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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2.1 정치입문 전
1943년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 중 대한민국 해병대에 입대하여 의무복무하였다. 졸업 후 중앙일보 기자로 일하였다.
2.2 리즈시절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영주시-영풍군-봉화군-영양군 지역구에 민주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오한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4년 말 서석재, 박관용, 김찬우, 허경만, 김현규, 손정혁, 최수환 등과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고, 같은 해 신한민주당 대변인이 되었다. 이민우 총재의 측근으로 활동했는데, 이민우 구상이 홍사덕의 아이디어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1987년 박찬종, 이철, 허경구, 조순형, 장기욱 등과 함께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양쪽 모두에 합류하지 아니한 채 야권 단일화를 주장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구를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지역구로 옮기고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대중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에 복귀하여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따라갔다가 바로 탈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지금 잠이 옵니까라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1997년 김영삼 정권의 정무제1장관에 임명되었다.
2.3 2000년 이후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장기표와 함께 무지개연합이라는 신당 창당을 추진하다가, 뜬금없이 한나라당에 입당하였다[1]. 홍사덕 창당 선언 '작심 1주일'[2]
한나라당 전국구 2번을 배정받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었으나 2001년 사임하고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섰다. 그러나 2002년 3월 7일자 중앙일보의 대의원 조사에서 지지율이 36.5%으로 53.1%인 이명박에게 크게 뒤처지는 결과가 나오자, 경선을 포기한다. 당시 "이명박이 당내 경선에서 대의원들을 상대로 지나치게 '물량' 공세를 펴는 것에 홍사덕이 크게 분노했다"는 얘기가 돌았고, 홍사덕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반드시 보여 주겠다"고 무소속 출마를 시사하기도 했으나 지도부의 만류로 무소속 출마는 실행되지 않았다.
2003년 한나라당 원내총무에 선출되어, 이라크 파병하면 한달 동안 사병으로 근무하겠다는 황당한 소리로 군대가 장난이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결국 안갔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를 주도하고 그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갑(현 일산동구) 지역구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05년 경기도 광주시 지역구 국회의원 재선거 공천에서 탈락하자 불복하고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진섭 후보에 밀려 또 낙선하였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이 싫어서 박근혜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여 친박연대 후보로 대구광역시 서구 지역구에 출마, 당선되었다. 당선 이후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선거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정세균 후보에 패하여 낙선하였다.
이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의장으로 있다가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으로 사의를 표했지만, 수리되지 않았고 계속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81 |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9선거구)[3] | 민주한국당 | 21,199 (23.8%) | 당선 (2위) | 중대선거구 |
1985 |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주/영풍/영양/봉화) | 신한민주당 | 35,828 (32.1%) | 당선 (2위) | 중대선거구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 을) | 무소속 | 34,746 (30.4%) | 낙선 (2위)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 을) | 민주당 | 64,201 (52.2%) | 당선 (1위)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 을) | 무소속 | 30,601 (26.1%) | 당선 (1위)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2번) | 한나라당 | - | 당선 (1위)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고양 일산 갑) | 한나라당 | 45,936 (46.6%) | 낙선 (2위) | |
2005 | 2005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17대 국회 경기 광주)[4] | 무소속 | 17,812 (30.8%) | 낙선 (2위) | 공천 불복으로 탈당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서) | 친박연대 | '52,713 (61.8%) | 당선 (1위) | 2008년 한나라당 복당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 새누리당 | 36,641 (45.9%) | 낙선 (2위) |
4 저서
지금 잠이 옵니까 솔직히 이거때문에 온 사람들이 태반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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