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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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哲
1948년 3월 18일 ~

역대 한국철도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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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신광순2대 이 철권한대행 박광석
3대 강경호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종교는 원래는 무종교였으나, 후에 가톨릭에 귀의하여 가톨릭이며, 세례명은 베드로이다.

1948년 경상남도 진주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학생이던 1969년 3선 개헌 반대 시위로 징집되어 병역을 이행하였다. 이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고문당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국제적인 압력으로 석방되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도 연루되어 투옥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김정례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시 선거 구호는 돌아온 사형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찬종, 허경구, 홍사덕, 장기욱, 조순형 등과 김영삼, 김대중 양김씨의 야권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는 데 앞장섰다. 이에 실패하자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노태우 정권이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를 밀어붙이려 하자 같은 친야 무소속 국회의원 박찬종 등과 강력 반대하였다.

3당 합당 이후 이기택, 노무현, 김정길, 김상현 등의 통일민주당 잔류파에 합류하여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1991년 민주당이 평화민주당의 후신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을 창당하자 이에 따라갔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당선되어 원내총무까지 지냈다.[1]

1995년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반대하여 민주당의 후신 통합민주당에 잔류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경기고등학교 선배인 새정치국민회의 유재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노무현 등과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에서 활동하다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의 합당에 참여하여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다.

그러나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나라당을 탈당해 정계를 떠났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정몽준국민통합21에 참여하면서 정계에 복귀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북구-강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형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 한국철도공사 사장시절

철도 르네상스 시대를 열다.

2005년 6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코레일 사장을 지냈다. 이 때문에 철도 갤러리에서 꽤 인지도가 있는데, 주로 Fe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 시기에 코레일 내에서 여러 굵직굵직한 일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KTX 여승무원 비정규직 사태와 2007년 역사적인 첫 남북철도 시험운행, KTX-산천(당시이름 KTX-2) 개발 등이 있었다. 한국철도공사의 사명을 공식적으로 코레일로 쓰이기 시작한것도 이 때부터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활동했던 철도 동호인들에게 꽤나 많이 까였는데, 그 이유는 이철 사장 재임 시절 수많은 철도 간이역들이 폐역이나 무정차크리를 맞았기 때문, 또한 통근열차나 완행 무궁화호 열차도 이시기에 대부분 폐지되었으며, 공사 차원에서 적극적인 자석도색 신 CI [2]적용으로 인한 구 철도청 시절의 색깔 빼기도 그 이유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러한 잡음 속에서도 코레일은 공사 창립 이래 역대 최초로 흑자(!!)를 기록했으며[3], 70년대부터 자가용의 보급으로 가세가 기울어가던 철도의 가치를 드높혔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이후 후임 사장들의 연이은 불명예 사퇴와, 코레일의 쌓여만가는 부채, 철도 민영화 사태등으로 공사내부가 어수선해지자, 최근 들어 철도 동호인들에게 재평가를 받고있다. 구관이 명관이다

그의 재임 당시 CI와 가이드라인 체계가 크게 바뀐 덕에 현재 볼 수있는 한국철도의 풍경은 이 시기부터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비판받아야 하는 점도 많은데, KTX 여승무원 비정규직 사태는 "비정규직으로 회사가 일방적으로 바꾸고, 말 안 들으면 짤라버려도 된다"는 인식을 기업가에게 심어주며 대한민국의 비정규직화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퇴임 후 상당힌 기간이 지났음에도 노동계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고 있다. 무엇보다 KTX 여승무원 비정규직 사태는 2016년 현재에도 진행중이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85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북)신한민주당121,004 (40.6%)당선 (1위)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북 갑)무소속40,652 (31.2%)당선 (1위)1990년 민주당 입당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북 갑))민주당61,719 (49.7%)당선 (1위)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북 갑)통합민주당34,555 (31.8%)낙선 (2위)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북/강서 갑)열린우리당35,280 (43.4%)낙선 (2위)
  1. 이것 때문에 훗날 노무현 대통령은 이철을 부를 때마다 이총무님이라는 호칭을 자주 썼는데, 나중에 이철이 코레일 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안 그러다가 코레일 노조 파업 문제로 독대했을 때 또 다시 이총무님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고.
  2. 코레일 블루 맞다.
  3. 2016년 현재 코레일은 이 시기 이후로 단 한번도 흑자를 기록한적이 없다. 참고로 현재 코레일의 부채규모는 무려 17조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