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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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一
1927년 03월 14일 ~ 1997년 06월 13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입전(立田)이다.

1927년 경상남도 밀양군에서 태어났다.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밀양제일보통학교 교사로 있다가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교장에 의해 고발되었다. 그러자 피신해서 노무자생활을 하다가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 이후인 1949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수료하였다. 그리고 반공청년단에 몸담았다. 이후 야당 정치인으로서 민주당, 민정당, 민중당 등의 정당에 몸담았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밀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공정식 국회의원을 꺾고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밀양군-창녕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성낙현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 김재광계에 속하였다. 1976년 11월 신민당 이철승 대표최고위원 체제가 출범하자 정책위의장에 임명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하대돈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경상남도 밀양군-창녕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신상식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7년 다시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경상남도 밀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인한 민주자유당 창당에 따라가지 않았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5년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이에 따라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