무튼 혀갤러들이 장난삼아 열창한 영웅출정가를 끝까지 끊지도 않고 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무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6] 이 에피소드와 더불어 프로야구 승부조작 당시 브로커의 제의를 소신있게 거절한 모습 등 야구는 못해도 심성 하나는 착한 선수라고 옹호받는다.

6 보유기록

보유기록
연도기록기록 내용이전 기록 보유자
20152역대 한시즌 최다 허용 1위허용투수 1허용

7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 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10넥센 히어로즈3269⅓15000.1674.93639475743381.572
201130130⅔512000.2944.34129138210863631.584
20121338⅓11030.5004.23380113121181.278
2013176454000.5564.50738255535321.484
20142085⅓94010.6925.919612535159561.688
20153491⅔05010.0006.2811410445875641.687
통산(6시즌)146479⅓2131050.4045.0951352244360296271추가바람
  1. 진짜 1라운더인 김정훈은 강진에서 재활하다가 2012년 1군에서 선을 보인뒤 상무에 입대했다.
  2. 정확히는 학생, 동문 응원단 응원이 아닌, 선수단 덕아웃 내 응원이다. 이 때문에 상대팀의 어그로를 끌어낸 적도 있었다. 사실 충암 학생, 동문 응원단도 고교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악명을 떨친다.
  3. 시즌 마지막 경기인 10월 6일엔 선발 투수김수경 다음으로 마운드에 올라오기도 했다. 5⅔이닝 1자책
  4. 당시 나이트와 벤헤켄은 어찌어찌 버텼지만 피칭 내용이 전반적으로 매우 좋지 않았고, 강윤구, 김병현, 김영민은 완전히 무너져 넥센의 2013시즌 초 5선발 체제 중에 멀쩡한 선수가 아무도 없었다.
  5. 그런데 둘은 절친이다(…).
  6. 전해오는 얘기로는 핸드폰 번호가 싸이월드에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고 한다. 또다른 얘기로는 군대가지 말라고 외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