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희망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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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름 친박연대와 비슷한 당명의 국가재건친박연합(친박연합)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보수정당[1]
한나라당친박연대/미래희망연대한나라당

1 개요

본래 이 당은 서류상으로는 제17대 대통령 선거(2007년 12월 실시)에서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을 대선 후보로 밀었던 군소 정당 참주인연합(-主人聯合)이었다. 이 당은 2008년 미래한국당(未來韓國黨)으로 개명했으나 당연히 거의 개점 휴업 상태였다.

그러다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2008년 4월 실시)를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공천에서 떨어진 소위 '친박 세력'들이 독자 창당할 시간이 없자 여기에 집단으로 입당해 당명을 노골적으로 친박연대(親朴連帶, Pro-Park Coalition) 팬클럽로 바꾸었다. 친박연대는 그 당명 때문에 짧은 기간 내에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너무 노골적으로 특정 정치인(박근혜)을 거론하는 바람에 욕을 많이 먹었다. 그래서 2010년에 당명을 미래희망연대(未來希望連帶, Future Hope Alliance)로 변경하였다. 이후 2012년 한나라당(이후 새누리당)에 흡수 합당됐다.

친박 세력이라지만, 박근혜 본인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았다. 박근혜 지지자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랑 싸웠다고 한다.박대박

2 역사

2.1 시초

2007년 9월 28일, 대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에서 탈당한 김선미 의원이 '참주인연합'을 만들어 대선에 기호 7번으로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을 내보냈다. 정근모 후보는 대선 하루 전에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으나 후보 사퇴는 하지 않고 0.1%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대선 3개월 후인 2008년 3월 12일 미래한국당으로 개명하였다.

2.2 점령

한나라당 후보 공천 과정[2]에서 탈락한 서청원, 홍사덕 같은 친박계 의원들은 원래 당을 하나 새로 만들 작정이었지만, 총선을 앞두고 신당을 만들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판단 하에 미래한국당에 대거 입당하여 미래한국당을 먹어버렸다.(…) 빈 집 털이 엽기의 극치.

서류상으로는 참주인연합→미래한국당이 다시 당명을 친박연대로 바꾼 것이지만 사실상 참주인연합→미래한국당 시절과 친박연대→미래희망연대 시절은 완전히 다른 정당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예전부터 참주인연합(미래한국당)의 당원이었던 당원들은 이들의 행태에 대해 이를 갈고 있다고. 대선 후보였던 정근모 전 장관과 이 당을 애초에 만들었던 김선미 의원은 대선에서 패하고 얼마 못가서 탈당했다.

2.3 18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지역과 부산광역시 연제구 등 몇 군데에서 당선되었으며 심지어 수도권에서도 한 곳을 얻었다.[3]

여담으로 지역구 당선자수보다 비례대표 당선자수가 더 많았다.[4] 박근혜라는 네임벨류만으로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것.[5]

한편 이 시기에는 역대급 흑역사가 일어났는데, 돈이 없는 신생정당 특성상 공천헌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돈을 준 양정례 의원(비례 1번/ 17억), 김노식 의원(비례 3번/15억 1000만원)과 공천헌금을 받은 서청원 대표(비례 2번)이 의원직을 상실했다.

2016년2008년, 강재섭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탈당 인사들의 복당을 불허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와의 회동을 거쳐 복당 불허 방침을 철회했다.

2.4 합당과 소멸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른 당에 있는 특정 개인의 이름을 딴 정당"이란 엽기적인 상황을 벗어나고자[6] 새 당명을 시민공모하기로 했는데 이름들이 참 근사하당(...). 오랜 논의 끝에 새로운 당명을 '미래희망연대'로 하기로 했다고 한다. 미래희망연대로 개명 후, 지방선거에 단독후보를 꽤 많이 냈다. 하지만 정작 공식 선거전에 미래희망연대 소속 후보는 한 명도 없었다.

2010년 서청원 당시 공동대표[7]는 한나라당과의 조건 없는 합당을 제안하였다. 이에 지방선거를 준비하던 미래희망연대 의원들은 반발하였고 이규택 공동대표는 자유선진당에서 갈라져나온 심대평국민중심연합과의 합당을 추진했다.

그러나 하루만에 일이 어찌저찌 잘 풀려서(…), 전당대회에서 만장일치로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의결하였다. 2012년 2월 최종적으로 합당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돌고 돌아 제자리

3 평가

기형적인 한국 정치의 사생아이면서, 한,중,일 정치의 공통 속성인 이른바 보스정치의 끝을 보여주는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당론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하나도 도움될 게 없는 정당이다. 기존 한국 정당들의 문제였던 "도대체 정책과 이념은 개뿔도 없고 유명한 인물이 정당하나 세운다고 만들면 우르르 쫓아가서 옹립하는" 명망가 정당(名望家政黨, Honoratiorenpartei)의 아주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가장 명백한 형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름부터가 '친박'연대니 노골적으로 박근혜 2중대를 표방한 것.

한국 정치사의 불랙 코메디라고도 할 수 있다. 당이름이 친박연대인데 정작 박근혜는 다른당에 있었다.

다만 친박연대라는 당명은 유권자들의 머리에 각인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친박연대의 임팩트가 강했던 탓에 친박연대는 잘 알아도 최종 당명인 미래희망연대는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을 정도.

4 역대 선거 결과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
14/299 득표율 13.2%[8]

5 유사 당명

  • 국가재건친박연합(약칭 친박연합):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추종을 표방했던 군소정당.
  • 친반통일당: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지지한다며 창당된 군소정당. 반기문 본인은 연관성을 부인했다.
  • 개혁친허연대: 그 분(...)을 추종하여 창당을 준비했던 조직. 공화당과 합당을 선언하며 소멸되었다.
  1. 보수성향이지만 한나라당 공천에 탈락한 친박계 인사들이 참여한 정당.
  2. 대선에서 친이계가 승리하자 공천권도 친이계가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김덕룡, 서청원, 홍사덕, 김무성 같은 YS 계열의 다선 의원들이 줄줄이 공천에서 잘렸다.
  3. 해당 지역구는 안산시 상록구을이다.
  4. 비례 대표 지지가 무려 13%. 자유선진당보다 많은 제3당이다. 지역구 6명 + 비례대표 8명. 이회창과 충청 민심을 마케팅 전략으로 삼은 자유선진당의 두 배의 비례대표가 나왔다. 비록 지역구 의원 숫자에서 자유선진당에 개 발렸지만.
  5. 19대 총선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국민생각, 정통민주당 등 공천에 떨어진 인사들이 설립한 정당들은 의석수 배출은 커녕 비례대표 득표율 2%도 달성하지 못하여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 그나마 선전한 것으로 평가받는 통합진보당의 의석수가 13석인데, 민주당과의 연대가 아니었으면 이 정도의 결과 또한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친박연대의 의석수는 14석.
  6. 친박연대라는 이름은 총선을 앞두고 쪽팔림을 무릅쓰고 인지도를 일거에 높이는 극약 처방으로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욕은 많이 먹었지만... 그 후 친박연대라는 이름은 이미 그 역할을 충분히 했으니 해괴한 당명을 더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좀 정상적인 당명으로 변경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7. 참고로 당시 국회의원직은 상실한 상태였다.
  8. 1인 2표제가 도입된 후 20대 총선에서의 국민의당 등장 이전까지 거대 양당을 제외한 당 중 최대 득표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