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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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서청원(徐淸源)
출생일1943년 4월 3일
출생지충청남도 천안시
본관대구 서씨
최종 학력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소속 정당새누리당
지역구경기 화성 갑
의원 선수8
의원 대수11, 13, 14, 15, 16, 18, 19, 20
종교개신교
배우자이선화
자녀1남 1녀
약력(현)제20대 국회의원
(현)한일의원연맹회장
(현)새누리당 최고위원
(전)제11, 13~16, 18~19대 국회의원
(전)새누리당 상임고문
(전)친박연대 대표최고위원
(전)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전)한나라당 사무총장
(전)신한국당 원내총무
(전)정무1장관
외부 링크공식 사이트

1 개요

친박의 좌장

대한민국의 기자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

1943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부생 때 6.3 항쟁에 참여하였다. 이후 병역을 이수하고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일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조종호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한민주당 박실 후보와 민주정의당 허청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고 민주화추진협의회에 가입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통일민주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1989년 통일민주당 총재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3년 12월부터 1994년 12월까지 정무제1장관을 겸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한편 16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출투표에서 새천년민주당 이만섭 의원(전 의장)에게 단 8표차이로 패해서 의장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2002년 5월부터 2003년까지는 한나라당 총재를 지내기도 했다.

이후 17대 총선은 탄핵여파가 워낙 컸던지라 불출마했다. 그리고 서청원이 10여년간 가지고있던 동작 갑 지역구는 이 때 당선된 초선의 열린우리당 전병헌이 10여년간 가지게 된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박근혜를 지지하였다. 2008년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미래희망연대를 창당해서 당대표가 되었고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양정례(비례 1번)의 비례대표직 금품 수수로 대법원에 의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문제는 심근경색으로 형 집행정지가 되었는데 그게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고 있고 심근경색이 사실이라면 건강상태도 국회의원직 수행에 있어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하면 논란이 되어야 하나 왜인지 조용하다(...)

그 뒤 새누리당과 미래연합이 통합하자 다시 새누리당으로 복당했다. 그리고 2013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화성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1] 13년 재보선에서는 심근경색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어서 쓰냐민주통합당에서 공세가 있었다. 20대 총선에서도 화성시 갑 지역구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심근경색 논란이 없었다.

박근혜정부 들어 비박계로 분류되는 김무성 대표와 시시건건 마찰을 빚었는데,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김무성에게 밀려 떨어진 이후에도 친박 좌장 타이틀이란 영향력은 건재하여,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이른바 박근혜 마케팅을 동원해 유승민을 포함한 비박계 의원들이 공천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였다. 또한, 최경환 등 친박 의원들과 같이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진실한 친박)이란 민망한 표현을 쓰는 등 새누리당 내부 분열의 원인을 제공하였고, 그 결과...

20대 총선에서 122석을 얻고 원내 제2당으로 밀려난 새누리당의 대참패 이후, 김무성을 포함한 지도부는 전격 사퇴 수순에 들어갔는데도 별 소식이 없다. 아마도 수도권을 제외하고 경상도 등 새누리당의 주요 텃밭 지역에서 친박계 의원들이 어찌어찌 당선에 성공했기 때문. # 그런데 당 내부에서 국회의장에 서청원이 지명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친박 대표주자인 서청원의 박 대통령 마케팅으로 선거에서 참패한 것을 보면... 꿈도 희망도 없다. 결국 6월 8일 20대 국회의 전반기 의장을 더민주가 맡는 것으로 합의하면서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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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1일 국회의장 체험 6월 9일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 선출을 위한 의원 표결에서, 현역 최다선 의원으로서 임시 의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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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정세균: 이 자리는 이제 제겁니다. 서청원: 아깝다! 원래 내가 찜해두었던 자리인데... 표결 후, 당선자인 정세균 의원에게 의장석을 넘겨주는 모습.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했다면 국회의장이 될 수도 있었을 본인에게는, 꽤나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을 듯.[2]

3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81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3]민주한국당45,207 (27.2%)당선 (1위)
1985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민주한국당41,623 (19.7%)낙선 (3위)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 갑)통일민주당37,270 (39.3%)당선 (1위)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 갑)민주자유당38,182 (37.2%)당선 (1위)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 갑)신한국당40,318 (40.8%)당선 (1위)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 갑)한나라당40,838 (45.2%)당선 (1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2번)친박연대-당선2009.5.14 의원직 상실
(공직선거법 위반)
20132013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19대 국회 경기 화성 갑)[4]새누리당37,848 (62.7%)당선 (1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화성 갑)새누리당 40,365 ( 52.3 %) 당선 (1위)

4 기타

  1. 원래 화성 갑 의원인 고희선 의원이 임기중에 사망해서 공석이 된 상태였다.
  2.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꿈이 국회의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위의 서술을 보아도 알 수 있듯, 국회의장 출마 자격이라고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5선 시절, 즉 16대 국회부터 국회의장 자리에 도전했었고, 20대 국회에서야말로 의장석에 앉을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으나, 끝내 임시 의장만 맡아 봤으니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할 만한 상황.
  3. 4~5공화국의 총선은 중대선거구제다. 민주정의당 조종호 후보와 동반 당선.
  4. 전임자 고희선 작고
  5. 야당까지 합치면 비례대표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의원이 77세로 가장 나이가 많고, 지역구 당선자 중에서는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75세로 최고령이다. 이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강길부 의원(75세)이 새누리당으로 복당하며 새누리당 최고령 의원 타이틀을 넘겨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