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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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在光
1922년 5월 21일 ~ 1993년 1월 3일

1 소개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서강(西剛)이다. 종교불교이다.

2 일생

1922년 충청북도 청주군 오창면 장대리(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960년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 1968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였고, 1989년 미국 퍼시픽대학교(Pacific States University)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6년 8월 초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이 되었다. 같은 해 10월 민주당 원내총무가 되었다. 1960년 12월 제2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이 되었다가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치활동이 규제되었다.

1963년 4월 군정 연장 반대시위로 서울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났다. 같은 해 11월 민정당의 공천을 받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5년 한일기본조약 비준을 반대하기 위하여 소속정당 탈당과 동시에 국회의원도 사퇴하였다. 1967년 2월 신민당 창당을 발기하였으며, 같은 해 6월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되고 신민당 사무총장과 원내총무 등을 맡았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유진산 체제에 반대하여 신민당을 탈당하고 친야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오유방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 이후 치러진 수습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오유방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면서 신민당 내에 자신의 계보 산하에 노승환, 김영배, 이용희 등을 거느렸다[1].

그러다가, 1980년 12월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을 금지당하였다. 1984년 11월 정치활동금지가 해제되자 12월 신한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참가하였다. 1985년 1월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은평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윤길중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때 신한민주당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있으면서 강우영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주영복 내무부장관, 이원홍 KBS 사장, 이웅희 MBC 사장 등을 공정선거 의무를 위반하였다며 선거법 위반 등으로 고소하였다.

1987년 김영삼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자 통일민주당에 몸담았다. 그 해 12월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후보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계보에 속했던 노승환, 김영배 등은 그와 결별하고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었으며 1990년 연임하였다. 1992년 3월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같은 해 7월 민주자유당 상임고문이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3년 별세하였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선여부비고
1963제6대 국회의원 선거민정당-당선
1967제7대 국회의원 선거신민당-당선
1971제8대 국회의원 선거신민당-당선
1973제9대 국회의원 선거신민당-당선
1978제10대 국회의원 선거신민당-당선
1985제12대 국회의원 선거신한민주당-당선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통일민주당-당선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민주자유당-당선
  1. 이들은 계보 보스였던 김재광처럼 국회부의장을 지낸 공통점이 있다.